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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세계 교육평가시험에서 뒤떨어지자 2008년 전국학력평가고사(NAPLAN)를 도입해 매년 3, 5, 7, 9학년 학생들에게 시행하고 있다. 읽기, 쓰기, 수리, 영어 등 4개 분야에 걸쳐 기본 수학능력을 측정한다. 수리를 빼면 거의 문자 능력의 측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도 시험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고, 일부 교육학자와 교사, 부모들은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와중에 전 연방 노동당 당수 마크 레이섬이 아시아 부모의 자녀 교육방법 찬양으로 호주 교육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시아 학생들의 뛰어난 성적 향상 속에 특히 호주 서민층 자녀들은 날로 뒤처지고 있다. 그래서 호주 부모 모두는 아시아 부모들의 소위 '호랑이식' 자녀 교육방법을 본받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실제 서민층 자녀보다 부유층 지역의 자녀가 훨씬 월등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 이유는 호주 부유층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고 학교가 학생들의 성적과 행동을 다 책임지기 때문이다. 작은딸이 법대를 마치고 호주의 톱 5에 들어가는 한 법률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그 회사에 들어온 학생들의 출신 학교, 부모의 직업, 사는 지역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한다. 명문 사립학교와 셀렉티브 공립학교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의 부모들은 이미 명망 있는 법률회사에 다니거나 다른 높은 직위에 있다고 했다. 지역은 대부분 노스 시드니 지역이고 유일하게 스트라스필드에 사는 한 학생, 웨스턴 시드니 지역에 사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했다. 이 같은 지역, 사립∙공립교육, 그에 따른 교육결과의 양극화에 우려를 표시하고 모든 청소년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도록 정부 정책과 예산 편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아시아식 대 호주식 교육에 차이점과 그에 따른 장∙단점이 있다. 호주에 와서 느낀 점은 호주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을 학교에 맡기면서 깊이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호주는 주로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자녀 교육의 책임을 비싼 학비를 주고 학교에 맡기는 것 같다. 공부 외에 다른 교외활동, 스포츠 등을 중요시하고 아이들과 논쟁적 대화를 주로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특히 교사 위주의 전통 수업방식(Didactic)으로 가르치면 교사가 누구인지 학생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수업이 산만하게 된다. 중등교사를 하다가 주로 아시아 학생이 많은 영어학원에서 일하기로 한 대부분 랭귀지 선생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생 행동지도가 싫어 교사직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부모가 특히 엄마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교에 관여하기보다는 열심히 사교육에다 교육을 맡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녀 공부에 헌신을 다하지만 시험을 통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많다(Test- oriented, Merit-focused education). 호주 부모들은 개인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하고 서민층의 절반 이상이 이혼하는 와중에서 자녀의 교육이 그들 인생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는 개념은 별로 없다.
레이섬의 발언은 부모나 학교가 자녀의 지식습득에 대해 어느 정도 관여하는 지와도 연결된다. 대인관계의 기본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적당히 지켜볼 때(Distance)와 관심(Contact or Intimacy)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는 기술이다. 아시아식으로 공부를 간섭하고 지시하면 자녀가 더 하기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호주식으로 방치하다보면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하게 된다. 요점은 공부를 시키는 동기 목적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공부는 마음을 수련하는 중요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봐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놀이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수학은 학습지를 주문하든지 만들든지 해서 규칙적으로 하게 한다든가 영어는 책을 많이 읽게 해서 저절로 단어 쓰기 표현들을 늘리게 한다든지 등이 그것이다. 또 공부는 자녀의 소질을 개발할 수 있는 한 도구로 봐야 한다. 시험을 잘 보고 못 보는 것은 저절로 부차적이어야 한다. 공부가 시험을 위한 공부라면 결국 창의력과 흥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교육 목적을 인성 개발의 전인교육이나 전문인 양성이냐에 따라 레이섬의 발언은 다르게 분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녀교육이라면 주로 행동(Soft, Interpersonal skills)과 지식교육(Hard, Technical skills)으로 나눌 수 있다. 베토벤 아버지 식으로 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법정 스님 식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자녀의 성향, 성장단계, 부모의 가치기준, 교육의 목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전통적 아시아식 교육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남편이다. 시어머니는 교육에 열성이 남달라 남편에게 열심히 공부를 시킨 사람이고, 그 결과 남편은 수석으로만 달렸다. 운동은 물론 일절 다른 활동에도 참석하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니 대인관계의 기술을 거의 개발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20년, 호주에서 10년을 직장생활 한 뒤 컴퓨터 책은 머리가 아파 읽기조차 싫어하고 더이상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지시받기 싫다면서 결국 55세에 은퇴했다. 육체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어 오로지 조용히 집에 있고 싶어 했다. 소위 탈진(Burnout)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