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연대미상의 고전소설 [심청전]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의 핵심은 효 사상이다. 심청전과 비슷한 이야기들은 인도(전동자 설화) 일본(소야희)에도 있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효녀 지은 설화]와도 유사하다. 고대로부터 전해져오는 비슷한 이야기가 판소리 열두마당 중 하나인 [심청가]로 정착되었고 그것이 소설화 된 것이 [심청전]이다. 이야기들은 전해져 내려오면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윤리나 도덕에 맞게 변형 각색된다.
임필성 감독이 직접 각색한 [마당 뺑덕]은 고전소설 [심청전]의 현대적 비틀기를 통해 동시대 대중들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각색의 핵심은 효 사상이 아닌, 복수다. [심청전] 속의 플롯은 크게 개안설화, 처녀희생설화, 영웅설화의 세 갈래로 나눠볼 수 있는데, 임필성 감독은 이 중에서 처녀희생설화의 핵심을 끄집어내 그것의 비틀기를 통해 내러티브를 끌고 나간다. 처녀희생설화는 순수한 피를 절대적 권력에게 희생해야만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녀 희생은 현대적 의미의 변형을 통해 남녀 개인간의 치정극으로 탈바꿈된다.
심학규(정우성)는 대학교수지만 불미스러운 오해에 휘말려 지방 소도시로 내려가 문화센터 강사를 하며 지내다가 한 여자를 만난다. 덕이(이솜)는 퇴락한 놀이공원 매표소 직원인데, 무미건조한 일상에 신물이 나 있다가 학규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학규에게 덕이는 일시적 쾌락의 대상이다. 학규가 복직이 되고 서울로 돌아가면서 버림받은 덕이는 8년후 작가로 명성을 얻은 학규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다. 학규는 눈이 안보이는 병에 걸려 세정이라는 이름의 옆집 여자가 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학규의 딸 청이(박소영)는 엄마의 자살이 학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에 반항한다. 학규와 청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서서히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복수를 꿈꾸는 덕이.
임필성 감독은 고전 [심청전]에서 뼈대를 가져와 현대적 욕망의 스펙트럼으로 이야기를 변형시켜 치정극으로 바꿔놓았다. 학규와 덕이가 처음 만나서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전반부의 이야기는 신선하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감독은 서두르면서 불친절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배신, 복수, 파국의 구조를 갖는 일반적 치정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담 뺑덕]의 후반부는 상상력의 빈약함과 대중의 욕망에 영합하는 자세에서 기인한 것이어서 실망스럽다.
김대우 감독이 [방자전]에서 몽룡과 향단이 아닌, 방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것처럼, [마당 뺑덕]에서도 심청이 아닌 심학규를 화두로 내러티브를 전개한 것은 고전의 현대적 비틀기를 통한 대중적 교감을 확보하려는 시도였으나, 각색 과정에서 버림받은 여자의 복수라는 낯익은 주제의 선정과 치밀하지 못한 세부전략으로 많은 허점을 노출시킨다.
그러나 심학규역의 정우성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분수령을 이룰 수 있는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덕이역의 신인 이솜 역시 성과 속이 공존하는 미묘한 캐릭터를 통해 천박함과 성스러움을 오가며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매혹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하이힐을 신고 학규와 정사하는 장면은, 덕이가 갖고 있는 무료함과 일상탈출의 욕망을 짜릿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