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大雪 3)
거울 속의 女人
백 일이 흘렀다. 마무정이 천마십관 중에서 팔 관을 통과하는 데까지는…….
그는 그 사이 내공을 거의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대관문뿐이었다. 그 곳마저 통과한다면 그는 천 년 마도사상 가장 위대한 힘을 지닌 마도대총수(魔道大總師)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마박사(魔博士) 후백(侯伯).
나이가 삼백이십사 세, 머릿속에 고금무림의 모든 서적을 집어 넣고 있는 인물이다.
백 세경에 주안초(駐顔草)를 먹어 아직도 젊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린 사람들이 자신을 얕잡아 볼지 모른다며 애써 머리를 백발로 염색을 하며 살아 왔다.
그는 옷차림에 지대한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여 벌의 옷을 갖고 있고, 자신의 위치, 가야 할 장소에 따라 옷을 골라 걸쳤다.
늘 웃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 마병야에 이어 태상 제이장로 지위에 있는 사람, 그리고 천 년의 안배를 초안한 사람.
마박사 후백, 그는 웃음을 잃고 있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나, 우리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보오!"
마박사는 손가락으로 수염을 비틀어 올렸다.
그는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마다 그러한 손짓을 한다.
손가락과 수염의 마찰 가운데 묘안이 나타나는 듯, 그는 수염을 비트는 가운데 획기적인 생각을 해내곤 하는 것이다.
"마골(魔骨)이 아니라 신골(神骨)이기 때문이오. 그가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우려되는 일이오."
근처 마병야가 있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는데, 하나의 검은 철탑 같아 보였다.
흑강(黑剛).
어마어마한 체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무기는 천마추(天魔鎚)라는 것으로, 길이가 이 장(丈)에 달한다. 그것을 만들어 준 사람은 마병야였다.
천마추의 무게는 팔백 관(貫), 그것을 공깃돌 놀리듯이 자유롭게 흔들어댈 수 있는 신력(神力)을 갖고 있는 사람은 천하에 오직 흑강뿐이리라!
흑강은 늘 처진 자세로 있다. 그러나 그가 분노해 힘을 쓴다면 경천동지할 사건이 벌어진다.
마박사는 수염을 비틀어대며 말을 이었다.
"제구관에서 그를 저지시키겠소. 색관(色關)에서!"
"흠! 그는 저지될 사람이 아니라고 보네, 아우!"
마병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마무정이 팔 관을 뚫는 사이, 마무정의 강하고 신비한 기도에 매혹되어 마무정의 편이 된 상태였다.
마박사가 우려하는 것은 마무정의 그러한 탁월함이었다.
마무정은 대총수의 운명을 갖고 있다. 그는 패도적으로 군림해야만 한다. 그래야 전 마가의 권위가 살아난다.
한데, 마무정은 날카로워도 내심은 아주 온화한 사람이었다.
마박사는 그것이 두려워 마무정을 도중에서 제거하려 하는 것이었다.
제구관 색관, 그 곳은 마박사가 맡은 관문이었다.
"그는 저지됩니다, 마병야!"
그가 자신있게 말하자, 마병야 역시 자신만만했다.
"글쎄, 그는 초인(超人)이야! 크크……!"
"어찌 됐건 대총사는 되지 못합니다! 훗훗……!"
마박사 역시 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쾌재를 부르자, 마병야의 자신감이 조금 사라졌다.
"설마 요환술(妖幻術)을 쓰려 하는 것인가, 마박사 아우?"
"그 정도뿐이겠습니까?"
"그, 그럼 그보다 더 뛰어난 수법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마경환술(魔鏡幻術)이라는 절대적인 수법이 있습니다!"
마병야의 얼굴이 시꺼매졌다.
마경환술, 그것은 대체 어떤 방법이기에……?
마무정은 며칠 간 단아한 서재를 거소로 삼았다.
이 곳은 지하의 동부로, 나가는 길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대총사가 되지 않는 한, 마무정은 그 길을 알아 내지 못할 것이다.
탁자 위, 마무정에게 보내진 글귀가 있었다.
<천마제구관은 지혜(智慧)의 시험이고, 인내력의 시험이오!
이름하여 색관(色關)!
색이란 바로 물(物)! 그대는 거기서 죽거나, 살아 나올 것이오!
여기 하나의 도형을 적어 두겠소. 이것을 푼다면 색관의 위치를 알게 될 것이오.
지금부터 오 일 이내에 색관을 통과해야 하오.
색관의 끝은 바로 제십관인 극마관(極魔關)!
색관을 뚫는다면 극마관에 들 수 있을 것이오.>
글을 쓴 사람은 마박사였다.
"건방진 자로군. 말투에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니……!"
마무정은 팔짱을 낀다.
'그렇지만 마가에는 인물이 많다. 그것이 나는 기쁘다. 훗훗, 나의 야망(野望)은 그들의 도움 아래 날개를 펼 것이다.'
마무정은 복잡한 도형을 보고 있었다.
태극도해(太極圖解), 팔괘도해(八卦圖解), 이십팔숙천기도(二十八宿天機圖), 육십사효도(六十四爻圖)를 합한 듯한 복잡한 도형.
그것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마박사란 자는 지혜의 화신이다!"
마무정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비밀을 푼 것일까?
"그는 한 장의 종이에 열두 가지 진세를 그려 놓았다. 훗훗, 그것도 가장 골치 아픈 것으로!"
마무정은 빙그레 웃다가 일어났다.
"도형에 따른다면 모든 것은 허무(虛無)의 윤회(輪廻)이다. 그 길은 대역천(大逆天)이고, 대혼돈(大混沌)이다!"
마무정은 도형에서 하나의 길을 느꼈다.
마박사는 마무정이 풀지 못할 도형을 만들었다. 그러나 마무정은 그것을 간단히 해독한 것이다.
"정반십이혼천도(正反十二混天圖)라는 것이지. 명명하자면!"
마무정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저벅- 저벅-!
그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문을 나섰다.
그가 떠나고 난 후 허공에서부터 뿌연 기류가 날아 내리는 가운데 옷차림이 매우 깔끔한 노인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매부리코에 얄팍한 입술, 눈빛이 차고 깊은 현자형의 노인 마박사(魔博士)!
그는 매우 공포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쪽지를 보고 일 각도 지나지 않아 도형을 풀다니… 아아, 그의 진학(陣學)이 이미 노부를 능가한단 말인가?"
그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촉촉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 그가 두렵다."
그는 몸서리를 친다.
모든 마병학(魔兵學)에 달통한 인물, 천 년의 지혜를 머릿속에 담고 모든 것을 관조하며 지내 왔던 인물 마박사. 그가 몸을 떨다니…….
"이 세상에서 노부가 모르는 것이라곤 없다고 자부했었다. 노부의 머릿속에는 소림사 장경각에 있다는 팔만사천불경(八萬四千佛經) 이상의 지혜가 가득하다고 자부했었고, 어느 누구도 노부의 심기에 벗어나지 못한다고 자부했었다."
그는 마무정이 간 곳을 바라봤다.
"그런데 아무리 연구해도 모를 것이 나타났다! 모를 존재가…!"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것은 쓴 웃음소리로 깨어졌다.
"그가 좋아진다. 그의 총명함이! 하지만 그는 제거되리라. 노부의 악마성은 그를 체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는 제거되어야만 한다. 노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를 위해서! 하지만 그가 좋다는 것은 사실이다!"
마무정은 안개 속을 꽤 오랫동안 걸었다.
그는 마박사가 만든 진세에 빠진 지 두 시진째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안개의 길을 헤치며, 마무정은 쉴새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멈추면 안 돼. 모든 것은 환각이니까!"
마무정은 고소를 띠고 있었다.
안개은 여러 가지 빛깔을 띠고 있었다.
검고, 희고, 붉고, 푸르고… 영롱하다기보다는 암울한 안개의 바다.
자욱이 번지는 마무(魔霧).
마무정은 쉬지 않고 걸어 나갔다.
"여기다, 여기! 나는 여기에 있다!"
"하아아아… 아아! 도와줘요, 제발……!"
안개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들, 흐느끼듯 그를 부르는 소리는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라기보다 마음 속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였다.
'드디어 진세가 완전히 발동되는군. 결국… 나는 색관에 발을 들인 것이다.'
마무정은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오냐, 어떤 것이 나타나는지 보자. 나는 마의 후예, 무엇으로도 나를 꺾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마무정은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으으… 스으으……!
안개는 온갖 조화(造化)를 다 일으킨다.
사람 형상으로 뭉치다가는 귀신처럼 뭉쳐지고, 바람과 함께 꽃비(花雨)처럼 흐트러지다가는 파도치는 소리와 함께 만검대진(萬劍大陣)같이 장엄준렬한 형상을 이룬다.
검산도림(劍山刀林)!
수천만 자루의 칼이 마무정의 심장을 향해 다가섰다.
마검은 섬뜩한 파공성을 흘리며 요혈을 향해 폭사되고, 장도(長刀)는 핏방울을 튀기며 마무정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가공할 힘이 실린 악마의 검과 도!
검기 도기(劍氣刀氣)가 충천(沖天)하고 살기가 압권이다.
검과 도가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는데, 그는 촌보(寸步)도 떼어 놓지 않았다.
"나를 꼬이기에는 너무 약해!"
무수한 도검이 전신을 유린할 듯 짓쳐 드는데도 그는 하품을 할 뿐이다.
"흐으으… 흐으으……!"
신음 소리, 부르짖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모든 빛(光彩)은 허무로 돌려졌다.
결국 모든 것은 공(空)이었다.
마무정은 심마(心魔)의 함정에 걸렸던 것이고, 아주 쉽게 그것을 이겨낸 것이다.
그는 계속 걷고 있었다. 악령(惡靈)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고, 온갖 마물들이 너울너울 춤사위를 하며 다가선다.
머리를 풀어 흩뜨린 여귀와, 도무(刀舞)를 추는 나찰(羅刹), 피를 뒤집어쓴 수라신(修羅神), 흐느끼는 소리를 내는 야차(夜叉)…
"카아아아- 카아아-!"
"네… 네 심장을 바쳐라!
"네… 네 목을 부러뜨리고, 네 오장육부를 찢어 내겠다."
잔혹한 부르짖음 소리가 처절한데, 마무정은 동요하지 않고 갈 길만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형상이 아니라 환각이었다. 그것은 외부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잔혹스러운 요물들이 자꾸 나타나는 이유는 마무정이 피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었다.
진은 하나의 거울(鏡)과 같았다. 거울은 마무정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비추어 낸다. 피가 있으면 피를, 꽃이 있으면 꽃을, 죽음이 있으면 죽음을…….
"진중(陣中)에 가야 한다. 그래야 빠져 나갈 수 있다. 이 지겨운 곳을!"
마무정은 조금 빠르게 걸었다. 그는 사문(死門)투성이의 진세를 교묘히 뚫고 지나쳤다.
얼마를 갔을까?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길은 넓어져, 오래 가도 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바닥에도 안개, 허공에도 안개였다.
무해(霧海)… 안개의 바다!
마무정은 안개의 바다를 지나가는 한 척의 일엽편주였다.
일순, 그의 눈에서 살광이 쏟아져 나왔다.
빛(光), 그의 눈길을 끄는 흐릿한 빛줄기가 있었다.
"진의 한가운데에 다가왔다. 그 곳을 붕괴시켜야 모든 환각이 사라진다!"
마무정은 조심조심 걸음을 걸었다.
안개는 여러 가지 빛깔을 번뜩이며 덮쳐 들었다.
화려한 안개의 흐름, 그 가운데에서 방향을 정확히 구분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고도의 훈련이 없다면 벌써 천 번 길을 잃었으리라.
마무정은 박쥐 이상의 특이한 감각으로 정확히 직선을 그으며 다가갔다.
빛! 그 빛은 아주 미세했고, 요악했다.
'무엇일까, 진의 중추에 있는 것은?'
마무정은 호흡을 멈추고 다가갔고, 한순간 그는 안개가 사라짐을 느꼈다. 안개의 바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온통 붉은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너무도 오랫동안 마무정을 기다린 듯 허탈한 자세였다.
"야속해요. 이제 오다니……!"
누구일까? 어떤 여인이기에 이리도 간절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그대를 위해 정원을 가꾸었어요."
눈썹이 고운 여인은 손을 쳐든다. 섬섬옥수(纖纖玉手)가 아름답고 애절하다.
"봐요, 이 흐드러진 꽃을! 나의 기다림이 피워 낸 꽃이랍니다!"
아아, 꽃의 바다!
일대는 모두 꽃이었다. 온갖 종류의 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혈잠화(血簪花), 부용(芙蓉), 모란(牡丹), 황국화(黃菊花), 금잔화(金盞花), 천일홍(千日紅), 연화(蓮花)…….
요지선경(瑤池仙境)이다.
이 곳은… 꿈이라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다.
꽃은 생명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향기가 흐른다. 마무정을 취하게 할 그런 향기가…….
"그대는 진작 와야 했어요. 우리들의 품에……!"
여인은 고운 눈매를 흘긴다.
눈(雪)과 같이 희고 고운 피부를 지닌 여인, 그녀에게서는 눈의 향기(香氣)가 흘러 나왔다.
그녀는 꽃밭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고, 점점 마무정 쪽으로 다가섰다.
"기다린 이유는 하나, 그대의 가슴에 눕기 위함입니다!"
"나, 나의 가슴에?"
"이미…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미 해 본 바 있지 않습니까? 그대는… 나를 소주(蘇州)로 데려간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목소리는 아주 애절했다.
"그, 그랬던가? 내가?"
"그대는… 거짓말쟁이에요. 그러나 원망하지는 않아요. 내 품에 돌아왔으니까!"
여인은 바로 앞에 있었다.
그녀는 벌써 하늘이 준 옷(天衣)만을 걸친 상태였다.
하늘이 부여한 가장 아름다운 옷, 그 옷은 바로 무의(無衣)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裸身).
눈으로 뭉쳐 만든 듯한 백옥의 몸이 꽃밭 가운데 섰다.
아아, 완전미(完全美)!
어디를 봐도 흠은 없다.
너무도 가늘어 꺾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허리 위, 보름달같이 풍만한 두 개의 동산이 부풀어 있다.
탱탱한 반달이 된 젖무덤 위, 선홍색 구슬이 하나씩 달려 있고 여인의 손은 매우 고왔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기다렸어요. 오랫동안……!"
여인의 목덜미는 사슴의 목덜미같이 길다.
무엇을 그리워하기에 그리도 길어졌을까?
햇살이 내리 쪼이면 목덜미가 찬연히 반짝이리라.
두 눈, 고운 두 눈은 이슬방울을 흘렸다.
"나를 안아 주지 않을래요? 내 가슴에 꽃을 던지지 않을래요?"
애절한 목소리이다.
여인은 아미(蛾眉)를 찌푸리는데, 그러한 모습은 너무나도 간절한 열망을 보여 줬다.
꿈이라도 좋을 그런 매혹과 유혹이고, 영원이어도 좋을 그런 순간이 이어진다.
가는 허리 아래에는 숨막히는 비경이 펼쳐진다.
대리석으로 뻗어 내린 허벅지와 다리, 울울한 숲의 비지와 뜨거운 기운을 일으키는 풍만함의 모든 장소들!
한들거리는 포동포동한 둔부와, 매끄러운 허벅지, 또 한 손은 그 곳을 매만지고 있었다.
여인은 그런 손짓 가운데 몸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눕겠어요, 그대가 편하게!"
곧 그녀는 잔잔한 바다(海)로 누웠다.
바다는 마무정을 강하게 빨아들였다.
마무정은 가쁜 숨결을 쉬지 않고 흘렸고, 여인은 또 그윽한 눈빛과 아련한 한숨 소리를 냈다.
"어서 와요. 어서……!"
전율을 일으키는 손짓이며 목소리였다.
유혹에 걸려든 것일까?
마무정은 그녀를 향해 몸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그대는 혈잠화(血簪花)! 다시 그대를 꺾겠다! 그 때처럼……!"
마무정은 그녀의 옥신을 껴안았다.
여인의 살은 꽤나 차가웠다. 마치 얼음조 각의 결정인 듯, 그리고 녹여 주기를 기다리는 듯.
여인은 꽤나 서툰 몸짓으로 마무정을 맞아들인다.
마무정은 바다로 들어가는 젊은 뱃사공의 심정이 되어 있었다.
두 팔로 안기에는 너무 작고 한 팔로 안기에는 가슴이 너무 큰 여인, 그녀는 애절히 마무정을 바라고 있었다.
"어서, 나를……!"
여인의 볼에는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화사하게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은 여인, 그녀의 모든 것은 낯설지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익숙한 여인이었다. 마무정에게는…….
사과 내음이 나는 보드라운 살결과, 앵두빛 생명력을 띠고 있는 입술이며, 가는 목덜미와 고혹스러운 눈매, 비를 맞은 수선화(水仙花) 같은 체취…….
여인은 두 팔로 마무정을 꼬옥 끌어안았다.
"죽을 때까지… 나를 사랑해 줘요."
그녀는 아련한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은 거절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유혹이었다. 아니, 그것은 유혹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진실된 눈빛이었다.
"그대를 가슴에 품고 있소. 그대는… 나의 유일한 여인이오!"
마무정은 미소짓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는 몸 안으로 파고드는 여인의 허리를 오른손으로 넓게 휘어 감으며 동시에 왼손으로는 그녀의 뺨을 만졌다.
"차갑소!"
마무정은 손바닥에 한기를 느꼈다.
"미안해요. 그대에게……!"
"미안하기는 내 쪽이오!"
두 사람 모두 꿈에 취해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은 틈도 없이 밀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환락이라고 부를 욕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대는 무화(無花)… 나의 마지막 남자예요. 그리고… 첫 남자이기도 하지요."
여인은 말했고, 마무정의 표정이 힐끔 달라졌다.
"무화, 내가 무화라고?"
그리고 그는 돌연, 뒷머리에 매우 강한 통증을 느꼈다.
머리에 철추를 맞은 듯 등목이 뻐근해 왔고, 그는 가슴 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가공할 마성을 느꼈다.
"아… 아니야, 나는… 무화가 아니야!"
우둑- 뚝- 두둑-!
그의 근골이 부서지는 듯 뒤틀렸고, 그의 두 눈은 찰나적으로 혈안으로 화한다.
"흐으으… 윽……!"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옷이 터질 듯 팽창되었다. 그리고 여인의 몸은 안개로 허물어졌다.
-그대는 무화야. 그대는… 무화야…….
-떠나가지 마. 제발…….
꽃밭도, 화사한 기운도… 모든 것은 안개로 무너져 버렸다.
마무정은 엎드려 있었다. 그는 거대한 구리거울 하나를 부둥켜안고 있는데, 거울 표면은 마무정의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깨어진 후였다.
"거울(鏡)이었던가, 모든 것은?"
마무정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내가 본 여인은… 누구였을까?'
마무정은 방금까지 그에게 안겼던 여인을 기억하려 했다. 한데, 놀랍게도 여인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 얼굴을 기억하려고 하면 뇌호혈(腦戶穴) 부위가 지극히 고통스러웠다.
"으으, 기억이 마비된다!"
마무정은 인상을 찡그리며 팔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짱-!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며 동경은 박살났다. 그와 함께 일대를 가둔 안개의 벽이 허물어졌다.
콰아아- 앙!
대벽력과도 같은 굉음이 나며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안개의 바다 뒤로 벽이 나타나는데, 벽은 무너지고 있었다.
쩌어어… 억… 쩍……!
집채만한 바윗돌이 떨어져 내렸고, 자욱한 먼지 바람이 퍼지는 가운데 문이 하나 나타났다. 악마의 아가리마냥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거대한 문, 그것은 지하로 통하는 입구였다. 그리고 귀화(鬼火)가 피어 오르는 가운데, 글이 쓰여졌다.
<들어오십시오, 극마관(極魔關)으로.
죽거나, 우리들의 주인이 될 것이오!
그대는 이 순간, 제구관을 뚫은 것이오!>
귀화는 불의 춤으로 그러한 글을 만들었다. 마무정은 색관을 통과한 것이다. 그 힘은 욕망과 야망의 힘이 아니고 사랑의 힘이었다. 거울 속의 여인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욕망의 늪에 빠져 진원지기(眞元之氣)를 모두 잃고 죽었을 것이다.
아아, 열 번째 문(門).
극마관(極魔關)!
마무정은 그 곳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 굶주린 늑대처럼 그는 호흡 소리를 나직이 흘리며 휘청거리는 자세에, 차고 신비한 눈빛을 던지며 지하계단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자, 운명의 문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