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아시아의 한민족에게 뿌려진 말씀의 씨앗
이상 제4장은 유다인이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헤로데 왕실 관리 등 모두 이방인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신 이야기였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의 만남과 대화에서는 역사적으로 꼬였던 매듭을 풀어주시면서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요한 4,24) 새로운 경신례(敬神禮)로 사마리아인들을 초대하셨고, 왕실 고관과의 만남과 대화에서는 비록 그가 헤로데의 폭정에 종사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원수와 다름없던 사이였지만 죽어가던 그의 아들을 멀리서 살리는 기적으로 이방인 고관의 가족들을 믿음으로 이끌어주셨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선포하시는 활동이 새로운 경신례와 소생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요한이 복음서 서문에서 쓴 대로, 당신 땅에 오신 구세주를 그분의 백성은 맞아들이지 않았지만(요한 1,11) 당신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시는(요한 1,12),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유다 민족이 아니면서도 하느님께서 직접 계약을 맺으셨던 또 하나의 민족이 겪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 민족은 다름 아닌 우리 한민족이다. 무척 놀라우리만큼 새로운 이 이야기는 사실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전하는 창세기 안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3.3. 아시아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에서 대략 운을 떼어 놓았거니와, 이제 본격적으로 추적해보고자 한다.
4.3.1. 욕탄이 활동한 연대는 언제인가?
하느님께서 홍수로 사람들의 죄악을 벌하신 다음에(창세 6,5-7,1) 새로운 세상을 이룩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으셨고(창세 9,1-17), 그리고 이 계약에 충실한 이들을 특별히 축복하신 무리가 둘 있었다. 그 한 무리가 노아–셈–에베르–펠렉–아브람의 후손들이요(창세 11,10-26), 다른 한 무리가 노아–셈–에베르–욕탄의 후손들이다(창세 10,25). 이에 관해 창세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에베르에게서는 아들 둘이 태어났는데, 한 아들의 이름은 펠렉이다. 그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 동생의 이름은 욕탄이다”(창세 10,25).
펠렉의 후손 아브람은 우상숭배가 판을 치던 바벨론 땅 하란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에 정착하였지만(창세 12,1-9; 여호 24,2), 욕탄과 그 후손들은 메사를 떠나 동부 산악지방인 스파르까지 갔다(창세 10,30).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 후손들과 맺으신 새 계약의 백성들이 아시아의 서쪽인 가나안과 동쪽인 스파르에 퍼짐으로써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서쪽 가나안에 정착한 펠렉과 아브람의 후손 이야기는 바벨탑 이야기와 이사악과 야곱 그리고 모세 등의 이야기로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동쪽으로 가서 스파르의 너른 벌판에 정착한 욕탄의 이야기는 묻혀 있다. 에베르의 시대에 세상이 동서로 나뉘었다지만 성경에는 나뉘어진 가운데 서방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을 뿐 동방 이야기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시아의 동쪽으로 이주한 이 욕탄과 그 후손들에게 주목하고자 한다.
욕탄과 그 후손이 동아시아로 옮겨갔다면 그 시기는 당연히 노아의 홍수가 끝난 다음이다. 왜냐하면 욕탄이 노아의 6대손으로서 홍수 이후에 태어났고(창세 10,21-25), 홍수로 말미암아 그 이전의 것들은 모조리 죽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류 문명은 노아 시절 일어난 홍수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민족의 상고사와 고조선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단군세기를 비롯한 옛 기록을 경전으로 삼는 민족종교들에서는 이 점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이 대홍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증거로 입증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 홍수는 언제 일어났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하여 성경의 기록과 과학적 연구 성과를 합하여 추정하고자 한다. 즉, 홍수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사건의 본질이므로 이를 전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의 기록이나 고고학적 내지 지질학적 연구 성과로 검증하겠다는 뜻이다. 성경연구자들은 홍수가 일어난 때의 연대를 기원전 2304년이라고 주장한다(출처 : Creation 4(1):10~13, March 1981;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3563.asp, J. Osgood, 한국창조과학회). 이는 다음의 성경 기록에 근거한다. 예수님께서 강생하신 해를 기원으로 삼고, 그 967년 전에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으며, 이 때가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80년이었으므로(1열왕 6,1), 이집트 탈출 사건이 일어난 해는 기원전 1447년이었다(967+480=1447). 여기서 다시,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지 430년 후였으므로(갈라 3,17), 그 약속의 때는 기원전 1877년이었다(1447+430=1877). 이 때 그의 나이가 75세였고(창세 12,1-4), 그부터 노아의 아들인 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모두 아홉 사람의 나이를 합산하면 350±9년이다. 그리고 홍수 2년 후에 셈이 100세가 되었으므로(창세 11,10), 홍수는 기원전 2304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1877+75+350+2=2304).
그런데 이와 같은 대홍수 연대에 대한 성경연구자들의 보고에 대하여, 대홍수 사건을 지질학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여 교차 증명하여 연구한 성서고고학자들은 대홍수가 일어난 때를 기원전 2807년 5월 10일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연구자들의 추정 연대와 5백 년 정도나 차이가 나는데, 성서고고학자들이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이러하다.
19세기 중반 성경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 보려는 성서고고학이 발전하면서 노아의 방주를 찾는 노력이 확산되었다. 지난 2004년에 빙하기 이후 지금까지의 지질학적 현상을 연구하는 ‘홀로세 충격 연구집단(HIWG: Holocene Impact Working Group)’이라는 모임이 발족하였다. 홀로세(Holocene)는 약 1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를 말한다. 충적세(沖積世) 또는 현세(現世)라고도 부른다. 플라이스토세 빙하가 물러나면서부터 시작된 시기로, 신생대 제4기의 2번째 시기이다. 마지막 빙기가 끝나는 약 1만년 전부터 가까운 미래도 포함하여 현재까지이다(위키백과). 이들은 구글(google)에서 인터넷상에 제공하는 ‘구글 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전 세계 홍수신화를 분석하였다. 홍수신화는 유다인이 정착한 근동(近東)은 물론 중국, 남미 잉카, 인도 등 지구 어디에나 있어서 모두 합하면 모두 175개나 된다.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그 당시에 전 지구적으로 비슷한 홍수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은 그들이 같은 시기에 직접 겪고 나서 전 세계로 흩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해안가를 따라 육지로 몇십km 들어간 지역에 V자형으로 패인 ‘셰브론(chevron)’이라 불리는 지형이 마다가스카르, 호주, 유럽, 북미 대륙 등에 다수 존재한다. 이 지형들의 공통점은 심해에서 볼 수 있는 화석과 해저지질 성분이 발견된다는 것, 하나같이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V자 형태라는 점이었다. 거대한 물이 빠른 속도로 흐름으로써 침식작용을 수반하였으리라고 추정되는 이런 지질현상은 통상적인 자연조건 하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 모임의 일원인 환경고고학자 브루스 메시는 수집된 모든 홍수신화의 공통점을 분석했는데, “신화의 절반에 폭풍우가, 삼분의 일에 쓰나미가 등장하고 대부분 허리케인과 어둠이 등장한다.”며 “특히 이들 가운데 14개 신화에는 개기일식이 언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시는 “모든 변수를 수퍼컴퓨터로 계산한 결과 전 세계 홍수신화의 출발점은 기원전 2807년 5월 10일에 벌어진 초대형 자연 재앙일 것”이라고 주장했다(박종인, “물의 저주”, 조선일보, 2010.05.08.).
그러니까 성경의 기록에 의한 연대 추정은 기원전 2807년이요, 성서고고학자들의 과학적 연대 추정은 기원전 2304년이라는 것인데, 아무튼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었다는 것은 성서 기록으로 보거나 과학적 근거로 보거나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임은 분명하고, 그 연대는 기원전 2807년에서 2304년 사이이다.
- 홍수 때 쏟아진 물은 어디서 왔는가?
노아의 홍수는 모든 지표면을 뒤덮을 만큼 엄청난 홍수여서 ‘대홍수’라고 부를 만 하였다. 보통 우리가 겪는 여름철의 홍수는 바다에서 증발된 수증기가 비구름을 형성하고 여기서 비가 내리면 빗물이 모여 강으로 흘러들었다가 바다로 돌아간다. 이런 보통의 홍수에서는 강물이 불어날 뿐이지 지표면을 뒤덮을 만큼 많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육지의 강은 모두 반복된 빗물의 흐름에 따라서 바다로 흘려보내느라고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대홍수 당시에는 “땅에 물이 점점 더 불어나, 온 하늘 아래 높은 산들을 모두 뒤덮었고, 물은 산들을 덮고도 열다섯 암마나 더 불어났다.”(창세 7,19-20)고 기록되어 있다. 열다섯 암마를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7m 정도이다(그 당시에 신체의 길이를 이용한 단위가 암마였는데, 히브리어로 ‘암마’는 팔을 뜻했다. 1암마는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 끝까지의 길이로서, 사람마다 팔 길이가 다르지만 대략 46-54cm 정도였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기후 조건에서는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쏟아져 내린 셈이다. 그렇다면 대홍수 때 내린 그 많은 비는 어디서 내렸으며, 이 대홍수를 이룰 만한 비구름은 어디서 왔는가?
창세기에 의하면 그 물은, “큰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창세 7,11) 쏟아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구상의 모든 지하수맥이 남김없이 분출되었으며 – 이는 지각 내부의 용암이 분출하여 모든 화산이 폭발하였다는 뜻이다 - ‘궁창 위의 물’(창세 1,7)이 쏟아져서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지표면에 내렸다는 것인데, 이 물은 대기권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지구를 감싸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의 대기권 상태와 매우 다른 점이다. 홍수 이전에는 ‘궁창 위의 물’이 있었다. 이 물이 마치 수증기 덮개 구실을 하여 태양으로부터 오는 저주파 중 열선을 흡수하고 산란시키며 재반사시켜 전 지구에 골고루 분산시키는 기능을 함으로써 지구에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었었다. 또한 인체에 해로운 광선은 차단해 주었기 때문에 홍수 이전의 인물들의 수명이 현재보다 훨씬 더 길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증거가, 이 홍수 전에는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시고 있었다”(창세 2,6)는 홍수 이전 기후에 대한 기록이다. 이러한 기후 조건은 지구에 비가 내리지 않았고 지역에 따른 온도의 차이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안개는 바람이 없어야 형성되며, 바람이 없다는 것은 기압 차이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가 가능했던 원인은 이 수증기 덮개, 즉 물층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고주파 방사선을 차단해 주어 노화를 막았을 것이다(“노아의 방주와 세계적인 홍수는 사실인가?”, 네이버 블로그, 세이영, 2011.04.19.).
- 노아의 방주는 과연 있었는가?
세상에 가득 찬 죄악을 홍수로 벌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느님께서는 의롭고 흠 없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은 살려 두어 문명을 새롭게 창조하시려고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다(창세 6,14). 방주의 재료는 전나무로 하고, 크기는 길이 300 암마 x 너비 50 암마 x 높이 30 암마로 만들라고 하였다. 1 암마를 대략 45cm로 잡고, 기록된 방주의 크기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길이 135m x 너비 13.5m x 높이 13.5m로 축구장보다 길고 배수량은 2만 1000t이나 되는 대형선박이다. 그런데 이 비율은, 수천 년 간 수많은 희생을 치룬 결과로 가장 안정성이 뛰어난 선박 비율이라고 선박공학계에서도 최근에 와서야 확인된 수치이다. 아마 이 방주를 만드는 데 백 년 가량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노아는 홍수가 일어나던 때에 이미 6백 살이었고(창세 7,6), 홍수 후에 3백5십 살을 더 살았으며(창세 9,28), 9백5십 년을 살고 죽었음(창세 9,29)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방주의 잔해가 1955년 아라랏산 41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18년 동안 노아의 홍수와 방주에 관한 면밀한 문헌 조사 끝에 그 진실성을 인정한 프랑스 탐험가 페르난드 나바라(Fernand Navarra)가 1952년부터 3년간에 걸쳐 현지 탐사를 감행한 끝에, 방주의 현(舷. 뱃전) 부분을 발굴하여 분석한 결과, 약 5000년 전 그러니까 기원 전 3천 년경의 잣나무로 확인했으며, 역청이 발린 흔적도 확인하였다(임혜지, 천지일보, 2020.06.05). 노아 시대에 일어난 홍수가 아니라면 그 높은 산에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올라가 있을 이유가 없다.
- 홍수의 흔적
또한 대홍수가 남긴 흔적도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우선 아라랏산에서 가까운 터키 연안의 흑해 해저에서 7,000년 전의 문명 흔적이 해저탐험가 로버트 볼라드에 의해 발견되었다(한국일보, 2000.09.14.). - 고고학적 발견 시의 유물 및 유적의 연대 측정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수치임을 감안해야 한다. 대략적인 추정치라는 뜻이다 - 가로 12피트, 세로 45피트인 직사각형 모양의 고대 건축물과 목재로 된 구조물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탐사팀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펜실베니아 대학의 수석 고고학자인 프레드릭 하이버트 박사에 따르면, 이는 당시 담수호였던 흑해가 홍수로 말미암아 범람하기 전에는 연안을 따라서 사람들이 거주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엄청난 양에다가 빠른 속도로 흐르는 물 때문에 침식당한 거대한 흔적도 남아있다. 지질학적인 증거들이 대단히 많은데 그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들자면, 전 지구적으로 퍼져있는 화석묘지를 먼저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바다생물과 육상생물이 뒤섞여 있으며, 급격하게 매몰되어 섬세하게 보존된 수십억 개의 화석들이 함께 묻혀 있다. 그 다음에 들 수 있는 것은 미국 그랜드캐년의 대협곡으로서 이곳은 보통의 자연 조건에서는 보기 어려운 평행선 지층이 수백 km에 걸쳐 켜켜이 쌓여 있다. 엄청난 양의 물이 빠른 속도로 바다로 흘러 내려갈 때 밀도와 무게별로 가라앉으며 퇴적되었다는 증거이다.
- 홍수 때에 온 땅을 덮었던 그 많은 물은 어디로 갔는가?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져 내리자 대기권을 둘러싸고 있는 수증기 덮개가 사라져 버려서 태양열이 직접 지구에 닿기 시작했고, 그 결과 남과 북의 극지와 적도 사이에 큰 온도차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는 기압차를 가져왔고, 바람이 생기게 하였으며, 그 바람이 물의 순환을 촉진시켰다. 극지에서는 거대한 빙산으로 물을 얼렸으며, 바닷속 땅이 융기하여 조산운동이 일어나 높은 산맥이 생겼는가 하면, 깊어진 바다속으로 물을 가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산꼭대기에서도 바다 생물의 화석들이 발견되곤 하는 것이다. 이 지각변동이 급격하게 일어났으므로, 남북극의 빙산이나 시베리아 동토층에서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살 수 있는 무수한 동식물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홍수 전에는 지구상 어디서나 따뜻한 기온이었다가 홍수 후에 급격한 기온의 변화로 인해 냉동된 상태로 보존된 것을 알 수 있다(“얼어 붙은 거물의 수수께끼”, ‘Saturday Evening Post, 1960.01.16). 이러한 사실은 지질학과 고고학이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온 빙하기와 간빙기에 대한 주장도 그 시기가 그리 멀거나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가설에 불과하다는 뜻이 된다.
홍수가 일어난 성경상 연대를 감안하면, 욕탄은 노아의 6대손으로서, 아버지 에베르에게서 형 펠렉과 함께 태어났으니(창세 10,25), 그의 활동 연대는 기원전 2800년 경에서 2300년 경 이후로 보아야 한다. 이에 비해 아브라함은 욕탄의 형인 펠렉의 5대손으로서(창세 11,27), 노아로부터 따지면 10대손이니 욕탄보다 활동 시기가 더 늦다. 홍수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죽은 상태에서 살아남은 노아는 아담처럼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였고, 그 후손들이 이 새로운 세상에서 문명을 이룩하기 시작하였으며, 아브람과 그 후손들은 아시아 서쪽 끝인 가나안에서 그리고 욕탄과 그 후손들은 아시아 동쪽 끝인 스파르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욕탄이 활동한 이 연대가 우리 민족의 상고(上古) 시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욕탄이 동아시아 스파르에서 이룩한 문명의 윤곽에 대해서는 앞으로 살펴볼 것인 바,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문화 등에 의거해서 추정할 수 있겠다.
이 시기보다 훨씬 이른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어 홍산문명(紅山文明)으로 이름지어지기도 했다. 대홍수 이전에도 한반도와 만주에 살았던 흔적이 발굴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홍수를 전후한 기원전 2800년에서 2400년 사이의 유적과 유물은 발굴되지 않는 고고학적 공백이 확인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분명히 이 땅에서 살았던 옛 사람들의 역사를 만 년이나(김산호) 7천 년으로(이덕일) 올려 잡을 수는 있겠으나, 이 대홍수 이전의 역사는 문화적으로 단절되었으므로 욕탄과 그 후손들에 의해 이룩되는 문명이야말로 현재의 한국인들과 연속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것이 고조선 문명이다.
4.3.2. 스파르는 어디인가?
욕탄과 그 후손의 거주지는 메사에서 동부 산악 지방인 스파르 쪽까지였다(창세 10,30). ‘메사’는 동부 산악 지방의 출발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서, 지금 아라랏 산 동쪽 이란 동북부에 있는 메삿(Meshhad, 현 지명으로는 이란 마슈하드)이다. 여기에서 이동해 간 동부 산악 지방이란 파미르 고원 → 알타이 산맥 → 아시아로 이동하여 다다른 경로를 통칭한다. 그 다음에 ‘스파르’는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탄은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인가? 이 장소를 유석근은 단연코 ‘시베리아’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홍수가 끝나고 방주가 다다른 곳은 아라랏산이었는데(창세 8,4), 그곳으로부터 메사를 거쳐 가다 보면 동쪽에 알타이산맥이 솟아있고 이 산맥을 넘어 더 동쪽으로 가면 남북 만주와 이어진 지금의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새 땅에 다다른 욕탄과 그 후손들은 우리 말의 옛 표현으로 ‘새발’ 즉, 새로운 벌판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그 뜻은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이기 때문이다. ‘발’은 밝은 빛을 뜻하는 ‘밝’에서 가치를 쳐 나와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밝’은 우리 겨레가 지녀온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로서, 태양이고 광명이며 생명의 원천을 뜻하는 것이었다(崔南善, 「不咸文化論」). 우리 겨레를 예로부터 배달겨레라고 일컬어왔는데, 이는 ‘배달’이 ‘밝달'에서 나왔고 그 뜻은 밝은 땅이므로, 배달겨레란 밝은 땅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된다.
이 ‘새발’의 한복판에 바이칼 호수가 드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 호수 북쪽에 지금의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는데, 이곳은 북반구 북반이어서 햇볕이 약하고 빛도 강하지 않다. 광명의 본원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욕탄과 그 후손들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좆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드는 밝은 땅에서 가장 밝은 산에 집결했으리라고 본다. 우리 옛말로 ‘가장’에 해당되는 말이 ‘한’이다. 그래서 가장 밝은 이 산을 ‘한밝산’이라고 불렀고, 한자로는 太白山(태백산), 白頭山(백두산)이라고 불렀다고 추정한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그곳이 인근 동방에서 가장 빛이 밝고 볕도 센 곳이어서 밝은 땅인데다가,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해서 노아의 후손인 그들이 노아가 홍수가 그친 뒤 아라랏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바로 하느님의 사람 ‘욕탄’이다(유석근). 사실 대홍수 때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다 죽었기 때문에, 동부 산악 지대를 거쳐서 스파르까지 온 욕탄과 그 후손들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을 차지한 것이다. 당연히 모든 환경이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이 밝고 볕도 밝아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도 많았기 때문에 아득한 그 옛날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아주 좋은 터전이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곳을 하느님께서 점지해 주신 땅이라고 믿었다. 여기서 ‘주신’, ‘쥬신’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한다(김산호, 신성옥). 그러다가 나중에 한자로 표기할 때에 적당한 음(音)과 뜻(訓)을 감안하여 ‘조선(朝鮮)’으로 표기했을 뿐이며 이밖에도 ‘숙신(肅愼)’, ‘직신(稷愼)’, ‘주신(珠申)’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는데 모두 이두식(吏讀式) 표기로서 그 연원은 모두 같다(주채혁) 여기서 아침의 나라라는 뜻의 ‘아사달’, 불[밝]의 나라라는 뜻의 ‘夫餘’, 동쪽의 밝은 나라라는 뜻의 ‘새발’(新羅)라는 나라 이름들도 나왔다(이대근). 이밖에는 ‘조선’이라는 국호의 어원에 대한 분명한 해석이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 욕탄의 활동 연대가 우리 민족의 상고 시대이고 또 욕탄과 그 후손들이 도착한 스파르가 시베리아 평원에서 가장 살기 좋은 백두산 근처라는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욕탄이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역사적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4.3.3. 그렇다면 한민족은 북방계인가?
위에 언급한 대로라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은 욕탄계 노아의 후손으로서 아라랏산에서 동부 산악 지대가 위치한 중앙 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북방계 이주민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들과 고대 한국인의 유전자를 분석하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정착한 한민족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합쳐져 있고, 남방계 유전자가 더 우세한 특징을 보인다.
민족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밝히는 과학적 작업은 크게 구분하여 사회학적이고 민족학적이며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과 인종학적이고 체질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전자가 이미 문화, 언어, 신앙, 생활양식 등의 특징을 비교 고찰하는 방식으로서 북방계 기원설에 적용하고 있는 접근 방식이며, 후자는 체질의 특성, 피부색, 두개골 지수, 코의 높이, 눈의 색과 형, 두발 색과 형의 특징, 신장, DNA, 미토콘드리아 등을 분석하여 비교 고찰하는 방식으로서 새롭게 이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하는 이 꼭지에서 적용하여 남방계 기원설도 고찰해야 함을 제기하려는 것이다(신용하).
1970년대 초에 한반도 바로 위쪽인 두만강변 러시아 극동지방의 ‘악마문 동굴(Devil’s Gate cave)’에서 발견된 동아시아인 20대와 40대 여성의 머리뼈에서 추출한 유전자(게놈 지도)를 2014년에 분석하여 현대 한국인 동일 세대의 유전자와 비교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이들의 미토콘트리아 게놈 종류가 같았다. 미토콘트리아는 모계로부터만 물려받기 때문에 이 게놈 종류가 같다는 것은 모계가 같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 동굴인을 한국인의 조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동아시아인들의 전형적인 유전 특징인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을 가졌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적어도 최근 8천 년간 동아시아에서는 외부 인종의 유입 없이 비슷한 특징을 가진 민족끼리 지내왔으며, 농업 등 신기술을 가진 무리가 다른 무리를 정복하기보다 기술을 공유하며 공존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분석되었다. 수렵채집이나 유목을 하는 북방계 민족보다 정착농업을 하는 남방계 민족이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인구를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구진이 악마문 동굴인의 게놈과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민족의 게놈 변이를 비교했더니, 한국인이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의 융합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한반도에 진출한 남방계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북방계 사람들을 만나 한민족을 형성했으며, 유전자 흐름으로 볼 때 다른 민족들보다 내부 동일성이 매우 높아서 단일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은 정도임을 확인했다(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와 국제 연구팀, Sicience Advances지에 게재; 연합뉴스, 2017.02.02.).
이처럼 유전자 분석을 통해 민족의 이동 경로를 추정할 수 있다면, 현재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유적과 유물은 민족의 생활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데, 한민족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특징적 유적과 유물은 한민족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기마문화와 농경문화를 아울러 이룩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 유전자 분석 결과에 부합된다. 기마문화는 북방계에서, 농경문화는 남방계에서 발달시킨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문화가 합쳐져서 남은 유적과 문화가, 고인돌과 제천의식(祭天儀式) 및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이다. 이러한 유전자 분석 결과와 유적과 문화 등은 한민족의 유래와 이동 경로 그리고 특성을 설명해 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다.
이상으로, 노아의 후손으로서 에베르의 아들인 욕탄과 그 후손들이 홍수 이후에 아시아의 동쪽 끝으로 와서 새로운 문명을 시작했으며, 그들이 북방계 이주민으로서 우리 한민족의 조상임을 밝혔다. 홍수 때에 쏟아진 엄청난 양의 빗물이 지표면을 덮다 못해 산들까지도 덮었으므로 지구상에 숨을 쉬던 모든 생명체는 모조리 죽었다(창세 7,21). 그리고 이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와 그 가족들, 즉 셈과 함과 아벳에게서 “온 땅으로 사람들이 퍼져 나갔다”(창세 9,19). 그들 중 아시아의 동방으로 향한 무리가 셈의 후손 중 욕탄계 후손들인데 이들은 곧장 동향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산악 지대를 거쳐 ‘스파르’로 불리는 동아시아의 북부인 만주 벌판과 한반도로 들어왔으므로 아시아의 북방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무리에서 갈라져서 중앙아시아의 산악지대를 피해 아시아의 남부를 돌아서 온난한 기후를 찾아 한반도로 흘러 들어온 남방계 이주민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도 노아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에 대홍수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던 것이고, 한반도에서 북방계 후손들과 만났을 때 전쟁으로 대립하기보다는 평화스럽게 연합할 수 있는 혈연적 토대가 되었다. 다만 연합의 조건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이를 보전하기 위한 종교적 경지에 있어 차이가 있었으므로 거의 자기부정에 이를 정도의 수련이 필요했을 것임을 우리는 남방계 족장인 여군장과 북방계 족장이 남군장이 혼인으로 뭉치기에 앞서 쑥과 마늘로 연명하며 북방계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에서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이 후에 단군신화의 신론적 분석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게 될 곰 토템족과 범 토템족과 새 토템족의 만남이다.
이제 한민족의 초기 역사를 추적하기에 앞서서 이러한 논의가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보기로 하자. 구약성경에는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여러 예언자들이 전해 준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유다인들은 이 성경에 기록된 대홍수 사건을 비롯해서 율법과 예언을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귀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게도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여러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구세주께서 유다인으로서 그들 가운데 오셨는데도,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요한 1,10). 메시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은 것이다(요한 1,11). 참으로 통탄스러운 수수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 부르심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이루었다. 구약성경에 더하여 신약성경까지 물려받은 교회는 제1천년기에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동방교회가 주도하였고, 제2천년기에는 라틴 문화권에서 서구 교회가 주도하였지만 16세기 이래 아시아 선교에 매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장기간의 박해를 초래했을 정도로 실패하였으므로, 이제 제3천년기에는 아시아 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으로 나서는 한편 보편교회 안에서도 중심 역할을 해 내기를 기대하는 메시지가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권고 「아시아 교회」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아시아 교회 안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청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종교적인 차원에서 아시아 대륙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수를 늘리고 아시아 교회를 활성화시키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을 훨씬 뛰어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즉, 서구 라틴 교회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주도적인 종교세력으로 부상했고 아시아 대륙에서는 그보다 못한 초라한 성적를 기록했지만, 서구 라틴 문명에 속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되어 세계 인류 문명을 주도해 오는 속에서도 범지구적 환경과 경제 위기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경제 지표가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잠시 주춤하고 있다고는 해도 과거에 비하면 성장했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진국 국민들의 개인적 행복지수가 높아졌거나 더 중요하게는 인류의 평등지수가 높아진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국제 사회의 평화상태가 더 나아진 것도 아니다.
이 위기적 상황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여 바야흐로 인류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새로운 문명의 기수가 필요해진 시점이다(권병현). 한국인 또한 전쟁과 빈곤 그리고 독재를 딛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이제 경제적 역동성과 문화적 상상력으로 전 세계인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한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체성 차원에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기도 하다. 이 뿌리에 묻혀 있는 한국인, 한민족의 정체성은 하나의 보물과 같은 것이다. “한국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국제 사회 주요 사안에 대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기회를 넘겨받았다. 한국은 국제 사회의 전면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으며 시민의 행동을 통해 세계 역사의 향방을 좌우할 수도 있다. 코리안 드림을 만드는 일은 한국인에게 달려 있다. 가족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타적 관심, 인간적이고 사려 깊은 기술, 인본주의 전통, 세계로 열린 관점 등이 코리안 드림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Emmanuel Pastreich, 한국명 이만열,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그리고 이 보물은 비단 한국인이나 한국만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을 비롯한 전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다.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하면 유다인들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고, 정체성이 보편성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알지 못하면 서구 라틴계열에 속한 교회와 문명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한국 사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지 못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지금에 와서도 후진국 내지 중진국 콤플렉스를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교회도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서 받고 있는 기대와 실제 복음화 역량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박해가 종식된 지 백 년이 넘어간 지금도 여전히 박해 콤플렉스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5천여 년 전에 우리 조상 욕탄이 밝음을 찾아 동방으로 자리를 잡고 ᄇᆞᆰᄃᆞᆯ나라와 빛의 문명을 세웠던 것처럼, 이제 우리 민족은 동방의 빛을 만방에 비추어주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곡식이 다 익어 수확할 때가 되었다”(요한 4,35). 펠렉계 후손들이 이룩한 성취의 한계를 욕탄계 후손들이 극복하고 이어 받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수확의 때는, 먼저 요한복음 제4장의 메시지를 상기함으로써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의 만남과 대화에서는 역사적으로 꼬였던 매듭을 풀어주시면서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 새로운 경신례(敬神禮)로 사마리아인들을 초대하셨고, 왕실 고관과의 만남과 대화에서는 비록 그가 헤로데의 폭정에 종사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원수와 다름없던 사이였지만 죽어가던 그의 아들을 멀리서 살리는 기적으로 이방인 고관의 가족들을 믿음으로 이끄셨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선포하시는 활동이 새로운 경신례와 소생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요한이 복음서 서문에서 쓴 대로, 당신 땅에 오신 구세주를 그분의 백성은 맞아들이지 않았지만 당신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시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민족은 하느님께는 물론 예수님께 대해서도 결코 이방 민족이 아니라 유다 민족 못지않은 노아의 직계 후손들이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밝히신 ‘영과 진리 안에서 드려야 할 새로운 경신례’와, 왕실 고관 아들을 소생시키는 기적과 같은 복음 선포 활동으로 새로이 하느님 자녀로 맞이해야 할 이들은 우선 한민족 안에서 아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있는 이들이요, 그 다음은 우리 주변의 아시아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한국인 또한 전쟁과 빈곤 그리고 독재를 딛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이제 역동력과 상상력으로 전 세계인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한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체성 차원에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기도 하다.
이 뿌리에 묻혀 있는 한국인, 한민족의 정체성은 하나의 보물과 같은 것이다
(Emmanuel Pastreich,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그리스도인으로서,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보물같은 것임에 긍지를 가지고 빛이 나도록 잘 보존하고 닦아 나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