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다가 가슴이 몽글몽글해져서 끄적여봅니다.
아주 예전에 회사 다닐때 일입니다. 여초 회사였는데 신입 남직원이 들어왔어요.
슬림하고 적당한 키, 짙은 쌍꺼풀에 웃으면 반달이 되는 눈,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가진 아직 소년미가 남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색한 정장을 입은 첫 출근 날에 환영 회식을 했는데 신입은 직원들 옆자리를 한 칸씩 돌며 인사하고 소주를 한잔씩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제 옆으로 왔을 때 신입은 이미 취해 셔츠 단추를 한개 풀고 단정했던 넥타이가 느슨해져 있었고
"제가 한잔 따라 드릴게요. 누나~" 하며 촛점없는 반달 눈웃음을 날리며 술을 따라주는데
누나라는 말이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내가 늙어보인다는 말이구나 싶어서...
딱 서른이 됐을 때고 연애를 안한 지 오래되어 '이제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나보다' 생각되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있었는데 누나라는 말이 결정타가 되어 자존감이 심연을 뚫을 지경이었습니다.
신입 남직원은 회사의 3~50대 유부녀 직원의 관심과 귀여움의 대상이었고
유부녀 직원들이 자식같아 그런다. 동생 같아 그런다 하며 집에서 간식을 싸다 주기도 하고 돌아가며 아침에 차를 한잔 타다 자리에 갖다 주는게 일상이었어요.
신입에게 관심이 없는 직원들은 유난떠는 직원들을 못마땅하게도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유부녀들의 지루한 직장생활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콧소리를 담아 "류~~" 이렇게 부르며 오전 업무 시작 전에 주변에 모여들어 스몰토크를 하고 흩어지는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말 수가 워낙 없어서 유부녀 직원들이 떠드는게 다였지만...
신입직원은 제자리 파티션 맞은 편 빈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파워내향인인 저와 말 수없는 그는 일주일이 넘어도 한 마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습니다.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소리만 났는데 가끔 덜렁이인 제가 의자에 앉을 때 무릎이 책상 서랍에 부딪혀 작게 '쿵' 소리가 나고 "아"하고 낮은 데시벨로 단발적인 소리를 낼 때만 적막이 깨졌습니다.
어느날도 출근해서 자리에 가방을 던지고 앉는데 여느 때처럼 서랍에 무릎을 부딪쳤고
그 순간 앞자리에 앉은 신입이 저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도 무릎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파티션을 두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그 뒤로 신입을 의식하게 되어 앉을 때 무릎이 책상에 부딪치지 않게 조심조심 앉게 되었어요.
그 이후 문서 작업을 하는데 파티션 뒤로 가끔 눈이 마주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데 초점은 나에게로 향해 있는 그런 느낌.
단순하디 단순한 머릿 속에 물음표로 가득해지고 직장생활에 살짝 지장을 받을 때쯤
친한 친구에게 상황을 얘기했더니
"네가 연애고자가 된 것 같구나. 너무 오래 연애를 쉬어서 그래.
그렇게 어린 잘생이가 너한테 관심이 왜 있냐. 직장 내에 어리고 예쁜 애들이 널렸는데.
그리고 관심이 있으면 같이 근무한 지 한달이 되도록 말 한마디 안건다는게 말이나 되냐 신경끄고 일이나 잘해라."
하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맞는 말이라 머릿속의 작은소용돌이는 금방 꺼지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있는듯 없는 듯 조용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체육대회 날이 되었습니다.
여직원들도 남직원들과 같이 끼어 축구, 줄넘기, 배구등을 하거나 뒤에서 응원을 하는데 운동신경이 1도 없는데다 소심파워내향인인 저는 벤치에 앉아 동료와 수다만 떨었습니다.
간간히 직원들이 코맹맹이 소리로 "류~ 화이팅!"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때 "어~ 어!" 소리와 함께 배구공이 퍽 소리를 내며 제 뒷통수에 맞았고 류~가 재빨리 뛰어와 배구공을 주워들었습니다. 제 머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다시 네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다음 종목은 축구
직원들이 역시 류~가 젊어서 잘달린다고 경기를 관람하는데 여전히 저는 벤치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어요.
"어~어!"소리와 함께 내 등에 박히는 축구공.
"공이 자석이 붙었나 포로리만 따라다니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공이 오는 것도 모르냐." 축구하던 직원들의 걱정어린 핀잔 속에 이목이 집중된게 수치스러워 아픈 것도 모르고 얼굴이 시뻘개져 있는데
류~가 뛰어와 공만 가지고 가버렸어요.
괜찮냐고 물을 법도 한데.
일단 여기까지 적을게요.
이야기가 생각보다 기네요.
첫댓글 다음편 올려주세요 ~~
와우. 잼있어요!!!
글 잘쓰시네요. 인터넷 소설 읽는 기분이에요.
잘읽었어요~~ 다행이 위에 벌써2가 있네요ㅎㅎ
남자분 일부러 그러신거 아니에요??? ㅎㅎㅎ
다음편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