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인류
호모 에렉투스 250만년전 설,200만년전 설. 아프리카 에서 시작 200만년 전 이동 시작
호모 하빌리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현생인류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
7만년 전 이동 시작: how to eat, sex, survive
4만년 전 한반도 도착
한국문화의 원류
한국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란 광범위하게 정의하여 한 집단의 생활방식의 총체를 말한다
그런데 현대에서 한국문화라고 하면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고체계를 말하게 될것이다. 문화는 집단간에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그것은 문화의 기원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환경에 적응하는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는 오늘날 한반도 그 주변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또는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행위양식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양식은 오랜 세월동안 누적되면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문화의 원류를 다루는 것은 간단하지가 않은 것이다.
문화는 정지해 있는것이 아니며 지리적으로 공간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며 또는 시간적으로 자체적으로 변화한다. 한 지역의 문화는 집단이 이동하면서 가져온 것 일 수도 있고 주민의 접촉에 의해 파급될 수 있는 것이며 또는 주민들이 그 지역에 살면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문화의 형성과 집단의 형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화복합의 주체는 집단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한국문화의 주체로서 한국인이 존재하는 것이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는 그 연유와 관계없이 한국문화가 되는 것이다.
문화의 주체, 문화의 정체,백의민족은 단일민족인가?
흔히 한국민족을 단일민족이라 하고 그를 강조하기 위해 백의민족이라 한다.
흰옷을 숭상하고 즐겨 입는 민족이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옷의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아마도 국난의 과정에서 더둑 강조된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말 속에는 혈연적으로 연결된 집단이라는 뜻이 있는데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집단과 혈연적 교류가 없는 또는 대단히 적은 집단이고 형성의 과정이 동일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데 민족의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혈연적인 배타성 또는 내부에서의 균질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한반도와 같이 주민의 이동이 많은 지역에서는 그러한 상정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민족의 정체에 대한 이해는 혈연적안 집단에서 출발하기 보다는 사회적이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집단의 동질성 인식에서 출발하여야 할것인데 이것은 바로 문화의 공유에서 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인 공동체에 대한 집단의 자의식이 집단을 정의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김부식이나 일연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저술할 때 고구려를 포함하여 "우리"의 범위를 설정한것이라던지 중궁에서 한반도와 그 북쪽 만주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동이나 예맥등을 동질시하여 구분한것이라던지 등등의 사회문화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오늘날 고구려 논쟁에서 우리가 확신할수 있는 것은 이러한 과거의 역사문화인식에서 이미 "우리"라는 정서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전자의 유입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시간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인 실체로서 사회문화적인 공동체로 유지된다고 하면 바로 민족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전자 풀은 다양하게 구성될 것이다.
백의민족은 한반도와 이 주변지역에서 오랫동안 문화를 나누고 살아 온 유전적으로 구분되는 집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의 기원과 진화
오늘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유전적인 특성은 대체로 북방 몽골로이드계통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그렇지만 미토콘드리아 D.N.A 비교를 통한 최근의 연구에서도 북방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조직적 항원합성과 면역 글로블린의 비교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확인된 바 있다.그런데 최근의 유전학적인 연구에서 남방적인 유전요소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전적으로 상당히 다른 집단이 한반도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주민의 기원을 연구하는데는 오늘날에 살고 있는 집단의 유전적인 특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과거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한반도 주민의 기원을 이해할때 흔히 제시되는 것이 북방 퉁구스계열인 예맥 족이다.
문제는 예맥이전의 주민과 이들의 관계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흔히 고아시아족이 이전에 존재하였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실체를 증명할 만한 체질인류학적인 자료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는 토질의 특성상 뼈가 보존될수가 없어서 과거의 유전적인 기록의 거의 없다.
그래서 민족의 형성이나 주민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는데는 결국 문화적인 변동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주요한 연구방법이라 할 것이며 문화변동에서도 커다란 문화변동에서는 유전자의 구성을 변화시킬수 있는 대규모의 주민의 이동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류의 기원과 한반도로의 확산의 과정
인류는 동아프리카에서 출현하였다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고인류학적인 연구성과이다.
약 700만년전에 동아프리카나 사하라의 한 지역에서 시작된 고인류는 수 백만년동안 아프리카에서 진화를 거듭하다가 호모단계에 와서 새로운 문화를 가지고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는 모험을 하게 된다. 이전의 오스테랄로피테쿠스는 이전의 환경 이외의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고 살기에는 지적능력이 부족하였던 단계의 고인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약 200만년 전 인류는 아프리카를 출발하여 동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150만년 전 쟈바에 살았던 쟈바인이 고인류의 흔적이다.
북경인은 50만년전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초기의 인류인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에렉투스는 오늘날의 현생인류와는 유전적인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현대인과 결부시키기에는 간단하지 않은 점이 있다.
오늘날 살고 있는 각 지역의 민족집단의 형성은 현생인류 단계에 와서 논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 단계에는 전 세계에 퍼져 살았을 것이나 역시 유전적으로 현생인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민족집단의 직접적인 계통에서는 논할 수 없다.
그래서 한반도의 부근에서 나타나는 호모 에렉투스 화석인류,북경인이나 남전인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화석인류 금우산인이나 평안도의 덕천인 등등의 화석인류는 민족집단의 형성을 이해하는데 별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현생인류는 아프리카에서 20만년전에 출현하였는데 약 7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고 이 시기 동안에 각지의 인종적인 특성이 형성되게 되었다.
물론 현생인류의 다양한 모습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지만 현생인류 단계에서 형성된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현생인류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적어도 4만년 전에는 도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이 시기에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보이는 현생인류의 화석은 이전 단계의 고인류와 비교할 때 많은 편으로 초기 단계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 용곡동인이며 구석기 시대 말기의 것으로서 만달인이나 승리산인이 있다. 만달인의 경우 세석인구석기 문화와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이 두 고인류는 북한에서 조선인본토기원설의 증거로 사용하는 고인류이다.
이 두 고인류의 특징이 현생 조선인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여 조선이집단이 구석기시대부터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이 주장의 이면에는 평양중심설이 자리 잡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문화와 그 기원
구석기시대는 사람들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가장 오래된 인류문화시기를 말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250만년 전에 시작되지만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이보다 늦은 시기이며 호모집단은 이미 도구를 사용하는 고인류 단계이므로 어떤 지역이던지 간에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반도에 구석기 문화가 유입된것은 대체로 50만년 전으로 보지만 북한에서는 100만년 전으로 주장하고 있다.검은모루 동굴의 유적을 증거로 들어서 말하는데 이 유적에서 인류의 증거에 대한 논란이 있고 연대에 대해서도 아직 불충분한 점이 있다.
현재로서 연대가 비교적 확실한 구석기 유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전곡리 유적인데 이 유적에서는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전곡리를 비롯한 전기나 중기로 구분되는 한반도의 구석기 유적 중에서 여러 지점에서 전곡리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한 주먹도끼가 발견되고 있는데 초기 구석기 유적의 특성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주먹도끼는 아프리카와 유럽지역에서만 있다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전곡리에서 발견됨으로서 구석기시대 주민의 이동에 관한 논쟁이 재연된 바 있다.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른 진화과정을 거친 것으로 생각하는 학다들과 동일한 진화가 확산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 사이의 논쟁이다. 그러나 주먹도끼의 공작과정이 복잡하고 또한 문화적으로 정의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정도의 문화를 생물학적 유전관계를 구분할 정도로 의미있는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도 있다. 주먹도끼는 고인류의 지적능력의 표상이 되기도 어렵거니와 특정인류의 고유한 문화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것이다.
후기구석기가 되면 석인, 즉 돌날 석기가 대표적인 석기제작 기술인데 이전의 석기제작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복잡한 석기제작기술이다. 이 석기문화는 동아시아지역에 4만년네서 3만년 전 사이에 확산되는데 현생인류의 화석들과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인간들이 종교나 미술같은 고급 사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집단간의 문화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기에 전국에 걸쳐서 이 석기문화가 보이는데 아직도 주변지역과의 문화적인 관계는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구석기문화와 비교하였을 경우에는 문화적인 연속성이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다른 형태의 석기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석기공작의 차이를 바로 종족집단의 차이로 보기에는 증거의 성격상 역시 불충분하다. 같은 집단이 다른 석기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기구석기 시대의 석인석기가 세석인 석기로 진화하게 되면 석기의 양식이 훨씬 복잡해지고 유적의 분포빈도도 훨씬 높아진다. 이 시기가 되면 지역적인 특성이 석기제작 기술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일부 학자들 간에는 민족집단의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세석인제작기법은 기술적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최초로 기계가 사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작과정이 다양하여 수 십가지의 종류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제작공정은 문화적인 특성일 수도 있고 동일한 집단에 의해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 형태의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간에 후기 구석기 후반에 이르면 지역적으로 문화내용이 구분되고 있고 이러한 구분은 결국 집단이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석기 문화의 기원과 주민의 기원
세석인공작 또는 세석인 문화는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되면서 신석기문화 즉 어로 중심의 문화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문화가 나타나게 된다.
한반도에서도 토기가 등장하면서 신석기시대로 접어 드는데 석기는 세석기 저통이 약간 지속되다가 마제석기로 바뀌게 된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빗살무늬토기가 보편적인데 이와는 다른 계통으로 보이는 융기문 토기가 전기에 나타난다. 빗살무늬토기는 일찍이 시베리아지역에 널리 알려진 토기로서 한반도에서 북구지역에 이른 광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그리고 이 토기는 황하유역의 채색토기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채색토기의 사용자들이 농경을 위주로 한데 비해 빗살무늬토기는 수렵어로 중심의 경제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문화적인 구분이 어느정도 유효한 것인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여하간에 한국의 신석기문화의 연원이 북방 시베리아와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신석기문화의 연원지로 바이칼이 지적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문화가 아무르강의 지류를 따라 남하하여 한국의 신석기문화가 되었다는 설이 일찌기 제기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신석기 토기 연구에서는 융기문 토기를 동해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과 한반도 그리고 연해주 지방에 공동의 신석기 문화가 있었고 이 지역의 토기가 일만년 전을 상회하는 세계 유수의 지역이기 때문에 신석기문화의 동해기원설을 제시하고 환동해문화권을 설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원 논쟁은 앞으로 많은 증거자료가 있어야 하겠지만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가 동서로 크게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해안과 남해안의 일부 지역에서는 초기에 아가리에 시문한 것을 중심으로 융기문 토기가 나타나는데 토기의 바닥이 납작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서해안 지역에서는 이러한 토기가 보이지 않고 전형적인 빗살문 토기가 등장하고 바닥이 둥글거나 첨저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상이한 토기문화는 빗살무늬 토기로 이행하지만 연원이 다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적어도 한반도 내에서는 서해안의 흐름과 동해안의 흐름이 있었다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주민을 고아시아족으로 구분하여 왔는데 현재 북방 시베리아나 동방 시베리아 지역에 살고 잇는 종족들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집단이다.그러나 한반도내에서 이러한 집단의 고인류학적 인 증거를 발견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점이며 실제로 증명하기도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읻.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아시아족 기원설이 보편적으로 회자되는 것은 결국 신석기시대의 문화의 유입이 이 지역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보는 생각이 많기 때문 일것이다.
1.선사시대의 전개
구석기
시기: 약 70만년전부터 혹은 1백만년전?
도구: 뗀석기, 뼈도구
경제: 사냥 채집 경제
주거: 동굴 바위그늘 강가의 막집
예술: 석회암이나 동물의 뼈 뿔등에 조각(사냥감의 번성을 비는주술적의미)
유적지; 덕천 상원 종성 연천 파주 청원 제천 공주 단양 등 *중원지방의 흥수아이
신석기
시기: 기원전 8천년전부터
도구; 간 석기, 토기(빗살무늬)
*빗살무늬 토기: 추운 지방의 수렵.어로인들의 토기(환북극권)
*채색토기:중국.이란.터키 등 남쪽의 농경인의 도구
무늬를 새기는 이유는 풍요를 비는 주술적 의미일것으로 추정
한반도 신석기의 빗살무늬 토기의 연대가 가장 빠른 이유???????
경제; 농경의 시작. 사냥.어로의 비중이 더 큼
주거: 강가,바닷가의 움집, 원형 혹은 사각형 바닥
사회; 정착생활, 씨족단위의 부족사회(족외혼),평등사회
예술; 흙으로 빚은 얼굴,동물모양 조각, 조개껍데기 가면,조개 목걸이 등
원시신앙;
애니미즘,영혼,조상 숭배, 샤머니즘,토테미즘의 출현
유적지; 만주, 한반도 전역
2.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청동기의 보급:
농업생산력 증대
사유재산의 발생
빈부격차,계급발생
정복전쟁의 발달:국가의 형성
군장국가의 출현
선돌과 고인돌
비파형 동검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첫댓글 오~ 교수님 더욱 자료가 많아졌네요 ^^*
ㅎㅎ 부영님 잘 지내죠?
엄청 잘지내고 있습니다.^^* 교수님 수업 또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