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사람의 모태(母胎)이다. 사람은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단지 나고 죽는 것만이 아니라 일분일초라도 사람은 자연과 관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사람과 자연의 긴밀한 관계는 숨쉬고 먹고 배설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숨'과 '밥'과 '똥'은 서로 연관되면서 순환하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형태이다. 동물이 산소를 들이쉬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면,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여 탄수화물로 만들어내고 산소를 내뱉는다. 여기에서 식물이 저장한 탄수화물은 동물의 먹이가 된다. 동물의 먹이는 배설물로 나오고 배설물은 다시 흙을 살찌워 식물들의 영양소가 된다.
이렇듯 사람의 배설물은 오염원(汚染源)이 아니라 바로 생태순환의 중요한 고리이며 자연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인간의 무한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생산력주의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에너지수탈(과잉소비)과 더불어 자연의 생태순환을 가로막고 있다. 물질문화를 강조하는 서구적인 가치체계가 현대사회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인간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식도 반생태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탈농업화 경향으로 흙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배설물을 혐오하게 되었고 눈에 안 띄게, 냄새 안 나도록 멀리 보내는 방식에만 골몰해왔다. 그 결과로 등장한 '수세식'의 보급으로 인해 인간의 배설물은 생태순환고리에서 떨어져 오염원으로 작용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미래의 인류사회에서 지구의 생태환경은 인류의 존망을 가르는 결정요소라는 점에서 볼 때 인간의 배설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글은 사람의 똥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생태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오늘날의 화장실 문화가 다시금 생태성을 회복하여 생태순환의 원리에 따르도록 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복합오염의 주범 수세식 화장실
현대문명의 발명품 중에서 중요도로 따지자면 열 손가락 중에서 결코 빠질 수 없다는 수세식 화장실은 인류 문명의 발달로 인해 도시화와 인구폭증이 시작되면서 불가피하게 파생된 발명품으로 흔히 이해되고 있다. 사람의 배설과 그 처리문제가 문명 발생 이전에는 생태순환의 법칙에 따라 자연으로 되돌리면 그만이었으나 문명 발생 이후에는 도시화·인구과밀화가 불가피해지면서 배설물과 그에 대한 처리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섰기 때문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수세식 화장실의 원리를 내놓음으로써 일단 그 해결책을 갈무리 지은 듯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수세식 화장실이 보여주는 외형적 깨끗함만큼, 그 운용체계가 깨끗하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영화제목 대로 최상의 문명산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세식은 겉보기와 달리 생태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세식 변기에 대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다 보면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나, "수세식 변기를 통해 빠져나간 분뇨가 제대로 정화되어 나가는 걸까?" 하는 생각들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들이 그대로 현실화되어 나타난 '물 낭비'와 '수질오염'이라는 수세식의 이중적 오염형태를 '복합오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세식 화장실이 구조적으로 갖고 있는 복합오염의 실상은 어느 정도일까?
수세식 화장실은 분뇨를 처리하는 데 약 50여 배 이상의 엄청난 물을 소비한다. 수세식 화장실 사용에 대한 1994년 건설기술연구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남자는 대변이 1일 평균 1.09회, 소변은 6.58회이고, 여자의 경우 대변 0.77회, 소변 5.17회로 나타났다. 일반가정에서 1회 사용시 물 사용량은 13∼19ℓ이니 남녀평균 하루 물 사용량은 108ℓ라는 수치가 나온다. 한사람의 분뇨처리에 1.8ℓ짜리 병 60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물의 지나친 소비는 궁극적으로 세계인구의 약 40%가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는 형편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수세식 화장실의 또 다른 문제는 오염이다. 분뇨는 정화조에 들어가 희석되어 하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말끔히 정화·위생 처리된 물이 아니라 희석액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법적 산소요구량인 10∼20ppm(종말처리장이 있는 곳은 20ppm, 상수원보호지역은 10ppm)의 희석액이라지만, 대장균 덩어리인 분뇨가 오히려 물에 섞임으로써 이를 분해 발효시키는 박테리아가 공기로부터 차단되어 죽어버리고 수인성(水因性) 질병의 병원균들을 더욱 번성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소량의 분뇨를 멀리 보내기 위해 동원된 50배의 깨끗한 물은 병원균의 온상이 되는 오수로 변한다. 세계위생기구의 실험결과에 의하면 정화조를 통해 나온 희석수 1㏄에 자그마치 43만 마리의 대장균이 득실거리고 있다고 한다. 이 희석수는 다시 하수관을 통해 두 배가 넘는 다른 생활하수를 오염시켜 도시의 하수는 온통 병원균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음식과 똥의 분리는 생태적 재앙
전통 뒷간은 자연계의 생태적 순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농촌이 우리 사회의 중심기반이었던 시절, 뒷간에 쌓인 분뇨를 천연퇴비로 활용하고 다시 이 퇴비로 키운 채소가 우리의 식탁에 오름으로써 <음식→똥→거름→음식>이라는 생태계의 가장 기본적인 순환법칙이 그대로 적용됐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오줌은 바깥에서 누어도 똥만은 참았다가 집에서 싸도록 했고 이를 어기면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도시화·과밀화·문명화를 통해 산업사회로 이전되면서 자연계의 생태적 순환은 심각하게 단절되기 시작했다. 현대문명의 부산물들은 대부분 자연으로부터 일탈되는 구조 속에 놓이면서 지구생태계는 위기를 맞게 되었고 이로부터 환경문제, 생태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생태순환 단절의 첫 번째 원인이 바로 음식과 똥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수세식 화장실에 있다. 수세식 화장실은 <음식→똥→거름→음식>이라는 전통적인 자연순환법칙을 파괴하고 <음식→똥→희석액→하천방류>라는 일방적인 투기로 그 처리방향을 정했다. 이러한 수세식 화장실의 반생태성은 인류역사에 수세식 변기가 출현한 그 사회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수세식의 역사는 영국의 런던에서 비롯된다. 중세시대에 런던이 점차 도시화되면서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공간이 비좁아지자 복층(復層)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하기 전이라 2층 이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요강을 사용해야만 했다. 유럽의 요강은 '크로스 스토루'라는 의자형 요강이었는데 소변용인 우리 요강과 달리 똥오줌을 다 처리하는 변기였다. 요강이 차면 하수구나 길거리에 버렸는데 일일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분뇨처리를 하는 것이 불편하자 점차 창문 밖으로 내버리기 시작했다. 14세기 무렵 거리의 분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영국법률로 분뇨의 창밖 투척을 금지시켰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이렇듯 중세 유럽도시의 위생상태는 최악이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대비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늘날 신사숙녀의 패션차림들이 사실은 똥오줌의 창밖 투척에 따른 대비책으로 고안된 것들이었다. 분뇨가 거리에 뒤범벅되자 여성들은 정장을 하고 외출할 때 옷자락에 묻지 않도록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것이 하이힐의 원조가 되었고, 공중변소가 없어 여인네들이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드레스가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이탈리아 망토와 높은 모자도 창밖 투척으로부터 의복과 머리 보호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가장 결정타가 된 것은 17세기에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라는 전염병이었다. 분뇨의 무단투척에서 비롯된 위생문제가 급기야 전 유럽인들을 죽음의 공포로 떨게 했다.
이러한 문제에 심각성을 느낀 사람들 중 존 헤링턴이라는 사람이 1596년 수세식 변기를 처음으로 발명했다. 그 뒤 밭이랑 모양의 파이프로 물이 뚜껑역할을 하여 똥냄새가 나지 않도록 개량된 '밸브 클로셋'이라고 하는 수세식 변기가 1775년 커밍스에 의해 발명되었고, 1865년 런던의 하수도가 뚫리기 시작하면서 수세식 변기는 계속 개량되다가 드디어 1889년 보스텔에 의해 오늘날의 수세식 변기와 거의 닮은 '워시 다운'형 변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수세식 변기의 등장과 개량은 중세유럽의 도시화와 그에 따른 도시 위생의 심각성이 주원인이었다. 즉 수세식은 분뇨의 처리를 생태순환 원리에 의거하지 않고 문명의 이기를 통해 분뇨를 도시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강과 바다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중세유럽의 사회 역사적 조건에서 나온 수세식 화장실의 본질은 분뇨의 하천투척에 있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다운 스트림(down stream)의 오염과 수자원의 고갈은 우리 생태계를 위협하는 요소로 제기되고 있다.
현대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도시화·과밀화·문명화는 자연의 생태순환과정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가? 도시화에 의해 똥거름의 용도가 없어지고, 과밀화로 인해 똥을 순환처리 할 여유공간이 줄었으며, 문명화를 통해 상하수도가 보급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하면서 음식↔똥의 생태적 순환고리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또한 도시화·과밀화·문명화는 현대의 농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즉 천연퇴비가 아닌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다수확 농법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화학비료로 자란 농작물은 내성이 부족해서 필연적으로 농약을 쓰지 않으면 병충해 방제가 매우 어려워진다. 농약을 친 경작지에는 미생물의 활동이 저해되어 또다시 화학비료에 의존하여 농작물에 필요한 영양분을 인위적으로 제공해줘야 하는 악순환을 걷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과다하고 불필요한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토양이 오염되고 수질의 부영양화까지 일으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먹기만 하고 똥쌀 방도가 여의치 않은 변비문화 속에서 생태적 순환에 의거하는 재래식 뒷간에 대한 연구와 현대적 채용방안이 새롭게 모색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뒷간문화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화장실을 '측간'(相間) 또는 '뒷간'이라고 불렀는데 경상도에서는 '정랑'이라고도 불렀다. 뒷간이라고 부른 것은 화장실이 살림채에 있지 않고 뒷마당에 따로 별채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뒷간이란 말 자체가 외딴 공간에 따로 둔다는 뜻인데 그러면 왜 조상들은 뒷간을 따로 떼어놓아 세웠을까? 언뜻 당연한 듯하지만 밤중에 볼일 보러 일어나 깜깜한 밤중에 마당을 거쳐간다는 것이 조상님이나 우리나 귀찮고 무섭긴 마찬가지일 게다. 하지만 뒷간의 인분이 부패 발효되는 과정에서는 메탄, 질소, 암모니아 가스가 많이 발생되는데 이러한 가스를 원활하게 배출시켜 냄새를 없애려면 뒷간의 위치는 통풍이 잘 되는 곳이어야 한다. 통풍이 잘 되어야만 인분 속에 있는 미생물에게 산소를 공급해주어 발효활동이 더욱 빨라지는 것이다. 통풍이 잘 되게 하면 그만큼 냄새도 노출되니 살림채와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데 특히 음식 만드는 '정지'(부엌)와는 더더욱 멀리해야 했다.
이렇듯 부엌과 뒷간의 공간분리는 통풍성을 좋게 하고 냄새를 분리하며 위생보건과 미생물발효를 촉진하는 다중효과를 갖는다. 공간분리는 이러한 효과 외에도 텃밭에 똥거름을 뿌리기 편한 공간으로 뒷간을 배치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절의 해우소(解憂所) 같은 경우에도 채마밭과 연결되어 있으며 일반서민의 뒷간도 대부분 텃밭과 연결해서 인분처리가 쉽도록 했다. 논밭과 뒷간 사이의 거리가 멀 때는 동장군이나 오줌장군을 지게에 지고 날라 뿌렸으니 '거름을 낸다'는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뒷간의 공간분리로 인해 야밤에 볼일을 보려면 별도보고 달도 보고 바람도 쐬며 풀벌레 우는소리를 듣는 운치도 오직 뒷간만이 갖는 장점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여인네, 어린이들은 야밤의 뒷간 출입이 불편하기 때문에 쓰는 임시용 변기가 바로 요강이니, 요강을 야호(夜壺:밤에 쓰는 단지)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렇듯 뒷간이 떨어진 의미는 그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 나름대로 상당한 과학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형법 중에는 "棄灰者 丈三十, 棄糞者 丈五十(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삼십대에 처하고,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 오십대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어 재와 똥은 반드시 생태순환의 법칙에 따라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이 당시의 도덕률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꾼이 없는 집의 분뇨나 도시의 분뇨를 퍼 가는 대가로 사례를 했던 걸 보더라도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인분이 매우 귀중한 재원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뒷간은 지역과 생활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 내려온다. 우선 강원도 등 산골지역이나 섬지역에 많이 띄는 것이 바로 잿간이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나온 재를 보관하는 잿간 한 켠에다 볼일을 보는 발판을 놓고 뒷간을 겸했는데 볼일을 본 뒤 잿간에 쌓아둔 재와 왕겨를 뿌린 후 삽으로 떠서 잿간 한쪽에 던져 쌓아둔 후 퇴비로 숙성시켜 썼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찰에는 산비탈에 자리한 해우소(解憂所)라는 독특한 뒷간이 있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의 억불숭유 정책으로 산중 깊숙이 자리하게 되는 사찰은 산속 계곡에 자리잡은 비탈과 둔덕을 개간하여 텃밭을 일구고 여기에 거름을 주어 일 년 먹을 채소를 구했다. 산사의 해우소는 이러한 텃밭에 뿌릴 퇴비의 생산처였는데 비탈 위에 설치하여 하단부에 위치한 채마밭과 자연스레 연결시켜 거름을 꺼내 쓰도록 처리했다.
대부분의 농가에선 이와 달리 푸세식이 가장 많았다. 난방용·취사용 연료라고는 나무밖에 없는 옛 시절에는 땔감이 부족하고 재가 귀해서 서민들은 오죽하면 취사와 난방 겸용이 아닌 난방용으로만 장작을 때는 불을 '군불'('군'이란 '불필요한'이라는 뜻)이라 부를 정도였다. 이렇게 재는 적고 인분거름은 많이 필요했던 일반농가에서는 재와 왕겨를 이용한 인분의 발효처리가 마땅치 않아 인분을 손쉽고 빨리 거름화 하는 푸세식이 널리 애용되었다. 그런데 푸세식의 경우 오줌과 똥을 따로 받지 않으면 구더기도 많이 생길뿐더러 수분이 많아 산소공급이 원활치 못해 호기성 활동이 아닌 혐기성 활동이 많아져 불완전 발효가 됨으로써 냄새가 많이 나고 거름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수분도 많아져서 분뇨에 있는 비료성분이 저장통 주변으로 많이 유실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뒷간의 입구에 오줌통을 따로 놓아 똥과 오줌을 원천적으로 분리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따로 받아놓은 오줌은 질소성분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탄질비(탄소와 질소의 비율이며 낮을수록 빨리 썩음)가 매우 낮다. 그래서 가을철 낙엽이나 볏짚 등 탄질비가 높은 것들을 모아놓은 !
퇴비더미에다 밤새 요강에 모아둔 오줌을 뿌리면 탄질비가 낮아져서 훨씬 빨리 썩는다. 퇴비의 수분조절용으로 오줌이 최고인 것은 바로 이렇게 탄질비를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지리산의 깊은 산골에는 일명 '똥돼지간'이 있었다. 뒷간의 아랫부분에는 돼지우리가 있고 2층으로 된 누각에 올라가 볼일을 보는데, 뒷간 안에는 기다란 장대가 있어 볼일을 볼 때 돼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배고픈 돼지가 돌진하는 사태(?)도 막고 인분세례를 맞은 돼지가 몸을 흔들기라도 하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깊은 산중에 이런 똥돼지간이 있었던 것은 집 주변에 뱀의 출입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돼지의 두꺼운 지방살로 인해 어떠한 독도 혈관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데다가 돼지는 뱀을 매우 잘 먹었기 때문이다. 또한 산골에선 사료가 충분치 않아 인분을 사료로 활용하기도 했으니 똥돼지간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분뇨가 거름되는 생태원리
뒷간의 생태적 순환원리는 똥이 거름으로 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인체의 배설물이 뜨거운 대지, 공기가 잘 통하는 곳,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놓이면 자연분해 되어 나중에 가루가 되어 날려버리는 이치와 같다.
동물의 사체, 분뇨, 낙엽 등 유기폐기물은 흙 속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는데 이러한 미생물들이 먹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유기폐기물은 해체(분해)되어 자연생물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유·무기질을 생산해낸다. 흙 속에 사는 토양미생물 중 사람의 분뇨를 해체하는 주역이 바로 박테리아다. 이들 박테리아는 인간과 같이 공기중의 산소를 호흡하는 호기성(好氣性) 박테리아와 화합물에 들어있는 산소를 얻어 살아가는 혐기성(嫌氣性) 박테리아로 나눈다. 쉽게 말해 공기를 좋아하는 호기성과 싫어하는 혐기성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똥(糞)에서는 호기성 박테리아의 활동이 왕성하며 오줌(尿)에는 혐기성 박테리아의 활동이 왕성할 수밖에 없다.
호기성 박테리아는 다른 토양 미생물과 함께 인체에서 배설된 똥을 먹이 삼아 활동을 한다. 이들은 똥 속의 영양분을 먹고 부숙(腐熟)하는 과정에서 산화(발효)와 더불어 열을 발생시킨다. 만약 1000g의 똥을 싸면 호기성 박테리아가 먹어치워 부숙시키면서 95%는 산화돼 가스와 함께 열로 날아가고, 5%인 50g만 발효찌꺼기(compost)로 남는다. 컴포스트라 불리는 이 박테리아의 배설물은 이미 똥의 성질이 완전히 없어진 부식토로서 식물들을 키우는 최고의 거름이 된다. 한편 수분으로 인해 공기유입이 안 되는 오줌 속에는 호기성 박테리아는 살 수 없고 혐기성 박테리아가 활동하게 되는데 이들은 오줌 속에 있는 영양분과 세균을 잡아먹으면서 열을 발생시키고 혐기성 발효를 한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수분은 증발하고 남아있는 발효오줌은 색이 점점 짙어지는데 이 물은 오줌이 아니라 질소와 염분이 조금 들어있는 전혀 성격이 다른 물로 변성된다. 이렇게 변성된 오줌 액비(液肥)는 엽채류 채소에게 최상의 비료가 된다.
분뇨가 발효·부패되어 변성된 비료성분은 질소, 인산, 칼리의 3요소를 모두 함유하고 있다. 질소는 잎과 줄기의 성장을 촉진하며 인산은 뿌리의 성장을 도와서 성숙을 촉진시키며 식물의 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다. 칼리는 식물번성과 목질부를 튼튼히 하는 역할을 하며 병예방도 된다. 그런데 똥거름의 비료성분은 비록 화학비료보다 모자라지만, 똥거름에는 이러한 비료가치 외에 토양개량제로서 가치가 있어 매우 좋다. 수분 함유량이 높은 똥거름 액비의 경우에도 양분이 수분에 의해 용해되어 있기 때문에 토양에 깊이 들어가 흙 속의 고형질을 균등하게 배분하여 주는 작용도 한다.
볼일을 본 뒤에 재나 왕겨, 톱밥 등을 뿌려주는 데에도 나름의 과학적 원리가 배어있다. 똥이 쌓이면 속에 있는 호기성 박테리아는 산소부족으로 활동이 더뎌진다. 똥을 싼 다음 왕겨나 톱밥을 넣어주는 것은 바로 똥 속에서 분해활동을 하는 호기성 박테리아에게 산소를 공급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용도로 쓰이는 왕겨나 굵은 톱밥, 잘게 썬 짚, 대팻밥 같은 것들을 '통기성 매질(通氣性 媒質)'이라 부른다.
이 통기성 매질은 탄질비가 높아 분뇨 사이에 쉽게 썩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어 계속 바깥 산소를 공급해주는 매개역할을 하며 동시에 미생물들의 먹이가 된다. 또한 통기성 매질은 분뇨의 높은 염류를 희석시켜주는 희석제 역할도 하며 분뇨에 부족한 미세한 무기질도 공급해준다. 무기질은 퇴비에 필요한 방선균, 미생물, 지렁이의 배설물 등에 안정성을 준다. 통기성 매질은 분뇨의 수분을 빨아들여 분뇨의 함수율(含水率)을 낮춤으로써 분뇨더미 내에 다공(多孔)을 형성시켜 산소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보습력(保濕力)이 강화되니 박테리아 활동의 최적 조건을 만들어준다. 게다가 배설물의 표면을 차단시키기 때문에 보온효과 및 냄새를 없애고 날벌레의 활동을 막는 역할도 한다. 이렇듯 호기성 발효에 의해 부숙된 똥은 퇴비(compost)가 되는데 이 퇴비의 주성분인 후민산(酸)은 흙과 결합하여 안정적인 부식물(腐蝕物)로 된다. 이 부식물은 양분을 서서히 방출하므로 수년간에 걸쳐 작물에 필요한 비료분(肥料分)을 축적할 뿐 아니라 토양의 수분온도 등을 조절한다든지 퇴비의 성숙을 촉진한다든지 한다.
재를 똥에 뿌리는 것은 재의 강한 알칼리 성분 때문에 똥 속의 병원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고 해충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을 한다. 또한 재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고 재를 운반, 저장하기 쉽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의 칼리 성분이 분뇨 속의 질소 성분을 잃게 할 우려가 있다하여 톱밥이나 왕겨, 부엽토 등 다른 통기성 매질과 함께 섞어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재(灰)의 성분은 식물의 목질부를 튼튼히 하고 병충해를 막는 구실을 하기에 똥거름과 함께 훌륭한 거름거리가 되는 것이다. 통기성 매질과 재를 똥에 뿌리는 데에는 이렇듯 모두 과학적 원리가 배어있는 것이다.
생태적 뒷간의 사례
푸세식형 뒷간
경기도 포천의 김준권 씨 뒷간은 생태적 뒷간의 대표적인 사례인데 뒷간의 생태순환적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푸세식 뒷간이 갖는 단점들을 개선하였다.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분뇨통을 뒷간 안에 하나, 바깥에 하나를 묻어놓고 두 개의 통 윗부분에 연결 파이프를 이었다. 그래서 뒷간 안의 분뇨통이 거의 차게 되면 이 연결파이프를 통해 분뇨물이 바깥통으로 흘러나가게 해놓은 것이다. 바깥통이 꽉 차면 퍼내어 별도의 통에 일정기간 보관하면서 발효를 시켰다가 거름으로 쓴다. 변기는 나무의자로 직접 만들어서 수세식 좌변기처럼 하였다. 분뇨는 관을 통해 바로 밑에 묻어놓은 저장통으로 들어가는데 내려가는 관 중간에 원형의 마개를 달아놓아 통 속의 분뇨가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분뇨 탱크와 마개 사이에 가스배출기를 달아 냄새를 뽑아 올리도록 하였다. 주변에서 주운 폐목으로 뒷간의 바닥과 벽면을 처리하여 청결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벽면 중간에는 선반을 매달아 커다란 참숯 두 개를 올려놓아 냄새 흡착을 꾀한 점이 눈에 띈다.
전북 부안의 정경식 씨 뒷간은 두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사람이 볼일을 보는 곳이고 옆의 하나는 똥을 퍼내는 곳이다. 이 두 공간은 나뉘어져 있으면서도 맨 밑부분에 지름이 5∼6㎝정도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볼일을 보는 곳의 분뇨통에 담긴 분뇨가 시간이 지나면서 부숙(腐熟)이 되면 액비 상태로 변하는데 이 액비는 구멍을 통해 퍼내는 곳, 분뇨통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두 개의 통에 있는 분뇨의 수위는 중력작용으로 인해 크게 차이나지 않아 발효·부숙된 액비를 퍼내면 옆 칸의 분뇨통에 있는 액비가 또 구멍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식이 된다. 이렇게 숙성된 액비는 이웃들에게 인기가 있어 필요한 사람들은 정경식 씨에게 부탁을 하여 퍼간다고 한다. 퍼내는 곳엔 똥바가지와 양동이가 몇 개 놓여 있다.
잿간형 뒷간
충남 예산의 이승석 씨는 1999년에 품앗이로 멋진 전통집을 한 채 지었는데 실내에 수세식 외에 마당 서쪽으로 뒷간을 하나 더 지었다. 앞서 설명한 해우소의 원리에 따라 우선 마당의 서쪽 끝 비탈 위에 정면 1층 뒷면 2층의 구조로 지었다. 비탈을 'ㄴ'자로 파고 그 벽면을 큰 돌과 진흙으로 두껍게 켜켜이 쌓았다. 뼈대는 비탈 바깥쪽으로는 H자로 굵은 기둥 두 개를 세우고 나머지 세면은 흙벽돌로 쌓았다. 뒷간 마루에는 나무로 깔았고 중앙에 직사각형의 구멍을 뚫었다. 아래층은 비탈 바깥쪽(정서쪽)을 열린 구조로 문을 열어놓아 분뇨가 햇볕도 받고 바람이 통하게 하여 자연 빛과 바람을 통한 발효가 이루어지도록 꾀했다. 위층의 뒷간 내부에는 조그만 책상을 두고 그 위에 얇은 책들을 놓아 볼일을 보면서 간단한 독서도 할 수 있도록 했고 정면에 창이 있어 서산의 풍광을 그대로 담아오도록 했으니 웬만한 수세식 화장실이 흉내낼 수 없는 멋이 배어있는 뒷간이라 하겠다.
생태적인 수세식 화장실
일반 가정집에서 많이 쓰는 현재의 수세식 변기의 경우 분뇨처리에 보통 약 10∼18ℓ의 물을 소모한다. 이러한 물낭비를 막기 위해 최근 개발된 '자동개폐식 변기'는 1회에 약 0.5ℓ 정도의 물만 있으면 변기에 모인 분을 깨끗이 처리할 수 있다. 요즘의 철도차량에 부착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이 변기의 특징은 차단밸브를 사용하여 악취를 막을 수 있으며 이중 보온장치가 있어 겨울철 사용에도 좋다고 한다.
자연발효 화장실
자연발효 화장실은 전통뒷간의 생태적 원리에 착안하여 그 발효기법을 현대식 화장실에 적용한 것이다. 자연발효식 화장실은 우선 자연발효방식에 따르면서도 수세식과 같은 모양의 좌변기를 놓는다던가 변기통과 저장탱크 등을 모두 발포우레탄을 씀으로써, 깔끔하고 견고하게 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완벽한 발효작용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재래식 뒷간이 갖는 여러 가지 문제 즉 냄새, 시각적 혐오감, 변기의 불편함 등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다만 수세식은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리지만 이 화장실은 이틀에 한 번 정도 통기성 매질을 한 바가지씩 넣어주는 것이 다르다. 분뇨는 아래 저장탱크에 들어가 박테리아의 활동에 의해 부식과 산화를 하고, 여기서 발생한 열과 가스는 배기팬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며 또한 배기팬을 통해 들어온 산소는 박테리아의 증식과 활동을 돕는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과 캐나다 등 서구에서 먼저 실용화한 이 자연발효식 화장실 시스템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점차 보급되고 있는데 자연발효의 전통적 원리에 따르면서도 뒷간이나 잿간이 갖는 약점들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러한 화장실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값비싼 설치비를 낮추는 문제가 아직은 남아있다.
이 밖에 변기 속이 드럼방식으로 처리된 생화학 변기가 있는데 아직 국산화가 덜 된 수입품이 많아 값이 비싸고 처리용량이 적으며 전기소모가 많아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섬이나 별장 등 특수지역에서만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한다. 아직은 연구와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새로운 뒷간문화를 위하여
지구의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날로 심각해지는 오늘날 우리들에겐 자연발효의 원리를 이용한 생태적 뒷간의 대중화는 매우 절실하다. 하지만 도시화 비율이 80%가 넘는 현실에서 현재의 수세식 화장실을 모두 생태적 뒷간으로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 대안이 되긴 어렵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뒷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우리의 재래 뒷간을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 아닌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의식이 중요하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우리의 뒷간문화를 올바르게 이해시킴으로써 자연을 사랑하고 소중히 하려는 의식을 높여야 한다. 뒷간처럼 좋은 환경교육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기관이나 유원지, 군부대, 학교 등의 공공장소에서 새로 지어야 하거나 개보수가 필요한 곳, 교육적 효과를 필요로 하는 곳부터 우선적으로 자연발효식 화장실을 설치하면 좋겠다. 설치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원리와 사용법을 널리 알려 사용자들이 올바르게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공공성을 띠는 곳부터 새로운 화장실 문화를 만들어나가면 우리의 뒷간문화, 화장실문화는 많이 변화할 것이다. 이후 자연발효식 뒷간을 점차 발전시켜 농가의 화장실, 마당 있는 도시근교 주택 등으로 차차 대중화시키면 된다.
또한 앞서 소개했듯이 생태적 뒷간을 지을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는 사람들은 적은 경비로 쉽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자신의 취향과 조건에 맞게 지으면 된다.
이미 수세식 화장실을 쓰고 있거나 주변 여건상 어쩔 수 없이 수세식을 쓰는 곳이라고 해서 이러한 생태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세식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실천에는 정화조에 유용미생물(EM)을 뿌려 물을 정화시키는 것이나 개숫물을 재활용해 수세식용 용수로 쓰는 방안, 변기통 안에 벽돌 넣기 등이 있을 것이다. 같은 수세식이라도 용수가 기존의 수세식보다 1/10밖에 소요되지 않는 초절수형 자동개폐식 변기나 저수압형 변기로 바꿔 사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천의지이다.
생태적 뒷간 만들기는 생태적 의식과 실천에 그 본질적 의미가 있다. 자연발효식이든 수세식이든 그 배설물은 결국 자연으로 되돌려지는 것이므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우리에게 똥은 더 이상 폐기물이 아닌 자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