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좌 성혜스님이 있다. 성혜는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예비 군법사로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런 성혜가 한동안 심난한 얼굴을 하고 다니다가 얼마 후 나를 찾아와 어지러운 심사를 꺼내놓았다.
“스님 입대 문제로 고민이 좀 됩니다. 육군, 해군, 공군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다른 법사님들 얘기로는 육군은 보람은 있지만 힘들고, 공군이 좀 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은 어디를 지원하고 싶은가?”
“몇 년간 지낼 곳인데, 아무래도 좀 편한 곳에 지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성혜의 대답을 듣고 적잖이 실망했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자 성혜가 불안한 듯 내 안색을 살폈다. 내가 성혜에게 되물었다. “그럼 편해서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할 건가?” “……”성혜는 대답을 못했다. 모든 사회의 흐름은 이미 쉽고 편한 길을 택해 가고 있다. 갈수록 작은 움직임들 마저 자동화 되어가고 우리는 자잘한 노동의 일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남는 시간과 힘을 소모적인 오락과 게임, 놀이와 즐거움, 여가와 운동에 쏟아부으며 좋고 안락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성혜도 요새 젊은 사람이니 편하게 사는 삶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겠지만, 출가자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자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더 깊고 뜻이 더 높은 부류들이다. 모든 것들의 연관됨을 보기에 인식이 깊고,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를 원하기에 뜻이 높아야 한다.
나는 성혜에게 모질게 말했다. “너는 편하게 지내려고 중이 되었나. 중이 편한 것을 좋아하면 그것은 중이 아니다. 길 중에서도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 중이다. 편하다 불편하다는 생각도 없이 어느 길이든 걸어가는 것이 중이다. 그런 발심 없이 뭣 하러 중이 되었는가?” 꾸지람을 들은 성혜는 얼굴을 붉히고 물러났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고 다시 성혜가 나를 찾아왔다. 성혜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고 성혜의 눈에서는 젊은 수행자의 거룩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은사로서 몹시 흐뭇했다.
“성혜야!” “예, 스님” “원래 남고 모자람이란 없는 것이다. 얕은 마음을 쓰지 마라. 잃었다고 생각하고, 얻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들은 본래 없던 것들이고 내 것들도 아닌 것이다. 편하고 불편하다는 헛된 이름들을 버리고 처음 출가한 뜻을 잘 보호해서 다만 정진하거라.” 정호스님/ 용인 대각사 주지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