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유명해지고, 오직 그것만 기억되는 예술가가 종종 등장하는데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1890년 이탈리아, 작곡가를 꿈꾸던 음악교사 피에트로 마스카니는 한 음악출판사의 오페라 공모전에 이 작품을 제출하여 입상한다. 출판사가 모든 비용을 대고 무대에 올려주는 것이 부상이었고, 마스카니는 이 작품으로 단박에 유명세를 탄다.
특히 극중에 나오는 아름답지만 비극의 씨앗을 담고 있는 간주곡이 유명해서,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클래식 팬이 아니고 이 오페라 공연을 본 적이 없는 한국 사람마저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곡이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Q2D6AIys8
“시골의 기사도” 정도로 번역되는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치정극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극의 내용과 아름다운 간주곡 및 아리아가 약간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음악과 노래가 아름답기 때문에 극중 사건이 오히려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주인공 젊은이 투리두는 작은 여관을 경영하는 홀어머니와 살다가 군대에 다녀온다. 다녀와 보니 군대에 가기 전 사귀었던 롤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상태다. 하는 수 없이 자기를 따라다니던 순진한 아가씨 산투짜와 사귀게 된다.
그런데 투리두는 롤라를 잊지 못하고 있었고 롤라 역시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지라 두 사람은 롤라의 남편 몰래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가 극의 시작)
상황을 알고 있는 산투짜는 애가 타서 투리두가 롤라를 만나러 갔을 때 그를 찾아 다니기도 하고, 그를 만났을 때 원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산투짜는 왜 바람둥이 투리두를 포기하지 못할까? 대본에는 그 이유가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줄거리만 읽었을 때는 산투짜를 집착이 심한 여자로 오해할 수 있다.
어떤 연출가는 그녀가 임신한 것으로 상정하고 연출하기도 한다. 즉, 혼전 임신이다. 가톨릭이 생활의 모든 면을 지배하던 19세기 시칠리아 시골 마을에서 혼인 임신은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마을 사람들이나 성당의 사제가 그녀를 차갑게 대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된다.
물론 대사 중에는 그녀의 임신을 가리키는 말이 전혀 없고, 그녀가 간간이 배를 쓰다듬는 모습 등으로 표현된다.
마차를 모는 직업을 가진 롤라의 남편은 일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기 때문에 아내가 투리두와 몰래 만나고 있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러다가 산투짜가 홧김에 롤라의 남편에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곧 후회한다), 그는 분노와 질투심에 투리두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분쟁이 생겼을 때 결투(칼 또는 총)로 해결하는 관습은 19세기 후반 쯤 되면 거의 사라졌지만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에서는 아직 남아 있었고, 그 결과 투리두는 목숨을 잃게 된다.
유명한 간주곡은 두 사람의 결투가 벌어지기 직전, 그러니까 극의 말미에 등장한다.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숨고르기를 하는 듯한 이 곡은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을 암시하는 긴장감을 담고 있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오페라는 오페라 베리스모(verismo)의 거의 효시격으로 알려져 있다. 베리스모는 ‘사실주의’ 정도로 번역되는데, 그 전 시대의 오페라가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 등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고, 까르멘 등 평민을 다루더라도 낭만적으로 묘사했던 것에 비해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골의 평민이 주인공이고 내용도 낭만적인 면이 거의 제거된 일상의 사실적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이는 동시대 작가 에밀 졸라 등의 자연주의 소설과 궤를 같이 하고,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를 그린 푸치니의 <라 보엠>도 이 계열에 속한다.
극의 내용을 베리스모의 관점에서 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면, 당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찾아볼 수 있다. 극의 시간적 배경은 부활절인데, 예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 정작 사제들과 마을 주민들은 가련한 산투짜를 차갑게 대한다. 비록 혼전임신이라는 멍에를 쓰기는 했으나, 아이를 혼자 가진 것도 아닌데 투리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산투짜만 여자라는 이유로 배척되는 것은, 관용의 정신을 잊고 관습의 틀만 남은 가톨릭을 꼬집는 것이 아닐까. (가톨릭catholic은 ‘폭이 넓다’는 뜻.)
한 시간 남짓 짧은 공연이라 유튜브에도 여러 공연이 올라와 있는데, 그 중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공연이 볼만 하다. 특히 한국인 테너 이용훈이 주인공 투리두로 출연하고 있는데 두말할 나위 없이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etIW7G8svQ&t=1670s
첫댓글 자세한 내용 잘 들었습니다ᆢ
저는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ㆍ
많이 들었어요
https://youtu.be/YcN3CO8xc0k?si=2BBcADCXsRQk3B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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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도 유명하죠. 마을 사람들이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축제를 맞은 흥겨움이 잘 묻어나 있지요.
@호중유천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ᆢ
들으면서 항상 오렌지향기가 날리는 풍경을 많이 그려보곤 했는데 ᆢ이태리갔을땐 겨울이라 못보고 스페인때 5월말 ᆢ철이라 진짜 거리에 오렌지 나무에~~ 탐스런 오렌지가 주렁주렁 ᆢ
땅에 떨어져 굴러 다녀도 줍는 사람도 없고 ᆢ
참 심쿵했네요 ㅎㅎ;;
@하잉푹 저도 겨울에 스페인 가니 가로수로 오렌지가 많이 보이고 열매도 탐스럽게 달려 있던데, 가로수용은 품종이 달라서 맛이 없답니다. 그래서 아무도 따가지 않는다고.^^
잘 들었습니다. 너무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하는 일 하나를 오늘 마감 일이라 7시경에 끝내고, 지금 홀가분하고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긴 시간 음악을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경우 오페라는 전시간 집중 못하고 특정 유명한 아리아만 귀에 들어오던데,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꽤 통속적인 편인가 봅니다. 모든 가수의 목소리와 노래가 귀에 들어오네요
다행입니다. 가끔 이런 긴 곡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평온해지지요.
이 이야기를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비슷한 내용으로 다른 오페라가 있는걸까요?
롤라는 세상 나쁜 여인이고, 산투짜는 가엽기 그지 없네요.
임신을 혼자 한 것도 아닌데 예나 지금이나 왜 여자들만 비난을 받아야 하는건지.
첫번째 영상 속 시골풍경은 한폭의 그림같아요.
광활하고 색이 풍부한 환경.
그래서 유럽에 예술가가 많은가 생각이 듭니다.
혹시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일까요? 이 오페라도 치정때문에 친구 사이인 오네긴과 렌스키가 결투하고 렌스키가 죽습니다. 렌스키의 아리아가 유독 유명한..
https://youtu.be/gtrpkRHv42Y?si=9VYfznUZXh5Wxw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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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그미! 어떻게 찾으셨어요? 대단하세요!!
이 작품 역시 치정극 이군요.
안그래도 질문댓글을 올려놓고 저도 찾아보고 있었어요.
치정이 오페라에서 다루기 좋은 소재일까요?
몇개가 주루룩 나오더라구요.
이 밤에 덕분에 귀가 호강합니다.^^
고맙습니다.
@궁그미! 예브게니 오네긴도 유명하지요. 영화로도 몇 번 제작되었고요.
@냉홍차 예나 지금이나 오페라건 소설이건 드라마건 남녀간의 치정은 대중의 흥미를 돋구는 소재지요.
얼마나 깊이 있게 그렸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지만.
사진 속 풍경은 투스카니라고 되어 있는데 프랑스 남부도 비슷하지 않나요?
저는 대학생 때 로마, 나폴리, 폼페이 정도만 주마간산격으로 돌아봤는데, 다시 가면 투스카니 같은 시골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냉홍차 2017년 팬텀싱어 2에 출연했던 조민웅 테너가 렌스키의 아리아를 불러서 엄청 주목 받았습니다.
저는 이 아리아가 아프도록 아름다워서 당연히 렌스키가 주인공이겠거니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푸쉬킨 원작,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타이틀을 단 오페라,
주인공은 오네긴이더라고요
저렇게 처연한 노래를 읊은 렌스키가 너무 불쌍해서 ....오네긴을 꽤 미워했습니다 ;;
@궁그미! 아, 그렇군요.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서 몰랐습니다.
극중에서 오네긴은 사실 한량이죠.^^
@호중유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역을 자동차로 여행한 적이 있어요.
특유의 뜨거운 태양 아래 포도밭.
와인이 유명하다 해서 바리바리 사들고 왔어요.^^
물론 저.혼.자. 다 마셨답니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일 드 프랑스)만 벗어나면 다 저런 모습이에요.
의외로 프랑스가 온통 시골이더군요.
축복받은 평야 위의 한가로운 소들, 말들.
넓은 대지 위의 낮은 하늘.
참 아름답지요.
@궁그미! 외국에 거주하기에 팬덤싱어 영상(카카오티비)은 볼수 없게 되어 있어서 대신 유튜브의 영상을 찾아보고 있어요.
팬덤싱어는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같은 곡을 부르는 영상이 있네요.
심지 있는 목소리, 호소력 있는 아름다운 목소리에요.
오늘 귀호강 하는 날이네요.
고맙습니다.^^
@냉홍차 프랑스 남부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럴 거라 짐작했습니다.
프랑스도 한국 못지 않게 경제의 수도권 집중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관광객에게는 보기 좋은 풍경이지만 거기 사는 농민들은 경제적으로 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호중유천 제가 보기엔 프랑스야말로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 하죠.
저의 파리사람들의 첫 인상은 초라하다 였어요.
타고난 골격이 멋있어서 옷 맵시가 좋을 뿐 가까이서 보면 낡고 보풀 가득한 검은 외투로 몸을 감싼 젊은이들.
낡은 가방에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 장신구와 화려한 네일을 한 아줌마들.
다들 화려하고 잘 살 것 같지만 실제는 검소함과 궁상의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들 많아요.
제가 살 때도 농민들이 데모 많이 했어요.
우유를 도로에 쏟아 버리거나 고속도로를 소떼를 끌고 나와 막아 버리거나요.
농민들도 살기 힘들 거예요.
@냉홍차 그렇군요. 어느 나라든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