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진 가수의 노래가 좋은 이유와 국민가수가 되기를 기원함
이 글은 전유진양의 노래를 지지하는 이유를 적은 것입니다. 이 글은 전유진양의 노래를 매우 좋아하는 입장에서 쓴 감상문이므로 객관적인 음악적 평가가 아님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1] 들어가는 말
최근 대중가요계의 가장 괄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트롯이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트롯은 장**의 <어머나>나 홍**의 <사랑의 배터리>로 대표되는 젊은층 취향의 경쾌한 세미트롯이 대세였는데, 송** 이후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정통트롯이 부활하였습니다. 정통트롯은 슬픈 노래(애가, 엘레지)가 기본인데, 이러한 애가는 "트롯은 눈물을 먹고 살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궁핍했던 시절에 널리 불리던 것이죠. 최상의 애가는 흥겨움을 주기보다는 감동과 위로를 줍니다. 그러나 이런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가수는 드물죠.
전유진양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현재 포항시 동해면에 살고 있고 중학교 3학년으로 포항 동해중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유진양은 미스트롯 프로를 보면서 송** 가수의 노래를 동영상을 통해 따라 부르기 시작하여 5개월만에(2019년 7월) 포항해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유진양은 2006년 10월 생으로 그때 나이는 14세였습니다. 그 이후 경연 프로그램들에서 입상하며 트롯 꿈나무이자 트롯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고, 최근에는 트롯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참가한 경연 프로그램은 <KBS 트로트가 좋아>, <MBC 편애중개 트로트 신동대전>, <MBC 편애중개 트로트 왕중왕전>, <TV조선 미스트롯2> 이었습니다. 그녀는 2020년 3월 싱글앨범 <사랑하시렵니까>로 공식 데뷔했습니다.
전유진양은 기존 유명 트롯 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불렀는데 그중에서 <훨훨훨>, <용두산 엘레지>, <엄마의 노래>, <보릿고개>와 같은 애가가 특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유진양 노래의 유튜브 총 조회수는 2021년 3월초 2억뷰를 돌파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여성 트롯 가수로는 4위에 해당합니다. 유진양의 <훨훨훨>은 발표된지 14개월만에(2021년 5월 초) 조회수 1790만을(2개 동영상만) 돌파했는데 그에 대한 댓글이 무려 1만8천개에 달합니다. <휠훨훨>의 조회수는 여성 트롯 가수 곡으로는 3위에 해당합니다. <엄마의 노래>는 발표 9개월만에(2021년 5월 초) 조회수 940만을(2개 동영상만) 넘었고 댓글은 1만5천개가 넘었습니다.
댓글에는 - 예전에 이런 감동적인(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노래가 가슴을 후려판다, 신이 내린(천상의) 목소리(음색)이다, 전설(레전드)이 탄생했다, 마음을 착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안 흘린 사람이 있는가?(엄마의 노래), 마음을 힐링시킨다. 이 노래에 빠져 헤어날 수 없다 - 는 식의 내용이 많았습니다.
유진양은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천상의 목소리로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그녀의 노래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진양의 노래를 한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죠. 유진양은 현재 강한 팬덤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강한 팬덤은 그녀의 노래에서 큰 감동과 위로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것입니다.
[2] 감동
유진양의 노래가 좋은 이유로서 제일 먼저 언급할 것은 그녀의 노래가 감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노래에 의한 감동은 사전적 의미가 노래에 의한 심미적 체험에 의해 마음이 크게 느껴 움직이는 것이죠. 이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음악구성, 가수, 가사, 기억, 감정, 상황 등 다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감동은 사랑, 모성애, 우정, 희생, 헌신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의 감동은 슬픈 감정을 위주로 하나 기쁨과 뿌듯함도 일부 포함하고 있는 감정입니다.
최근에 유진양이 부른 <약속>은 애가의 성격을 다분히 갖고 있는 곡입니다. 드라마 이산에 삽입되었던 곡으로 슬픈 사랑의 아픔을 애절하게 표현한 곡이죠. 이 곡은 또한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노래입니다. 가사는 사랑할 수 없는 님이지만 다시 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내용입니다.
유진양은 이 노래에서 놀라울 정도로 맑고 고운 목소리로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과 강한 호소력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감동은 물론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공감과 연민에 의해 촉발됩니다. 그리고 이런 감동의 주역은 심금을 울리는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입니다. 깊이 있는 목소리가 공명하며 부드럽게 퍼져나가면서 청아한 신비로운 소리를 냅니다. 특히 고음 부분(내겐 올 순 없었나요. 사랑할 순 없었나요. 그대 헤일 수 없는 맘)에서 힘있게 울려퍼지는 영롱한 목소리는 애절함을 배가시켜 감동을 극대화시킵니다. 저음과 고음의 연결이 잔잔한 물결과 같고 기교와 비음을 쓰지 않아 맑고 자연스럽습니다. 음색은 저음에서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음색의 아름다움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마디로 맑은 영혼의 목소리이군요. 달리 표현하면 천상의 황금빛 목소리입니다.
이 노래가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녀의 진심 때문입니다. 그녀의 소녀적 순수함이 노래를 더 애절하게 하는군요. 이 노래는 어느덧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게 됩니다. 마치 가슴 속에 슬픔의 비가 내려 가슴이 젖어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감정은 절제되어 오히려 진실됨을 더 잘 전달합니다. 동영상에 담백한 목소리로 깊게 녹여낸 감성이라는 자막이 나오네요. 감정이입하는 능력이 놀랍군요.
이 노래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정화시키며 궁극에는 희열(황홀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입니다. 사람을 전율케한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될 것 같네요.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도 계속 듣고 싶습니다. 이런 노래는 급기야 사람을 열광시키고 중독되게 합니다. 노래에 대한 상사병에 걸리게 하는 것이지요. 그녀의 이 노래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입니다.
조금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자면 이 노래에서의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을 연상시키네요. 사이렌은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황홀경에 빠뜨려 정신을 잃게 했지요. 그 목소리는 아마도 특정 고주파 영역 즉 고음의 공명일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 목소리는 뇌의 대뇌변연계와 감성중추를 연이어 자극하여, 결과적으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고 감정적 몰입을 유발시켜 황홀경에 빠지게 한답니다. 그래서 성악가들은 그런 목소리를 낼려고 노력한다네요. 그러고 보니 이 노래에서의 그녀의 창법은 성악을 닮았습니다. 트롯은 음정주파수가 다른 장르보다 낮아 즉 고음이 적어 고음을 잘 못 듣는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장르인데 <약속>은 일반적인 트롯곡과 달리 고음 영역이 많은 것 같군요.
성악 얘기를 하니 또 하나 연상되는 장면이 있네요. 영화 <파리넬리>에서 주인공이 지고지순한 아리아인 <울게하소서> 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사람들이 정신을 잃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천상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는 목소리가 바로 아름다운 음색의 고음역대 공명이었죠.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의 마력은 무엇보다도 천부적인 최고의 음색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음색이지요. 다른 요소들은 음색의 역할을 돕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공명은 음색을 좋게하는 한 요소이며 최상의 음색을 내기 위한 조건이지요. 사이렌은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했지요. <약속>은 원래 애잔한 노래지만 유진양이 부르니 슬픈 감정 속에서도 감미롭게 들립니다. 그녀는 이 시대의 사이렌이군요. 그녀의 노래에서 헤어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노래 <약속>에서는 천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약속>을 벚꽃이 만개할 때 벚나무 밑에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천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 <이산>에서 주인공인 정조와 송연이 흩날리는 벚꽃 밑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벚꽃은 그럴 가치도 없는 세상에 피어난다는 천상의 꽃이죠. 그녀가 부른 <약속>은 순수와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천상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3] 아름다움과 한국적 정서
유진양의 노래는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아름답습니다. 좀더 풀어서 말하면 아주 마음에 들고 만족스럽고 좋습니다(정확히는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노래가 좋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것은 아름답다는 말과 가장 유사한 표현인 것 같네요. 노래의 아름다움은 목소리의 음색과 질감, 멜로디, 리듬, 화성, 형식, 다이내믹, 가사에 의한 것이지요. 노래는 또한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의 음향, 가사(시)가 합치된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가수는 원 작곡가의 1차적인 창조에 이어 예술적 표현 행위에 의해 2차적인 창조를 하기 때문에 단순히 기교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가입니다.
노래에서는 인간의 목소리가 특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목소리는 가장 원시적이면서 이상적인 악기이고 다양한 예술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아름다운 노래는 아름다운 목소리에서 오기 때문에 동일한 노래라도 누가 부르냐에 따라 노래의 아름다움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기악곡이라도 누가 어떠한 악기로 연주하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과 동일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름다운 음색인데, 음색은 성대음과 울림(공명) 주파수에 의해 결정됩니다. 유진양의 노래의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음악적 여러 요소 중에 목소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큼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타고난 아름다운 성대음과 공명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마법 중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은 음악이다."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한 말입니다. 음악이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잘 표현한 말입니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죠. 유진양의 노래의 아름다움은 마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합니다. 그녀가 <훨훨훨>을 MBC 편애중개에서 처음 불렀을 때 심사위원들의 탄성이 터져나왔고 한 심사위원은 눈시울을 적셨지요. 그녀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대한 다른 반응도 가능합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는 먼저 그 노래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이어 경건해지고 마지막에는 침묵하게 됩니다. 이 노래는 이렇게 시종일관 우리를 압도합니다. 이런 경험은 예를들면 알프스 산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고흐의 그림과 같은 고귀한 미술품, 베에토벤의 교향곡과 같은 위대한 음악을 들었을 때 겪게 되는 것입니다.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신라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고려 비색 상감청자를 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고한 아름다움은 우리를 놀라게 함은 물론 경건하게 하고 궁극에는 침묵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우리는 대중가요를 접하면서 이런 놀람-경건-침묵의 순간을 일생에 과연 몇번이나 경험할 수 있을까요? 특히 아름다움의 정도가 클수록 침묵의 길이는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말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흥분할 수도 있겠지만 침묵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압도적인 감정은 말로써 표현하기가 불가능하고 마음으로 느껴야만 하는 무한한 감정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아름다움은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인 쾌감입니다. 거기에다 음악은 매우 주관적인 경험과정(음악은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경험세계라는 생각도 있음)이라 어떤 노래가 이러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 아름답다고 설명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그저 자신은 그 노래를 들었더니 좋았는데 그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더라는 주관적 감상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노래의 아름다움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유진양의 노래를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자신의 미적기준(취향이나 정서 등)이 유진양의 노래와 잘 맞기 때문입니다(잘 맞는 사람만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달리 말하면 음악의 아름다움이란 정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귀를 통해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노래에 대한 취향은 10대에 거의 결정되어 세대마다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더군요.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녀의 노래가 대중들의 큰 호응을 받는 것은 그녀의 노래가 한국인들의 취향이나 정서에 잘 맞기 때문입니다. 트롯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도 그녀의 노래를 듣고 트롯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히트시킨 <훨훨훨>, <용두산 엘레지>, <엄마의 노래>, <보릿고개>, <약속> 모두 전통적이고 오래된 한국적 정서를 강하게 담고 있는 곡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다섯 곡에는 한(오랜동안 간직한 안타까움과 비애), 정(관계에 대한 애착), 모정,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불교적 초월, 이별의 정한, 가족/공동체, 떠난 님을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과 같은 한국적 정서가 다분히 담겨 있습니다. 특히 <엄마의 노래>는 어려운 시절을 겪어온 장년층에게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강하게 상기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녀가 한국인의 오랜 정서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가수라는 것입니다. 유진양은 목소리 자체가 애절하여 애절한 노래에 적합한 것 같습니다. 이런 사실은 또한 그녀가 잠깐 인기 있다가 사라질 가수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랜 기간 사랑받는 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4] 위로와 치유
한편 유진양의 노래는 마음에 위로를 주고 마음을 치유합니다. 음악은 고통이 있어서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악과 위로(고통 때문에 필요한)와의 연관성은 큽니다. 그런데 먼저 짚어볼 것은 트롯은 발생 초창기부터 노래에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향기를 담고 그들을 위로하며 용기를 주어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해 왔다는 것입니다. 트롯이라는 장르 자체가 위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죠.
음악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감정을 닮아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죠. 나아가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노래는 이에 덧붙여 가사가 있기 때문에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고뇌, 안타까움, 공포, 사랑, 미움, 절망, 희망, 그리움, 외로움, 질투 등 구쳬적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유진양이 부른 노래에는 이런 위로를 주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한 예로서 <울지마라 세월아>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에서 "울지마라! 견뎌보자! 멈추지마라 사랑아!" 뜨거운 가슴으로 다시 살련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삶을 힘들게 하는 고통과 불운에 맞서 삶이 그래도 살만하다는 메시지이지요. 이런 메시지는 그녀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약속>에서는 "슬퍼하는 날엔 내가 서 있을게요"라는 가사가 우리에게 위안을 주지요. 그녀가 힐링콘서트에서 부른 <일어나>는 힘찬 리듬과 율동에 맞춰 '일어나' 가사를 외칠 때 우리는 절로 힘과 희망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노래는 중저음의 서정성과 고음의 열정으로 아름다움과 기운찬 시원함이 어우러지며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네요. 원곡자인 김광석과 미찬가지로 독보적인 음색과 거기에 실린 짙은 감정이 우리들을 감동시킵니다. 우리는 이런 식의 위로를 받으며 (기쁨없는 과도한 노동이나 활동으로) 지친 마음의 안식처를 찾게 됩니다.
이런 소박한 감정들을 가사를 통해 솔직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트롯의 큰 장점입니다. 게다가 트롯은 템포가 느려(특히 정통트롯은)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가사가 음미됨) 노래 구성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요. 그녀의 노래는 성실하고 정직하고 겸손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노래와 닮았을 때 진정성이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진정성이 강해 감사하는 마음,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회한, 애절한(애틋한) 사랑,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애달픈 감정, 사랑과 하루하루에 대한 믿음,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같은 감정(깊이가 있고 보편적이고 고귀한)을 고조시켜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여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희로애락(특히 슬픔)을 잘 담아내고 감정이입하는 능력이 뛰어나 호소력이 큽니다.
유진양이 부른 <쓰리랑>, <미운사내>, <어머나>는 그녀가 슬픈 노래에만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흥'이라는 유쾌한 정서에도 잘 맞는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그녀의 낭낭하고 유쾌한 목소리에 저절로 흥이 납니다. 또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흥겨운 리듬의 <소녀의 일기>와 <손님온다>는 그녀의 예능적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트롯을 듣는 사람 중에는 트롯이 감동적이라 듣는 사람보다 흥이 나고 유쾌해서 듣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흥'이라는 정서가 '한'이라는 정서에 못지 않게 우리 정서의 근간인 것이지요.
유진양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위로받고 치유되는 것은 그녀의 노래가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 불안감/긴장감/우울증/두려움/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해소시키기 때문입니다. 좀 서민적으로 말하면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낫게 해주기 때문이죠. 이런 해소는 애가의 경우에는 심미적 체험에 의한 정화작용(카타르시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엄격하게 얘기하면 완전한 해소(치료)보다는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완화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노래에 의한 치유의 효과는 신체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상태가 향상되는 것이죠. 심리적으로는 자아성찰을 통해 자긍심이 증진되고 정서수정이 일어나며, 신체생리적으로는 집중력과 지속력이 증진되고, 사회적으로는 사회교류와 의사소통을 강화시킵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마음은 평화롭고 온화하며 고요하고 조화롭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유진양의 목소리만 들어도 힐링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목소리가 시원하여 청량감이 있다고 합니다. 시원한 파도소리나 계곡물 소리,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가 우리를 힐링시킨다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그녀의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목소리는 우리를 더 힐링시키는 것이지요. 유진양이 처음으로 경연대회(포항해변가요제, KBS 트로트가 좋다)에서 부른 <용두산엘레지>를 들은 사람들은 "계곡 물소리 같이 맑고 시원하다, 쭉쭉 뻗어 내지르는 고음이 시원하다, 어린 나이지만 트롯 퀸의 자질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노래는 트롯 천재의 탄생을 알리는 곡이 되었지요.
한편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인 인간의 소외현상, 기술문명에 의한 인간 이성의 도구화, 자아상실감 극복을 위해서 음악에 의한 치유가 필요합니다. 또한 기술문명과 도시생활 속에서 점점 인간성이 고갈되고 감성이 녹슬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치유하는 음악은 시와 자연과 더불어 현대사회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있습니다.
노래에 의한 치유와 관련해서 유진양 자신도 "바르고 착한 어른으로 커서 마음을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는 글을 팬들에게 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한 공연에서는 "노래로 제가 위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나도 노래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한 인터뷰에서는 "사회와 심리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었죠.
[5] 정신의 고양과 변화
하나 더 첨부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유진양의 노래가 사람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꽃을 가까이 하면 꽃과 같은 인생(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죠. 아름다움이 사람의 정신에 주는 영향을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착하게 하는 마력(매력)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글도 있더군요. 그녀의 노래는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어 아름다움과 감동을 통해 우리 마음 속의 선을 찾게 하고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킵니다.
그녀의 노래는 고결한 감정을 잘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소중한 가치를 알리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엄마의 노래>에서의 모성애, <약속>에서의 사랑, <훨훨훨>에서의 초월이 그것입니다. 예를 든 세 노래는 우리 삶의 근원적인 실존을 노래하므로 진지하고 간절합니다. 특히 <엄마의 노래>는 누구나 하나씩 가슴에 묻고 사는 가슴 아린 슬픈 별을 절실하게 노래합니다. 이 세 노래의 화두는 소중한 사람과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과 사랑은 고난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또하나의 화두는 세상의 고통입니다. 고통은 삶에 간절함을 주며 그리움을 더 사무치게 하고 사랑의 기쁨을 더욱 더 열망하게 합니다. 이 세 노래의 중심에는 고통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이 함께 있어 우리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하고 우리를 보다 큰 공감으로 이끎니다.
의문스러운 점은 왜 유독 유진양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노래에 의한 큰 감동은 청중의 정서, 음악적 아름다움, 스토리텔링(가사)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모성애, 사랑, 세상으로부터의 초월에 대한 스토리텔링만으로는 큰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죠. 이중에 음악적 아름다움은 가수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이 노래들은 그녀에 의해 음악적 아름다움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기 때문에 큰 감동을 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또한 이 세 노래에서 지극한 모성애, 애절한 사랑, 세상에 대한 초월이라는 거대한(지고한) 가치에 대해 경외감을 갖게 되고 숭고함까지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경외감과 숭고함은 우리 자아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우리의 이기심의 힘을 잠재우며, 부정의 감정을 긍정적이고 기쁨의 감정으로 변환시킵니다. 정신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과 이기심을 버리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은 고양되고 변화되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서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거창하게 얘기하면 세상의 아름다움에 우리의 영혼을 빠져들게 하여 영혼을 변화시켜 구원하는 것입니다(아마도 그 결과가 행복과 가치있는 삶인 듯 하네요). 큰 전제는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을 살아 있게(생동하게 또는 얼어붙거나 죽은 마음을 재생되게) 만든다는 것이죠. 심미적 체험 속에서 우리는 생동하는 마음을 얻게 되고 영감을 얻으며 결국엔 기쁨(쾌감)을 향유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아름다움을 통한 기쁨(즐거움)을 희망할 수 있는 것이죠.
음악은 인간의 보다 고상한 욕구, 즉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채워 줍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LP판을 틀자 확성기를 통해 감옥 안으로 <피가로의 결혼>의 <편지 이중창> 노래가 울려퍼지는 장면은 인간 마음 속에 누구나 갖고 있으나 잠들었던 본연의 감성을 다시 일깨우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이 곡이 흘러나오자 죄수들의 표정이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이 변화합니다. 유진양의 노래는 우리의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우리를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채워주는 힘이 있습니다. 한 유튜브 동영상에는 90세 노모가 유진양의 노래를 듣고 생기를 찾았다는 감동적인 사연이 있더군요. 유진양의 팬 중에는 나이가 50 또는 60이 넘어 그녀의 노래에 빠져 난생처음 팬카페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나날이 행복하다는 글도 팬카페에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삶에 대해 기대도 하지 않고 꿈도 없던 장년층이 꿈꿀 권리를 찾아 꿈을 꾸게 된 것이죠. 그만큼 그녀의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녀의 노래에서 세상이라는 진흙탕 속에 빠져있던 자신의 영혼이 정화되며 원래의 맑은 본성을 찾는다는 느낌(쾌감)을 받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진흙 속에서 피어오른 연꽃과 같아 좋습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연꽃을 순수와 부활의 신성한 꽃으로 보았지요. 세상의 장미 중 가장 아름다운 장미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사막에서 홀로 피어난 장미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노래의 아름다움은 선물로 받은 인형과 같은 그냥 주어지는 값싼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고통과 맞서 싸워야만(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견뎌내고 승화시키는 작고 슬픈 존재로서) 얻을 수 있는 지고한 아름다움입니다.
[6] 지속성과 예술성(1)
또한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유진양의 노래에서 발견됩니다. 유진양의 노래는 지속성이 있어 오랜 기간 반복해서 들어도 다시 듣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한 번 빠지고 나서 그녀가 부른 모든 곡을 찾게 되었다는 경험담이 많습니다. 그녀의 <훨훨훨>과 <엄마의 노래>의 동영상 댓글에는 - 노래에 빠져 수백번 들어도 또 듣게 된다, 노래를 들은지 몇 시간 안 됐는데 다시 그리워진다, 봄여름가을겨울 내내 다시 듣게 된다(훨훨훨) - 는 식의 내용이 많습니다. 유진양도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마력의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유진양의 노래는 오랫동안 들어도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이 신선하고 동일한 감동을 주거나 어떤 때는 더 강한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느낌이나 맛이 납니다. 매우 유명한 미술작품, 클래식 음악이나 유적을 감상할 때나 경험하게 되는 특이한 현상이지요. 그녀의 노래는 유효기간이 없고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도 적용되지 않는 것 같군요. 유진양의 노래가 지속성이 있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아름다움과 시원한 가창력, 완벽한 감정 표현 때문일 것입니다. 음색과 감정의 변화는 노래에 다채로움과 화려함을 주고 노래를 역동적이게 하는데 이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또하나는 노래를 고급화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트롯은 1970년대 이후 그 통속성, 신파적 비애감, 진부함, 유치함, 고리타분함, 촌스러움, 천박함, 단순성 등으로 젊은 세대들이 기피했던 장르입니다. 그런 것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젊은 층을 트롯으로 끌어들였던 것이 세미트롯이었죠. 유진양의 노래는 기존의 트롯의 이런 부정적인 면과는 거리가 멂니다. 한마디로 트롯의 감성을 서정적으로 고급화한 것이 그녀의 공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그녀의 어떤 노래는 서정성이 뛰어난 발라드나 가곡을 닮았습니다.
<낭주골처녀>와 같이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올드하게 들릴 수도 있는 노래도 그녀가 부르니 서정적이고 참신하게 들리네요. 여기서의 그녀의 목소리는 전통적으로 묘사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목소리군요. 낭랑하고 청아하고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꾀꼬리 같이 고운 목소리 말입니다. 쥐어짜는 목소리와 가성과 탁음이 전혀 없어 듣기 매우 편합니다. 그녀의 마력은 이 소박한 노래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깊은 계곡에 은밀하게 핀 수선화 같은 노래로 만듭니다.
여기서 좀더 부언하자면 좋은 노래란 관념이 상업적 목적으로 조작된다는 것입니다. 상업적 권력들은 '좋은 노래란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왜곡된 관념을 만들기 시작하죠. 평균적인 일반인들은 방관자적 입장이므로 좋은 노래라는 정의를 스스로 내리기 어려워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전문가들이 내린 정의에 따라가게 되니까요. 대표적인 것이 목소리를 쥐어짜며 고음을 지르는 것을 좋은 노래라고 정의하는 것이죠. 이런 노래는 사람의 얼을 빼놓는 것 외에는 감동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사람을 고양시키지도 특히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극을 위주로 한 노래는 감성을 활성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마비시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왜곡된 정의를 미리 내린 후 노래를 들으니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됩니다. 노래도 아는 만큼 들리는 것이니까요. 또한 고정관념은 새로운 음악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좋은 예로서 1990년대 초 대중음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서태지와아이들의 사례가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들에 대해 퍼포먼스가 과도하게 많으니 노래에 좀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엉뚱한 평가를 하였었죠.
그래서 유진양의 <엄마의 노래>나 <약속>, <서울가 살자>를 들으면서 앞으로 트롯에서 새로운 장르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듭니다(이를테면 시적 트롯 또는 서정 트롯). 트롯의 평가 기준도 기존의 인위적인(인공 조미료 같은, 소리를 극적으로 쥐어짜내는) 기교 위주에서 감동, 서정성, 감성, 심미성 위주로 바뀌어야 겠네요. 원숙한 기교를 써도 감동적이거나 아름답지 않고 지속성이 없다면 그런 기교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유진양의 기교를 폄하하는 글을 읽으면 인간 지식의 허망함을 느낄 뿐이지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인간 능력의 위력과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천재란 가치있는 것을 위대하게 하는 능력이니까요.
[7] 지속성과 예술성(2)
유진양은 장르에 대한 폭이 넓습니다. 정통트롯, 세미트롯, 민요풍트롯, 발라드트롯 등 주요 장르를 섭렵해 나가고 있는 능력자입니다. 그래도 그녀의 장기는 역시 정통트롯이지요. 트롯의 고급화에 있어서는 장르보다는 개인의 역량의 역할이 더 큰 것 같습니다. 흥행만을 목표로 상업영화를 찍던 영화감독이 어느 날 변심하여 예술영화를 만든다고 예술적인 영화가 나오지는 않는 법이지요. 상당한 예술적인 역량이 있어야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보면 트롯계의 앞으로의 과제는 역량을 갗춘 가수의 발굴과 유입인 것 같습니다.
트롯을 기피했던 사람들도 유진양의 노래는 듣게 되는 이유는 그녀의 노래가 기존의 트롯이라는 장르에 갇히지 않는 정말로 환상적이고 멋진 음악이기 때문이죠. 예전에 트롯을 기피했던 세대가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거나 젊은 트롯 가수가 많아져(뉴트로(재해석된 트롯)의 등장) 트롯을 듣는 연령층이 낮아졌는데 유진양의 노래를 가장 많이 선호하는 연령층도 50대입니다.
이제 유진양의 노래의 지속성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겠네요. 순수음악이 대중음악에 대해 갖는 우위는 지속성입니다. 순수음악은 오랜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듣게 되거나 불리지만 대중음악은 그렇지 못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대중음악의 순수음악과 대비되는 단점은 단순성과 표준화, 그리고 체제 순응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은 단순하지만 친근한 선율 조각으로 감상자를 사로잡아 음악을 소비하게 합니다. 또한 표준화된 관습 속에서 음악가의 개성은 최소화됩니다. 대중음악은 욕망(소비욕구)을 불러일으켜 사회비판의식을 무력화시켜 사회에 순응하게 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의미관계로 보기보다 자극으로 파악합니다. 또한 공허함(사회성을 배제시켰기 때문에), 진지하지 않음(하찮음), 외부에서 주어진 허위 욕구, 현실로부터의 도피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됩니다.
게다가 위대한 클래식 음악은 인간의 본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음악은 인간의 표피적인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반적으로 생명력이 짧은 것 같습니다. 클래식은 원래 어려운 규칙으로 된 긴 곡으로 듣는 사람들의 집중력과 배경지식을 필요로 했습니다. 거기에다 듣는 청중이 귀족이나 상류계층이었기 때문에 높은 예술적 수준을 요구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명곡의 경우에는 처음엔 어렵지만 한번 이해하게 되면 싫증이 나지 않고 몇 번이고 계속 듣게 됩니다.
하지만 대중음악은 짧고 이해하기가 쉬워 많은 대중들이 즐길 수 있었고, 새로운 것이 거의 나오지 않아 음악적 진화가 멈추어버린 듯한 순수음악과는 달리 새로운 음악과 장르를 창출했습니다. 흔히 20세기는 대중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때 시대상을 반영한 만인과 소통할 수 있는 짧고 가사가 있는 대중가요가 나와 수많은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게 됩니다. 이런 가요는 순수음악과 달리 음악에 인간사를 담게 되고 추상성이 아닌 구체성을 띠게 됩니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지속적이지 못하여 일종의 상품으로서 일시적으로 소비되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소비의 시대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대중가요를 잠깐 동안 유행하다가 사라진다고 하여 유행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음악은 사실 모두 상업성과 오락성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예술성과 심미성을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클래식 음악과 같이 오랜 기간 사랑받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트롯 중에서 그런 예를 들자면 <목포의 눈물>이나 <동백아가씨>가 있죠. 노래 가사만 보면 <봄날은 간다>는 대중가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사로 뽑히고 있습니다. 지속성의 조건은 예술성과 심미성인 것이죠.
그런데 클래식이라는 말에는 고전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일류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즉 모든 장르의 최고의 노래들은 살아남아 지속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익숙한 서양의 클래식 음악도 사실은 20세기 초까지의 우수한 작곡가의 작품만을 말합니다. 유진양의 노래는 최고의 트롯곡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진양의 노래들은 그 예술성과 심미성 뿐만 아니라 최고의 트롯 명곡이라는 의미에서도 우리 트롯사의 고전적인 명곡으로 남을 가능성이 충분히 보입니다.
[8] 천상의 목소리(1)
이런 유진양의 능력의 원천은 우선적으로 목소리가 가진 모든 음역대를 아우르는 아름답고 다양한 음색, 깊이있는 목소리, 폭발적인 성량, 완벽한 가창력(발성, 바이브레이션, 꺾기, 소리의 강약조절 등), 그리고 깊고 풍부한 감성과 감정 표현, 명확한 가사전달(발음)일 것입니다. 그녀 음색의 아름다움은 너무 강렬해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그 음색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게 됩니다. 그녀 음색의 향기를 한번 맡으면 그 음색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네요. 어떤 팬은 유진양의 노래에 빠진 것을 개미지옥에 들어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표현을 하더군요. 유진양 자신도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음색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음색(음의 파형)은 음의 성분 차이에서 생기는 감각적 특색입니다. 음색은 진동체(발음체)의 특성과 진동방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가수마다 다 다르죠. 목소리는 단순한 주파수를 가진 순음 외에 여러가지 주파수의 음이 같이 존재합니다. 음색은 이러한 여러 부분음의 배합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녀의 음색이 아름다운 결정적인 이유는 상음(기본음인 순음에 섞여 들리는 진동수가 순음의 정수배인 음)이 많기 때문인 것 같네요. 유진양의 목소리는 상음 폭이 넓어 두텁게 울리며 선명하고 부드럽게 들립니다. 또한 목소리에 소음이 적고 상음이 많아 맑고 유쾌하게 들리죠.
유진양은 중저음대의 아름다운 음색은 다른 가수들이 가지지 못하는 타고난 것이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고 합니다. 특히 트롯은 다른 장르보다 중저음대가 많으니 유진양의 이런 장점은 더욱 부각되겠네요. 현악기의 경우 고음은 바이올린, 중저음은 비올라, 저음은 첼로가 매력적인데, 유진양은 이 세 악기의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인지 그녀의 노래는 이 세 악기의 매력인 고음에서의 정열, 중저음에서의 차분함, 저음에서의 서정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한 작곡가는 유진양 목소리의 백미는 중저음에서 고음으로 갈 때의 음의 변화와 가성으로 처리하지 않고 맑은 음색으로 내는 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변화되거나 다양한 음색은 단일한 색깔보다 알록달록한 색이 더 아름다운 것과 같이 단일한 소리보다 아름답습니다. 거기에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선적이거나 가늘거나 여리지 않고 두텁고 풍부합니다.
<엄마의 노래>는 이런 그녀의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노래는 처음 부분에서 중저음대의 묵직한 아름다운 음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음색이 변화하고, 고음에서는 가성이 아닌 맑은 이름다운 음색이 나옵니다. 최고음 부분(어떻게 말로 다 할까요)에서는 다시 바이브레이션을 하며 전율케하는 미성을 분출합니다. 그리고 노래 <약속>에서 그녀는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음색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예측을 벗어나는 상황이었지만 반짝인다고 모두 금(보석)이 아니며 진정한 보석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여실히 보여주었지요.
물론 노래에 선천적인 음색이 전부라고는 당연히 말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한 다양한 요소들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유진양도 자신의 노래와 관련해서 "흠 없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었지요. 우선 그녀는 고음을 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녀가 내는 아름다운 고음은 누가 들어도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녀가 첫 무대에서 부른 <용두산 엘레지>, <정말 좋았네>, <훨훨훨>에서의 시원하게 내지르는 고음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지요. 특히 <용두산 엘레지>의 초반에서 내지르는 시원한 고음은 그녀가 보여준 최고의 음색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또한 깊은 감성으로 가사를 해석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탁월합니다. 한 예로서 <약속>에서 그녀는 나름대로의 곡 해석을 통해 그 곡의 핵심인 진정성을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배경음(반주)과 가사(상황과 심정을 담고 있는)와 완벽하게 혼연일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세밀한 감정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과장되거나 불필요한 기교를 사용하지 않아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자연스럽고 절제된 감정 표현은 호소력을 증폭시키고 고품격의 트롯을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중론이지요. 한 예로서 그녀가 부른 <초혼>에 대해 사람들은 - 호소력과 감성이 15세 소녀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기교없이 부르는 순수 자체이다. 목소리가 고급지고 기품이 있다 - 라는 평가를 하였습니다. 그렇지요. 이 노래에는 애절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도높은 우아함과 순수함 그리고 기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를 명품 보이스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한편 유진양의 노래하는 목소리는 음간과 음역대간의 연결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워 안정감이 있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거나 고음을 발사하거나 소리를 쥐어짜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연스럽고 담백하며 편안합니다. 그녀는 호흡으로 소리를 입 밖으로 밀어내니까 목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거기에다 그녀는 호흡소리가 거의 안들리게 발성을 하므로 가사가 명확하게 들립니다.
[9] 천상의 목소리(2)
한편 유진양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울림통을 가지고 있어 다른 가수와 차별화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런 평가는 MBC 편애중계 방송 당시 한 심사워원이 말하여 널리 회자되었지요. 이와 관련해서 반복하여 들어도 계속 듣고 싶은 그녀 목소리의 비밀은 그녀만이 갖고 있는 에밀레범종같이 울리는 공명음 때문이라는 글이 있더군요. 묵직하고 은은하며 아련하고 청명/청아하고 부드러운 것이 공명하며 울리는 에밀레종 소리와 유사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유진양의 노래는 자극적이지 않고 거부감이 없어 반복해서 계속 듣게 된다는 겁니다. 무척 공감이 가는 설명입니다. 공명이 되면 소리가 듣기 싫게 들리지 않고 성량이 크게 들립니다. 선명한 공명이 이루어지려면 성대가 닫혀 숨이 새지 않아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두껍다, 풍부하다는 것은 소리가 더 넓은 공간(비강부터 기도까지)에서 공명되기 때문입니다.
유진양의 노래가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주고 긴 여운을 남기는 것도 범종 소리가 우리 마음 속에 깊은 울림과 긴 여운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녀가 경연 프로그램 중에 부른 <울엄마>, <자갈치 아지매>를 들으면 범종소리 같이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 마음도 울리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한 기자(C신문사)는 "전유진의 성악적 발성법에서 거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이 10대 여자 아이는 뱃속에서 소리를 끌어올려 미간에서 뿜어 내면서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 파바로티 같은 전형적 성악가의 발성을 들려줬다"고 평했습니다. 맞습니다. <약속>에서 우리는 그녀의 그런 성악적 발성법(벨칸토 창법)을 보았지요. 그것은 기존의 트롯 창법이라는 틀과는 다른 파격이었습니다. 벨칸토 창법은 '아름답게 노래하는 가창법'이란 의미로, 목소리를 악기 다루듯이 하는 정교하고 화려한 기교,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 음과 음 사이의 매끄러운 연결, 가사에 상응하는 감정 표현이 특징이죠. 대중음악은 오페라와 같은 클래식 음악과 달리 마이크를 사용하며 공명과 배음을 극대화시킬 필요가 많지 않아 이런 성악적 발성법은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편 그녀는 목소리에 희로애락이 선천적으로 스며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이끌리고 반응하게 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영화로 치면 그녀는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얼굴 표정이 섬세하고 풍부하여 사람들의 반응을 잘 이끌어내는 명배우인 것이지요. 예전엔 밋밋하게 들리던 노래들이 그녀가 부르면 색깔있는 옷이 입혀진 듯하고 생기가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요. 또한 그녀의 노래가 한편의 드라마 같다는 평가가 있는데, 이는 목소리에 담긴 희로애락이 뚜렸하고 거기에 노래의 감동이 얹어져 극적인 것이 연출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유진양의 노래에 실린 감성은 하나의 미스터리입니다. 그녀의 노래의 감성에 대해 세간에서는 '감성 트롯', '감성 보컬'. '감수성 장인', '까마득한 심해를 걷는 듯한 감수성과 풍성한 감성(C신문사)', '애절한 감성', '이 나이에서 나올 수 없는 짙은 감성(N신문사)' 등의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단순히 목소리의 아름다움과 기교를 넘어서 개성있고 짙은 감성을 전달하고 있고, 그래서 그녀의 노래가 호소력을 갖고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그런데 그녀의 나이나 상황으로 보아 경험하지 않았을 것 같은 감정을 그렇게 절절하게 표현하니 하나의 미스터리인 것이죠. <엄마의 노래>에서 그녀가 전달하는 엄마를 향한 애절한 감정은 노래에 있어서의 감성도 타고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음색과 감성은 타고나는 것이라 훈련에 의해 크게 개선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기교는 훈련함에 따라 크게 개선되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음색과 아울러 감성까지 타고난 노래 천재입니다. 그녀의 감성이 독보적인 것은 감성이 풍부하고 짙은 것을 뛰어 넘어 우아하고 세련되며 깊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엄마의 노래>는 그녀의 독보적인 음색과 감성이 빚어낸 찬란한 보석과 같은 명곡입니다.
[10] 영혼
최근 그녀는 과거 주목받지 못했던 노래들을 부상시키는 이른바 역주행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리메이킹의 귀재란 수식어가 따라 다녔고 그녀가 부른 노래는 모두 명품이 된다고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그녀가 기존의 노래에 새로운 목소리와 새로운 감성,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서 가능했던 것이지요. 평범하게 들리던 노래도 그녀가 부르면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변하며 동시에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됩니다. 그녀 목소리의 마력과 잠재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 외에 무엇인가가 더 있는 것 같네요. 아마 우리의 마음이나 정서, 영혼과 관계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진정함(진실됨, 간절함, 성실함), 선함, 순수함(순진무구함, 천진함), 따뜻함, 밝음, 해맑음, 단아함(우아함), 고귀함, 싱그러움, 겸손함, 소박함이 그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그녀의 노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순수함을 말합니다. 그녀가 발산하는 이런 속성의 에너지들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그녀와 그녀의 노래에서 이러한 인간적인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매혹되어 그녀 노래에 대한 깊은 감동이 더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요?
좀 비유적인 표현을 하자면 그녀의 목소리는 영혼이 비쳐보이는 목소리인 것이지요. 놀랍게도 그녀의 목소리는 단지 물리적인 음향과 언어(가사)의 혼합이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녀 노래의 아름다움이 그녀 영혼의 아름다움과 겹쳐져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데는 이처럼 인간적인 영혼이 관여할 수도 있는 것일까요? 이 뮬음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은 기악곡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악곡에서는 사람의 성격이나 이미지를 악기의 종류와 음색, 음의 높낮이로 흔히 표현합니다. 일종의 악기인 목소리도 사람의 성격(영혼)이 나타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한 교수는 송** 신드롬은 가창력에 인간적인 진실됨, 선함, 아름다움 3가지가 어우러져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진선미 이 세가지와 순수함에 의해 크게 움직이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에서인지 송**양은 자신의 곡이 많지 않음에도 국민가수 대우를 받은 최초의 가수인 것 같습니다. 유진양의 앞에서 얘기한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은 앞으로 대중적 신드롬(선호하는 현상이 전염병 처럼 빠르게 확산됨)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녀에 대한 이러한 신드롬이 이미 감지되고 있습니다.
유진양은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제목 같이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대중들의 그녀에 대한 생각은 상상 속의 그녀이고 그 이상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녀는 우리들의 찬연했던 시절(초원의 빛/꽃의 영광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일 수도 있겠지요.
그녀는 실생활에서는 사람들과 말도 잘하고 장난기도 있는 발랄한 학생인 것 같네요. <벌써12시> 커버 댄스를 추고 김연자 선생님을 흉내내고 학교가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 안하고 친구들과 과자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민요를 하고 중학교에서는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었고 지금은 기타 동아리에 들어 활동하고 있죠. 그리고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짓기 대회 입상 경력도 있으니 취미와 재능이 다양한 듯 합니다. 그녀의 선한 인성은 많은 사례가 말해준다는데 그런 비범한 인성도 타고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녀 인성의 비범함은 보통 사람이 당연히 가지는 부정적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행동을 해 왔지요.
[11] 신화
송**양은 진도 농촌 츨신의 무명가수였고 유진양은 포항 어촌 출신의 트롯 꿈나무이니 출신도 비슷하네요. 대중들이 열광하는 성공 신화의 요소를 갖추었군요. 한류 드라마인 <대장금>, <동이>, <이산>에서의 여성 주인공들의 성공 스토리가 우리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을 보면 한국인들에게 여성의 성공 신화는 매력적인 주제인 것 같습니다. 유진양의 이야기는 조그만 시골에서 평범했던 한 소녀가 어느날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게 되는 감동적인 성공신화이지요.
유진양은 자신은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춤도 뛰어나지 않았는데 트롯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했지요. 그녀는 노래를 따로 배운 적이 없이 유튜브로 트롯곡을 따라 부르며 노래를 연습했습니다. 그러던 중 포항에서 열린 가요제에 참여하여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녀는 트롯을 하게 된 이유는 "꺾을 때 희열을 느껴서"라고 했고, 트롯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미스트롯을 보고 정통트롯의 매력에 빠져서" 좋아하게 되었고, 트롯의 매력은 "노래가사가 슬프고 한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유진양의 대중적인 인기는 유튜브 동명상 조회수, 팬클럽 회원수(2021년 5월 기준 약 2만7000명 : 6개 카페/밴드만), 미스트롯2에서 5주 연속 대국민 투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유진양의 팬카페 회원수는 여성 트롯 가수로는 송**양, 강**양(아이돌에서 트로트로 전향)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팬덤이 강한 것으로는 송**양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유진양은 자신의 성공에 대해 "저는 운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잘 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어린 나이에 찾을 수 있어서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에 덧붙여서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했습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이런 여성 성공 신화는 지식. 권력, 이성, 그리고 욕망으로 대표되는 남성 지배 세상의 부적절성, 비인간성, 일방성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 중심의 세상은 억압, 경쟁, 무심함, 메마름의 폐해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남성성은 사랑, 돌봄, 배려, 공감, 연민, 감성, 부드러움, 여유로움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으로 구원받는 것이지요. 파우스트가 청순한 소녀 그레트헨에 의해 구원받는 이야기도 남성성의 여성성에 의한 구원이지요. 끝없는 경쟁으로 내모는 비정(무정)하고 거친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여성성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특수한 경우지만 조건없이 사랑하고 진실로 믿어주고 진심으로 돌봐주는 헌신적인 모성애적인 여성성을 갈망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유진양과 유진양의 노래에서 이러한 갈구하는 여성성을 발견하고 열광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그중에 특히 유진양이 부른 <엄마의 노래>, <보릿고개>, <울엄마>, <자갈치 아지매>는 모성애적 여성성을 갈망하는 노래 아닐까요? 이 네 노래는 어머니가 등장하며, 앞의 세 노래는 헌신적인 모성애를 극적으로 묘사했지요. 이 노래들에서는 '까맣게 타버린 눈물'(엄마의 노래), '통곡소리'(보릿고개), '응어리 가슴'(울엄마)과 같은 극적인 묘사도 나옵니다. 남녀간의 사랑과 같은 대중가요의 보편적인 주제가 아닌 이 노래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끈 것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서나 상황과도 맞았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장년층이나 노년층에만 한정된 정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대중들의 인기가수(비범한 인물)에 대한 열광도 여성성 또는 남성성과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그것은 성적인 매력이나 호기심을 넘어선 우리 내면의 영웅이나 초인에 대한 희구이자 갈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진양의 경우는 이런 영웅 같은 인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군요. 오히려 그 재능이 너무 뛰어나 아끼고 보호해 주어야 할 어린 소녀로 느껴지네요.
유진양의 성공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계의 영웅신화에서 영웅들은 동일한 여정을 거치는데 태어남-부름-모험-역경(시련)-귀환의 단계가 그것이라 합니다. 영웅은 우선 세상의 부름을 받고 세상으로 나아가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시련 다음에 반드시 귀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제다이의 귀환> 편이 있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는 <왕의 귀환> 편이 있습니다. 영웅은 귀환하여 타고난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시련을 극복합니다. 영웅신화에 시련이란 단계가 있는 것은 세상을 체험하고 이를 다시 있는 그대로 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실체는 먹고 먹히는 냉엄한 관계이지요. 그러나 영웅의 삶은 시련과 이에 대한 극복이 있어 보다 충만하게 됩니다. 즉 그 과정에서 온전하게 현재에 살아있다는 느낌, 충만한 존재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하고 창조적이게 하는 법이죠. 영웅은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비로서 영웅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웅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면서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시련과 그 극복이 있어 보다 강하고 충만하게 되고 그 극복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감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진양은 현재 학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경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래 음악 활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팬들에게 전했습니다. "더 강해지고 실력도 많이 늘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기다려 주세요."
[12] 정통트롯의 후계자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유진양의 노래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우며 지속적이며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지속성이 있으며 우리를 변화시키면 그 음악은 예술이라 불립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진양은 트롯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불세출의 트롯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유진양에게 찬사를 하나 보내고 싶네요. 트롯이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유진양과 같은 가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하고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떠 오르네요. 유진양은 최근 그녀가 트롯뿐만 아니라 발라드와 같은 타장르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발라드 곡인 <서울가 살자>가 거기에 해당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녀를 그냥 음악 천재라고 해야 되겠네요. 그녀의 이 노래는 트롯에서의 새로운 목소리와 새로운 감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다른 가수와 차별화되는(기존 트롯곡들과 다른) 유진양만의 목소리와 창법을 대중들에서 보여주었지요. 이 노래에서의 그녀의 목소리는 기존의 트롯곡에서 흔히 듣던 것이 아니라 유니크하고 미묘한(아름답고 묘한) 목소리였습니다. 대중들의 찬사가 이어지면서 이 노래는 공개된지 4개월10일만에(2021년 5월초) 유튜브 조회수 1,100만을 돌파합니다(4개 동영상만). 매스컴에서는 들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전유진표 명곡'이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한편 그녀가 부른 <약속>은 트롯과 발라드의 경계에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 노래를 통해 트롯-발라드-가곡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창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뉴트로(재해석된 트롯)이고 트롯이라는 틀을 확장시킬 수 있는 엄청난 음악적 기량을 보인 것이죠. 그래서 <약속>의 무대는 유진양의 기품있는 아우라와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며 노래하는 모습만으로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네요. 그런데 그녀의 카리스마는 강인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천사적인 카리스마입니다.
대중들은 지금 무엇보다도 새로운 목소리(기교가 아닌)와 새로운 감성, 그리고 새로운 해석을 원하고 있습니다. <서울가 살자>와 <약속>은 성인가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노래였습니다. 진부하거나 상투적인 것을 거부하는 새로운 해석이었지요. 그래서/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그 두 곡의 가치를 인지하였지요. 그 곡들은 그녀가 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지를 입증하였습니다.
유진양의 주요 영역은 아무래도 정통트롯입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제 유진양을 '정통트롯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의 정통트롯은 전유진이라는 큰 봉우리가 나타나 명맥을 유지하고 새롭게 변모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변모를 여러 노래를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정통트롯이 진일보했다는 뜻이 아니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트롯이 생겨났다는 뜻입니다. 후계자란 이전 세대를 그대로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 계속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입니다. 새롭게 변모하지 않으면 생명은 유지되지 못하니까요. 새 포도주(새로운 시대의 감성)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트롯은 1930년경 창작되기 시작하여 1960년대까지 전성시대를 누리다가 1970년대 이후 하강 국면에 들어서게 되고 1990년대에는 극한 침체기를 격게 됩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중반 흥겨운 리듬의 세미트롯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게 되죠. 최근 트롯이 다시 부활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트롯은 새벽은 있었지만 황혼은 있을 것 같지 않네요. 트롯은 잠시 사그라질지라도 다시 부활하여 면면히 이어질 것 같습니다. 유진양은 이런 트롯의 부활 시기에 발굴된 트롯 신동으로 차세대 트롯의 향방을 결정지을 정통트롯의 후계자라 여겨집니다.
[13] 가수들
유진양은 자신의 롤모델은 조미미 선생님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조미미 선생님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트롯 전성 시대를 이끌었던 가수이고, 바다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많이 불렀었습니다. 유진양은 "조미미 선생님의 노래는 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노래를 박자를 자유롭게 타면서 해서 너무 부럽고 닮고 싶다. 조미미 선생님처럼 마력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였지요. 유진양은 조미미 선생님의 <먼데서 오신 손님>, <연락선>, <그리움은 가슴마다>를 불렀는데 낭낭하고 짜랑짜랑하며 경쾌한 목소리가 서로 비슷해서 그런지 이 노래들을 훌륭하게 잘 불렀습니다.
유진양은 MBC 편애중계 인터뷰에서는 김용임, 주현미, 송** 세 가수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가창력이랑 지르는 게 너무 세 분 다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죠. 그녀는 경연대회에서 주현미 선생님 원곡인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불렀었는데, 이때 "유진양의 목소리가 주현미씨보다 더 촉촉하다"는 펑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송**양에 대해서도 "송** 가수님처럼 트롯 가수이지만 다른 노래도 잘 부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송**양은 정통트롯뿐만 아니라 국악, 세미트롯, 발라드, 락, 팝송까지 망라하여 커버 수준이 아닌 수준급 무대를 보여주었죠. 유진양은 이 세 가수와 금잔디, 장윤정, 유지나, 김추자 선생님(님은 먼 곳에), 김연자 선생님(정든 님), 이혜리(자갈치 아지매)의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트롯계의 전설인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도 불렀습니다. 유진양이 부른 이미자 선생님이 원곡자인 <섬마을 선생님>, <낭주골 처녀>, <울어라 열풍아>, <동백아가씨>는 그녀가 정통트롯의 후계자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였습니다.
유진양은 남자 가수로서는 진성의 <보릿고개>, <가지마>, <울엄마>을 불렀습니다. 1960년대 후반 트롯 전성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배호의 <누가 울어>, 이성우의 <진또배기>, 진해성의 <사랑반 눈물반>, 강진의 <막걸리 한잔>도 불렀었죠. 그녀는 박효신이 롤모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박효신은 대중들에게는 <눈의 꽃>으로 널리 알려진 최정상급 보컬리스트이지요. 그는 따라하기 힘든 특유의 보컬과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김광석의 노래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일어나>를 불렀었죠. 김광석은 독보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고 사랑과 인생을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수입니다. 이것과 노래의 진정성과 자기만의 방식으로의 해석이란 점까지 유진양과 공통점이 많네요. 김광석도 유진양과 동일하게 목소리 자체가 애절하여 애절한 노래를 잘 부르는군요. 김광석이 유명한 이유를 네이버 지식인에 물었더니 "이 사람 노래가 내 마음을 읽습니다"라고 한 답변이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유진양의 노래는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군요. 그녀가 부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원곡에 비해 슬픈 감정보다 감미롭고 밝은 감정을 느끼게 하네요. 정식으로 부른 노래는 아니지만 부드럽고 서정적인 감성과 음색의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사실 유진양은 트롯이라는 장르에 갇힐 필요는 없습니다. 임**과 송**양은 트롯 외의 다양한 장르의 곡을 모두 잘 불러 광범위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유진양은 우선 발라드를 잘 부르는 것 같네요. <서울가 살자>가 좋은 예이지만 그녀가 커버한 아이유의 <밤편지>도 그녀만의 매력적인 음색과 감성을 잘 보여주는 발라드 곡이었습니다. 그녀가 부른 이 노래는 감미롭고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것이 원곡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네요. 아이유는 지난 10여년간 최고의 솔로가수 자리를 지켜왔고, 다양한 가요들을 리메이크하여 전세대로부터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유가 유진양의 롤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이유는 청아하며 청초한 음색으로 가슴에 스며드는 감성 보컬이고 곡 해석력과 노래의 느낌을 살리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면에서 유진양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고음과 중저음이 모두 매력적인 것도 같군요.
아이유는 다른 장르와 세대를 넘나드는 아티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죠. 유진양도 작곡과 작사를 공부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밤편지>는 곡, 가사, 가수 세 가지가 완벽한 명작입니다. 아이유와 유진양의 노래는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고 계속 듣게 되는 명곡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가수의 노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그리울 때나, 행복할 때나, 괴로울 때나 항상 듣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부른 <밤편지>는 모두 동화같은 꿈과 설레임 속에 삶의 환희가 살포시 펼쳐지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14] 국민가수
세계적인 국민가수들은 다 색깔이 다릅니다. 에디트 피아프가 가슴을 찢는 오열이라면 등려군은 따스한 위로라는 글이 있더군요. 유진양이 독일의 국민가수 헬렌 피셔와 같은 가수가 되기를 꿈꾼다는 어떤 글에는 헬렌 피셔는 "땅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샘물, ~ 생명력이 넘쳐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나나 무스쿠리는 청순하고 이지적 기품을 가진 가수라는 평가가 와 닿습니다. 일본의 우타다 히카루는 작곡, 작사, 편곡을 직접하는 싱어송라이터인데 매력적인 보이스로도 유명하지요.
음색을 말하자면, 에디트는 애절하면서 힘이 있고 절규하는 호소력 높은 목소리이고, 등려군은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미성에 감미롭고 간드러진다는 글이 있네요. 헬렌은 맑고 힘있는 고음의 소프라노 음색이고, 나나는 감미롭고 부드럽고 청아하고 잔잔하고(자서전에 "향기 있는 목소리이다"라는 표현도 있군요), 우타다는 허스키하지만 호소력이 짙다고 합니다. 이중 등려군은 14세에 우타다는 15세에 데뷔했네요. 반면에 헬렌은 22세에 나나는 24세에 데뷔했으니 그 재능에 비해서 데뷔를 상당히 늦게 했군요.
남자 가수의 경우에는 영혼을 울리는 노래를 기준으로 하면 영화 <킬링필드>에 나오는 존 레논의 <Imagine>과 <굿모닝 베트남>에 삽입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프레디 머큐리의 <Bohemian Rhapsody>가 떠오릅니다. 앞의 두 노래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노래였지요.
이런 국민가수들의 공통점은 최고의 음색(최고의 가창력은 아닌 가수도 있음)을 가졌고 영혼을 울린다는 것 아닐까요? 그 외에 심연이나 깊은 샘물 같은 깊이와 생명력, 자기만의 독창성, 열정과 성심성의를 들 수도 있겠네요. "드러냄은 깊이를 이기지 못하고 화려함은 푸르름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국민가수들의 긴 생명력의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유진양이 국민가수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은 그녀가 최고의 음색을 가졌고 영혼을 울리며 깊이와 긴 생명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국민가수란 한 세대나 계층, 일부 매니아 층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가수가 아니라 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전 국민에게 알려지고 사랑을 받는 가수를 말합니다. 유진양은 이런 국민가수로 성장할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국내 가수와 외국의 국민가수들에 대한 얘기를 하였습니다만 유진양은 트롯의 추세나 경향,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그녀의 길을 자유롭게 가야될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훨훨훨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녀만의 노래를 부르길 바랍니다. 그것이 천재의 특권이자 나아갈 길이지요. 대중음악가는 기존의 관습과 상업적 요구에 묶여 자신의 독창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수 있지요. 그래서 창조적 음악의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려면 필요할 때에는 사회에 저항하고 사회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자유로운 예술가에게서는 자유로운 음악이 나오며 그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진실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혹자는 유진양이 국내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진양 자신도 "외국인들이 들어도 심금을 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였죠. 국내 트롯 가수로는 김연자 선생님이 일본에서 활동한 전례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가장 큰 대중가요 시장은 일본이죠. 일본의 엔카는 트롯과 유사하여 김연자 선생님도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트롯이란 장르를 동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로 나아가 널리 알린 가수는 아직 없습니다. 동아시아 가수가 세계로 나아간 것도 한류 스타인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싸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이런 한계를 말하는 것 보다 유진양의 능력을 믿고 힘을 실어줘야 할 것 같네요. 사실 우리는 BTS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서게 될 것을 누구도 예측 못했었지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입니다. 한계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그녀의 노래가 꽃피기 시작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15] 맺는 말
앞에서 그녀에 대한 여러 해석을 해보았지만 아직도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상투적인 말로 표현하려니 그것이 정확하지 않거나 두리뭉실하고 미진한 것 같네요.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계속 신비하고 경외롭게 다가옵니다. 그녀의 노래는 하늘을 날으는 바람과 같아 그물로 잡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요?(어떻게 말로 다 할까요?) 아니 차라리 유진양이 가진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녀의 노래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도 같네요. 그녀의 모든 것이 오색영롱하고 눈부시며 경이로운 보석을 만들어냈다고 말입니다. 그녀의 노래는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지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장미의 아름다움과 국화의 향기로움은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궁핍하고 우울한 시기에 사람들은 감동과 위로를 더 찾는 것 같습니다. 유진양의 노래가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선물을 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양의 노래들이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를 기대합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트롯곡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진양의 노래는 기존의 트롯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목소리이자 새로운 감성입니다. 명가수의 조건은 가슴입니다. 목소리는 가슴으로 가기 위한 안내자인 셈이지죠. 유진양의 노래는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게 되고 영혼을 울리는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녀의 노래를 적극 옹호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유진양의 나이는 계절로 치면 이른 봄에 해당됩니다. 중국 시인 두보의 시 <춘야희우(봄밤에 내린 기쁜 비)>에서는 이른 봄 만물을 소생시키는 '좋은 비(호우)'는 시절(때)을 알고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유진양도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봄비를 만나 자신의 뜻을 피우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국민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줄 국민가수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전유진 가수의 노래가 좋은 이유와 국민가수가 되기를 기원함|작성자 황금숲
https://blog.naver.com/jongsung117/222220338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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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 육성, 정선전씨 필구公 문중 원문보기 글쓴이: 한강의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