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숲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하송리 329-1
조선 세조 때 인근 8개읍의 역참을 관할하는 송라도찰방이 청하면 덕천리에 들어섰다. 하송마을은 송라도찰방이 관할하는 역촌으로 번창해 주변에 12개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숲의 훼손이 심각하게 되었고 마을의 안위까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역촌에서 큰 주막을 경영해 자수성가한 김설보여사가 거액을 희사해 숲 일원을 매입하고 느티나무, 쉬나무, 이팝나무 등을 심어 마을에 기증했다 한다. 이 숲이 울창해 졌을 때 상류의 호룡골 저수지가 홍수로 붕괴되어 마을 앞 하천이 범람한 일이 있었다. 이때 볏단이며 가구며 가축들은 물론 사람까지 급류에 떠내려가다가 이 숲에 걸림으로써 인명과 재산을 구하게 됐다고 하는데, 이에 연유해 이 숲을 ‘식생이(食生而)숲’이라 불렀다 하고 일명 외역숲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해마다 이 숲에서 열리는 단오절축제에 구경 나온 아이들이 길 잃고 헤맬 정도로 규모가 거대 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총의 개머리판을 만들기 위해 느티나무는 모두 베어지고 이후 마을 사람들이 상수리나무 위주로 다시 숲을 조성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숲의 중앙 넓은 규모에 논이 들어서면서 숲이 분리되고, 주택과 전답이 숲을 잠식하여 지금은 그 흔적만 초라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숲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김설보여사의 고귀한 숲 사랑과 자연보호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여인의 숲’이라 부르며 기념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