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꿀물을 주머니에 넣으면 천천히 식는다 / 김은지

[군불]

따뜻한 꿀물을 주머니에 넣으면 천천히 식는다 / 김은지

추운 밤
모과나무가 있다
여러 그루 있다
조명도
식물을 가꾸듯 설치한 정원

기념일을 새로 만든다면
작은 일을 감사하는 날로 정하고 싶다

휴대폰 주인 찾아줌
자전거 타고 가다가
낙엽에 머리 맞음
세일해서 산 옷이 꼭 맞음
후회 그침

추워서 입김이 자꾸 안경을 가렸지만
고양이가 다가와 갸르릉 거렸을 때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누울 때마다 기침이 났는데
천식약 두 알 먹고
푹 잤다
정말
기념할 만하다


- 시집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 (아침달, 20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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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지 시인
1981년 경북 문경 출생.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첵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가 같네』 『여름 외투』 등.
산문집 『동네 바이브』
소설 『영원한 스타-괴테 7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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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말 김은지 시인의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시집의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라는 제목인데요, 김은지 시인의 주량은 얼마나 되기에,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일까요. 다음에 만나게 되면, 꼭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4번째 시집입니다. 첫 번째 시집은 2019년 출간한 『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디자인 이음), 그리고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걷는사람), 『여름 외투』(문학동네)를 출간했고요, 앤솔로지 시집도 여러 권 있습니다. 특히 이소연 시인과 함께 쓴 『은지와 소연』(디자인 이음)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김은지 시인과 이소연 시인의 우정 시집’입니다. 두 시인 모두 책방과 도서관 등에서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활동을 같이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두 시인이 같은 동인은 아니지만, 동인 이상으로 오랜 친구처럼 합이 잘 맞는 활동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김은지 시인의 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착한 시’라고요. 김은지 시인이 제가 말한 문장이 마음에 들지,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만난 시인의 시는 그러합니다(시인도 참 착합니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 중에서 「고구마」라는 시를 좋아하는데요, 시에서 이렇게 얘기하죠(제 블로그를 검색하시면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구마와 고마워는 / 두 글자나 같네’라고요. 이 문장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고구마와 고마워는 어떻게 같을까요. 시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말을 걸며 / 빈틈없이 이불을 꼭꼭 덮어 줄 수 있는 // 겨울 고마움’이라고요. 저는 이 문장을 함축해 이렇게 한 문장으로 얘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바로 ‘따뜻함’이라고요.

오늘 소개하는 시 「따듯한 꿀물을 주머니에 …」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에 이런 문장이 있죠. ‘추워서 입김이 자꾸 안경을 가렸지만 / 고양이가 다가와 갸르릉 거렸을 때 /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추워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고양이가 다가와 갸르릉 거렸을 때 못 본 체할 수 있지만, 화자는 손을 꺼내 쓰다듬죠. 이 마음이 참 따뜻합니다.

또 ‘기념일을 새로 만든다면 / 작은 일을 감사하는 날로 정하고 싶다'는 우리의 일상에서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이 시의 제목과 함께 가장 마지막 연입니다. ‘누울 때마다 기침이 났는데 / 천식약 두 알 먹고 / 푹 잤다 / 정말 / 기념할 만하다’ 정말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기념할 만하다고 얘기하는 시인의 명랑함은 시를 읽으면서 나를 웃게 하는 요소입니다.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면 꼭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시인이 있습니다. 그 시인들은 정말로 다양한 시를 쓰죠. 형식이나 소재, 화법이 모두 다릅니다. 저는 여러 시인의 시 중에 김은지 시인의 시가 저에게 맞는다고 느낍니다. 제가 쓰고자 하는 시의 방향성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따뜻함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여러 사물의 숨겨진(-따뜻한) 모습을 발견해 내려고 노력하는 김은지 시인, 그의 시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