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을 잇는 최고의 문장가, 원철 스님이 이 땅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사람 냄새와 손때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격조 있는 아름다움!
멋스럽고 고졸한 문화적 아취를 느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무언의 가르침을 배운다.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는 왕가의 명당에서 폐사지까지 불교적 관점에서 읽어낸 건축의 아름다움과 지혜, 그리고 우리네 삶을 넘나드는 혜안이 드러난다. 숨겨진 보물을 찾듯 건축 안에 숨겨진 의미들을 훑으며, 건축물과 더불어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적 인물, 그 속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첩첩산중 산사에서 도심 빌딩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눈에 비친 건축물은 온통 깨달음의 투성이었다. 자연과 하나 되어 문명을 잊게 하는 절집, 옛 정원의 모습을 지키는 고택 등 그의 관심은 도심과 산사를 넘나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각각의 건축물에 얽혀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 공간적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200여 컷의 사진을 통해 건축물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된다.
불교계 대표 문필가 원철 스님,
옛 절집에서 스웨덴 숲속 교회정원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관점에서 건축을 읽어내다
불교계 대표 문필가 원철 스님이 건축책을 냈다. 절집에 와서 제대로 한 것이라고는 ‘경전 보기’와 ‘글쓰기’밖에 없고, 별다른 취미나 능한 잡기가 없어 ‘승려 노릇 하기는 딱이다’라는 말을 들은 스님은 어느 날 ‘나도 취미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골라낸 취미가 ‘건축’. 그렇다고 해서 삽을 들고 땅을 판다거나 손수 흙벽돌을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의 취미는 정확히 말하면 ‘건축책 읽기’다. 이렇게 읽어낸 책이 벽면을 가득 채운다. 한옥, 양옥, 퓨전 집을 가리지 않았고 종교 건물, 살림집, 공공건물, 사무실, 빌딩 등 분야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가 공적인 큰 집보다는 사적인 작은 집에 관심을 더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는 크고 장대한 것을 좋아했으나 암자와 작은 집은 사는 사람의 삶과 사상이 투영될 수 있고 그 사람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세월의 묵은 때를 사람 냄새와 손때가 켜켜이 쌓인 격조 있는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것은 오랜 세월 써온 그의 글 솜씨에 기인한다.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물질로 된 건축물과 건축의 본질을 오가며 때로는 사찰 문화의 미래까지 사고하면서도 결국은 불심으로 돌아오는 경쾌한 글쓰기다. 문자로 쓰이지 않은 건축은 보는 사람마다 모두 달리 읽을 수 있다. 건축을 ‘읽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어느 정도 머리로서 건축을 이해했느냐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런데 건축을 온연히 읽어내려면 가슴으로 읽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온몸으로 읽어내야만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토굴’이라는 말을 때론 팽팽한 긴장감으로 때론 느긋함이 함께하는 이중성을 가진 말로 읽어낸다. 일반인에게는 은둔자의 거처쯤으로 인식될 토굴이 그에게는 한 번쯤 살아보기를 꿈꾸는 이상향이 된다.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을 통해 “높은 산과 험한 바위가 있는 곳은 지혜 있는 수행자가 살 곳”이라며 토굴 예찬을 폈고, 국민 승려 성철 스님도 ‘안정 토굴’로 알려진 천제굴에서 수행했다. 이렇듯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이 토굴에서 밤낮을 잊은 용맹 정진의 결과로 수행 경지가 한 차원 높아지거나 혹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쉼터로 삼기도 했다고 쓰고 있다.
절 안의 승려의 신분이지만, 절 밖의 시선을 갖추며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전문성과 역사성 그리고 문학...성을 이 책에서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는 건축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역사책이나 문학을 읽는 즐거움도 준다. 이 책 곳곳에는 다양한 설화와 온갖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근심을 풀다_절집 해우소]편에는 절집의 오래된 관습으로 측신을 달래야 뒤탈이 없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명을 존중 이야기를 풀어낸다. 옛 어른들은 간소하나마 변소 건물을 손 볼 때가 되면 작은 의식을 치르도록 했다고 한다. 고사를 지낸 후 헐어낼 건물을 대중들이 돌아가며 막대기로 큰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알고 사는 모든 미물들에게 미리 옮겨갈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절개의 상징_개성 선죽교]편에는 선죽교 다리 밑에 숨어 있던 자객에게 죽임을 당한 정몽주와 ‘송도삼절’의 주인공 황진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끌어온다.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참으로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시를 남긴 그리하여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외치다가 선죽교에서 최후의 피를 뿌렸던 정몽주와 “명월이 공산에 가득하니 쉬어 간들 어떠하리”라는 시를 우아하게 읊조리며 “백 명의 낭군이라한들 어찌 모두 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온갖 염문을 뿌린 꺼릴 것 없는 기질의 소유자 황진이라는 두 역사적 인물을 한자리로 끌어온다.
일상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깊은 울림
건축을 글로 읽어내면서 원철 스님은 건축에 시를 입힌다. 그리하여 평범했던 건축이 다른 차원으로 되살아나도록 한다. 단순히 시적 영감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건축’과 ‘세계’와 ‘나’의 본질적 관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그가 읽어낸 건축은 아주 새로운 의미로 독자를 이끈다. 또한 원철 스님의 건축 읽기의 독특함은 그 관심의 폭이 방대하고 깊다는 점이다. 모든 건축적 대상을 ‘승려’라는 신분 그리고 ‘불교’라는 입장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한계와 취향을 넘어서고 있다. 그 동안 마땅히 순례했을 불교성지는 물론, 뜻밖에 유럽의 기독교 도시와 유적에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아 읽어낸다.
스웨덴의 ‘숲속의 교회정원’이라고 불리는 스코그스키르코가르덴 묘지공원과 이탈리아의 도시형 묘지인 산 카탈도 공동묘지를 소개하면서 죽은 자를 어떻게 하든지 멀리 밀쳐내려 하는 우리의 실정을 토로한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철저히 분리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그 이유를 찾아내며 결국 누구든지 언젠가는 죽을 것인데 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거듭 강조한다.
“나는 설사 땅 한 평, 공간 한 칸이라고 할지라도 죽은 후에는 차지하지 않겠다”라는 말로 남은 자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한다. 스님의 말대로 모든 것은 한 생각 차이일 뿐이다.
원철 스님의 글은 간결하다. 그래서 저자와 함께 읽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스님은 도대체 그리 바삐 살면서 언제 그렇게 깊고 넓게 공부를 했을까. 그의 글을 만나면서 해인사 계곡의 맑고 힘찬 물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잠을 청하기 전 달빛을 바라보며 조주 선사의 달빛 예찬의 글이 떠오른다.
건축가 조성룡 선생의 추천의 글처럼 집 지을 땅을 살피고 터를 만들어 맑은 신심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라 불전을 궁리해나가는 ‘절집 짓는 스님 건축가’가 이 시대에도 나오기를 기다린다.
추천사
원철 스님은 이제 스님이면서 동시에 문필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물질로 된 건축물과 건축의 본질을 오가며 때로는 사찰 문화의 미래까지 사고하면서도 결국은 불심으로 돌아오는 경쾌한 글쓰기다. 그리고 불자들은 물론 만인을 즐겁게 하고 동시에 진지하게 근원적인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한다.
정기용(건축가, 기적의 도서관 설계)
스스로를 일러 우스개로 ‘수도승首都僧’이라 했다는 신문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러던 그가 건축과 관련하여 글을 쓰고 책으로 묶었다. 그는 이 책에서 무량사, 낙산사, 해인사의 작은 절집과 선교장 같은 살림집의 격조 있는 아름다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흔히 스쳐가는 작은 암자의 주련의 글귀에서 시심을 읽어내어 얼마간 건조한 건축나들이에 문득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합쳐지는 순간을 담담하게 그러나 무척 아름답게 풀어낸다.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이 좋은 절집들을 궁리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집 지을 땅을 살피고 터를 만들어 맑은 신심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라 불전을 궁리해나가는 ‘절집 짓는 스님 건축가’가 이 시대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조성룡(건축가, 광주 의재미술관 설계)
보이지 않는 것과의 대화 / 정기용
서문… 수행 생활과 취미 생활의 틈새에서
제1부 절집의 아름다움
절대로 돌아갈 것을 꿈도 꾸지 않는 집 _ 강원도 영월 금몽암
꿈꾸다 죽은 늙은이 잠들다 _ 부여 무량사 청간당
개울을 베고 누워 귀를 씻는다 _ 충북 영동 영국사
달이 지거든 나를 만나러 오라 _ 낙산사 홍련암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에 일어나다 _ 낙산사 의상대
공중에 띄운 집 _ 낙산사 빈일루
물고기가 달빛 읽는 소리에 귀를 닦는다 _ 해인사 문수암 관월정
자손 없이 천 년 동안 제사를 받을 수 있는 명당 _ 김제 만경벌 성모암
천 가지에 만 잎사귀가 빛나다 _ 경북 성주 선석사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기를 꿈꾸는 이상향 _ 토굴 예찬
근심을 풀다 _ 절집 해우소
먼지 한 점 없이 정갈하다 _ 사대문 밖 비구니 도량
성 안과 밖 _ 인왕산 선바위와 국사당
조선왕조의 효심이 서리다 _ 능참봉
불난 집에 그대로 앉아 있다 _ 황룡 선사
매화는 다를 리가 없는데 _ 지리산 매천사
제2부 글 그리고 글씨
청백가풍 _ 죽림정사
과거와 현재의 조합 _ 성철 선사 사리탑
목조건축의 마무리 _ 절집 상량문
수레를 때려야 하나, 말을 때려야 하나 _ 현판
별난 이름을 가진 당우 _ 파위의당
해인사 사랑 _ 최치원의 제시석
역사적 안목, 신앙적 안목 _ 해인사 수미정상탑
천 년의 지혜를 천 년의 미래로 _ 고려초조대장경
제3부 절 이외의 집
전통 양반 가옥의 백미 _ 강릉 선교장
화려함 속에 감춰진 소박함 _ 창경궁 기오헌
상류 민가의 전형 _ 경북 춘우재
내공을 쌓으며 가만히 때를 기다리다 _ 김양수 화백의 적염산방
세월도 녹아 풍경으로 남다 _ 청도 석빙고
빈자의 미학 _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빌딩 숲 속 은자처럼 숨어 있다 _ 종로 목은영당
절개의 상징 _ 개성 선죽교
제4부 외국 건축
건축주와 건축가의 제대로 된 만남 _ 프랑스 라 투레트 수도원
지붕을 연꽃 밭으로 만든 ‘물의 사원’ _ 고베 본복사 수어당
상식의 틀을 깨다 _ 중국 쓰촨 성 아미산
3대 성지 _ 보로부두르, 앙코르와트, 파간
선종적 안목으로 보면 ‘중도 도시’ _ 이스탄불
마조도량 _ 장시 성 남창 우민사
경계인의 삶 _ 쓰시마 섬
성지 또한 소통 막히면 '그들만의 성지'일 뿐 _ 세르기예프 수도원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 공간 _ 유럽의 묘지
절은 신사를 품고, 신사는 절을 안고 _ 일본 사찰과 신사
제5부 개발과 보존에 대한 생각
근대문화유산 _ 강화성당과 군산 동국사
그리운 그곳 _ 청암사 극락전 요사채
성보와 유물 _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소유권과 관리권 사이에서 _ [조선왕조실록]
모양 없는 성지 _ 폐사지
낮잠에서 깨어나니 산나물 향 그윽하네 _ 용기사, 법수사, 심원사
죽어 있는 문화, 살아 있는 문화 _ 베이징 자금성
우리가 전통 사찰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_ 경주 불국사
복원과 개조 _ 사찰 개조
물은 흘러야 한다 _ 지리산 댐
개발 물결에 휩쓸린 사찰 _ 사찰 공원화
오래된 도시의 삶의 이야기가 사라져간다 _ 새 피맛길
황사 그리고 흙비 _ 의성 탑리 전탑
수다사가 문을 닫은 까닭은 _ 사찰환경보존
동굴 속 천년 어둠을 밝히는 등불 한 줄기 _ 신계사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합쳐지는 순간 / 조성룡
금몽암은 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단종이 유배를 오기 전 ‘대궐(禁: 대궐 금)에 있을 때 꿈에 나타난 그 집’이라는 것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더라도 드러내놓고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능히 시빗거리가 될 만한 이름인 셈이다. 어리고 소심한 단종은 역으로 ‘꿈에서도 돌아갈 대궐을 생각하는 집’으로 비칠까 봐 그 자신이 스스로 적이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런 속마음을 들킬까 봐 그 마음속까지 조심해야 할 시절이었다. 그래서 ‘절대로 돌아갈 것을 꿈도 꾸지 않는(禁: 금할 금) 집’으로 새겨듣도록 다시금 사족을 달아야 했던 건 아닐까.
(/ pp.31~32)
고전적 토굴인 바위 굴 전면에 개량형 토굴이라 할 수 있는 소박한 집을 덧붙인 ‘퓨전 토굴’인 청허방장淸虛方丈은 현재 남아 있는 토굴 건축의 종합판이라 하겠다. 바위 굴이나 흙 굴에서 수행할 경우 그 마음의 긴장감과 비장감이야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오래 머물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후대에는 토굴이 소박한 집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청허방장은 바위 굴과 집의 형태가 함께하는 독특한 모양의 토굴로 이름이 높다. 수행 공간인 굴과 휴식 공간인 집을 적절하게 조합한 까닭이다.
(/ p.80)
해인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동시에 일간지와 각종 매체 그리고 교계지에 대중성과 함께 깊이 있는 글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선림승보전] (상, 하) 를 번역하였고, [범망경고적기]를 공역했다. 산문집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와 현 시대의 감각으로 선불교를 이야기한[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건축 기행 에세이[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등을 출간하여 다방면에 걸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월간해인 편집장을 지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총무원 기획국장과 재정국장을 거쳐 현재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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