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21년 11월 3일(수) 맑음(10:00 12도, 13~16:00 16도)
★참석자(7명): 정상범 대장, 청천 김용하, 박평순, 송명수, 청안 양완식, 박여사, 후묵
★코스: 수서역 6번출구- 260m(헬리포트)- 대모산정상(293m)- 헬리포트- 정상- 260m봉- 헌능IC/헌인릉 갈림길- 통나무집(횡성한우고기집)- 헌인릉- 통나무집(점심)- 양재시민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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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수서역 출발
10:22 벤치(인절미간식, 겉옷벗기)
10:44 벤치(옷벗기)
11:22 260m봉(헬리포트)
11:52 대모산(293m) 정상
11:55 헬리포트(강남, 잠실조망)
12:23~29 (간식, 막걸리)
13:05 헌릉IC/헌인릉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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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 재실
13:35 헌인릉
14:15~15:30 통나무집(점심)
16:01 서울어린이병원 앞
16:10 경매된 박근혜집
16:43 염곡사거리(양재시민의숲역 인근)
17:42 양재천 산책로 따라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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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
대문 잠겨있는 헌인릉 재실
화훼단지를 빠져나오니 횡성한우고기밥집 <통나무집>이 보인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헌인릉 재실이 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여인의 얼굴처럼 소박한 집이다. 자물쇠로 대문이 닫혀있다. 왕릉재실 자물쇠라서 당시대 것처럼 녹슨 골동품이다. 박여사께서 대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능을 지키는 참봉이 거주하며 산릉재를 지낼 때 재물을 만드는 곳이고 재기를 보관하는 곳이다. 전화를 미리 해봤더니 상근해설사이자 참봉인 이집 주인은 이날 출장중이란다.
경로표 7매로 출입
매표소에서 7명의 경로우대표를 받았다. 미리 알고 왔지만 창구 직원에게 해설해줄 수 없냐고 했더니 예상했던대로 해설사가 부재중이란다. 이쁜 분이 하시면 안되냐고 하니까 금방 알아듣는다. 자신은 표를 팔아야하는 사람이라 하고싶지만 하지못한다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중년의 얼굴이 둥글둥글 원만보살이다.
순조의 인릉
경내로 들어서니 정면으로 조선 제23대 순조(1790~1834, 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인 인릉으로 정자각과 홍살문, 박석로를 마주치게 된다. 파주 장릉(인조와 인열황후) 인근에 있다가, 1856년(철종 7년) 이 곳으로 이장된 것이다. 새종의 영릉이 이 인근에 있다 여주 영릉으로 옮겨간 것. 인릉은 남쪽 산의 이름으로도 살아있다. 인릉산(327m).
이승과 유택을 나누는 홍살문
홍살문은 3태극(천지인)이 가운데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악귀가 침입하지 못하게 그들이 싫어하는 붉은색으로 칠을 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도 들어올지 몰라 삼지창과 창을 꽂아 완벽하게 유택의 왕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박석은 대가 조금 높은 신도(향로)와 오른쪽으로 임금이 들어가는 어도(御道)로 되어있다. 사자인 상왕의 혼령을 하늘로부터 불러내기위해 향을 들고 가는 길이다. 상왕을 위한 길이니 살아있는 왕이 걸어가는 어도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인릉과 안동김씨 세도정치
순조의 능 석물은 파주에서 이장하면서 가져오고, 세종릉인 영릉을 여주에 이장하면서 남아있던 석물도 이용했다고 전한다. 순조는 조선왕조가 기울기 시작한 때의 왕이었다. 부친 정조가가 순조 11세에 서거했으니 왕이 통치권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어려 증조할머니(영조 왕비)등이 수렴청정을 하기시작한다. 또한 안동김씨가 왕비를 들여보내 세도가로 60여년 조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민생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다.
1811년 홍경래의난을 필두로 민란들이 전국적으로 일어난다. 헌종, 철종 등 어린 왕에다 정통이 아닌 아류가 왕좌에 오르면서 더욱 세도가들에 휘둘린다. 그래서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지는 단초가 된 왕이 순조라고 보면 무리가 없어보인다. 그러니 철종이 순조의 능을 이장하는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기존 석물의 재활용이라고 좋게 말할 수도 있기는 하다.
순조의 두 비석
순조의 비각에는 두 개의 비가 서 있다. 원래의 비가 왼쪽에 있다. 또 한기는 1897년 국호가 '조선국'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 ‘朝鮮國 純祖大王(조선국 순조대왕)’에서 ‘大韓純祖太皇帝(대한 순조태황제)’로 비문을 만들어 다시 세워진 것이다. 청일전쟁(1894~95)에서 청국이 패한후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자주국으로 만들어준다며 청과 동일한 황제칭호를 쓰게 한 후 벌어진 일이다.
울긋불긋 단풍나무 왕릉의 가을 물씬
헌릉으로 가는 길목에 단풍나무들이 가을색을 물씬 풍기고 있다. 온통 선혈이 낭자한 단풍나무도 있고 초록, 노랑, 빨간색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듯 하는 단풍나무도 있다. 단체 인증샷 한컷.
웅장한 태종릉
안쪽으로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 1367~1422)과 원경왕후 민씨를 모신 쌍릉이다. 왕자의 난을 치루면서 왕권을 잡은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강력한 조선국 초기의 체제를 정비한다.
능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동구릉의 태조릉과 거의 비슷한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다. 쌍릉의 표본이기도 하다. 병풍석과 상석(裳石)으로 둘러져있고 난간석이 또 보호해주고 있다. 상석(床石, 혼유석)도 크고 받침도 5개다. 그리고 모든 돌에 문양이 양각되어있다.
문인, 무인석도 양쪽에 두쌍씩이고 석수도 양, 호랑이, 말이 전부 4쌍이다. 정말 무게감이 있다. 청천은 조선국의 기초를 튼튼히 한 태종의 면모를 보여준다며 존경한단다. 그런데 문인, 무인의 얼굴이 조선인이라고 보기에는 인상이 좀 이상하다.
태종릉 2기의 비석
태종릉 비각에도 비가 두기 있다. 첫 번째 것은 1424년(세종6년) 태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세종이 세운 신도비. 임진왜란때 거북모양의 비석 받침인 귀부가 훼손되었고 비석의 글씨가 떨어져나가 알아보기 어려워 1695년(숙종 21년) 재건립, 구비(舊碑) 옆에 설치한 신비(新碑). 그런데 325년이 지난 지금 이 비석의 글씨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풍화되었다. 비석이 크고 웅장하다. 두 능이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비가 하나씩 더 세워진 것.
왕의 행적이 실록에 기록되어있는데 굳이 신도비를 세울 필요가없다는 신료들의 건의에 문종부터 왕의 신도비는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제사에 절을 두번 하는 이유
여기서 두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소개해본다. 첫째 산자에게는 한번 절 하는데 사자에게는 두 번 절 하는 이유.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말이 있다. 죽으면 혼(태어나면서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이기적인 정신)은 영(靈, 우주 공통의 기본 정신)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고 호흡과 혈관을 통해 돌아다니는 기(氣) 즉 백(魄)은 육체속에서 흩어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왕이 죽으면 혼은 종묘에 모시고 육신은 능에 모신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 하늘에서 내려온 혼에게 한번 절하고 육신에도 절을 해야하기 때문에 절을 두 번 하게 되고 산자는 혼과 기가 육체에 같이 있어 한 번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육류 없는 산릉제
둘째, 능과 종묘에서 차리놓는 제물이 다르다. 능에서는 육류가 없고 종묘에서는 육류가 들어간다. 이는 억불책을 쓴 조선조도 왕릉과 왕실에서는 고려때처럼 불교식으로 능마다 원찰(願刹)을 두었다. 죽은 왕의 명복을 빌어주니 얼마나좋은가! 산릉제시 음식도 마련하곤 했다.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니 초식으로만 되어있을 것이고 궁궐에서 이를 인정해준 것. 국수가 대표적인 불교 음식으로 산릉제 제수에 오른다. 그러나 종묘에서는 유교식이기 때문에 소, 돼지, 양고기 등 육식도 올려놓는다.
그런데 헌릉에는 불교 요소를 제거한다는 조선조 초기의 강력한 명분으로 원찰의 설립을 금하였기에 없다고 전한다.
<통나무집>으로
산책로를 한바퀴 돌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들인 것 같다. 오후 2시. 우리는 돌아나왔다. 정대장은 ‘콩나물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출입구 직원에게 다시 확인해본다. 여직원은 웃으면서 ‘언제 콩나물집이라고 했냐“며 ”통나무집“을 잘못 알아들었단다. 이 나이든 직원은 도시락을 가져와 먹기 때문에 그 비싼음식집에 가본적이 없단다.
헌인릉을 빠져나와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홀에는 아직도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있다. 이 비싼 횡성한우고기집이 헌인릉앞 유일한 밥집. 쇠고기가 1인분 4만원 이상이라 언감생심이다.
2년도 못돼 50% 오른 15,000원의 사골우거지국
통로 사이로 4인용 두 개의 테이블을 잡고 사골우거지국 6명, 소고기국밥 1명(박여사)분을 주문했다. 사실 전날 인터넷을 보니 15,000원. 지난해 2월 코로나가 발생하고 홀로 왔다가 3월 가가, 도마와 가서 먹은 우거지국값은 10,000원이었다. 그 사이 50%인 5,000원이 오른 것이다. 필자는 쇼크를 먹어 다른 친구들도 거부할 줄 알았는데 그냥 먹어보자고 한다. 지난 6월만해도 12,000원이었는데 최근 오른 것같다. 생활물가가 얼마나 오르고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맛있는 우거지국
막걸리 두 병을 주문했다. <서울막걸리>는 없단다. 먼저 막걸리 한잔으로 건배를 했다. 시원하고 뱃속이 싸하다. 우거지탕이 나오는데 엄청나다. 우려낸 사골에 고기도 듬뿍, 우거지도 많고 국물도 많다. 다들 푸짐하다며 좋아한다. 아무리 먹어도 굴지 않는다. 평순은 막걸리 한병 더 하자고 한다. 싫어할 이유가 없다. 대충 먹어갈 무렵 정대장이 탕그릇을 들고 셋이 있는 우리 탁자로 옮겨앉는다. 남자 셋이서 사이좋게 막걸리 한병을 또 비웠다.
멋진 뒤뜰
식사를 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컵씩 빼들고 뒤뜰로 나갔다. 정원이 아주 좋다. 황국과 자국(紫菊) 화분이 주차장입구에서부터 박석길 양쪽으로 도열해 있어 가을맛을 물씬 풍겨준다. 둥근 테이블 둘에 자리를 잡았다.
<스마트폰맨>
배나온 젊은 뚱보가 왼손을 바지호주머니에 넣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스마트폰맨>. 조폭같단다. 주인이 들으면 어쩔러고... 저쪽에서 비슷한 아저씨가 온다. ‘사장님 저 작품이 사장님같네요’했더니 맞단다.
4명은 걸어서 헌릉로 도보를 걸어
커피를 마시고 음식점 밖으로 나왔다. 귀가하고 싶은 친구들은 길건너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양재역쪽으로 가기로 했다. 박여사, 평순친구, 청천 셋이서 정류소로 갔고 남은 4명(정대장, 청안, 명수, 필자)은 헌릉로 보도를 따라 <양재시민의숲역>까지 걷기로 했다.
기분좋은 낙엽 밟는 소리
가로수 느티나무가 황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행인들이 거의 없어 보도에 쌓여있는 바싹 마른 낙엽이 발을 띄면 발아래서 바삭바삭 소리를 낸다. 한겨울 소복하게 내린 ‘뽀드득’ 눈을 밟는 기분 이상으로 낙엽밟는 촉감이 좋고 소리가 기분좋게 들린다.
주현미 성남콘서트
구룡터널 IC 아래로 지나갔더니 내곡동 <샘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입구가 윗샘마을, 깊숙한 곳이 아랫샘마을이란다. 육교에는 2021 주현미 성남콘서트가 11월 20일 오후 2시, 6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고 쓰여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가수들과 배우들의 공연이 하나 둘 기지개를 킬듯하다. 그들에게는 코로나19의 2년이 너무 길었을 것이다.
대로 남쪽 건너편으로 대형 6~7층 건물 입구 문에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 간판이 크게 걸려있다. 이렇게 외딴곳에 어린이 병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공매로 매각된 안골마을 박근혜 사저
이번에는 <안골>이 나온다. 이 마을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을 확정받고 수감중이다. 지난 8월 벌금을 받아내느라 공매에 부쳐 38억 6,400만원에 쌍방울 계열인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에 낙찰되었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자택을 팔고 이집을 28억원에 매입했으나 감방에 들어 앉아 있는 바람에 하루도 거주한 적이 없다.
미색 2층집
은은한 미색 2층집 베란다 받침과 철난간의 조형이 꽤 품위가 있어보인다. 지나는 길이라 박 전 대통령의 집이라 눈도장을 찍어 얘기가 나오면 쉽게 위치를 알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경비경찰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세간 빠져나가 경비도 없어
인테넷에서 알아보니 지난달 말경 수도권 모처로 침대, 화장대 등을 옮겼다고 한다. 아마도 집주인이 바뀌고, 박 전 대통령의 물건이 빠져나갔으니 경비를 설 필요가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염통골
염통골(염곡동) 표지석이 2단으로 서 있다. 유래를 아래 받침돌에 써 놓았다.
”구룡산은 용 9마리가 승천했다 하여 지어진 이름. 그 정상 바로 밑에는 국수봉이 있어 한양을 지키는 역할을 했으며 산중턱에는 장사가 바위를 가르고 태어났다는 장사바위가 있다.
구룡산은 소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그 심장(염통)에 해당되는 자리에 염통과 같이 마을이 형성되었다하여 염통골이라 불려왔다. 약 400년전부터 전주이씨, 창녕 조씨, 기타 성씨등이 살기 시작하여 백수십호의 큰 부락으로 형성되었다.
1941년부터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염곡리로 불려오다 1963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서울시로 편입, 염곡동으로 변모되었다.”
멋진 소나무의 조경원
멋진 소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는 <초원조경>을 따라 오다보면 전 학문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연구재단>과 KOTRA가 나오고 염곡동 지하차도가 있는 사거리다.
원주추어탕집이 설렁탕집으로 바뀌어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북쪽으로 건너오면 코너에 큰 음식점이 하나있다. 그런데 상호가 바뀌었다. 1층에는 설렁탕(9,000원)집 <구수옥> 본점으로 2021년 6월 2일 오픈한 것으로 되어있다. 전에는 꽤 오래된 <원주추어탕집>이었는데 코로나를 이기지 못한 것인가 궁금하다. 우리도 지난해 3월과 11월에 들러 추어탕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었다. 그 때 주인 아주머니는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해 손님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2층에는 빙둘러 <양재동 올리브스크린골프>라고 쓰여있다.
정대장, 명수, 청안 셋은 양재시민의숲역으로 가 지하철을 탔고 필자는 양재천을 따라 하단 산책로를 걸으면서 귀가했다. 같이한 박여사와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첫댓글 역시 후묵 대기자님의 해설있는 보행기는 유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