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범죄 조직 보스와 그들의 최후
20세기 미국 범죄 조직 보스와 그들의 최후
©Getty Images/Public Domain
20세기 초중반 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던 조직폭력배들은
극도의 폭력과 무자비함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 마피아로 알려진 범죄조직 코사 노스트라는
1920년대부터 50년대 사이 활발히 활동했으며,
사법기관과 대중 모두에게 전설에 가까운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이 시기에 수많은 강도, 살인, 협박 등 강력 범죄자들이
등장하며 범죄 조직의 악명을 확실히 떨쳤다.
이 시기 기승을 부렸던 조직범죄중 가장 혐오스러운
범죄자로 악명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 (1962–2023)
©Reuters
악명 높은 범죄 두목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는 1993년부터 도피 생활을 해왔고,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두목으로 이탈리아 당국에 의해 수배되었다.
그는 마침내 2023년 1월 16일 팔레르모의 한 개인 병원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2023년 9월 25일 이탈리아 중부 라킬라의 산 살바토레 병원에서
대장암으로 치료를 받던 중 구금 상태에서 사망했다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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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나로는 마피아 담당 검사 지오반니 팔코네와 파올로 보르셀리노의
살인을 포함한 많은 범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한 1990년대 후반에 밀라노, 피렌체, 그리고 로마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폭탄 테러에 연루되어 종신형을 받았다.
게다가, 데나로는 11세 소년의 잔인한 고문과 살인으로 유명해졌다.
알폰소 카포네 (1899–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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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알폰소 카포네는
금주법이 유효한 기간 동안 악명 높은 깡패로
불법으로 술을 팔아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뺨에 흉터가 있어 스카페이스(Scarface)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알폰소 카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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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네는 1925년에서 1931년 사이에 시카고에서 불법 도박,
성매매, 밀매 등의 활동을 하며 조직적 범죄를 통제했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정계인사와 경찰들을 매수했다.
이 사진은 1932년 카포네의 FBI 전과를 보여주며, 그에 대한
많은 혐의들이 무효되거나 기각되었음을 보여준다.
알폰소 카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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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그의 나이 33세에 그는 7년 동안 탈세혐의로 투옥되었다가
, 1939년 8년 만에 석방 후에는 마이애미에서 조용히 지냈다.
석방된 후, 그는 힘없는 은둔자로 살며 1947년에 심정지로 사망했다.
존 딜린저 (1903–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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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허버트 딜린저는 대공황 동안 미국 중서부에서
악명 높은 무자비한 갱단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잔인한 행보로 인해 그는
"공공의 적 1호"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존 딜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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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부터 1934년까지 10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은행과 경찰의 무기고 강도,
3차례에 걸쳐 탈옥을 자행했다.
1934년 인디애나주 크라운포인트 법정에 선
딜린저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존 딜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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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7월 22일 미 연방수사국(FBI)이 시카고
바이오그래프 극장을 나선 딜린저를 체포하였다.
딜린저는 체포과정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연방 요원이 쏜 총에 맞아 그자리에서 사망했다.
사진 속에는 딜린저의 신원확인 후
쿡 카운티 영안실에 안치된 모습이 담겨 있다.
보니 (1910-1934)와 클라이드 (1909-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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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 배로우와 보니 파커는 1930년대 초
미국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범죄자로 유명한 커플이였다.
보니와 클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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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는 다양한 살인의 혐의를 받았으며
살인, 강도, 납치와 관련된 국가 혐의로 수배되었다.
이들은 함께 최소 9명의 경찰관과 4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유명한 사진으로,
이 사진에서 보니는 변덕스럽게 그녀의 범죄파트너
클라이드 에게 엽총을 겨누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니와 클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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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플의 최후는 이들의 범죄 이력만큼 폭력적이였다.
1934년 5월 23일, 루이지애나의 세일스 근처에서
경찰관들이 매복하여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이날
차량에는 112발의 총알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이 총격으로 이 커플은 최후를 맞이 하였다.
마 바커 (1873–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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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 바커(Ma Barker)라고 불리는
케이트 바커(Kate Barker)는
1930년대 "공공의 적 시대" 속에서
바커-카르피스 갱단으로 활동했던
수많은 미국 범죄자들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아들들도 이 갱단의 구성원 중 하나였다.
프레드 바커 (1901–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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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바커는 그녀 자식들의 범죄와 불법 행위를 감독하고
조정하는 강력한 범죄 조직 보스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막내 아들인 프레드 바커는 앨빈 카르피스와
긴밀히 협력하여 그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번창하여 대공황 동안
가장 오래 지속된 조직 중 하나로 만들었다.
아서 "닥" 바커 (1899–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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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의 형인 아서 "닥" 바커는 난폭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갱단의 주요 멤버였다. 은행 강도와 납치를 포함한 범죄를 가담했으며
그의 어머니 마(Ma)와 동생 프레드 바커(Fred Barker)는
1935년 1월 16일 특수 요원들과 오랜 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한다.
"닥" 바커는 1939년 알카트라즈 감옥에서 탈옥시도를 하다 사망했다.
러키 루치아노 (1897–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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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범죄자 찰스 "러키" 루치아노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마피아 조직인
코사 노스트라 계열 조직들의 최고 간부였다.
범죄 조직의 입안자, 실력자로서는
마피아 사상 최대의 거물로 잘 알려져있다.
러키 루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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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는 창립 공식 보스로서 도박, 갈취, 대출, 마약 거래 등
뉴욕시의 수익성 있는 불법 행위를 감독하며 코사 노스트라의
최고 간부로 성장하면서 1920년에서 1933년까지 뉴욕을 활개쳤다.
러키 루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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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수감된 이 마피아 두목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쟁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의 불법적인 연줄을 활용해 연합군을 돕고자 했다.
결국 이 협정으로 인해 그는 조기 석방 및 미국에서 추방되었으나
그의 행운은 1962년 1월, 나폴리에서 치명적인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끝이났다. 그는 현재 뉴욕 퀸즈에 묻혀 있다.
베이비 페이스, 조지 넬슨 (1908–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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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넬슨과 베이비 페이스 넬슨으로도 알려진 레스터 조셉 길리스는
FBI 요원을 누구보다 많이 죽인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동안얼굴로 인해 '베이비 페이스 넬슨'이라는 별명을 얻게되었다.
조지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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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은 10대 초반에 갱단에 가담하게 되었다.
14세에 그는 자동차를 훔치는 데 능숙해졌고
이후 20대 초반에 절도에서 무장 강도로
더 대담한 범죄에 가담하게 되었다.
조지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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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에 있었던 존 딜린저의 감옥 탈출은
넬슨과 그의 갱단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딜린저와 동료 범죄자 "프리티 보이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사진과 같이 FBI는 넬슨을 "공공의 적 1호"로 지목했다.
넬슨은 시카고 근처에서 FBI 요원들과
치명적인 총격전 끝에 사망하게 된다.
기관총 켈리 (1895–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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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총 켈리'로도 알려진
조지 켈리 반스(George Kelly Barnes)는
테네시주 멤피스 출신의 갱스터로, 금주법 시대에 활동했다.
기관총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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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는 1933년 7월 석유 재벌이자 사업가인
찰스 F. 어셸을 납치한 사건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 사건 동안 켈리와 그의 일당은 미화 20만 달러
(오늘날 화폐로 약 400만 달러에 해당)라는
거액의 몸값을 받는 데 성공했다.
동행한 사진에는 켈리가 체포된 후 FBI 요원들에 의해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켈리와 그의 공범인 부인 캐스린 켈리는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기관총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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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는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 업적을 자랑하고
과장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1951년, 그는 레번워스로 옮겨졌고,
3년 후 심부전으로 감옥에서 사망하게 된다.
프랭크 코스텔로 (1891–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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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텔로로 알려진 프란체스코 카스틸리아는
루치아노 범죄 조직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두목이였다.
그는 러키 루치아노와 절친이였고 절도와 도박과 같은
불법 행위를 통해 큰 이익을 얻었다.
프랭크 코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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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텔로는 뉴욕의 정치인, 기업인 등과 인맥을 형성하며
신디케이트의 중요한 정치적 연결고리가 되었다.
1936년 루치아노가 투옥되자 코스텔로가 임시 보스로 활동하였다.
1950년대 초 코스텔로는 갱단 내부의 갈등을 해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범죄를 제한하려는 미국 상원의 노력에 반대에 부딪혔다.
프랭크 코스텔로
©Getty Images
탈세로 유죄판결을 받은 코스텔로는
1957년 가까스로 암살을 면했다.
지하세계의 지도자로 유명한 그는
1960년대 후반 범죄활동에서 은퇴했다.
1973년 2월 18일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카를로 감비노 (1902–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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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시칠리아 출신인 카를로 감비노는 미국으로 이주하게된다.
그 후 조직적인 범죄 위계질서를 뚫고 미국 뉴욕 시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갬비노 패밀리의 두목이 되었다.
카를로 감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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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감비노는 폭도 폴 카스텔라노(Paul Castellano)의
여동생 캐서린 카스텔라노(Catherine Castellano)와 결혼했다.
이 인연으로 그는 마피아의 일원이 되었다.
1950년대까지 감비노는 도박, 고리대금업, 납치, 마약밀매,
노동력 착취 등 다양한 불법행위로 악명을 떨친다.
카를로 감비노
©Getty Images
감비노는 50년간의 범죄 생활 중 1930년대 후반에
22개월만 감옥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악화된 건강과
다발성 심장마비로 인해 그의 재판이 여러번 지연되었다.
1976년, 그는 관상동맥부전으로 사망했다.
사진에는 브루클린에서 열린 그의 장례 미사에서,
여러 마피아 멤버들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이 조의를 표하기 위해 모인 모습이다.
폴 카스텔라노 (1915–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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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감비노의 뒤를 이어 폴 카스텔라노가 감비노 범죄 패밀리의 리더를맡았다.
"보스들의 보스" 또는 "대부"로 알려진 카스텔라노는 뉴욕시에서 가장 지배적이고
영향력 있는 범죄 조직을 운영했다. 그는 뒤에서는 도박, 포르노, 고금리 대출과 같은
전통적인 불법 행위로, 앞에서는 합법적인 사업체를 사용하면서
자신을 주로 범죄자라기보다는 사업가로 여겼다.
폴 카스텔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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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보스는 주목을 받지 않고 겸손한 생활 방식을 선택한 반면,
카스텔라노는 "백악관"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스태튼 아일랜드 저택에서 자신의 조직을 관리했다.
폴 카스텔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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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초, 그는 공갈 및 협박(밀수)행위로 구속되었다.
그해 12월 보석중에 그와 그의 수행원 한명은 맨하탄의
스파크 스테이크 하우스 밖에서 존 고티의 사주에 의해
총을 맞고 암살 당한다.
존 고티 (194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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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라노가 사망한 후 존 고티는
감비노 범죄 패밀리의 두목이 되어
미국에서 가장 지배적인 범죄 조직으로 부상하게 된다.
존 고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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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판결하여 미국에서 가장
공포스럽고 위험한 범죄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세련된 옷차림으로 "대퍼 돈"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그에 대한 수많은 비난이 결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테프론 돈"으로 불리게 되었다.
존 고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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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는 1992년 4월 12일 유죄 판결을 받고
가석방 가능성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02년 6월 10일 수감 중 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그의 죽음으로 미국과 다른 지역에서 조직범죄를 지배하던
코사 노스트라의 몰락이 시작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Stars Insi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