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오디가 검붉게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오디를 입에 넣고 씹어보면 붉은 피처럼
유난히도 입안을 붉게 물들이는 열매가
이 오디입니다.
오후 산책 중 언덕배기에 오래된
뽕나무 가지에 오디가 검붉게 익어 있어
맛있게 따먹었습니다.
옛날 할머니에게서 들은
오디에 대한 전설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시골에 몰락한 양반 집안의 선비가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몰락한 양반이라도 잡일을
하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여겼습니다.
오로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 불철주야(不撤晝夜)
공부만 열심히 하였습니다.
시집온 아내는 여러 해 동안 선비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남의 집 일도 해주고 삯으로 음식을 받아오기도
하고 산이나 들로 나가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남편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여느 해에도 변함없이 들에서 피를 훑어서
마당에 덕석을 펴고 피를 깔아서 말리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창 피가 익어가는 때인지라
더 많은 수확을 하기 위해 들로 나가면서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남편을 향해서
"서방님, 제가 들에 나가니 마당에 깔아놓은
피가 있습니다. 혹시 비가 오면 비설거지를
좀 해주세요" 하니
"그렇게 하리다" 남편이 대답을 했습니다.
안심하고 들에 나가서 피를 한창 훑고 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번개를 치며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내린 소낙비가 그치고 나서 깔아놓은
피가 걱정이 돼 집으로 돌아와 보니
피가 한 톨도 남김없이 빗물에 씻겨
온데간데가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공부에 열중하느라 소낙비 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기가차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참을 마당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내가 이렇게 살아서
무슨 행복을 누리겠나 싶어 울컥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집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혼자 남은 선비는 빈배를 움켜쥐고 실성할
지경이 되면 동네에서 불쌍해서 음식을 조금
갖다 주면 그것으로 연명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과거 날짜가 잡히고 선비는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됩니다.
지성(至性)이면 감천(感天)이라던가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게 되고 고향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게
되는데 그 소문이 고을마다 퍼져나갔습니다.
어사화의 관을 쓰고 말을 타고 하인들을
거느리고 쌍피리를 불며 오색찬란한
깃발을 나부끼며 앞을 지나가는 서방님의
얼굴을 쳐다보니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훤한 풍채가 너무나 잘생기고 훌륭했습니다.
차츰 멀어져 가는 서방님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 옆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서서 바라보다가 멀어지면 또 올라서고
그러다가 결국 뽕나무 가지가 부러지면서
여인은 추락하여 목숨을 잃게 됩니다.
여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뽕나무 뿌리를
흥건하게 적시었습니다.
그 피가 오디에 물들고 오디는 검붉게
익어 갔습니다.
여인의 한이 물들어 가는 것처럼~
요즘 언론 매체를 통해서 나오는 광고를
보면 오디가 치매 예방에 좋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죽은 여인이 서방님을 잊지 못해 그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잊히지 않는
명약을 오디에 남겨놓은 것은 아닌지,
애잔한 감정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어사화는 촉규화(蜀葵花) 즉 접시꽃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이 촉규화는 꽃이 한 번에
피지 않고 아래에서부터 차례대로 위로 핀다고
해서 관직에서 아래서부터 위로 번창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의 촉규화 시가 있어
옮겨 드리겠습니다.
촉규화(蜀葵花)
寂寞荒田側(적막황전측)
거친 밭 언덕 쓸쓸한 곳에
繁花壓柔枝(번화압유지)
탐스러운 꽃송이 가지 눌렀네.
香輕梅雨歇(향경매우헐)
매화 비 그쳐 향기 날리고
影帶麥風欹(영대맥풍의)
보리 바람에 그림자 흔들리네
車馬誰見賞(거마수견상)
수레 탄 사람 누가 보아 주리
蜂蝶徒相窺(봉접도상규)
벌 나비만 부질없이 찾아드네.
自慚生地賤(자참생지천)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堪恨人棄遺(감한인기유)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참고 견디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할
정도로 똑똑하고 학문적 성취도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나라에서 변두리 출신이라 하여
인정을 받지 못했고 신라에 돌아와서도
6두품이라는 출신의 한계로 자신이 원하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자기가 뜻하는 사회를
바꾸지도 못했습니다.
그 울분으로 지은 시가 촉규화입니다. 끝
첫댓글 오늘도 공부 잘하고 갑니다.
땡볕이 장난이 아니네요.건강조심하세요.
오디~, 어릴적 오들개라고 하였지요. 달콤한 맛 잊을수가 없네요. 오디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소. 오디 많이 묵고 건강하시오.
그래서 과거에 급제한 놈은 잘한 놈이고 못견뎌서 집나간 년은 죽일 년이다?
한많은 여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