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9일 일요일 운길산 세정사 야생화 탐방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향기가 느껴진거야
장범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스쳐지나간건가 뒤돌아보지만
그냥 사람들만 보이는거야
다와가는 집근처에서
괜히 핸드폰만 만지는거야
한번 연락해 볼까 용기내 보지만
그냥 내 마음만 아쉬운 거야
걷다가 보면 항상 이렇게 너를
바라만 보던 너를
기다린다고 말할까
지금 집앞에 계속 이렇게 너를
아쉬워하다 너를 연락했다 할까
지나치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만 보이는거야
스쳐지나간건가 뒤 돌아보지만
그냥 내 마음만 바빠진거야
걷다가 보면 항상 이렇게 너를
바라만 보던 너를
기다린다고 말할까
지금 집앞에 계속 이렇게 너를
아쉬워하다 너를 연락했다 할까
어떤 계절이 너를
우연히라도 너를 마주치게 할까
난 이대로 아쉬워하다
너를 바라만 보던 너를
기다리면서 아무말 못하고
그리워만 할까
걷다가 보면 항상 이렇게 너를
바라만 보던 너를
생각한다고 말할까
지금 집앞에 기다리고
때론 지나치고 다시 기다리는
꽃이 피는 거리에 보고파라 이밤에
걷다가 보면 항상 이렇게 너를
아쉬워 하다 너를
기다린다고 말할까
지금 집앞에 계속 이렇게 너를
아쉬워 하다 너를 연락했다 할까
앵초꽃
운길산 세정사 계곡은 다양한 야생화가 피는 곳으로 이름 나있다. 전에 한 번 이 계곡을 찾아왔으나 길을 몰라 야생화 찾는걸 포기하고 새우젖고개를 거쳐 적갑산으로 해서 임도를 따라 내려왔었다. 이번에 야생화 탐방을 하는 램친(램블러 친구)이 올린 트렉을 보니 홀아비바람꽃과 앵초 등 봄꽃이 많이 피어 있기에 간단히 돌아보고 올 심산으로 길을 나섰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으나 늦게나 내릴 것으로 보이는데다 그 양도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집에서 느즈막히 나와서야 우산이라도 챙겨올 걸 하고 살짝 후회되었지만 일단 길을 나서고 나니 금방 잊어버린다. 전철역까지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가 보니 버스가 올 때까지 24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시간이면 전철역까지 가고도 남을 시간이다.
도로 가 화단에 핀 죽단화꽃을 살펴보고 천천히 전철역쪽으로 걷는데 동네 아파트 뜰에 분홍색 꽃 한 송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앵초(櫻草)꽃이다. 단 한 포기 앵초가 자라고 있다. 오늘 운길산 세정사 계곡을 찾아가는 목적이 바로 앵초꽃을 보기 위함인데 이렇게 동네 화단에서 그 꽃을 보니 좋은 징조로 여겨진다.
동네 아파트 화단에 핀 앵초꽃
화단에는 또 봄맞이꽃도 잡초처럼 널부러져 자라고 있다. 사실 꽃이라고 하는 것도 다른 곡식을 심은 밭이나 다른 풀나무를 심어놓은 정원에 의도치 않게 피는 것은 다 잡초다. 아주 작은 흰색 꽃이 긴 꽃대 위에 한 송이씩 피어 가는 바람에도 온몸을 흔들어댄다. 작년 이맘때 영월에 있는 단종의 능묘에 피어 있는 봄맞이꽃을 본 적이 있다.
봄맞이꽃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전철이 꽤 북적인다. 주말을 이용하여 교외로 나가는 등산객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천철이 가득 찼다.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누적수에서 후위에 밀려있는 것이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는 규율정신 때문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11시 30분이 다 된 시간 운길산 역에서 내렸다. 이 전 역인 팔당역에서 많이 내리고 나머지는 이 운길산 역에서 다 내리고 나니 전철히 한산해지는 것 같다. 나머지 사람들은 용문산이나 양평쪽으로 가는 사람들인가보다.
운길산 역에서 세정사 입구까지는 잘 포장된 길이다. 저전거를 탄 사람들이 내 옆으로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좁은 도로에 자동차도 가끔 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옆으로 비껴서야 한다. 바야흐로 신록이 우거지는 봄이다. 코로나로 잔뜩 움추린 사람들이 잠시나마 마스크를 벗고 봄 냄새를 맡으러 운길산으로 들어간다.
부부가 또는 가족 단위로 또는 친구들끼리 나물을 뜯으러 나온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길 가에 차를 세워두고 아침 한 나절 수확한 나물을 펼쳐놓고 다듬고 있는 가족도 있다. 한 자루 가득 담긴 보여주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휴대용 가스 버너를 켜고 가족들끼리 간식을 먹고 있는 중이다. 모두 행복해 보인다.
개울 건너에서는 화가 난 남편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댄다. 자기 아내에게서 핀잔을 들은 모양이다. 자기 딴에는 여기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고 나물 나는데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조금 여유를 부리니까 아내가 잔소리를 퍼부은 모양이다. 남편은 듣기에 거북할 만큼 욕을 섞어가며 아내에게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 사는 것도 참 다양하다.
다른 부부는 길 가 덤불에 파릇파릇하게 나고 있는 다래 순을 부지런히 따고 있다. 저 다래 순 하나에 밥 한 숟갈. 저들은 다래순을 따다가 데쳐서 무쳐서 먹을까 아니면 장아찌를 담가서 먹을까? 바쁘게 움직이는 손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모두 행복해보인다.
세정사 가는 길목에는 봄이 완연하다. 큰봄까치풀, 큰개별꽃, 으름덩굴, 광대나물, 꽃마리, 금낭화, 줄딸기 등 온갖 봄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복사꽃과 산벚꽃은 이제 져가고 있다. 평소 차를 타고 가면서 먼 발치로 보았던 느릅나무꽃도 가까이 살펴볼 수 있었다. 봄에 제일 먼저 푸른 잎을 피웠던 귀룽나무가 벌써 하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왼쪽 개울 너머 낮은 산에는 초록빛 나뭇잎이 몽골몽골 피어난다. 소리없는 아우성 봄의 향연이다.
조팝나무
봄까치꽃
으름
유채꽃
복사꽃
산벚꽃
금낭화
광대나물
흰선씀바귀
꽃마리
줄딸기
매화말발도리
세정사가 가까워지자 도로 가 빈 자리가 없을 만치 자동차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나물꾼들과 꽂쟁이들이 타고 온 차들이다. 세정사에서 제를 올리는지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멀리서도 은은히 들려온다. 염불소리에 실려 향 냄새가 묻어온다. 그러고 보니 음력으로 4월 초파일이 다가오고 있다. 운길산 기슭에 있는 이 작은 절에도 부처님 오신날을 기리는 잔잔한 울림이 느껴진다.
그리 수량이 많지 않은 계곡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벌깨덩굴이다. 다른 데서는 아직 보송보송 솜털만 나 있는데 여기에는 벌써 꽅이 피었다. 보라색 꽃에 수염이 잔뜩 나 있고 크고 작은 점이 나 있는 꽃 모양이 꼭 호랑이 같다.
벌깨덩굴
홀아비바람꽃
피나물
여기는 다른 데에 비해 봄이 훨씬 일찍 찾아왔나보다. 벌써 피나물꽃이 볼품없이 지고 있고, 홀아비바람꽃도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귀룽나무도 벌써 꽃이 활짝 피었다.
나는 과연 소문대로 이 곳에 앵초꽃이 피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위에 몇 개 피었다며 시큰둥하다. 대부분 접사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물이 비치는 피나물꽃 앞에서 또는 하얀 는쟁이냉이꽃 앞에서 정성들여 사진을 찍는다. 이들은 농부가 겨우내 먹을 곡식을 모으듯이 나중에 집에서 곱씹어 먹을 추억을 담고 있다.
귀룽나무
주변이 새로 나온 잎으로 푸른데 갑자기 선홍빛 꽃이 눈에 들어온다. 앵초꽃이다. 바위옆에 연초록 잎 사이로 작은 꽃대를 올리고 그 끝에 두 송이 꽃이 피었다. 마치 국민학교 송풍때 보물찾기에서 돌을 들추다가 보물딱지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뿐이다. 개울가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저 아래 멋진게 있다고 하여 내려가봐도 별 다른게 안보인다. 다시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보니 여기저기 앵초가 많이 보인다. 하나하나 정성껏 사진에 담았다. 그 동안 큰앵초는 많이 보았지만 정작 앵초꽃은 이 번이 두 번째다.
내가 앵초꽃을 처음으로 본 것은 2017년 봄 지리산 아래 중산리 마을 화단에서였다. 식당가 아래 화단에 소담스럽게 핀 꽃이 궁금하여 물어보니 앵초꽃이라 하였다. 큰앵초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직 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훨씬 전에 피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것 같다.
앵초(櫻草)를 한자로 앵두나무 앵자를 쓴다. 꽃모양은 앵두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이해가 안간다. 꽃 피는 시기가 비슷하기 때문일거라고 나름대로 생각해보지만 선뜻 수긍이 안간다. 일본에서는 앵초를 사쿠라소우 즉 벚꽃풀이라 부른다는데 이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긴 것 같다. 어떤 이는 앵초꽃이 벚꽃이나 앵도꽃과 닮았다고 하지만 이는 남의 자식을 발가락이 달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앵초 - 야생에서 자라는 앵초꽃을 처음 보았다.
앵초와 관련된 아름다운 전설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독일의 작은 마을에 리스베스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리스베스의 어머니는 병이 나 오랫동안 앓아 누워 계셨다. 봄이 왔다. 어머니는 햇볕을 쬐며 들판을 걸어 보았으면 하고 바랐다. 걷는 것은 물론 일어날 기운조차 없어진 어머니가 쓸쓸하게 말했다.
" 들은 꽃으로 가득하겠구나. 얼마나 예쁠까?"
" 엄마, 앵초를 꺾어 올게요. 싱그럽게 자란 앵초를 보면 금방 나을지도 몰라요."
리스베스는 들판으로 달려갔다. 들판은 푸르게 빛나는 하늘에서 부드럽고 따스한 햇빛이 쏟아져 마치 천국 같았다. 앵초는 지금 한창인 듯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분명히 멋진 꽃다발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리스베스는 앵초를 꺽으려고 손을 뻗다가 멈추었다. 순간 앵초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들판에 있으면 더 오랫동안 피어 있을 수 있지만, 한번 꺾이면 2 , 3 일 안에 시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뿌리채 뽑아 가면 돼.'
리스베스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화분에 심어서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놓으면 앵초는 들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피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앵초 한 송이를 파내어 집으로 돌아가려던 리스베스는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요정이 훨훨 날아 바로 눈 앞으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축하한다. 너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아이일 거야."
연녹색 날개옷이 펄럭이며 요정이 말했다.
" 너는 지금 보물성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았단다. 나를 따라오너라. "
리스베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정을 따라 갔다. 새들이 지저귀는 수풀을 지나고 맑은 물이 가득 찬 샘물을 돌아서 요정은 깊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리스베스는 침을 삼키며 멈춰 섰다. 눈앞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성이 나타났다. 커다란 나무들에 에워싸여 있는 성은 지붕도 벽도 모두 연녹색이었다. 높이 솟은 탑도 싱그러운 나무 빛깔이었다.
"요정이 지키는 성이야. 성안에는 보물들이 가득 차 있지. 성문을 여는 열쇠는 이 앵초 뿐이란다."
요정은 리스베스가 안고 있는 앵초를 쳐다보았다.
"봄이 올 때마다 들에는 수천 송이의 앵초가 피지만 똑같아 보이는 앵초 중의 단 한 송이만이 성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열쇠를 발견한 사람은 요정의 안내를 받아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보물을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들로 나가 앵초를 살펴보았습니다. 열쇠가 되는 단 한 송이의 앵초. 사람들은 그것을 단 한번 만에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 너는 단 한번 만에 단 한 송이의 앵초 열쇠를 얻은 거야. 아마 마음씨 착한 리스베스에게 하느님이 주신 선물일 거야. "
리스베스의 손에 꼭 쥐어 있는 앵초의 뿌리에는 겨자씨만 한 금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보물성의 열쇠라는 표시였다. 연녹색 성문에 앵초를 댄 순간 조용히 문이 열렸다. 성안은 온통 보석 천지였다. 온갖 보석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 서둘러, 리스베스. 행운을 놓쳐서는 안 돼. 문은 금방 닫힐 거야. 다음번에 문이 열리려면 일 년 후가 될지, 십년 후가 될 지, 아니면 백 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몰라. 이대로 갇히면 보석더미에 싸여 죽게 될 뿐이야. 백 년 전쯤에 행운을 잡았던 한 남자는 내 말을 듣지 않다가 그대로 갇히고 말았어. 그 남자의 뼈가 성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야."
요정의 말대로 보물성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잠깐이었다. 요정은 잡히는 대로 보석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리스베스의 손을 끌고 얼른 성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리스베스가 미쳐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요정도 보물성도 사라지고 말았다. 보석과 앵초를 갖고 리스베스는 집으로 돌아왔다. 꽃을 본 어머니는 행복해했다. 보석 덕분에 어머니는 병원 치료를 받을 수가 있었다. 완전히 기운을 차린 어머니가 리스베스에게 말했다.
" 내 병이 나은 것은 보석 때문이 아니야. 앵초를 캐 온 우리 리스베스의 정성 때문이지. 병과 싸울 힘을 네가 주었기 때문이란다. "
리스베스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지만, 두 번 다시 앵초 열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출처: 도시와농촌교류터 원문보기 글쓴이: 오룡도사(서울중랑)
앵초꽃
비가 내려 예봉산으로 코스를 바꾸다.
앵초꽃을 보았으니 이제 임도를 따라 적갑산을 넘어 도심역까지 가면 된다. 아침을 늦게 먹은 탓인지 그다지 시장기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도 1시가 넘었으니 물도 마시고 요기도 해야겠기에 길 옆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과자와 사과를 조금 먹으니 배가 불뚝 일어난다.
이 세정사 계곡에 다양한 야생화가 잘 자라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계곡이 깊지는 않아서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윗쪽에 바위가 너덜이 넓게 분포되어 있어 그 바위 아래에 수분이 오래 저장되어 있다가 조금씩 흘려보내는 것 같다. 햇볕에 데워진 바위덕분에 물도 다른데 비해 온기가 있기에 계절도 한 걸음 더 일찍 바뀌는 것이 아닌가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금붓꽃 꽃 빛깔이 곱다. 너도바람꽃은 꽃이 지고 벌써 열매가 익어간다. 낙엽송 잎도 파랗게 올라왔다. 계절이 빠르게 흘러간다.
너도바람꽃 씨앗
개감수
금붓꽃
다릅나무
임도를 걸으면서 건나다 보이는 운길산 자락이 싱그러운 연두빛으로 물들었다. 어디선가 꿩이라도 푸드득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다.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후 늦게나 내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이제 겨우 세 시밖에 안되었는데 비가 내리니 좀 당황스럽다. 우선 배낭을 덮었다. 기온이 높으니 몸은 차지 않다. 겨울에 입는 파커를 입었으니 걱정은 안되지만 만일 비가 더욱 거세지면 옷이 흠뻑 젖어버릴 것 같다.
연두빛으로 물든 운길산
도심역까지 가는 길은 편하지만 거리가 길으니 시간이 오래걸릴 것 같다. 예봉산 방향으로 사람이 다닌 흔적을 따라 기슭으로 들어섰다. 산비탈을 질러가면 조금 빨리 산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바위가 가파르게 길을 막는다. 다행히 바위가 미끄럽지 않고 나무가 요소요소에 자라고 있어 어렵지 않게 바위를 타고 넘었다.
고도를 높이자 진달래 꽃밭이다. 진분홍 진달래꽃이 온통 산을 불태운다. 물기 묻은 꽃을 몇 송이 따서 입에 넣어본다. 꽃향기에는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 있다. 십리 밖 학교길을 걸어오면서 시영이나 찔레를 꺽어 먹었던 추억이다. 용촘배기(한생병 환자)가 진달래 꽃방망이를 만들어 들고 아이들을 산으로 유혹하여 잡아먹는다는 얘기에 산으로 멀리는 올라가지 못하고 낮은 곳에 핀 꽃을 따 먹던 추억이다.
산 중턱 윗쪽으로는 진달래가 만발했다.
숲개별꽃
험한 잔가지 수풀을 헤치고 능선에 올라서니 산길이 나 있다. 예봉산 정상까지 아주 가가운 거리다. 오랜만에 뜻하지 않게 예봉산에 올라와본다. 강우기상관측소 건물 터파기 공사도 하기 전에 몇 번 올라왔던 산이다. 2년은 좀 넘은 것 같다. 그 동안 건물이 완공되어 멀리서도 예봉산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나 한 번도 찾아올 기회가 없었다.
정상에 세워졌던 정상석이 새것으로 바뀌었다. 옛 것은 정상 매점 옆에 굴러다닌다. 비가 내린 탓인지 예봉산 정상 주변이 한산하다. 매점 주인은 비걷이를 하는지 천막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 사이 산객 한 명이 팔당쪽에서 올라온다. 반팔차림이다. 비가 오니 먼지도 안나고 시원해서 좋다고 한다. 비가 와서 산행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 사람은 오히려 이런 것을 즐기는가보다.
예봉산 정상
예봉산에서 바라본 풍경
예봉산 정상에는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있다.
염소 부부를 살려주세요
예봉산 정상에 강우 레이더 관측소가 생기고 나서 산으로 오르는 계단을 새로 설치한 것인지 전에 보았던 것과 사뭇 다르다. 어쩌면 원래 있던 시설을 새 재료로 다시 시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락사락 내리는 봄비가 대지를 적셔준다. 우리는 대자연의 혜택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제대로 살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인 것을 가끔 잊고 지낸다. 비 맞은 초록의 나뭇잎이 생기를 보인다. 진달래와 벚꽃이 더욱 진한 빛으로 산객의 눈길을 끈다.
산을 내려가는 곳곳에 A4용지에 염소 부부를 구해달라는 호소문을 써서 붙여 놓았다. 누가 쓴건지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내용을 읽어보니 누군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심정이 가득 담겨있다. 이 산에 염소를 풀어 놓은 것인지 그 염소 두 마리를 누군가 잡아가려고 하는 것을 또 누군가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염소가 풀려났는데 그 염소들이 계속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글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참 다양하다. 누군가는 이런 야생(?)의 숲 속에서 염소를 사냥하는 그런 횡재를 기대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염소가 자연 속에서 계속 자라는 것을 바란다. 완전히 상반된 생각인데 좀 더 엄밀히 따져봐야 알겠지만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이런 호소문을 읽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염소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굳이 염소가 아니더라도 야생에서 사냥할 수 있는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는 강에서 자라는 물고기를 보호해야 하는지 아니면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먹으면 안되는 것인지 하는 물음과 어찌 보면 같은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자면,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소나 돼지를 잡아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그것도 모두 이 세상에 살려고 태어난 생명체이니 함부로 죽이면 안되는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
누가 누구를 잡아먹어도 되는가 하는 것을 또 누가 정할 수 있는가. 호랑이가 고라니를 잡아먹어도 된다고 누군가가 허락을 한 걸까? 고라니가 들판에 자라난 풀이나 나뭇잎을 뜯어먹어도 된다고 또 누군가가 정해준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이론처럼 종족보존(種族保存)을 이루기 위해 DNA에 기록된 대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일부임을 그냥 인정하면 되는걸까?
잘 알지도 못하는 염소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난개발에 볼성 사나운 풍경
가랑비에 옷 졌는다고 하더니 산을 중간쯤 내려왔는데도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길 가에 큰구슬붕이꽃이라도 피어 있는가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지만 바쁜 발걸음에 눈에 띌 만큼 허술하게 숨어 있을 그런 구슬붕이가 아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큰구슬붕이 꽃 속으로 빗물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꽃은 수정을 해서 씨앗 맺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일텐데 그 꽃 속에 빗물이 차더라도 나중에 마르면 수정을 할 수 있는가?
길 가에 맑은대쑥이 비를 맞아 더욱 맑갛게 자라난다.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잡초라지만 여느 쑥과 마찬가지로 어린 잎은 나물로 먹을 수 있고 꽃을 포함한 줄기와 잎을 암려라 하여 한약재로 사용한다. 어혈을 풀어주고 류머티스 관절염 등에 잘 듣는다 한다.
맑은대쑥
비를 맞아 새초롬해진 각시붓꽃이 길 가에 앉아 있다. 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렇게 시기에 맞춰 피어난다.
각시붓꽃
마을이 가까워지니 산을 깍아 일군 텃밭에 꿩 한 쌍이 뜻하지 않게 나타난 산꾼을 보고 놀라서 달아난다. 이런 빗속에 설마 누군가 오지 않을거라 믿으면서 열심히 콩을 주워먹고 있다가 놀란 모양이다. 까투리는 종종걸음으로 멀찍이 달아나 숨어버리고 장끼는 밭 한 가운데 서서 나와 주변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이동하는 폼이 제법 여유있어 보인다.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에 내려섰다. 이제 조금만 내려가면 팔당역에 도착한다. 간이 화장실 옆에 버려진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여기자기 커다란 간판이 현란하게 서서 배고픈 산객들을 유혹한다. 대부분 메뉴가 비슷비슷한데 서로 눈길을 끌도록 간판을 세우다보니 점점 커져서 이제는 집채만해졌다. 자발적으로 간판을 정리하고 각자 자신있는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한다면 아름다운 풍경도 보존하면서 더욱 많은 손님이 오도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봉산 아래 식당가
아들과 사위 : 돌아오는 전철에서 노파를 만나다.
비에 쫒겨 모두 서둘러 하산한 때문인지 전철이 몹시 복잡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옆에 앉은 노파가 맞은 편 앉은 노부부와 얘기하는 걸 엿듣는다. 옆의 노파는 이제 갓 70을 넘겼는데 아픈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린다. 성내동에 살면서 양평에 땅을 사 팬션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데 오늘 그 밭에 심은 상추를 한 보따리 따고 또 주변에서 두릅을 한 자루 따가지고 오는 길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말에는 이렇게 밭에 가서 일을 하고 여름에는 팬션을 운영하느라 일이 많다고 한다. 딸만 둘 있는데 그 녀의 표현대로 ‘사위 새끼들’은 그저 ‘장모님, 땅 값이 많이 올랐데요’하는 말만 하지 한 번도 밭에 가서 들여다보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내심 섭섭함이 가슴 속 깊이 배여 있다.
역에서 내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잠시 들어주었는데도 미안하고 고마워한다. 상추와 산나물은 또 사위들에게 줄거란다. 딸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손자를 낳아 준 아버지로서 노파는 사위를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른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한 나절 내린 비가 땅을 촉촉히 적혔다. 집에 도착하니 마침 저녁 먹을 준비가 다 되었다며 국수를 비벼준다. 꿀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