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촬영 : 잔디밭산악회 김종국 대장
1999년 12월20일
전국을 냉동시킨 한파는 강원 내륙지방에 영하 15도로 올 겨울 최저 기온이라 일기예보에 모두들 만반에 준비를 갖추고 한계령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매서운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 제키며 우리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우리에 발목을 잡는다. 백두대간 1차팀에서 완주를 한 김포에 조광옥씨를 포함한 8명은 6시20분 한계루를 지나 대청봉을 향한다.
예상 한대로 눈이 많이 쌓여 있지는 않지만 미끄러워 서로 안전을 다짐하며 바윗길을 오른다. 다행히 북서풍에 바람은 등을 밀어 주고 사면을 통과할 때는 바람을 막아 준다. 계속 가파르게 이어지던 오르막은 1,307봉을 지나면서 내리막으로 변하고 빙판으로 변한 바윗길은 모두에게 힘들게 한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 샘터가 있는 야영지를 뒤로 급경사에 오르막을 밧줄에 매달려 올라서니 어느새 붉은 태양이 설악에 아침을 열고 있었다. 7시 50분 서북능 갈림길에 올라 한겨울 흰눈이 덮인 찬란한 설악의 아침은 너무나 아름다워 모두를 할말을 잃은 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구름 한점없는 맑은 날에 그렇게 불어 제기던 바람도 서서히 잦아지고 어서 오라 손짓하는 중청봉을 향한다. 빙판 길이지만 양호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전망 좋은 바위에 오를 때마다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보며 자연의 풍요로움에 또 한번 젖어 들어본다. 암봉과 낭떠러지, 바위와 소나무의 어울림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끝청봉에 오르고 다시 중청봉을 지나 1시20분 중청산장에 도착한다. 영하 22도를 기록한 대청에 아침은 정오를 지나면서 영하 14.5도를 가리킨다. 컵라면에 점심 식사는 꿀맛 같다. 중청산장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대청봉에 오른다.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동쪽으로 속초 시가지와 동해바다, 서쪽으로 오늘 걸어온 서북능선의 귀떼기청봉을 지나 안산과 언제 보아도 좋은 가리봉, 남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점봉산을 지나고 멀리 하늘금을 그은 오대산까지 봉봉들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끝이 없다. 북으로 힘차게 뻗어 나간 공룡능선, 천화대능선, 범봉 그리고 울산바위, 마등봉을 지나 황철봉은 겨울 설악에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바람을 피해 양지에 모여 앉아 꿈같은 대청봉에서 1시간을 보내고 산장에서 밤을 맞는다. 바람은 점점 거세게 불고 기온은 급강하 하는 것 같다.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지만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다.
12월 21일
새벽에 일어나 보니 그렇게 불어 제키던 바람은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바람한점 없는 맑은 날씨에 중청위에 금세기 마지막 보름달이 걸려 있다. 5시 20분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산장 문을 나선다. 중청 넘어로 달은 숨어 버려 깜깜한 어둠 속으로 우둑 솟은 대청봉을 향해 오른다.
대청봉 정상 못미처 철조망을 넘어 희운각산장으로 이어진 대간길은 비탈길에 눈이 쌓여 손전등도 끄고 가는 나에게는 고난에 연속이었다. 미끄러지기 여러 차례 힘들게 희운각산장에 내려서니 주위가 밝아 온다. 마음을 가다듬고 신선대로 향한다. 다행히 바윗길에 눈이 없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바위에 매달리며 올라 신선대에 서니 수십 미터 벼랑길에 공포감을 주지만 한겨울 설악에 아름다움을 다시한번 만끽할 수 있다.
신선대에서 사면길을 내려서고 다시 바윗길은 오르내림으로 이어진다. 천화대로 내려설 수 있는 능선 분기점을 지나 계곡 사이로 바라보는 울산바위는 한 폭에 그림과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1275봉을 오르는 오르막길은 바윗길에 얼음이 얼어 있어 빙판 길을 피해 가며 어렵게 안부에 올라서니 천막 안에서 얼굴을 내미는 털보, 지나는 등산객에게 차 한잔으로 추위를 달래준단다. 잠시 휴식을 하고 마등령을 향하는 능선길에는 대청봉과 중청봉을 지나 귀떼기청봉과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의 장쾌한 능선이 떠날 줄 모른다. 지난여름 올랐던 용아능선의 침봉들도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나한봉에서 내려다보는 설악의 수많은 바위산들이 뼈를 내보이며 크고 작게, 높고 낮게, 날카롭거나 둥글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적나 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채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제와는 달리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는 추위를 대비해 입었던 덧옷들을 하나씩 벗게 하고 나한봉에서 마등령으로 내려서는 너덜길엔 눈이 쌓여 미끄러웠다.
마등령을 지나 마등봉에 올라 설악에 중간에 서서 걸어온 공룡능선과 작별하며 미시령을 향한다. 작은 너덜지대로 시작한 능선길은 잡목숲으로 이어지다가 1249.5봉이 가까워지면서 커다란 바위가 포개진 너덜길로 바뀐다. 저항령을 내려서는 너덜길은 아예 주저앉아 힘겹게 내려선다. 한차례 곤욕을 치르고 다시 황철봉을 향하는 오르막도 역시 너덜길이 이어지고 숨을 몰아쉬며 올라선 봉우리에서 쉴 새도 없이 미시령을 향한다.
1318.8봉을 지나면서 이어지는 내리막 너덜길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어둡기 전에 내려서야 한다는 생각에 힘든 것도 참으며 내려서니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달이 밝아 손전등 없이 걸을 수가 있었다.
멀리 미시령 휴게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에 힘은 점점 빠지고 온몸은 천근같지만 힘겹게 한 구간을 해낸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끼며 미시령으로 내려선다,
첫댓글 수명산님!
20여년 전 12월 말 한겨울에 한계령부터 설악산 대청봉을 거쳐 공룡능선을 종주하신 멋지고 귀한 영상을 즐감하였습니다 ~
저도 한 때 겨울 산행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던 추억을 회상하게 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지나고 나면 다 추억거리가 되지요. 가끔은 그 시절을 뒤돌아보며 보는 영상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