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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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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 칼럼방 호남 의병의 혈통적 DNA, 그것이 알고 싶다.
방진 추천 0 조회 111 23.12.12 06:22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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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12.12 12:55

    첫댓글 한말 의병활동
    서부경남 최후의 격전지가 하동 고성산성입니다
    기정진 선생의 제자 월고 조성가의 일기에도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작성자 23.12.13 18:51

    노사 기정진 선생의 직계 제자가 무려 600여 명, 그들의 제자까지 포함하면 그의 문하생은 8천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역시 호남 유림의 최고봉 고봉 기대승의 후손입니다. 회장님께서 봉직했던 하동군 옥종면 고성산에 있는 고성산성, 동학농민군 구국 항일운동의 대격전지였던가 봅니다. ^^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호남 의병(1900년대 초)의 주축은, 임란 의병(1592~1598)의 후손이었다!.
    국난때마다 수백년을 이어온 의병의 기막힌 역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작성자 23.12.13 20:12

    단적으로, 임란 때 의병대장 제봉 고경명과 그의 둘째 아들 학봉 고인후, 당시 호남 지방에서 최초로 의병 6천 명을 모집 금산성에서 왜군과 맞섰던 부자가 장렬히 순절했습니다, 고인후의 11대 종손이자 고경명의 12대 후손이 곧 한말 일제가 반드시 잡아 없애야 할 폭도의 수괴라 일컬었던 좌도 의병장 고광순이었습니다. 대단한 혈통적 DNA입니다.

  • 23.12.12 19:02

    글을 읽는중에도 화가나고 합니다

  • 작성자 23.12.13 20:19

    그렇습니다. 왜의 종자, 일본의 근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습니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 개인적으로는 겸손한 척 그러나 민족의 문제, 국가의 문제로 들어가면 예외없이 도적의 근성, 탐욕의 근성, 악인의 근성이 드러납니다. 오죽하면 충무공 이순신이 "통분함이 뼛속 깊이 박혀서 이 왜적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않기로 맹세하였습니다" 라고 .했겠습니까.

  • 23.12.12 19:02

    임철준

    한국의 독립운동가조선 의병장풍천 임씨제천시 출신 인물1851년 출생1907년 사망건국훈장 애족장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임철준
    任哲準
    자 / 호
    증약(曾若) / 순초(筍樵)
    본관
    풍천 임씨[1]
    출생
    1851년 11월 13일
    충청도 청풍도호부 원남면 괴곡리
    (現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사망
    1907년 7월 7일[2] (향년 55세)
    경상북도 풍기군 죽령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51년 11월 13일 충청도 청풍도호부 원남면 괴곡리(現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아버지 임백간(任百幹, 1811 ~ 1868. 1. 25)과 어머니 평창 이씨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896년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의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입대한 뒤 참모장(參謀將)에 선임되었다. 이후 충주부 충주군·단양군·원주군, 강원도 영월군, 안동부 안동군·문경군 등지에서 크게 활약했다. 같은 해 제천의진이 해산되고 의병장 유인석과 그 부대원들이 청나라로 망명하자,

  • 23.12.12 19:03

    1907년 제천군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 의진에 입대해 좌종사(坐從事)에 선임되었다. 이후 충청북도 충주군·단양군·제천군·연풍군·청풍군, 강원도 원주군·영월군·횡성군·강릉군, 경상북도 문경군·안동군·예천군·영주군·봉화군 등 3도 14군을 휩쓸며 적과 대적했다.

    특히 1907년 7월 5일의 제천군 전투에서 500여 명의 적을 토벌해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같은 해 9월 16일 제천군 추치에서 대전하여 적 200여 명을 사로잡았다. 같은 해 9월 27일 죽령에서 다시 적 200명을 생포하는 등 전과를 올렸으나, 불행히도 죽령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전사, 순국하였다.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2012년 9월 8일 제천시 수산면 수산리 야산에 이장됐다

  • 23.12.12 19:05

    문득...고조 할아버지(임철준)가 생각나서...인터넷을 검색하니...위의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네요.
    저는...충청도 의병의 후손입니다....ㅎ

  • 23.12.12 23:2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ㅎㅎ

  • 작성자 23.12.13 20:25

    그렇군요^^ 존경합니다.명문가란 바로 일심님의 선조처럼 독립 운동에 헌신하고 전쟁터로 나가 희생하는 가문이라 생각합니다. 훌륭하신 선조님께 존숭의 예를 드립니다.

  • 23.12.12 20:41

    글 끝의 일갈이 대단히 장엄하군요. 伍子胥의 유언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한말 전라도 지방의 의병은 아마 東學의 영향이 컷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전라도 지방에 더 유행하였으니까요..
    저희 선조 한 분도 동학접주를 하셨는데, 이장하려고 보니 ○○가 없더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 작성자 23.12.13 20:34

    1894년 갑오 동학의병이 깊은 뿌라가 되었겠지요. 다음 해 부터 1895년 을미의병, 1905년 을사의병, 1907년 정미의병, 이후 독립의병까지 울분의 역사 고난의 역사가 한스럽습니다.

  • 23.12.12 23:31

    글을 읽다보니..
    의병에 대한 상세한 공부도 필요함을 느낍니다.
    흔히 알고 있는.. 막연하게 의병 누구누구를 외우는 것보다도 훨씬 더 비중있는 공부가 됩니다.
    잊어서도 안되고..잊혀져서는 더더욱 안되는 훌륭한 우리의 선조들을 우리가 자주 되뇌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배웁니다.

  • 작성자 23.12.13 20:39

    그렇습니다 임란의 비극이 한말의 비극에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를 바로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익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23.12.13 04:47

    공부 많이했습니다

  • 작성자 23.12.13 20:40

    늘 열공하시는 노력에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 23.12.16 23:27

    한말 의병의 주축은 호남의병이고 그들 대부분은 임란의병의 후손이라는 글에서 확실히 DNA인자가 영향을 미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가 어려워지면 나라를 위해 똘똘 뭉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근성도 그 뿌리가 같겠지요. 국가를 위해 자신을 바친 의병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어요.

  • 작성자 23.12.21 21:51

    존경하는 진해현감님^^
    바로 핵심이고 요지입니다.^^

    1월 13일 여수에서 뵈요^^

  • 24.03.29 17:19

    제가 알기로는 호남의 의병의 시작은 임란전의 정암조광조와 동기였던 15~ 16세기의 인물 학포당 양팽손의 3남 양응정을 주시해야 합니다.
    재야 호국의 투톱인 양팽손과 양응정 부자는 자보향리, 향토방위, 유비무환의 체계로 왜침을 준비해 제자들을 양성하며 호국을 강조했다라고 전합니다.
    이분의 제자들이 엄청났는데 바로 을묘왜변의 종군 시인이었던 백광훈,최경회,박광전, 최경창, 최경운, 이순신장군의 책사인 안중묵,정운,신립 등 양응정의 자녀와 조카들의 인맥으로 호남의 의병들은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이순신장군의 휘하에서 함께 했던 인물들이 양응정의 제자의 제자로 그 맥을 같이 했습니다.
    후일에 영조의 스승을 지냈던 덕촌양득중과 민족대표 33인 중 지강양한묵선생께 호국의 DNA가 전달된것 같습니다.

  • 작성자 24.03.30 10:40

    아하! 그렇군요. 좋은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 더 공부하겠습니다. 정말 호남 의병의 DNA 민족의 표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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