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꼭 필요하지만 경원시되는 직업이 있기 마련인데, 그 중 하나가 분뇨를 수거하는 직업이다.
아파트가 보편화된 이후 '똥차'라고 불리었던 분뇨수거차를 볼 일이 드물어졌지만, 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이 많은 시골에서는 요즘도 분뇨수거차가 돌아다닌다.
이런 차량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이 직접 작업을 해야 했는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똥장군을 지고 다니며 "똥 퍼!"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되기 전 화장실의 모습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연구가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궁궐의 화장실에 대해서는 근래에야 밝혀졌다.
왕이 휴대용 변기인 매화틀을 사용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영화 <광해>에 코믹하게 등장한다), 궁궐에서 근무하던 그밖의 사람들이 사용한 화장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가 몇 년 전 경복궁 발굴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나왔다.
이것이 궁인들이 사용하던 공중화장실인데 놀랍게도 밑에 물이 흐르게 하는 설비가 있었다. 즉, 일종의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물이 흐르게 함으로써 악취를 줄이고 발효를 촉진시켜 비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서양 궁궐의 화장실은 어땠을까?
서양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발명된 시기는 16세기 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기이고, 이것이 일반인의 가정과 상업용 건물에까지 보편화된 시기는 19세기 중반이다.
그러니 그 전까지 유럽의 화장실은 '푸세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에 살았던 높으신 나리들이다.
서민들이야 허름한 오두막에 살며 근처 빈 터에 적당한 공간을 만들어 볼 일을 보면 되었으나, 왕과 귀족들이 살던 성은 돌로 만들어졌다.
중세의 성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성의 주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앙의 높은 탑에 살았다. 언제 어디서 암살자가 나타날 지 모르는 시대인지라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화장실에 있는 시간은 특히 안전에 취약하니 성주의 화장실은 탑 내부에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구조를 갖게 된다.
밑에 떨어진 변을 치우는 사람이 필요했고, 이 사람을 gong farmer라고 불렀다.
gong은 중세 영어로 'to go'라는 뜻인데 화장실을 가리키기도 했고 변 자체를 가리키기도 했다.
요즘도 "I have to go,"는 화장실에 간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Gong farmer는 변을 치우는 사람, 즉 "똥 퍼!"라는 직업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farm은 수거한다는 뜻이 있다)
gong farmer는 영국에서 부르던 말이고,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명칭이 있었을텐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gong farmer는 한국에서와 달리 "똥 퍼!"라고 소리치지는 않았고 모두가 잠든 밤중에 와서 작업을 했다.
이 일은 물론 쉽지 않았다. 냄새를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가끔 분뇨 속에 빠지는 일도 있었고, 운이 나쁘면 사망하기도 했다.
대신 보수는 좋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되도록 거리를 두려고 했다.
지금처럼 깨끗이 씻을 수 있는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이들에게서는 늘 모종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보수라도 좋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독일 바이에른에는 유명한 성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앞에 나오는 로고의 모델이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이 성은 중세에 지어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스타일만 중세 스타일인 성이다.
바그너의 친구였던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는 건축광이었는데, 이 성도 그의 취미활동 중 하나였다.
다만 산골짜기에 이런 성을 지으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고, 나중에는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 성의 화장실은 어땠을까?
다행히 루트비히 2세는 건축광 답게 최신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어서 당대로서는 드물게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중앙난방 시스템과 냉수, 온수가 나오는 수도설비까지 갖추었다.
그렇게 만들어놓고 정작 루트비히 2세 본인은 그 성에서 2주 밖에 살지 못했다.
현대에 gong farmer와 비슷한 직업으로는 맨홀 청소부가 있다.
악취도 심할 뿐더러 잘못하면 질식사하기도 한다.
건장한 젊은이 중에 단기 알바로 이 일을 하려고 나왔다가 하루도 못 버티고 그만 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당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맨홀을 제 때 청소하지 않으면 여름에 집중 호우가 내렸을 때 물이 빠지지 않아 물바다를 겪게 된다.
Gong farmer는 보수라도 괜찮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꼭 필요하면서도 제대로 된 보수도 받지 못하는 직업이 꽤 있다.
첫댓글 저는 무슨 직업을 갖게될지
궁금해집니다. ㅎㅎㅎ
좋은 저녁시간 편히쉬세요~^^*
편안한 저녁 되시고요.
와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수세식 화장실 규모가 크네요.
온돌도 있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자랑스럽습니다.
한옥의 구조도 과학적이고 흥미로운 면이 많지요. 예를 들어, 여름에 뒷마당과 통하는 대청마루의 문을 열어두면 뒷마당의 서늘한 공기가 대청을 통해 앞마당으로 가서 뜨거워진 앞마당의 열기가 위로 가게끔 대류를 촉진하는 구조라든가. 툇마루의 활용이라든가.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서양에서는 옛날에
부자들이 집밖으로 똥이 떨어지게 만든 구멍에 앉아 용변을 본 경우도 있다더군요.
그래서 그쪽 아래는 똥밭이 되기도 했다는... ㅎ
아주 옛날에는 그런 일도 있었지만 중세에 들어와서는 집에 요강을 두고 해결한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는 그 요강 내용물을 창밖으로 쏟아서 길가던 사람들이 뒤집어쓰는 일이 많았다고 하죠. 영국 신사가 맑은 날에도 우산을 들고 다닌 습관이 그래서 생겼다고 합니다. 위에서 "Water!"라는 소리가 나면 재빨리 우산을 펴는 거지요.^^
옛날엔 임금님의 용변을 받아서 건강상태를 살펴보는 신하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고향친구중 아버지가 💩푸로 다니셔서 철없던 시절에 놀렸던 기억도 있고,
고등학교 앞이 수박밭이라 여름날에 창문열고 수업하면 바람결에 날아온 변거름의 향기? ㅎ
사람들이 먹으면 배설해야 되겠기에
지저분하고 감추고 싶어하지만 중요하지요~~
오월동주라는 고사성어에도 건강을 살피기 위해 변을 맛보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ㅎㅎ
건강의 삼대요소가 쾌식, 쾌변, 쾌면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죠.^^
각국이 일찌기 목욕 문화는 발전 했으면서 화장실 문화가 발전이 없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뒷처리 기술이 전혀 없던거나 마찬가지네요. ㅎㅎ
옛날엔 어딜가나 화장실 악취가 있었겠군요.
영국 우산 이야기는 프랑스의 하이힐 만큼이나 충격적이에요.
얼마전 재난 훈련을 다녀왔는데요. 이번엔 간이 화장실을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피난을 하면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화장실이라서 가장 먼저 화장실부터 설치한대요.
공립초중고는 피난소로 활용되기에 운동장에 아예 수영장 물을 퍼올려 처리 하게끔 자리가 정해져 있더군요.
화장실 밑에 물이 흐르게 하는 장치는 로마 시대에도 이미 있었다고 하죠. 치수가 발달했으니까. 그 후 중세에 들어 퇴보했다고 하죠.
사실 도시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살지 않았으니까 화장실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을텐데 도시화가 되면서 인구는 느는데 화장실과 수도 등은 갖춰지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죠.
한국도 재난 훈련을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지진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면에서는 아직 많이 미흡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주택살때 정화조차가 왔었는데 아파트 살면서 정화조차를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하수관으로 오물이 다 같이 내려가는 걸가요?
조선시대 궁인들의 화장실은 맘에 드네요. 밑에 물이 흐르니 괜찮은 듯.. gong farmer
to go
i have to go
배우고 갑니다
아파트는 지하에 대용량 처리 시설이 묻혀 있고 거기서 처리하여 하수관으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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