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어느 만큼 예뻐?"
어린 나는 아버지 등에 매달려 그렇게 묻곤 했다.
"하늘과 땅만큼 예쁘지이~~."
아버지는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해주셨고,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의 최고 수치가 하늘과 땅이라고 믿었고 나는 그만큼 예쁜 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의 최고 수치가 하늘과 땅이라고 믿었고
나는 그만큼 예쁜 아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버지가 물으셨다.
"우리 달자는 이 아버지가 어느 만큼 예쁜가?"
물론 나도 그때 하늘과 땅만큼이라고 대답을 했고, 그런 부녀간의 질문과 대답이
그 순간 꽤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고 믿어진다.
아버지 등에서 보는 저녁 노을이
내가 먹고 있는 사탕빛처럼 눈부시고
마치 그것도 입에다 넣으면 사르르 녹을 것같이 달콤하게 보이곤 했었다.
최고로 예쁘다고 말하는 것은 최고로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아니 최고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고로 예쁘다고 말하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는지 모른다.
하늘과 땅. 그렇다. 그것은 한계가 없이 뻗어 있는 무한의 수치다.
그때 아버지와 나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한계가 없는 것이니까.
사랑이야말로 어느만큼이라고 측정할 수 없는 무한의 수치니까.
그래서 사랑은 얼마만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합니다"라고만 말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그 말 안에 산도 바다도 금도 다이야몬드도 다 들어 있다.
산의 굳건한 믿음, 바다의 깊은 내면, 금과 보석의 변함 없음,
그 모두가 사랑 안에는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만큼 사랑하는 누구에게"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누구에게"라고 말할 때 이미 하늘과 땅의 수치가 전량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하늘과 땅이라는 그 막연한 수치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좀더 확실한 대답을 얻고자 한다.
아무리 하늘과 땅만큼 좋아한다고 말해 주어도 만족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나 작아보인다.
사람이 말로써 할 수 있는 표현이란 어떤 과장된 표현을 써도 작은 것인가 보다.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해 주어도 마음 안에 있는 사랑만큼 말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마음 안에서 원하는 만큼 전해 오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말로써 다하지 못한다.
우리가 말로 사랑을 표현한 것보다 마음 안에 남아있는 것,
아직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그렇다. 지금껏 내가 말한 사랑은, 내가 고백한 사랑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내 사랑에 비해 티스픈 하나에 담을 수 있는 분량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분량뿐만 아니다.
도무지 설명조차 할 수가 없다.
왜 아름다운지, 왜 긴긴 세월에도 물새 가슴처럼 할딱이며 여리게 설레이는지,
이유없이 상처를 받는지,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왜 사랑하는지, 막연하고 서툴고 목마르다.
이제 나에겐 아버지가 가르쳐 준 하늘과 땅만큼의 수치는 깨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어리석은 한계라는 것을 체험하고 그보다 더 큰 것을 찾으며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하늘과 땅이라는 지칭은 무한을 뜻하는 수치다.
하늘 너머 땅 그 끝이라는 수치의 이상, 그 이상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완벽한 모순이다.
어느만큼이란 것이 도시 어울리지 않고 존재될 수 없는 것인데도,
어느만큼이라는 분량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하는 걷도 사랑이 가진 어리석은 욕구이다.
어떤 표현, 어떤 분량의 지칭에도 만족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은 꾸준히 질문하고
끊임없이 대답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의심, 이 또한 사랑이 가진 어리석은 갈등이다.
확인하고 싶은 것,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정말'의 진실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면서 그 가슴을 열어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을 연다고 그것이 보일 것인가.
사랑은 보이지 않으므로 영원하고, 보이지 않으므로 지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보고 싶다.
나의 사랑과 키재기를 해서 누가 더 무겁고 큰가를 겨루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나에게 있어 하늘과 땅의 수치는 깨어졌다.
그것으로는 불만이다.
그것이 아무리 무한의 수치라 할지라도 웬지 그것은 너무 작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말할 때 '생명', '목숨', 이런 말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존재를 바치는 것으로 자신의 진실을 알리려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라는 비유보다 목숨을 바치는 것은 직접적인 헌납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정열적인 내용 때문에 안심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랑이 뜨겁고 진실될수록 오히려 의심과 요구는 더 커지는 것이다.
아버지가 하늘과 땅만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땅이고 아버지의 하늘이었다.
또한 아버지가 나의 하늘이고 나의 땅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만족하고 그리고 행복했다.
작은 의심도 물론 없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 목숨을 바친다고 말하는 말에는 만족이 없다.
과장으로 치면 둘 다 과장이고 진실로 치면 둘 다 진실이며 사랑으로 치면 둘 다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의 비유는 늘 목이 마르다.
좀더 멋진 비유, 좀더 만족한 비유를 기다린다.
하늘과 땅이 우주의 끝이고 전부이며, 목숨은 존재의 핵심임에도 그 이상 또 그 이상을 기다린다.
사랑은 늘 왜 이렇게 목이 마른가.
"나 어느만큼 좋아해?"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할 때
신랑 각시가 되어 어른 흉내를 내었 듯 바로 그 장난기와 유머를 가지고 묻고 싶어진다.
천진한 아이가 되어, 아버지 등에 얼굴을 부비며 묻던 그런 천진한 아이가 되어
넌지시 그 마음을 떠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장 훌륭한 대답은 말이 아니라 표정일 것이다.
빙그레 미소를 띄고 하늘의 구름이라도 바라보는 엉뚱한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묻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아닐까.
신달자 에세이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중에서.
교보생명은 광화문 글판 가을편을 신달자 시인의 시 '가을 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 빈 들판은 모든 걸 새롭게 키워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마치 종이의 여백과 같다.
언제나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는 가을 들판처럼 끊임없이 비우고, 채우는
삶을 살아가자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김소형기자-의 기사에서 옮겨왔습니다.
-본글 글 '사랑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는 1991년 1월 10일 3판 발행의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책꽂이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던,
누렇게 변색된 이 책은 책 앞표지까지 뜯겨져 나간 채였다.
그런 책이 내 눈에 띈 것은
오늘 책장을 정리하면서 눈길을 끈 제목이었다.
정작 책 제목으로 쓰인 에세이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라는 글은 제껴 두고
왜 이 글이 눈에 띄인 것일까.
이 글을 읽고 글솜씨는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지만
제목에 반하여 옮기다보니
끝머리 '그러나 또다시 묻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아닐까'가 가슴에 와닿는다.
또 말미쯤에 '사랑은늘 왜 이렇게 목이 마른가'라는 말도 가슴을 파고 든다.
신달자 시인은 1943년생이다.
지금 그는 81이다.
1990년 초판 발행이면 이 책은 1~2년 전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나이 42~44세에 쓰여진 글이다.
그런 글에 66세의 내가 그의 글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문서적이 아니면 웬만한 책의 내용은 다 겪고 지나온 내용이 될 수 있다.
겪지 않았다 해도 이해는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책을 가까이 대하는 것은
책장 한쪽 구석에 쳐박혀 먼지가 묻어나도록 쳐다보지도 않았던 이 책처럼
내 머리에, 가슴 한켠에 쳐박혀 잠들어 있던 것들을 깨우는 작업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 있을까?
그러나 얼면서도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마치 신달자님의 말미의 말처럼 묻고 또다시 묻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라는 것처럼.
-중얼중얼대다-
하늘만큼 땅만큼
하늘보다 땅보다 더 더
당신은 예쁩니다.
첫댓글 본 글 열심히 다 읽었는데
마지막 한 줄 읽으면서
몽땅 하늘로 날라가고
오직 한 줄
당.신.은. 예쁩니다....
이것만
기억에 남으니
에휴
나이 칠십 할매도
여자는
여자인가 봅니다.
여자는 모두 똑같은 모양입니다.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심지어 할머니도 그렇지요.
88세가 된 저희 어머니도 젊은이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비스무리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감정은 모두 같은 것인가봅니다.
오타가 두어군데 밖에 없네요.
손가락 아프게 워드작업했을텐데
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