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을 닮은 딸에게 / 이수미
하얀 박꽃이 오각형 몸을 하늘로 열던 날 네가 태어났지
이른 아침 초가지붕에 함초롬히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젖을 먹는 네 모습이 신기해서 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지 온 우주가 내 앞에 펼쳐진 순간이었지
어둠 속에서 흰빛을 내뿜는 꽃 소박하면서도 의연한 기품을 지녀 절로 바라보게 되는 꽃
박꽃 같은 너에게 스며들어 한평생 살다 보니 내 앞에 펼쳐진 우주는 늘 눈이 부셨지
- <우리시> 2024년 7월호
* 이수미 시인 1963년 충북 충주 출생,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17년 <문학의 오늘> 등단 시집 『유채꽃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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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박꽃이 피면 기다렸다는 듯이 둥실 달이 떠올랐다. 다 자란 박은 둥근 보름달 같았다. 박을 키워서 속을 파내고 바가지를 만들던 예전엔 집집마다 박을 심었다. 초가지붕까지 타고 올라 달빛에 외롭게 피던 꽃, 어둠 속에서 희디흰 속살을 드러내 눈이 부셨다. 밤에 홀로 피어 다음날 아침에 시드는 박꽃, 그런 주변의 사소한 풍경들은 너나없이 가난한 우리들의 마음을 살찌웠다.
풍경이 펼쳐지는 과정을 따라가면 생생한 기억과 마주친다. 박꽃이 피는 날 시인에게 온 아이, 온 우주가 펼쳐진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소박하면서도 기품을 지닌’ 꽃은 아이로 치환된다. 박꽃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인이 꽃을 대하는 인식에 따라 결정된다. 박꽃 닮은 아이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시인은 박꽃에 집중한다.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에게 스미고 스미어 한평생 살다 보니 펼쳐진 우주는 늘 눈이 부셨다. 박꽃은 상호작용으로 조화를 이루고 상황을 사랑으로 기록하는 시인은 ‘어둠과 빛’이라는 시각적 요소들을 활용하여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 마경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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