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 나아가 자학적이기까지 한 인식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계가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과거 자료를 들어 일제강점기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는 학파까지 등장했습니다.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지요.
그런데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다 알고 있듯이, 화폐경제가 오늘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생산성과 경제 발달의 정도를 계산하는 데 한계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범위를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조선시대와 비교하여 일제강점기의 경제적 성과를 부각시키는 것은 일부 맞는 면도 있지만 사회경제적 변화를 지나치게 일부분만 보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에 경제적 성과의 혜택을 본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었을 뿐, 대부분의 평민은 죽지 못해 살았다는 것이 각종 증언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각을 돌려, 그렇다면 조선은 정말 형편없는 국가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예전에 들었던 강연이 떠올라 찾아보니 누군가 정리하여 기록해놓았더군요.
https://brunch.co.kr/@philstori/35
강연자는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허성도 명예교수이고 청중은 한국의 공학자, 엔지니어들입니다.
왜 중문과 교수가 조선시대에 대해 엔지니어들에게 강연을 하는가는 내용을 읽으면 자연히 이해가 됩니다.
내용의 일부만 말하자면,
세계 역사상 500년을 유지한 단일왕조, 즉 단일집권체는 조선왕조가 유일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백성의 대부분이 무지하거나 멍청했던 것이 아니라면 집권세력에게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후자였고 정치, 경제, 법, 과학, 수학 등 다방면에서 조선왕조는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
그 증거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각종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기록들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해독할 인력이 필요하다.
번역도 필요하지만 공학자, 수학자들이 한문을 공부하여 조선시대의 기록을 연구하면 한국의 물리학, 한국의 수학이 나올 수 있다.
허성도 교수는 저도 과거에 약간의 인연이 있는 분인데, 박학다식함은 물론 말솜씨가 좋아서 강연을 들으면 매우 재미있습니다.
유튜브에도 강연이 여러 개 올라와 있으니 시간 나실 때 한 번 들어보시면 좋습니다.
첫댓글 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넵.
투표를 잘해야 합니다아~ ㅎㅎㅎ
지난 총선 결과는 대략 예측한 대로 나온 것 같습니다.
호중유천님의 글과 링크 걸어주신 허성도 교수님의 녹취록 감사히 읽었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이라 올려봤습니다.
전기의 조선과 후기의 조선은 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기의 조선이 이룩한 성과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마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전기 조선은 달리 볼 지도 모르지요. 보통 논란이 되는 건 후기 조선의 성과입니다.
조선의 각종 과학적 업적이라는 것도 조선 전기, 특히 태종/세종/문종 시대에 몰려 있습니다. 가령 역법을 해석하여 조선에 맞게 새로 만든 <칠정산내외편>(세종 시절)은 큰 업적이지만, 후기의 조선은 전기의 조선처럼 자체적으로 역법을 해석하여 만들기보다는 그냥 중국의 역법을 갖다 쓰게 됩니다. 가령 우리가 '음력' 이라 부르는 것도 조선 후기에 도입된 청나라의 <시헌력>입니다.
군사적으로도 보면, 전기의 조선은 외국 정벌이 가능할 정도의 정예병과 군수물자 동원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대마도 정벌은 물론이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4군6진 개척한 걸 넘어서) 압록강을 넘어 여진족을 정벌하기까지 합니다. 만주 건주위의 이만주 정벌 건이지요. (참고로 건주위는 훗날 후금/청을 세울 누르하치가 있는 그 여진족 부족입니다. 다시 말해 조선은 후금의 선조를 정벌한 거죠.)
하지만 후기의 조선이 되면 입으로만 북벌을 외칠 뿐, 외국 원정에 필요한 실질적 역량이 조선 전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군대는 상시 훈련이나 소집도 잘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조선 말기에 일부 외국인들은 '이 나라에는 군대가 없다' 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점차 망가져 가고, 농업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재원은 농지에서 거둘 조세일텐데도 중앙정부가 파악하는 농지 면적은 조선 전기인 세종 때의 최대치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거기에 군포와 같은 인두세의 면세 대상인 양반들(정확히는 양반이면서 서원에 속한 학생)은 늘어가니 후기의 조선 정부의 자원확보능력은 전기의 조선 정부에 훨씬 못 미쳤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전기의 조선에 비해 후기의 조선이 많은 부분에서 뒤떨어진다는 걸 부정할 순 없습니다.
문제는 후기의 조선이 전기보다 뒤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하느냐겠지요. 식민지근대화론 중에는 속되게 말해 후기의 조선을 거의 개막장국가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후기의) 조선을, 총체적으로 관리가 안 되는 나라, 국민이 각자도생해야 할 뿐인 나라 식으로 보기도 하더군요.
반면 식민지 근대화론에 안티테제처럼 튀어나온 자본주의 맹아론은 조선 후기의 자생적 발전 가능성을 높이 보아 근대의 길로 자생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보고 있지만, 다소 과장되게 후기의 조선을 평가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운도 나빠서, 조선 정부는 후기로 갈수록 위기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쟁을 겪으며 정부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측면(왜란과 호란) 외에도 조선 후기 소빙하기로 인한 잦은 흉년과 대기근(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등, 이로 인해 전인구의 10%가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는 듯)에 구휼할 곡식이 없어 정부가 대책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측면도 있었지요. 경신대기근 때에는 '이러다 다 죽겠다. 청나라 곡식이라도 수입하자' 라고 했지만 명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 무리에게 곡물을 구걸할 수 없다며 곡물 수입 의견을 기각했고, 을병대기근이 되어서야 '이젠 정말 다 굶어죽는다' 고 아우성이 심해지자 겨우 청에게 SOS를 요청하여 청나라 곡물을 수입하지요.
이런 일들로 인해 집권층 입장에서 조선 후기에 기존의 사회 질서가 흔들린다고 여길 만 했고,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은 유교적으로 보수화됩니다.
조선 전기가 남녀평등시대였다고 보는 건 무리지만, 그래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낮은 것까지는 아니었는데, 조선 후기가 되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전기에 비해 많이 낮아집니다. (열녀에 대한 열망이 강해져 남편이 죽은 과부가 생기면, '집안의 명예'를 위해 혹여라도 과부가 바람이라도 필까 두려워하며 과부를 강제로 죽이고 남편이 죽은 슬픔에 자진했다고 거짓 보고하여 열녀비를 타내는 일도 조선 후기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장자와 차자 간의 사회적 지위도 크게 달라지고, 재산을 장자가 모두 받는 게 점차 당연시되지요.
유교적 보수화가 반드시 나쁘다고 볼 건 아니겠으나, 역사 발전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미래로 나아가는 개혁이나 진보라기보다는 과거로 회귀하는 보수반동의 의미가 더 강할 겁니다.
@수돌예돌 네. 어느 나라든 건국 초기의 활기가 뒤로 갈수록 사라지는 것은 로마, 스페인, 영국, 미국까지 다 비슷하지요. 그런 점에서 조선 후기가 전기보다 여러 모로 못했다는 것은 아쉽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년을 이어왔다는 것, 그리고 전란 때마다 지방의 사림 등을 중심으로 의병이 일어났다는 것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선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중 어떤 것을 현대에 참고할 것인가이겠지요. 적어도 우리만의 학문을 개발하려는 노력, 그런 정신을 갖지 않으면 고급 학문을 배우려면 유학가야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겠죠. 고급 지식과 원천 기술이 이 나라의 장래 먹거리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니까요.
역시.. 균형잡아주셔서 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