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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성준경 가옥 전경>
도고산(道高山·482m)을 배산하고 완만한 경사지에 북향으로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아산 성준경 가옥(牙山 成俊慶 家屋, 충남 아산시 도고면 도고산로 587번길 73-21, 중요민속문화재 제194호)은 경상도에서 현감을 지낸 성하현 선생님(현 소유주)의 8대조께서 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순조 25년(1825)에 지은 집이다. 성준경 가옥 주변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무들과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 밖에서는 집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수령이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솟을대문을 대신하고 있고, 넓은 잔디밭을 지나면 사랑채와 바깥채, 행랑채, 중문간채, 안채와 곳간채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충청도 지방의 다른 고택과 달리 다소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 전통가옥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남에 있는 대부분의 전통가옥은 조선 시대에 지어진 가옥이고, 크게 북부지방과 남부지방의 가옥으로 나눠 볼 수가 있다. 북부지방의 가옥형태는 겨울이 길고 춥기 때문에 난방을 중시하고, 산간 지역에 소규모로 마을이 이뤄지기 때문에 방어기능도 고려해야만 했다. 난방과 방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옥 내에서 모든 것이 이뤄질 수 있는 ‘겹집’이나 ‘양통형’ 구조로 집을 지었다. 추운 겨울에 가급적이면 한 건물 내에서 모든 주생활이 가능하고, 적은 연료로도 모든 공간을 난방 할 수 있도록 했다. 외벽을 두껍게 만들뿐만 아니라 천장도 두꺼운 반자로 마무리를 했으며, 창이나 문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 열손실을 줄였다. 특히 건물 내에 외양간을 같이 달아내어 외부의 적으로부터 가축도 보호하고 추위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남부지방은 북부지역에 비해 여름이 길고 고온다습하며, 비교적 넓은 지역에 마을이 형성되기 때문에 가옥의 형태는 농작물과 관련해 통풍과 환기를 고려한 시설과 고온다습한 계절의 변화에 맞춰 주거공간과 작업공간 건물을 분산해서 지었다. 농사와 관련된 작업공간으로 넓은 마당을 두었고, 시원한 여름을 보내기 위한 대청마루, 넓은 창호와 문, 툇마루 등을 설치해 공간의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의 가옥들은 ‘ㅡ’형이나 ‘ㄱ’자형의 독립된 건물을 지형적인 특성을 고려해 ‘ㅁ’ 자형이나 분산해서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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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전경>
성준경 가옥을 들어서면 솟을대문이 따로 없어 사랑채와 바로 마주한다. 막돌로 쌓은 3단 기단 위에 자리한 ‘ㄴ’자형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에 큰사랑방과 작은사랑을 배치했다. 큰사랑방 쪽을 뒤로 1칸 더 길게 내어 2칸 규모이고,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어 이동하기 편리하게 했으며 작은사랑방 오른쪽은 쪽마루를 설치했다. 하지만 지금 사랑채는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 지난 9월부터 기둥 앞쏠림현상으로 해체 보수를 하고 있어 자세히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제대로 된 모습을 보려면 내년 4월 이후에나 가능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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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대청>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중문간채를 배치해 놓았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 중문간채가 있어 안채영역은 보기 드문 완벽한 ‘ㅁ’자형이다. 사랑채 뒤에 있는 사잇마당을 통해 중문간채를 들어서면 안채가 막돌 두벌대로 쌓은 기단 위에 아담하게 앉아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안채는 양쪽에 날개채를 덧붙여 지어 ‘?’자형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윗방 아래로 안방과 부엌을 배치했고, 오른쪽으로 2칸 규모의 건넌방과 아랫방, 아랫부엌을 두었다. 방 앞뒤로는 모두 쪽마루를 설치해 공간 이동이 편리하도록 했다. 특히 대청 오른쪽의 2칸 규모의 방은 중부지방의 안채에서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위해 쓰이던 곳이다. 처음 안채로 들어서면 다소 협소해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안채 뒤를 돌아가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후원과 뒷산까지 한 눈에 들어와 시야가 확 트인다. 성주현 선생님의 따르면 예전에 이 동네를 ‘동막골’ ‘석적골’이라 부르던 기억이 어렴풋한데, 집 주변에 돌들이 많아 그 돌로 담을 쌓은 것이라고 하신다.
안채 왼쪽으로 3칸 규모의 곳간이 있고, 오른쪽에는 초가로 된 4칸 규모의 바깥채가 있다. 그리고 담장 밖에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ㄱ’자형 행랑채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집 주변에 이런 초가가 7채 정도 더 있었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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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뒷면 모습>
아산으로 내려가기 전 지금도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 창령성씨(昌寧成氏) 27대손인 성하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일을 하고 계신 탓에 자주 고향집을 찾지 못할뿐더러 고향집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럽다고 하셨다. 대신 아우 성주현 선생님을 만나 보라고 하셨다. 3년 전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집을 관리하고 계시는 성주현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집 곳곳을 돌아봤다. 8, 9대 조부께서 경상도에서 현감을 지냈는데 이곳에 어떤 연유로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수령이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오래된 모과나무, 느티나무가 집 주변에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집이 있었던 터에 집을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그리고 집을 지을 당시 그리 높은 관직에 있지 못한 탓에 집의 규모나 건축에 사용한 목재도 큰 것을 사용하지 못한 연유라고 설명하셨다.
성주현 선생님은 집 주변을 소개해 주시며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집을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집을 유지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둘러볼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 배정된 1명의 경상관리 인력으로는 너무 힘들고,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려면 인력문제가 가장 시급한 실정이다. 그리고 또 집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지방자치단체 담당부서에 상의를 해도 전년도 예산이 책정된 범위 내에서만 집행할 뿐 새로 발생한 문제점, 예를 들어 담장 보수나 가옥 훼손 상태를 상의하려고 해도 상급기관에 그 상태에 대해 보고만 할 뿐 어떠한 긴급한 조치도 취하진 못하는 문화재 수리체계 제도 절차가 문제라며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초겨울의 길목에 선 계절이라 지금은 집 주변이 삭막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숲과 어우러진 집 주변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고 하신다. 성주현 선생님은 농과대학을 나온 학도답게 재래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 지금도 전국을 다니며 야생화를 구해 집 주변에 심어 놓았다. 집이란 사람이 살면서 생활을 하여야 제대로 된 관리가 되고, 그 안에 함께 하는 이가 있을 때 한층 더 빛이 나는 법. 이렇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지키는 이가 있어 마음이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