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미술] 폴란드 승리의 기억·자부심 고스란히…

[朱木]

[전쟁과 미술] 얀 마테이코의 ‘그룬발트 전투’(1878)

폴란드 승리의 기억·자부심 고스란히…

폴란드·리투아니아연합군 승리, 연극적 기법으로 생생하게 구현
식민지 조국에 대한 예술가 헌신, “조국에 대한 사랑·예술 별개 아냐”



캔버스에 유화, 426×987㎝, 폴란드 바르샤바국립미술관 소장

유럽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나라는 어디일까? 많은 학자들은 폴란드를 꼽는다.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도 비슷하고 그 때문에 여러 차례 나라를 빼앗긴 슬픈 역사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쇼팽(F. Chopin·1810~1849)이 “때로는 그저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내 절망을 피아노에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절규했던 것은 러시아에 나라를 빼앗긴 폴란드의 운명에서 그 자신 역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지난 5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된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에 유독 마음이 끌리는 이유도 그런 데 있다.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회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은 폴란드 화가 얀 마테이코(Jan Matejko·1838~1893)의 작품 ‘그룬발트 전투(Battle of Grunwald)’다. 높이 5m에 가로 10m나 되는 대작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역사상 가장 자부심을 갖고 언급하는 그룬발트 전투를 장엄한 역사화로 구현했다.

　그룬발트 전투는 1410년 폴란드와 이웃나라 리투아니아가 연합해 독일계 튜턴 기사단(Teuton Knights)을 무찌른 역사적 사건이다. 튜턴 기사단(이하 ‘기사단’)은 북부십자군운동을 주도한 무장 세력으로 지금의 독일 동부와 폴란드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분쟁은 종교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경제적 이익을 차지하기 위한 군사적 대립으로 악화됐다. 특히 폴란드 북부 강 하류의 부자 마을과 단치히와 같은 북해 무역도시가 문제였다. 이 지역을 빼앗길 경우 북해 방면의 무역루트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도 포기하기 힘들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실 간의 결혼동맹을 통해 사실상 연합세력이 됨으로써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세력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1410년 6월 두 세력 간의 휴전이 종료되는 시점을 기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하 ‘연합군’)은 3만9000여 명의 대군을 구성해 기사단의 수도인 마리엔부르크(Marienburg)를 향해 진군했다. 튜턴 기사단장 울리히(Ulrich von Jungingen)는 그들과 맞서기 위해 급히 군대를 결집시켜 드레벤츠(Drewenz) 강으로 향했다. 이 강을 중심으로 서로 견제하다 두 대군이 맞붙게 된 곳이 그룬발트 인근 평원이다.

　7월 15일, 그리 덥지는 않았지만 전투를 벌이기에는 더운 날씨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은 90여 개의 깃발 아래 3만9000여 명의 대군을 결집시켰다. 튜턴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프러시아 지역에서만 20여 개의 기사단이 출전했고, 이들에 동조하는 많은 서유럽 세력이 가세해 2만7000여 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했다. 수적으로는 연합군이 많았지만 전투력이나 무장에 있어 기사단에 비교할 수준이 못 됐다. 기사단의 중장갑 기병은 당시 유럽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했다. 돌이나 납탄을 발사할 수 있는 대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왼쪽에 폴란드 중갑기병을 배치하고 우측에는 리투아니아 경기병을 세웠다. 중앙에는 각종 동맹부대와 용병을 쐐기 모양으로 구성해 대기시켰다. 이에 비해 기사단은 가운데에 주력 기병을 배치해 상대의 정면을 돌파할 계획을 세웠다. 기사단이 아침부터 평원에 수비 대형을 구축하고 기다렸지만 연합군은 공격을 개시하지 않았다. 폴란드 국왕 야기에워는 기사단의 중갑부대가 더운 여름 날씨에 몇 시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전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급해진 울리히는 칼 두 자루를 보내 싸움을 독촉할 정도였다.

　전투는 연합군 좌측 리투아니아군의 공격으로 시작됐다. 한 시간가량 싸우다 리투아니아군이 후퇴하면서 전세는 기울어지는 듯했다. 후퇴하는 적을 쫓느라 기사단의 대형이 흐트러졌다. 연합군의 후퇴는 기만전술이었다.

　이 사이 기사단의 중갑기병이 폴란드의 오른쪽 측면을 집중공격하기 시작했다. 울리히의 중갑기병을 포함한 기사단의 주력이 거의 대부분 공격에 가담함으로써 전세는 급격히 기사단 쪽으로 기울어졌다. 폴란드 국왕의 깃발이 빼앗기고, 후위에 있던 국왕의 눈앞까지 기사단이 들이닥쳤다. 기사단의 승리가 눈앞에 왔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후퇴했던 리투아니아 기병이 합세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만다. 연합군이 수적 우위를 이용해 기사단을 포위해버린 것이다. 포위를 뚫기 위해 분전하던 기사단장 울리히마저 죽어버리자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연합군은 이 전투에서 적 8000여 명을 죽이고 1만2000여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이런 전투 장면들은 마테이코의 그림에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그림 왼쪽은 폴란드군이 기사단의 공격을 맞아 힘들게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오른쪽 언덕 위에서 측근들과 함께 있는 야기에워 왕이 기사의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다음 상황은 후퇴했던 리투아니아군이 돌아와 기사단을 포위해 공격함으로써 울리히가 죽게 되는 장면이다. 리투아니아 대공 뷔타우타스(Vytautas)가 큰 칼을 휘두르며 기사단을 공격하는 모습과 울리히가 죽는 장면이 극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전투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담았다. 그림 왼쪽은 풍차 주변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캠프로 후퇴한 기사단이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처절하게 쓰러져가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마테이코는 전장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나타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폭 10ｍ의 장대한 작품 속에 역사의 인물과 장면을 가능한 한 많이 보여주고자 했다.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이들의 역할과 헌신을 기필코 기억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소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웅장함과 스토리의 생생함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그에게 미술은 단순한 시각적 재현이 아니다. 그는 “예술(미술)은 일종의 무기”라고 말했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예술을 별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식민지 폴란드에서 살았던 한 예술가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간주돼야 할 것이다. 폴란드의 민족적 자부심과 승리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작품이 더욱 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①캠프에서의 마지막 전투

캠프로 밀려간 튜턴기사단이 벌인 최후의 항전이다. 평원전투에서 패한 그들은 캠프로 후퇴해 마차로 둥글게 임시 성채를 만들고 결사 저항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성채가 뚫리면서 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②리투아니아 군대의 상징

네모난 홈에 삼지창을 꽂은 모양의 문양은 리투아니아의 상징으로 ‘게디미나스의 기둥(Column of Gediminas)’으로 불린다. 연원은 불확실하나 14세기 이후 리투아니아 기사들의 의복이나 방패에 즐겨 사용됐다.

③전투의 중심 뷔타우타스

총지휘관은 폴란드 왕 야기에워였지만 전장에서 군대를 이끌고 직접 싸운 것은 리투아니아의 뷔타우타스였다. 작가는 폴란드인이었지만 양국 연합을 강조하기 위해 그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독특한 모양의 방패를 들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④성 스타니슬라우스의 현신

폴란드의 수호성인 성 스타니슬라우스(St. Stanislaus)는 12세기 폴란드 출신 주교였으나 당시 이교도 국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작가는 폴란드 성인을 등장시켜 폴란드가 중심임을 강조했다.

⑤전투를 지휘하는 폴란드 국왕 야기에워

야기에워는 전투의 총지휘를 맡았지만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다. 튜턴기사단의 공격으로 국왕이 직접 공격을 당하는 상황까지 몰렸으나 측근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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