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당송] : 루카 4,18 참조
주님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게 하셨다.
[본기도]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놀라운 은총으로 성 비오 사제를 성자의 십자가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의 사제 직무를 통하여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새롭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시어, 빛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
페르시아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명령에 따라 율법 학자 에즈라는 백성에게 법을 가르치고 판관과 행정관들을 세우려고 예루살렘으로 온다. 그는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이 이민족들과 혼인을 맺고 있는 현실을 보고 통탄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조상들의 죄를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다. 그들은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지니고 가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복음)
[제1독서] :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 에즈라기의 말씀입니다. 9,5-9 저녁 제사 때에 나 에즈라는 5 단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어진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쳐, 주 나의 하느님께 6 말씀드렸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 7 저희 조상 때부터 이날까지 저희는 큰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죄악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임금들과 사제들과 더불어 저희가 여러 나라 임금들과 칼에 넘겨지고, 포로살이와 약탈과 부끄러운 일을 당하도록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8 그러나 이제 잠깐이나마 주 하느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저희에게 생존자를 남겨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곳에 저희를 위하여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 눈을 비추시고, 종살이하는 저희를 조금이나마 되살려 주셨습니다. 9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토빗 13,2.3ㄷ-4.6ㅁㅂㅅㅇ.6ㅈㅊ.6ㅋㅌㅍ(◎ 1ㄴ)
◎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 그분은 벌을 내리시지만 자비를 베푸시고, 깊은 저승으로 내리기도 하시지만, 무서운 파멸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그분 손에서 벗어날 자 아무도 없으리라. ◎ ○ 그분은 너희를 민족들 사이로 흩으셨지만, 바로 거기에서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셨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앞에서 그분을 높이 받들어라. 그분은 우리 주님, 우리 아버지, 영원하신 우리 하느님이시다. ◎ ○ 이제 너희에게 베푸신 것을 보고, 소리 높여 그분을 찬양하여라. 의로우신 주님을 찬미하고, 영원하신 임금님을 높이 받들어라. ◎ ○ 나는 이 유배의 땅에서 그분을 찬양하고, 죄 많은 민족에게 그분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리라. ◎ ○ 죄인들아, 돌아와 그분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여라. 그분이 너희를 받아들이시어, 자비를 베푸시지 않겠느냐? ◎
[복음환호송] : 마르 1,15
◎ 알렐루야.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알렐루야.
[복 음]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복된 비오를 기리며 바치는 이 예물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을 드러내고, 저희를 위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이 이민족과 혼인을 맺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본 에즈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고는 저녁 제사 때까지 넋을 잃고 앉아 있다가(에즈 9,3 참조), 단식을 그치고 기도를 바쳤는데, 그 기도의 첫 부분이 오늘의 독서입니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 에즈라는 죄를 용서받고 나서도 다시 죄에 떨어지고 마는 이스라엘의 나약함을 고백하면서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돌아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범하고 그 결과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 다시 자애를 베푸시어 이제 유배지에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는 자기들을 용서해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다시 이민족과 결혼하여 조상들의 죄를 되풀이하고 있는 백성들을 위하여 에즈라는 뉘우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합니다. 물론 에즈라가 이런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는 하느님 앞에 더 이상 드릴 말씀도 면목도 없음을 잘 알면서도, 백성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를 들고 하느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조상들의 죄와 동족의 죄를 참회하면서 올린 그의 기도는, 하느님께는 예언자의 중재 기도처럼 겸허하게 봉헌되었고 온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하나의 기폭제와 모범이 되었을 것입니다.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하여 무너지는 백성들을 질책하면서도 그들을 다시 일으키려고 율법 학자요 사제인 에즈라가 올린 기도와 진솔한 노력은, 죄와 불의가 만연하다 못해 창궐하더라도 그 탓을 서로 미룰 뿐 아무도 그 죄를 들고 하느님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 요즈음 세태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는 참스승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비오가 정성을 다하여 이 신비를 거행하게 하셨으니,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도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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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1> : 파견사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가르치신 후 하느님나라 복음선포를 하도록 파견하시면서 훈시하신 내용입니다. 이 파견사화는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에 한군데씩, 오늘 루가 복음에 두 군 데 등 네 차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훈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로 '더러운 영을 제어하는 권능'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신비스런 힘을 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 안에 혼란이 있다는 것을 '더러운 영' 혹은 '악령'이라는 표현했습니다. 그 당시는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사회적 관계의 모든 혼란은 이 '더러운 영'의 조화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나쁜 힘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도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선포는 그런 혼란의 해악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둘씩 보내는 것은 유다교의 영향을 받아 초대교회에서도 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준비는 꼭 필요한 것 외에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팡이는 맹수와 강도들을 물리치는 데 필요하고, 신발 또한 필요한데 다른 복음에서는 지팡이와 신발조차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속옷을 두벌 껴입는 것은 그 당시 부자들이 하는 것이므로 금하십니다. 필수불가결한 것,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일체 가지고 가지 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라는 말씀입니다.
넷째로 "일단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날 때까지 머물러 있으시오" 라는 말씀은 초기 교회가 가정 교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신자들 중 넓은 가옥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집을 공동체 집회 장소로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집을 중심으로 지역 교회가 발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집 하나가 집회 장소로 정해졌으면, 그 집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다섯째로 먼지를 터는 것은 절교를 뜻하는 상징적 행동으로 먼지는 종말 심판 때에 불리한 증거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르는 치유법은 그 당시 널리 유행한 치유법으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훈시는 대부분의 제대로 된 종교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중요한 영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지 않지만 불교에서는 스님들이 탁발 그릇을 들고 다니며 오직 남이 베푸는 적선에 의해서만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탁발 그릇을 티벳에서는 '떨어지는 것을 받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룽세라고 한답니다. 이런 의미에서 꼭 필요한 것 외에 가져가지 말라는 이 가르침의 중요한 이상은 소박함과 겸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피정이나 연수갈때 혹은 여행을 갈때도 얼마나 가져가는 것이 많은지, 평소에 우리의 행동중에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심리는 불안해서, 그리고 의지하기 위해서랍니다. 가방안에 온갖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꼭 필요한 것과, 좋아하는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을 구별 못해서 갈등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또한 생활용품이나 그릇이나 장롱속에 옷이 그렇게 많아도, 늘 입을게 없다고, 불평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좋다는 운동기구나 무슨 테이프는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이 생기면 또 구입하고 또다시 후회하면서 늘 욕구불만에 허우적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을 뭘 산다든지 뭘 먹는다든지 하는 것으로 메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래의 자신을 피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것과 좋아하여 가지고 싶은 것과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꼭 물어봅니다. 처음에는 꼭 필요한 것 같은 것도 계속해서 정말 꼭 필요한가? 라고 자꾸 물어보다 보면 내게 정말 꼭 필요한 것은 그냥 생기거나 아니면 그 필요성이 사라집디다. 사람들은 제 보고 핸드폰을 사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데, 귀할때는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필요 없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 오히려 제가 필요없게 되어 사지 않고 있습니다.
요즈음 가을 바람이 참으로 상쾌합니다. 하느님께서 공짜로 주시는 이 상쾌한 바람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그 어떤 것을 가져다주어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상쾌한 바람과 함께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을되시길 빕니다..........◆
[말씀자료 : 김만수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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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2> : 대책없는 떠남 속에 하느님을 향한 굳은 믿음
오늘 복음을 읽어보면 대책없는 예수님의 성격(우리 인간들의 관점에서 볼 때)이 또 드러납니다. 믿는 것은 오직 하느님 하나, 다른 것은 다 맨땅에 헤딩하듯 하시는 성격이 드러나십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도 그리하시지 않으십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눈에 불을 키고 예수님의 트집을 잡으려 할 때에도, 할테면 한번 해봐라는 식으로 뻔히 눈앞에 있는대도 안식을 규정을 어겨, 안식일이 무엇인지 가르치시고, 성전에 들어가서는 뒷감당 우찌 하실려고 일단 환전상과 장사꾼들을 엎어버리시고 성전이 무엇인지 가르치시고, 또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결국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십자가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그리사셨으면 그렇게 혼자서 끝낼 일이시지 그 성격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전수해 주시려 하십니다. 하다못해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가더라도 점심 도시락은 무얼싸고 가서는 이렇게 저렇게 놀아야지하고 계획을 짭니다. 또 그 계획에 맞춰서 옷도 준비하고 소품들도 준비를 하는데 하느님 나라 이야기를 전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당장 오늘 먹을 것, 잘 것 준비조차 없이 떠나라 하십니다.
뒷걱정은 하지말고 우선 사람들에게 머리부터 한번 디밀어봐라는 식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신발과 돈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떠나라 하십니다. 이렇게 대책없는 예수님이시지만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이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또 대책없이 떠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고 마귀도 쫓아버렸다는게 오늘 복음의 이야기 입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가진 것이나 몸차림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복장도 남과 달리 요란하고, 길에서 겪을 수 있는 불편에 대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다니는 사람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이거나, 많은 재물을 가진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호사스럽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섬기는 사람답게 가벼운 옷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라는 말입니다.
떠날 수 있을 때 쉬이 떠날 수 있게 우리의 가짐도 홀가분하였으면 합니다. 그렇게 홀가분해 질수 있는 좋은 방법은 대책없이 떠나라 하는 예수님처럼 그리고 또 그 말씀대로 대책없이 떠나버리는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앞뒤 재지말고 대책없이 털어버리면 될 것입니다만 어디 그게 쉽겠습니까...생각따로 몸 따로 인데 우리들인데...
대책없이 털어버릴 수 없다면 조금씩이나마 털어버릴 수 있도록 작은 계획이라도 세우시면 좋겠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작은 실천들이 해 나가다 보면 언제가는 예수님을 말씀을 재지않고 대책없이 실행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말씀자료 : 지병철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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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3> :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에만 의지해야 한다
점점 각박해지는 인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세상이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오늘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듯 싶습니다.
세상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어떻게 맨몸으로, 돈 한푼 없이 떠나라는 말입니까 ?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 당시의 생활여건과 현재의 우리의 생활여건이 다름을 이해해야겠습니다. 그 당시, 그 생활 환경에로 거슬러 올라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해하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봅시다.
예수님 시대의 삶은 오늘날과 같은 물질문명의 혜택 속에서, 더욱이 메스콤의 문화권 속에서의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을 쉽고도 빨리 전하는데 신문이나 책, 전신, 전화, 마이크, 스피커, 자동차, 비행기 등 여행에 도움이 되는 그 모든 것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스승 예수께 배우고 들은 바를 일일이 두 발로 돌아다니며 자신의 입으로 전해야했습니다. 또 그렇게 돌아다닐 때 그들은 필요한 손님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풍습 속에서는 손님을 마치 "하느님의 천사"처럼 대했습니다. 즉, 필요한 것들 "먹고, 자는 것"을 무료로 제공할 줄 알았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섬기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정성껏 했던 것이며, 또 그것을 통해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현재 복장에서 아무 것도 더 가지지 않아도 유대 백성 누구에게나 찾아갈 수 있었고, 만일 푸대접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 취급을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발의 먼지까지 털어 버리는 그 행위는 바로 복음을 거두는 행위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교훈 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천국의 기쁜 소식인 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손님 대접을 받으면서 복음 전하는 임무보다 물질적인 손님대접 받음에 메여, 복음 전파가 뒤늦거나 가리워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일러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려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여행을 편하게 할까? 궁리나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자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선포하려는 것임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이지, 그 하느님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체물들, 즉 돈이나 빵, 지팡이, 의복 등으로 표현되는 그것들에 의지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그대로 따랐음을 알 수 있씁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러한 선교방법이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의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 옛날과는 너무나도 생활이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물질을 안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물질들을 슬기롭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물질에 매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물질이 하느님의 자리를 대체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특전을 받은 우리들이 그 특전들을 슬기롭게 이용하여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그저 내 생활의 편의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현대의 기계문명을 얼마만큼 잘 이용하여 복음 전파에 힘을 쓰고 있는 가하는 점을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다 해야하는 복음 전파의 임무에 열성을 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서, 성서, 교회 서적을 사주는 것도 좋은 전교방법입니다..........◆
[말씀자료 : 강호성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