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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조선시대 비운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은 특별한 지병(持病)도 없었는데
스물일곱 살(27歲) 되던 해 3월, 목욕재계(沐浴齋戒)한 후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今年乃三九之數(금년내삼구지수) 금년이 바로 三九수에 해당되니
今日霜墮紅(금일상타홍) 오늘 서리에 붉은 꽃이 떨어지네.
라 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위의 시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은 23세 때 꿈속에서 광상산(廣桑山/신선이 사는 곳)을 거닐고
깨어난 후 쓴 시라고 하는데 자신의 임종일(臨終日)을
예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에서 옥 바다 요해(瑤海)는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사는 북두계(北斗界)에 있는 바다로
요(瑤)는‘옥구슬이 잘랑거리는 의미’이니‘옥구슬 바다’라는 의미겠다.
즉 이승세계와 저승세계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청란(靑鸞)과 채란(彩鸞)의
어울림도 같은 의미다.
삼구타(三九朶)는‘삼구의 꽃다발’이니‘삼구는 이십 칠’이라,
\꽃송이 스물일곱 송이를 의미하므로
자신의 죽을 나이(27세)를 예언하고 있으니 신기하다.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조선 명종, 선조)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조선 연산군, 명종)보다
50여 년 후의 사람으로 두 사람 모두 강릉(江陵) 출생으로
보기 드문 여류 천재였다.
신사임당은 율곡(栗谷 李珥)이라는 걸출한 학자를 낳아 지금까지 세인의 관심과
존경을 받고 있지만 허난설헌은 그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27세로
요절(夭折)한 비운의 천재였다.
난설헌의 아버지 엽(曄)은 유명한 문장가와 학자를 배출한 명문 양천허씨가문(陽川許氏家門) 출신으로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를 사별하고 두 번째 부인으로
강릉김씨(江陵金氏)와 결혼하였는데 봉(崶), 초희(楚姬), 균(筠) 세 자녀를 둔다.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 자(字)는 경번(景樊), 호(號)가
난설헌(蘭雪軒)으로 강릉시 초당동(草堂洞)에서 태어났다.
조선 중기인 당시 여자가 호(號)와 자(字)를
썼다는 것이 특이하다.
난설헌은 15세 되던 해 안동김씨 성립(誠立)과 결혼하여 두 남매를 낳았으나 어려서 돌림병으로 잃고
뱃속의 아이도 유산하여 자식 복이 없었는데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
녀자가 시(詩)를 쓴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시기(猜忌)와
무지(無知)에 끝없이 시달렸다.
거기다 오빠 봉(葑)이 유배(流配) 중 금강산에서 객사하고 동생 균(筠)마저 역모(逆謀)에 휘말려 귀양을 가는 등 불운이 계속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자신이 쓴 시를 모두 불 태워 버리고
수물아홉으로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동생 균(筠)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시와
즐겨 암송하던 누님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蘭雪軒集)’이라는
시집을 출간한다.
허씨 남매는 적출(嫡出)이 아니고 서출(庶出)이었기에 난설헌의 시집살이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조선시대 신분제도를 비판한 ‘
홍길동전’도 그러한 배경에서 씌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균(筠)이 ‘난설헌집’을 중국 명나라에서 온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보여주자 크게 감동하여 중국으로 가져가
‘許蘭雪軒集’을 중국에서 출간(1606)하여 크게 인기를 얻었고,
후일 일본의 분다이지로(文臺屋次郞)에 의하여 일본에서 출간(1711)되어
크게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중국 시인들은 누구나 품에 난설헌집을 품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중국의 어느 유명한 여류시인은 ‘아~! 나는 왜 스물 일곱에 죽지 못하는가... ’라고 한탄하였다고도 한다.
또 슬픈 일 중의 하나는 동생 허균(許筠)은 광해군 때 역모(逆謀)에 연루되어 저자거리에서
참수(斬首)되었다고 하니
천재 집안의 몰락이 너무도 안타깝다.
허난설헌의 시는 총 213수가 전한다고 하는데
이 중에 도교(道敎)의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바탕으로 한 신선시(神仙詩)가
128수나 된다고 하니 현실세계를 뛰어 넘어
이상세계를 표방하는 신선사상이 당시 주변 정황과 맞물려 난설헌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오언고시(五言古詩) 15수, 칠언고시(七言古詩) 8수, 오언율시(五言律詩) 8수,
칠언율시(七言律詩) 13수, 오언절구(五言絶句) 24수,
칠언절구(七言絶句) 142수 등이 전한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 채련곡(採蓮曲/연밥 따는 노래), 빈녀음(貧女吟/가난한 처녀의 노래),
규원(閨怨/규방에서 흘리는 원한의 눈물),
감우(感遇/어리석었네), 곡자(哭子/아들을 잃고 통곡함),
규정(閨情/여자의 정), 기부강사독서(寄夫江舍讀書/멀리서 공부하는 남편에게),
야야곡(夜夜曲/깊은 밤의 노래), 산람(山嵐/산 아지랑이),
춘우(春雨/봄비) 등이 있다.
난설헌의 생가가 있는 강릉시 초당동(경포대 호수 옆)은
현재「허균․허난설헌 기념관」과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해마다 제사를 올린다.
哭子(곡자) 허난설헌(許蘭雪軒 )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 마주보고 나란히 서 있구나
백양나무 숲 쓸쓸한 바람..
도깨비 불빛은 숲속에서 번쩍이는데 지전(紙錢)을 뿌려서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들 무덤에 술 부어 제 지낸다
아! 너희 남매 가엾은 외로운 혼은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니
이제 또다시 아기를 낳는다 해도
어찌 능히 무사히 기를 수 있으랴
하염없이 황대의 노래 부르며 통곡과 피눈물을 울며 삼키리..
춘우(春雨/봄비/五言絶句) 허난설헌(許蘭雪軒 )
春雨暗西池 (춘우암서지)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輕寒襲羅幕 (경한습라막)
찬바람이 장막 속에 스며들 제
愁依小屛風 (수의소병풍)
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
薔頭杏花落 (장두행화락)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호정(湖亭/鏡浦湖 亭子에서/七言絶句) 교산(蛟山) 허균(許筠)
烟嵐交翠蕩湖光(연남교취탕호광)
연기 안개 푸른데 호수 빛 넘실거려
細踏秋花入竹房(세답추화입죽방)
가을 꽃 밟고서 죽방으로 들어가네.
頭白八年重到此(두백팔년중도차)
머리 희고 팔 년 만에 다시 와 보니
畵船無意載紅粧(화선무의재홍장)
그림배에 홍장 싣고 갈 뜻이 없구나.
애도시(哀悼詩) 교산(蛟山) 허균(許筠)
옥(玉)이 깨지고 별이 떨어지니 그대의 한 평생 불행하였다.
하늘이 줄 때에는 재색을 넘치게
하였으면서도
어찌 그토록 가혹하게 벌주고, 속히 빼앗아 가는가?거문고는 멀리 든 채 켜지도 못하고좋은 음식 있어도 맛보지 못하였네.
난설헌의 침실은 고독만이 넘치고난초도 싹이 났건만 서리
맞아 꺾였네.하늘로 돌아가 편히 쉬기를
뜬세상 한순간 왔던 것이
슬프기만 하다.
홀연히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가니
한 세월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구나.
<누님 허난설헌의 죽음을 애도하여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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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과연 조선대 여 문호임에는 분명한것같습니다.
자기 임종을 예언하고 맞이했다니 기인임에는 분명하고 선각자들은 자기 임종을 후세인들에게 알렸다는 고전이 더러있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