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함을 전하는 너처럼 / 이현경
지구 외진 곳에서 애벌레 한 마리 제 몸에 날개를 그리고 있다
무음을 물고 나비를 향한 꿈 하나가 탯줄을 끊는다
짧고 강렬한 순간 몸에는 피가 도는지 날개돋이를 한다
꽃잎을 끌어안고 활짝 펼쳐진 긴 기다림의 날개
사월의 설렘을 이고 허공에 푸르른 선 하나 그으며 날아오른다
행선지가 궁금한 나비의 여향을 생각하며
저 눈부신 빛살을 타고 나도 뜻밖의 모련을 찾아, 풍덩 빠지고 싶다
― 시집 『나무의 시계』 (시산맥사, 2024.06)
* 이현경 시인 1959년 서울 출생 2019년, 2023년 서울시 지하철공모전 당선 시집 『허밍은 인화되지 않는다』 『맑게 피어난 사색』 『나무의 시계』 2019 서울시 지하철공모전 당선, 2022년 탐미문학상 시 최우수상, 2024년 서울시민문학상 시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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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외진 곳'에서 애벌레 한 마리가 ‘우화’를 하고 있다.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가 하늘을 얻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저 징그러운 벌레의 몸속에 그토록 아름다운 날개가 숨어 있었다니. 탈바꿈은 천지가 개벽하는 것만큼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나비는 혼자의 힘으로 벌레에 갇힌 ‘시간의 탯줄’을 끊고 있다. 제 허물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하면 앞으로 벌어질 미래는 없다. 짧고 강렬한 순간이 지나면 그는 ‘나비’라는 근사한 이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파리 뒤에 숨어 풋내나는 이파리를 갉아먹던 애벌레는 이제 달콤하고 향긋한 꿀을 삼킬 수 있다. 신분이 달라지니 노는 곳도 다르다. 느리게 기던 속도는 너울너울 허공을 건너뛸 수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허공을 헤엄치며 꽃의 냄새를 맡고 달려갈 것이다. 이 모두가 신이 정한 약속이다.
하지만 환경과 기후의 변화로 벌나비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비행속도는 느리고 날개는 커서 눈에 띄기 쉽고, 가벼운 몸 때문에 반격수단도 빈약한 최약체 곤충 중 하나로, 먹이사슬의 아래 쪽에 위치한 동물이라고 한다. 사마귀나 새, 개구리 등 천적은 사방에 있다. 먹이사슬에서 최약체인 나비는 반격할 가시도 뿔도 없다. 환경보전의 문제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 벌나비는 환경지표인 것이다. 아름다운 날개를 탐내는 표본 수집가들은 나비를 잡아 가슴에 표본침을 꽂고 표본상자에 넣어 소장한다. 생각하면 한없이 애틋해진다.
- 시집 해설 / 마경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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