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가 OTT에 있기에 오랜만에 다시 봤습니다.
다시 보니 행간에 숨은 의미가 정말 많은 영화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감상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고, 생각이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일단 짧은 버전을 올립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신다는 전제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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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에 담긴 의미를 포착하여 넓은 시야를 열어주는 영화/소설/연극이 좋은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양연화>는 좋은 영화다.
욕망과 제도의 갈등은 문화권마다, 또 같은 문화권 내에서 개인마다 스펙트럼의 차이가 크다. 따라서 그 타협의 산물인 가족의 모습도 가지가지.
1962년 홍콩.
중국이 공산화된 후 많은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밀려들었다. 혹은 자유를 찾아, 혹은 돈을 벌기 위해.
홍콩은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개인적 등 여러 면에서 자유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본토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지닌 전통적 도덕 관습 또한 엄연히 살아 있는 곳이었다. 먹는 것, 입는 것은 금방 바뀔 수 있어도 생각, 즉 이데올로기는 가장 늦게 바뀐다.
그래서 1962년 홍콩은 서양식 자유와 중국 전통의 도덕관이 어울려 스텝이 어긋난 월츠를 추는 곳이었다. 냇 킹 콜의 달콤 쌉싸롭한 노래처럼.
여기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갈등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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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왜 갑자기 싱가포르로 가요?
남: 환경을 바꾸고 싶어요. 뒷말 들리지 않게요.
여: 우리만 아니면 된 거 아닌가요?
남: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신경 안 썼어요. 그들처럼은 안 될 거라 생각했죠. . . 근데 아니었어요. . .
당신은 남편을 떠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떠나려고요.
여: 날 정말 좋아할 줄 몰랐어요.
남: 나도 몰랐어요. . . 두 사람의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알게 됐어요.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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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감정이라는 것은 딱히 어떤 합리적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불행은 그 연애가 결혼 후에, 그것도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배우자의 불륜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그 불행이 불행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가 헤어진 그 기간은 쓰라리지만 달콤했던, 달콤했지만 쓰라렸던, 그들의 인생의 가장 빛나던 나날, 즉 화양연화다. 냇 킹 콜의 노래처럼.
두 사람은 당대 풍습에 따라 (아마도 중매로) 결혼은 했지만 진짜 연애는 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각자의 배우자가 도대체 왜 상대방에게 끌렸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알고 싶어 해서 서로 연극과 같은 관계를 시작했고, 그러다가 상대방에 정말로 끌리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각자의 배우자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평화를 찾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에 이는 풍랑이 더 커지게 된다. 그것이 인생의 역설이기도 하다.
모든 일이 다 지나간 후 앙코프와트의 나무 구멍에 속마음을 털어놓고 흙으로 메우는 차우도 옛날 사람이다.
앙코르와트. 인간이 만든 유적을 나무가 뒤덮고 있는 곳이다.
대자연의 시각에서 보면 주인공 남녀의 연애는 한낱 먼지와 같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앙코르와트의 유적처럼 빛바랜 추억이다.
그러나 그 추억을 술자리의 가십으로 털어놓지 않고 가슴 깊이 묻어 두었다가 마침내 고대 유적지에 장사 지내듯 묻는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퇴색되지 않는 보석 같은 감정 중 하나다.
그를 지켜보는 동자승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아직 남녀간 애정의 애틋함과 쓰라림을 모르는 동자승의 천진함과 그 시절을 뒤로 한 중년 남자의 대비.
삶은 그렇게 순환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5CeAnCo8nI&t=15s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5.29 20:4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5.29 20:45
첫댓글 실제 두 남녀 주인공도 정분 나서 불륜 아닌 불륜? 스캔들
그랬었나요? 저 그 여주 외모 매우 좋아함..남주는 별로임,,
두 사람이 사귀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잘 모르겠네요.
@호중유천 오래 전에 어디선가 긴 기사로 읽었는데 나무위키에는 불륜 루머로만 나오네요. 유가령이 아니라고 부인했다네요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
갑자기 뒤돌아봐집니다
앞으로 만들어가시면 되지요.^^
저는 아직이예요.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요렇게 살다 그냥 갈 수도 있겠지만요 ^^
@바늘한개 앞으로 올 찬란한 화양연화를 위하여!
@호중유천 감솨합니다..~~
너무 와닿는 단어네요~
내인생의 화양연화~
감사합니다~
되돌아보게 해주셔서 ^^
지나간 화양연화도 있지만 앞으로 올 날을 화양연화로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사는 게 더 즐겁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도 두번을 봤네요
한번은 우연히 개봉시에 시간맞아본거라서
아무생각없이ᆢ
몇년뒤 많은분들의
감상평에
다시
티비로~^^
화양연화
제목이 참 인상적인영화죠
2000년도에 개봉한 영화이니 벌써 이십 여 년이 지났네요.
중간에 몇 번 다시 보기는 했지만 최근 다시 보니 예전에 못 봤거나 봤더라도 잊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르더군요.
@호중유천 맞아요 오래전 영화들이
지금보다
꽤 좋았던것들이
많은것
같아요
추억의명화들~
다시보면 안보이던것들이
보이고 기억나지않아
생소한부분도
있던데
감정선이 섬세하죠
창피한 이야기지만, 저 영화 개봉 당시에 저는 영화를 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나중에 '화양연화' 라는 이름을 음식점 이름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냥 음식점 주인이 별 뜻 없이 대충 멋있어 보이는 한자를 모아 가게 이름을 지었나보다 생각했었지요. (사실 지금까지도 이 영화는 보진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생의 전성기' 같은 그런 뉘앙스더군요. 꽤 좋은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와도 맥락이 닿을 만한 좋은 한자어라는 생각입니다.
화양연화는 사실 예전부터 쓰이던 표현은 아니고 20세기 중반에 나온 노래 제목에서 유래된 표현입니다. <화양적연화>(花陽的年華)라는 노래인데 영화 중에도 실제로 나옵니다.
노래의 내용은 중국이 일본의 침략과 국공내전으로 혼란스럽던 시기를 안타까워하며 그 이전 시절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남녀간 또는 부부간의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인데 벨 에포크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제 최애 영화 중 하나에요 코로나때 재개봉해서 다시 봤는데 역시 다시 봐도 좋더군요 중경삼림에서 보고 첫눈에 반한 양조위가 나와서 본 영화인데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장면 하나 하나 참 인상적이었어요 흐르던 음악들도 어쩜 그리 어울리던지... 안보신 분들 꼭 보셔요^^
배우들의 절제된 동작과 대사, 미묘한 표정 변화로 많은 것을 암시하는 연기가 참 좋더군요. 음악도 물론.
글을 읽다 보니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나네요.
다리의 유래도 그렇고 배경도 영상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내내 곱씹은 영화인데
결론적으로 보면 불륜인지라... 바라보는 시선이 참 애매했던...
클리튼 이스트우드의 그 눈빛에 반해서 지금까지 팬이기도 해요.
<화양연화>도 꽤 인상 깊은 영화였어요. 유난스럽지 않아서 더 좋았던 거 같아요.
곧 유월입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소설로 보고 영화는 안 봤습니다만 여성 팬들이 많더군요.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는 실망한 적이 별로 없죠.
<화양연화>에 대한 좀 긴 버전의 평을 조금 전에 올렸으니 시간 나실 때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