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에 실망한 투자자들 몰려갔다
4대 안전자산 점검
시중銀 골드바 판매 3배 늘고
골드뱅킹 잔액도 증가세 꾸준
인플레이션에 금 수요 느는데
우크라 전쟁에 러 공급은 줄어
당분간 금값 강세 기대감 커져
국내 금 시세 한달새 5.5% 쑥
KRX 금시장 하루 111㎏ 거래
수수료 낮고 소액투자도 가능
최근 한 중소법인의 김 모 대표는 1㎏짜리 골드바(순도 999.9%)를 10개 사들였다. 금액으로는 8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강하고 자산시장이 복잡해질 때일수록 단순하게 금덩어리를 모아놔야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은행에 물어보니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 같다고 해서 골드바와 같은 실물자산 중심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고 밝혔다. 금 시장이 심상치 않다. 예전처럼 '골드러시'(금으로 쏠리는 행렬)까지는 아니지만 일부 고액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수집하듯 '금품'을 사 모으고 있다. 대표적인 위험자산 시장인 국내외 주식 시장이 최근 방향성에서 갈피를 찾지 못하면서 원금을 지키는 투자가 각광받고 있고, 이를 위해 금이나 현금,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을 모으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불안해진 전 세계 은행들과 개인투자자들이 금을 사들이는 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인해 금 공급이 줄면서 당분간 금값이 강세를 띨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8월 23일 국내 금 시세는 g당 7만4982.6원을 기록했다. 이는 연중 저점이었던 지난 7월 21일 가격(7만1048.1원)보다 5.5% 오른 수치다. 이는 같은 기간 위험자산 묶음인 미국 우량주식 지표 S&P지수의 수익률(3.2%)보다 나은 성적표다. 국내 코스피(1.1%)와 비교하면 5배 높은 수익률이다.
금값이 오른 것은 수요가 몰려서다. 이는 최근 시중은행 골드바 판매 금액과 중량에서 드러난다. 지난 3월 시중은행(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기준으로 19억원어치가 팔렸던 골드바는 7월에 56억원 규모로 판매가 이뤄졌다. 4개월 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금 가격 변동을 빼고 판매 무게로만 따져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에 32㎏이었던 시중은행 골드바 판매중량은 7월에 79㎏으로 2.5배 증가했다.
은행이나 증권사 PB들은 고액자산가들이 금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은경 우리은행 TCE강남센터 PB팀장은 "고액자산가들이 최근 국내외 주식시장 약세장을 포트폴리오 조정기간으로 삼아 금이나 달러를 늘리고 있다"면서 "특히 실물 금은 자산시장 조정기마다 든든하다며 골드바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소액투자자들 중심인 시중은행 골드뱅킹(금 통장) 잔액도 꾸준히 증가세다. 현재 금 통장 가입은 KB국민, 신한, 우리은행에서만 가능하다. 0.01g 단위로 적립식 매수가 가능하다.
3곳 기준으로 금 통장 잔액은 이달 22일 현재 5714억원이다. 이 잔액은 2018년 8월 말 5090억원에서 작년 8월 말 7136억원으로 계속해서 늘어났다.
올해 꾸준히 금리가 오르면서 금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다.
은행 예적금은 금리 인상에 따라 이자가 높아져 인기가 높아지는 반면 금은 별도의 이자나 일부 고배당주처럼 배당 수익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실물 금이나 금 간접 투자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본부장은 "금리가 올라가면 금값이 떨어져야 정상인데 이는 명목금리만 봤을 때이고,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선 금값이 강세를 띨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질금리는 은행예금 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수치인데 최근 예금금리 뛰는 폭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르고 있어 마이너스 폭이 깊어지고 있다.
김 본부장은 이어 "요즘과 같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금값이 더 뛰어야 하는데 금 표시 자산인 달러가 워낙 오른 데다 비트코인 등 금 대체재가 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많이 오르지 못했다"며 "금값은 당분간 강보합세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금리,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우려 등 불확실성이 커지자 금으로 도피하는 모습은 개인투자자에 앞서 각국 중앙은행이 작년에 먼저 보여주기도 했다.
세계금협회(WGC)와 금융권에 따르면 싱가포르 중앙은행은 2021년에 26t을 늘려 같은 해 연말 기준 금 154t을 보유 중이다. 싱가포르의 금 보유량 확대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싱가포르를 포함한 전 세계 중앙은행의 2021년 상반기 금 매입량은 333t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간(2016~2020년) 상반기 평균 매입량보다 39% 많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2021년 유동성으로 인해 주식시장이 좋을 때 각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해 금 매입을 늘리기 시작했다"며 "주식이나 코인은 변동성이 너무 큰 반면 금은 변동폭이 낮아 주요 기관들이 금을 늘리는 이유"라고 전했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금 공급 감소도 금값의 강세를 예상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WGC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금 공급량은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9.5%를 차지했다. 금 투자 방법은 골드바와 같은 실물을 직접 사거나 골드뱅킹(금 통장)이나 금 신탁 계좌 개설, KRX금시장이나 ETF 등 간접 투자 방식으로 나뉜다. 금 실물은 상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골드바를 살 때 부가가치세를 10% 내야 한다. 구입처에 따라 수수료(약 6%)도 떼가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이와 달리 저렴하게 금을 살 수 있는 방법으로는 KRX금시장이 꼽힌다. KRX금시장에 상장된 종목은 1㎏ 골드바와 100g 골드바 등 두 가지다. 모두 1g 단위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7만원대의 소액 투자가 가능하다.
증권사 온라인 거래시스템을 통해 거래하면 0.3% 내외의 저렴한 수수료로 매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은행 골드뱅킹(수수료 1% 수준)에 비해 저렴하다.
올해 상반기 일평균 KRX금 거래량은 111.7㎏이다. 저렴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입소문으로 2020년 상반기(105.6㎏) 이후 금 거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