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해지면서 꽃이 필 때,벌집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모든 벌은 질서 있게 일하며 최대한 많은 꿀을 모아 벌집으로 가지고 온다.
그러면 여왕벌 무리는 알을 낳기 위한 특별한 방을 짓는다. 그들은 여왕이
그곳에서 알을 낳도록 하고,로열젤리로 아낌없이 영양분을 공급하고,그 알이
또 다른 여왕벌로 자라나게 한다.
이제 성장의 노래를 부를 무대가 모습을 드러낸다.저자이자 양봉가인 재클린 프리먼은
꿀벌의 생애 중 사람들이 종종 못 보고 지나치는 마법의 순간을 주제로 글을 썼다.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할 때,기존의 여왕벌을 비롯하여 벌집에 거주하던 절반의 벌들(나
이와 경험이 많은 일벌들)이 무리를 지어 떠난다. 수만 마리의 벌들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은 채 함께 날아간다. 그들은 더 작고 어린 벌들과 새로운 여왕에게 먹이로 가득한 집을
내어주고 떠난다.
무리 지어 날아가는 벌들이 빚어내는 소리는 황흘하다.
무리는 정확하게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기회와 성장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뭇가지를 발견하고는 밀집된 공 모양으로 뭉쳐서 서로의 온기를
유지한다. 그리고 나면 정찰대를 파견하여 80제곱키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탐색하여 벌집
을 지을 새로운 장소를 찾는다.
무리는 며칠 안에 새로운 거처를 정해서 새로운 벌집을 지어야 한다.아니면 모두 죽음을 맞
이할 것이다.
실로 용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벌들은 협력과 질서,관계를 통해 아무런 지도 없이 거처를
옮기는 도전을 감행한다. 이러한 성장의 노래가 없다면 벌집은 언젠가 숨이 막혀 시들어 버
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많은 이(사람들)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스 고딘이란 작가가 쓴 '의미의 시대'의 한 부분입니다.
가슴이 뭉클하여 한참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 이룬 것을 어린 것들에게 내어주고 나는 다시 무(無)에서 시작하러 떠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세상에 어느 인간이 기득권을 버리고 젊은 세대에게 알맹이를 다 넘겨주는 일을 감행할 수 있을까요?
이젠 안방 늙은이가 되어 지난날을 회고하며,때로는 젊은 것들에게 훈계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 벌만도 못한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셈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안방이 아니라 따로 방 나가서 내먹을 거 조금 갖고가서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그리고 젊은
것들은 또다른 시련을 겪으며 크는 거라고 믿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다 주고 떠나야 한다고?
죽으면 당연히 그러겠지만 살아서 개고생을 이 나이에 시작을 해야 한다고?
아니라고 자꾸 부정을 했지만 이 책의 제목이 얘기하듯 '의미있는 생'이 이게 아닌가 하는 빌어먹을 생
각이 드는 것은 또 무슨 까닭입니까.
손자를 돌봐야 하는 80 노인은 바빠서 죽을 여유가 없다.
우리는 남의 얘기 하듯 이런 얘길 하고 간혹 주변에서 그런 고단한 삶을 보기도 합니다.
그건 고단하기만 한 삶일까요.
첫댓글 그 벌 세계는 사심이 없고 순리에 순응하는 순수함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ㅎ
이룬 사람이 모든 걸 내어주고 나가는 게 아니라,
새 여왕벌이 새로운 조직을 이루기 위해 나가는 것 아닐까요?
사람들이 결혼해서 부모 곁을 떠나듯이.....
새 살림(제급) 나듯이.....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사람보다 훨씬 똑똑한 벌이네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먼저 본 세상과 새로운 세상을 보는 곤충들의 활동영역은 도전과 함께 공동체 생활의 맡은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헌신과 보람있는 일을 찾아 무리속에서 함께 즐기며 지내는 생활을 보며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