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평원을 떠돌며 사는 유목민족일수록 인정에 메마르고 빚에 대해 냉혹하다.
조상대대로 한 마을에 정착하여 살아온 농경민족일수록
인정없이 못살고 따라서 빚에 대해 관대하다.
기마 유목민족인 북쪽 오랑캐(북융)의 빚에 대한 기록을 보면 끔찍하기 이를데 없다.
빚을 갚지 않았을 경우 부채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①코나 성기같은 하나만 있는 육체부위를 절단하는 중형
②손이나 발-귀-눈 같이 두개가 있는 육체 부위의 어느 하나를 제거하는 중형
③손가락-발가락처럼 열개가 있는
육체부위의 어느 하나를 절단하는 경형으로 응징하고 있다.
가혹한 응징이요,웬만해서는 빚을 얻을 엄두를 못냈을 유목사회였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태인 샤이록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인육 1파운드를 요구한 것은 소설속의 허구가 아니라
유목민족의 관습을 도입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회교를 믿는 사막 민족들은 약속을 어긴 빚쟁이는
그날로 노예신분으로 하천시켜 빚준사람의 재산 목록으로 등록된다.
투키디데스의 게르마니아 에 보면 유럽을 휩쓸던 무렵의 게르만민족도
빚을 갚지 않으면 빚준사람의 노예로 평생을 살게끔 엄한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용하기 이를데 없었다.
촌락자치규약인 향약에 보면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는
악질적인 빚쟁이에 한해 양반일 경우 벽을 바라보고 앉혀두는 면벽,
상민일 경우 시장바닥에 세워두는 입시로 명예형을 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빚쟁이의 사정이 딱할 경우 십시채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식으로 추렴하여 갚아주는 미풍도 있었다.
우리 옛선조들 돈을 빌려 줄때
우리집 외양간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없게 하게나 하는 말을 곧잘 했다.
빚지고 죽으면 빚진집의 송아지로 태어나 빚을 갚게 된다고 알았으니
우리 선조들의 부채문화는 선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부채문화가 도시화,산업화로 옮겨 가면서 질악해지고 타락해온 것이다.
그래서 상습 빚쟁이를 신용사회에서 소외시키는 방편으로
빚쟁이 명부를 만들어 공람케 할 참이란다.
고려때 바람기가 있는 여인을 자녀안이라는 명부에 등록케하여
그 가문과 자손에게 불이익을 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의 명예형이랄 수 있다.
악의의 빚은 그로써도 약과지만 선의의 빚이 그 때문에 다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