第 一 章 난세(亂世) 2
온남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그를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병을 청하러 간 거였어.』
『나는 그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단다. 단지 담에서 어떤 사람이 뛰어 내려와 그네가 있는 곳에 서더니 그걸 멈추게 하고 내 허리를 안으려 하길래 발버둥을 쳤단다. 그는 한 손으로 나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담장 밖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아 당겨 가볍게 나를 담 밖에 내려놓았단다. 나는 너무 널라 그의 얼굴을 마구 때렸지. 그는 한동안 얻어맞고 있다가 갑자기 내 어깨를 꼬옥 잡았어. 그러자 온몸의 힘이 쭉 빠져 조금도 움질일 수가 없었단다. 단지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치며 따라오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어. 그런데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질 뿐이었어. 그는 나에게 음흉한 미소를 짓더군. 그때 나는 두 숙모님이 생각나서 수모를 당하느니 깨끗이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어. 그런데 그가 내 등을 잡는 바람에 죽을 수도 없었단다.』
이렇게 말하면서 온의는 이마를 가리켰다. 원승지는 머리에 가려져 있는 상처를 보면서 당시 상당한 중상을 입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온의가 긴 한숨을 몰아쉬면서 계속했다.
『만일 그때 나를 죽게 내버려뒀으면 그 사람도 그 지경은 되지 않았을 거야. 그 일이 그에게 해를 입힐 줄 누가 알았겠니? 한참 후에 깨어나 보니 내 몸에 담요가 덮여 있었어. 소스라쳐 담요를 걷어 보니 옷이 그대로 입혀져 있길래 다소 마음을 놓았단다. 내가 죽으려 하니까 그가 선심을 발휘한 거라고 생각이 들더구나. 나는 두 눈을 꼭 감고는 그대로 누워 있기로 했단다. 그는 내가 다시 죽으려고 할까 봐 이틀 밤낮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리고 간간이 말을 걸더구나. 하지만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어. 그는 음식을 가져와 나에게 먹이려고 했으나 나는 울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단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개가 굶어 죽을 것 같았는지 고기죽을 끓여 와 나에게 먹어 보라고 하더군.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자, 갑자기 내 코를 비틀어 붙잡고 억지로 내 입속에 국물을 넣었단다. 이렇게 강제로 반쯤 먹이고 있을 때 그의 손이 가벼워진 점을 느낀 나는 입에 물고 있던 뜨거운 국물을 그의 얼굴에 뱉어 버렸어. 일부러 그를 화나게 하여 빨리 죽이도록 하고 싶었던 심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면서 옷소매로 얼굴의 국물을 닦았단다. 그리고는 멍청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짓더군.』
원승지와 청청은 서로 바라보다가 그녀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온의의 말이 이어졌다.
『그날 밤, 그는 동굴 입구에 기대어 앉아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노래 한 곡 불러 줄까?' 그러나 내가 '듣고 싶지 않아요' 라고 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오더군. 그리고는 '나는 네가 벙어린 줄 알았는데 말을 할 줄 아는군' 하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누가 벙어리야? 살인마와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하며 욕설을 퍼부었단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않고 동굴 입구로 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군. 그는 달이 떠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 댔어.』
이때 온남양이 큰소리로 빈정거렸다.
『너는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노래를 경청했겠군. 누가 너의 그런 뻔뻔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줄까봐?』
온남양은 몸을 돌려 성큼성큼 정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엄마, 계속하세요.』
청청의 말에 온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나는 비몽사몽간에 잠을 잤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가 보이지 않기에 얼른 동굴 밖으로 나왔단다. 그런데 그 동굴은 산꼭대기 가파른 곳에 있는데다 길도 없고 험하여 경공이 뛰어난 사람만이 겨우 내려갈 수 있는 곳이었어. 정오쯤 되었을 때, 그가 돌아와 나에게 비녀며 연지 등을 주더구나. 나는 그런 것들을 골짜기에다 몽땅 던져 버렸단다. 하지만 그는 그전처럼 화도 내지 않았고, 밤에는 또다시 노래를 불러 주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병아리새끼, 고양이, 거북이 등을 가지고 왔더군. 그는 내가 감히 살아있는 동물들을 버리고 도망가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하루종일 고양이를 어루만지고 병아리에게 먹이를 주면서 저녁에는 계속 노래를 들려주었어. 나는 동굴에서 잠을 잤고 그는 한발자국도 동굴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단다. 나는 그가 나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고 겨우 음식을 먹었었지. 거의 한달이 넘도록 나와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시종 나에게 부드럽게 대해 주었어.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까지 잘 대해 준 적은 없었단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가 갑자기 험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군. 나는 무서워서 그만 울어 버렸어. 한동안 나를 쳐다보던 그는 측은했던지 나를 달래더구나. 그날 밤 나는 그의 울음소리를 들었단다. 아주 슬프게 흐느껴 울더군. 얼마 후,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단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사람에게 동굴 안으로 들어와 비를 피하라고 했단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더군. 나는 그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지. 그러자 그가, '내일이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형님 동생의 제사야. 내 가족이 너의 집 사람한테 살해당한 날이란 말이야. 내일 나는 너의 집 식구 한 사람을 죽여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경계가 너무 엄하단 말이야. 그들은 공동파의 이졸 도사와 십방사의 청명선사를 불러와 도움을 청하고 있어. 그 두 사람은 무예가 뛰어나지. 그러나 나는 여기서 물러나진 않을 거야' 하고는 이를 악물고 비를 맞아가며 산 아래로 내려갔단다. 다음날 저녁이 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더군. 나는 걱정이 되어 은근히 그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단다.』
여기까지 듣고 청청은 몰래 원승지의 눈을 쳐다보며 그에게 경멸하는 기색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아주 공손하게 앉아 정신을 집중시켜 듣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몇 번이나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단다. 그때 한쪽 산봉우리에서 네 명의 그림자가 서로 몸을 날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더군. 나는 자세히 눈여겨보았었지. 제일 먼저 오는 사람이 바로 그였고 뒤에 쫓아오는 사람은 도사였으며, 나머지 한사람은 스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은 아버지였단다. 그의 손에는 금사검이 들려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치며 한편으로는 피하면서 한참을 싸우다 스님의 지팡이가 획하고 옆을 스치자 그는 피할 방법이 없었는지 몹시 당황해 했어. 시급한 마음에 내가 큰 소리를 지르자, 그는 그 틈에 금사검으로 스님의 지팡이를 두동강을 내버렸어. 아버지는 내 소리를 듣고는 곧 나에게 뛰어 올라오셨단다. 그러자 그는 양검으로 스님과 도사를 비키게 하고 아버지를 추격하더군. 이렇게 하여 아버지는 내 앞으로 달려오고 그는 중간에 도사와 스님은 뒤에서 쫓아 왔어. 그는 아버지를 추격하면서 내 앞으로 오지 못하게 하더군. 몇 차례 서로 싸우는 사이에 도사와 스님이 도착했고 아버지는 틈을 내어 나를 향해 기어 올라오셨단다. 이윽고 네 사람이 모두 내가 서 있는 산봉우리에 도착, 나는 너무나 기뻐서 큰소리로, '아버지, 빨리 오세요!' 라고 외쳤단다. 이때 그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아버지를 계속 물러서게 하더군. 아버지가 대항하지 못하고 쩔쩔맬 때 스님과 도사도 왔었지. 아버지가 소리치면서, '얘야, 너 괜찮니?' 하고 물으셨단다. 그래서 나는,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 염려 마세요' 하고 소리쳤단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래 먼저 이놈을 처치하고 난 다음에 보자꾸나' 하셨어. 세 사람은 다시 그를 에워싸더군. 그중 도사가 말하기를, '우리들 공동파와 너와는 아무런 원한도 없다. 그러나 네가 무례하기 때문에 이렇게 화해시키러 왔다. 나는 누구도 돕지 않으며 만일 네가 이 시간 이후에 온씨 일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즉시 돌아갈 것이다.' 그가 외쳤단다. '부모와 형제의 원수는 이대로 놔두란 말이냐!' 라고 하기에 스님이 다시 말했단다. '너는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그걸로서 충분하지 않느냐? 이제 우리 두 사람의 체면을 봐서라도 여기서 그만둬라!' 그런데 갑자기 스님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네 사람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단다. 도사의 병도는 약간 이상했지만 무공은 뛰어나더라. 그런데 스님이 지팡이를 휙! 하며 무서운 소리를 내더군. 그는 점점 힘이 빠지고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갑자기 비틀거려 쓰러질 뻔했단다. 스님의 지팡이가 그의 옆구리를 치자 그는 비키면서 내 얼굴을 보더군. 그가 나중에 말하기를 그때 그는 이미 온 힘이 다 빠져 지쳐 버렸대. 그런데 내가 그에 대한 관심있는 얼굴을 보고는 힘이 생겨서인지 검은 점점 빨라지더군. 시간이 흘러 산골짜기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안개 속에서 그는 반짝이는 검이 보이더군. 그때 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었지. '온아가씨,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보세요!' 하더구나. 이어 스님의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산 아래로 굴러가는데 머리엔 금사추가 꽂혀 있었다. 아버지와 도사가 깜짝 놀라는 순간, 그는 다시 아버지를 향해 칼을 휘두르더군. 도사가 틈을 타 그 뒤를 공격하니, 그는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왼손가락 두 개로 도사의 눈을 공격했어. 도사가 머리를 낮추며 피하자 그의 검은 도사의 머리를 두동강 내고 말더군.』
이때 청청이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온의가 말했다.
『그는 검을 되돌려 받아 아버지를 찌르려 했지. 아버지는 무공이 뛰어난 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버리고 말았어. 나는 동굴 안에서 뛰어나와 소리치며, '멈춰요, 멈춰요!' 라고 하자, 그는 내 말을 듣고는 공격을 멈추더군.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이분은 나의 아버지에요' 하자, 그는 아버지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말하기를, '어서 가십시오. 당신의 생명을 용서해 주겠소!' 하더군. 이 말에 아버지는 뜻밖이라 생각하며 몸을 돌려 뛰어 가셨어.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나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좀전의 싸움으로 놀란데다 아버지를 놓아주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 곧 쓰러지고 말았어. 그는 급히 나를 부축했고 나는 그의 어깨를 쳐다보았지. 그는 정성껏 내가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를 보는 사이 뜻밖에도 아버지가 습격을 해 오셨어. '조심하세요!' 라고, 나는 황급히 말하자 그는 멍한 상태에서 피하려 했으나 이미 피할 수가 없어 머리와 등에 한 대씩 맞았지. 그는 철봉을 빼들어 산골짜기로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아버지를 치더군. 아버지는 저항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죽이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 그가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는 아버지에게 말하였지. '얼른 가시오! 내가 다시 마음이 변하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아버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산 아래로 내려가셨어. 그의 등은 아버지의 공격을 받고 심한 중상을 입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모금의 붉은 선혈을 내 옷에 뱉더군.』
잠잠이 듣고 있던 청청이 '흥!' 하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참으로 뻔뻔스럽군요. 상대가 도저히 대항할 수 없으니까 등 뒤에서 습격을 가하다니!』
온의가 한탄하며 말했다.
『그는 우리 집의 대원수요, 우리집 식구 몇 십 명을 죽였는데도 그가 포위당하자 나는 그를 도와주었단다. 이것이 전생의 업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는 비틀거리며 동굴로 들어가 주머니 속에서 약을 꺼내 먹고 계속 피를 토해냈어. 나는 놀라서 울 뿐이었어. 그는 비록 상처를 입었어도 얼굴은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짓고 묻기를, '왜 우시오?' 하길래, 나는 울면서 말하길, '당신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잖아요' 하자 그는 웃으며 묻더군. '그대는 나를 위해 우는거요?' 나는 그 말에 대답도 못하고 아주 슬퍼할 뿐이었단다. 한참 후에 그가, '예전에 우리 가족이 그대 여섯째 숙부에게 살해당한 후 지금까지 한 사람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소. 나는 오늘 그 애의 사촌 오라버니를 죽임으로써 지금까지 모두 40명을 살해했소. 원래는 아직도 열 명을 더 죽여야 하지만 그대의 눈물이 이제 살해를 그만두게 했소.' 이렇게 말하기에, 나는 울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지. '그대 집 여인들도 이제 그만 해치겠소. 내 상처가 완치되면 그대를 집으로 돌려보내겠소.' 그는 그렇게 말했지. 나는 그 말에 마음은 말 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기쁨이 가득 찼고, 단지 그가 앞으로는 살인을 그만하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만으로도 기뻐했었지. 그러나 그의 지치지 않은 객혈로 어떤 때는 거의 죽은 듯이 비몽사몽간에 '엄마' 를 부를 뿐이었다. 어느 날 그는 하루종일 기절해 있었는데 저녁때가 되어도 눈을 뜨지 않자 나는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울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눈을 뜨고 웃으면서, '걱정 마시오. 나는 죽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였지. 이틀이 지나자 과연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 어느 날 밤 그는 나에게 말하길, '내가 회복하기 전에 이 막대기로 때려죽이지 않고 나를 치료해 주다니…… 정말 고맙소……' 라고 하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그가 죽은 후 나를 생각해 보니 이 높고 험한 산봉우리에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나를 구하려는 사람도 그가 무서워 올라오지도 못해 만일 그가 살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지. 그는 나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거였어.』
청청이 말을 가로챘다.
『엄마! 그가 그처럼 엄마에게 잘해주다니 정말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군요!』
사납게 원승지를 한 번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원승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온의가 또 말했다.
『그후 그의 몸은 점차 회복되어 나에게 그가 어렸을 때 그의 부모 형제자매와 같이 뛰어 놀던 일, 그를 사랑해 주었던 일 등을 이야기 해주었단다. 한 번은 병이 났는데 그의 어머니가 삼일 밤낮을 꼬박 새우며 그의 침상을 지켜 줬다고 그러더구나. 그날 밤 여섯째 숙부가 그들 가족 모두를 살해할 줄 어찌 알았겠니? 그때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손은 비록 흉악무도하지만 그 가족들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이 참으로 착하고 유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꽃으로 수놓은 붉은 두아(?兒)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며 말하길 그의 돌때 어머니가 수놓은 것이라고 하더라.』
그녀가 여기까지 말하고 품속에서 어린아이용 두아를 꺼내어 탁자 위에 펴놓았다.
원승지가 빨간 비단에 하얀 비단으로 수놓아진 발가벗은 어린아이가 파초 잎사귀 위에 있는 모습을 보고 통통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귀엽다고 느꼈다. 수놓은 솜씨는 훌륭했고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정성껏 수를 놓았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원승지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안 계셔서 이 두아를 보며 자기 앞날을 생각하고 씁쓸해 했다.
온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는 항상 노래를 불러 주었단다. 또한 나무로 조그만 개나 말의 인형을 만들어 주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 같다고 하더군. 이후 그의 상처가 깨끗이 나았고 나는 그가 점점 상심해 하는 것을 보고는 참을 수가 없어 그 원인을 물었었지. 그는 나와 차마 헤이질 수 없다고 말하더군. 그래서 내가 말하길, '그럼 내가 여기서 당신과 함께 살지요. 어때요?' 했더니 그는 아주 기뻐하고 크게 소리치며 산봉우리에 있는 두 그루의 큰 나무에 뛰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더군. 마치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듯 좋아했단다. 그가 나에게 말하길 그는 지도 한 장을 얻었는데 큰 보물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다고 했으며 거기엔 금은보화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하더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옛날 연왕이 왕위를 찬탈할 때 북경에서 남경까지 쳐내려 왔는데 건문환제가 급히 도망하면서 창고안의 보물들을 남경의 어떤 지방에 숨겨 두었다고 하더군. 연왕이 왕위를 이은 뒤 남경 전체를 다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 그는 삼보태감을 몇 차례 남양에 파견시켰는데, 하나는 건문황제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고, 둘째는 이 진귀한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더군.』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금사비급에서 발견된 지도가 바로 보물 지도임에 틀림없었군.)
온의가 계속 말했다.
『성조황제 때도 이 지도를 찾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몇 십 년후 뜻밖에도 그가 이 지도를 찾았다는 거였어. 그러면서 그는 보물을 찾으러 떠나면서 나를 집으로 보내 줬단다.』
그녀가 여기까지 말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는 나와 헤어질 수가 없었고 내 마음 또한 헤어지기 싫었단다. 그러나…… 그러나…… 결국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단다. 내가 집에 돌아오자 모두 나를 경멸하며 나는 너무 괴롭고 화가 났단다. 그들은 본래 자기의 딸 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으면서 내가 청결하게 돌아왔는데도 모두들 오히려 나를 멸시했으니…… 나도 그들과 더 이상 말도 하지 않았단다.』
청청이 말을 받았다.
『엄마, 엄마가 옳아요! 엄마가 뭘 잘못했어요?』
온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집에서 삼 개월 째를 보내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창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단다. 듣자마자 나는 곧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지. 급히 창문을 열고 그가 들어오도록 했지. 우리들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그와 함께 밤을 새웠단다. 나는 이날 밤 아이를 가지게 되었단다. 그것은 내가 원하던 바였으며 오늘날까지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단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강제로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야.』
그러면서 청청이를 쳐다보고는,
『청아, 너의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 잘해 주셨고, 우리 둘 사이는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했단다. 그는 시종 나를 존중해 주었고 한 번도 나에게 강제로 요구하진 않았단다.』
원승지가 속으로 그녀의 용기에 탄복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깊이 새겨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처량함을 금치 못했다.
청청이 갑자기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남쪽에서 온 한 마리 기러기
짝을 이룬 것도 있고 홀로 있는 것도 있네.
짝을 이룬 기러기는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며 지저귀고
외로운 기러기는 뒤에서 처져 날을 수도 없어라.
짝 이룬 기러기 보지 말고 외로운 기러기만 보면
그대 처량함 나의 신세와 같구나!
그대 외로운 모습 생각하면 나의 신세와 같구나!
아주 고아하고 슬픔에 가득찬 목소리로 노래를 다 부르자 온의가 청청에게 말했다.
『그것은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불러 주던 노래란다. 이 아이가 어려서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노래 가락을 듣더니 어느새 외워 버리고 말았구나.』
원승지가 그때 말했다.
『지금 그 분은 이미 보물을 찾았습니까?』
『그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미 그 실마리를 풀었다고 했어요.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보물 찾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대요. 그가 보물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그냥 건성으로 들었을 뿐이야. 우리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이곳을 몰래 빠져나가자고 약속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어. 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나는 옷가지를 다 챙기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남긴 채 떠나려고 하는데 홀연히 어떤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단다. 방문을 확 열더니 들어오는 사람들은 바로 아버지와 백부와 둘째 숙부, 세 사람이었단다. 빈손으로 무장도 하지 않고 긴 도포를 입고 웃음 띤 얼굴을 한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 했단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너희들의 일을 나는 모두 알고 있다. 이 또한 전생의 인연이지. 지난번 자네가 나를 살려줘 나는 자네의 온정을 받았으니 둘의 결혼으로 친가를 맺어 다시는 칼을 들지 않도록 하세!' 하고 하시더군. 아버지는 그가 또다시 사람을 죽일까 봐 두려워하는 눈치였어. 그는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지. '걱정 마십시오. 저는 일찍이 당신 따님에게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어. '몰래 도망가는 것은 안 되네!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정식으로 예를 올려야 하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믿을 수 없다고 했었지. 아버지가 말했어. '그 아이는 나의 외동딸일세! 절대로 다른 사람과 몰래 도망가게 할 수는 없네. 만일 그러면 평생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할 걸세!' 그는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버지에게 속임을 당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