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역이 재생산되려면. 위임하라 2 -메콩강소년(정도연)-
2. 위임자를 선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자세로 하나님께서 섭리해 가시는 자연스런 흐름에 내 생각을 비우는 것이다. 내 맘에 드는 사람을 선택해 놓고 그를 세우기 위해 인위적 방법을 동원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리더십을 인정해야 한다. 우연히 동역하게 된 자 중에서, 이 사역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하는 게 좋다. 내부의 자연스러운 동의가 더욱 연합하게 한다.
내가 후임을 선택해 놓고 세워가기 위해 과정을 만들면, 그도 자유롭지 못하고 나도 그를 기대하게 된다. 가장 추한 방법은 섭정이다. 섭정은 하나님 나라보다 공동체의 재산과 권위에 사욕을 품고 지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안일한 삶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자리와 사역을 이어받은 D 선교회 공동체 내부의 경우, 새로운 리더에게 무관심 한 자와 줄 서서 기회를 잡으려는 건강하지 못한 자들이 갈등하는 것을 보았다. 새로운 리더는 내 편이 아닌 자들을 제거하거나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인위적 방법을 동원한다. 공동체의 축제가 갈등의 시작이 된다. 불의는 선이 내분하고 갈등하길 원한다.
한국 목회의 위임은 교회 내부보다 주변의 조직과 이기적인 자들의 영향력이 크다는 부담과 위험이 있다. 창의적으로 개척해 긴 세월 이끌어 온 교회를 낯선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위임은 더더욱 기도가 필요하다. 사탄은 위임의 틈새를 노린다. 위임의 틈새를 기도와 말씀, 찬양으로 채워 하나 되지 못하면 위임의 시기는 사탄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
자녀가 부모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오는 과정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본다. 자연스러운 과정에는 진실하고 공의로운 자들의 동의가 있지만, 인위적인 방법에는 교권주의자들이 기회를 노린다. 종교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종교인의 맹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도덕적 기준은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이다.
3. 국제단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위임의 3요소까지 성장시키고 그의 경험을 영적 대가족들에게 위임해주는 선교사도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깊은 밀림에 들어가 부족들의 언어를 만들어 성경을 번역하고 리더까지 양육한 선교사도 있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환경에서도 생명과 철학과 문자와 책이라는 물리적 열매까지 맺은 선교사도 있다.
모순적이게도 이들은 그 열매로 인해 그 땅에서 계속 사역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기들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그의 경험을 나누며 영적 위임을 해주고 있다.
이에 반해 어떤 종류의 위임도 필요 없는 일을 하는 사역자도 있다. 회사나 공직처럼 고용되어 일하다 계약 기간이 끝나서 돌아가거나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끝나는 사역이다. 주로 선교의 선진국들이 백 년 2백 년 전에 시작한 사역 현장이 있지만, 교회 성장이 더디고 자립률이 낮은 나라다. 이런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 중 일부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보다 물질문명에 더 가치를 둔다.
이들은 권력과 돈은 자기들이 쥐고, 일은 선교사들에게 하게 한다. 예를 들어 C 단체나 기관은 선교사가 필요해서 선교사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다. 고용자인 선교사가 자기 생활비를 가지고 와서 채용해 달라고 사정하니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선교사가 모금해 마련한 생활비도 그들이 관리하는 단체의 장부에 넣었다가 그 단체의 장부를 통해서 받도록 한다.
헌신적으로 사역했다고 퇴직금을 준비해 주는 것도 아니다. 행정비라는 명목으로 조직의 운영비까지 낸다. 현지 단체가 원하지 않아도 굳이 일을 만들어 한국 선교사끼리 충성경쟁도 하고, 자리를 두고 다투기도 한다. 선교사들이 오가는 것에 그 단체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데, 선교사들은 그 조직에 속했다는 것에 굉장한 우월감을 가지고 산다. 조직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구조 속에 부조리와 부정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국제단체나 이런 기관에서 사역하는 자들이 확실하게 하는 일은 이곳저곳 다니며 회의하는 일이지 싶다. 이들은 회의에서 만들어낸 용어들을 선교의 이슈로 내세운다. 일부 한국교회와 목사들은 이런 단체의 이사라는 이름으로 이런 용어들을 한국교회 선교를 위한 시대 용어로 퍼뜨리는 것을 선교의 선봉에 서는 것으로 생각한다. 창의적인 선교가 되기 위해서는 선교란 이름 아래 있는 불편한 이야기 속에 있는 진실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4. 내게 있어 메짠공동체와 옴꺼이 공동체는 선배를 통해 시작된 일에서 내 역할을 마치고 물려주는 위임의 방식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특별하게 위임의 시간을 정해놓고, 공식적인 예식을 따라 물려주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동역자가 와서 함께 사역했고, 그가 익숙해 가는 만큼 나는 자연스럽게 내 의무와 책임에서 물러서다 보니 어느 순간 위임이 완성됐다. 어느덧 메짠 공동체는 3대에 이르렀다.
내가 창의적으로 시작한 빠마이 공동체와 미얀마 공동체, 헤브론 공동체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주는 위임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선택하거나 무슨 조건을 세우지 않았고, 이 사역을 위임받은 분들도 내게 무슨 조건을 내세우고 그에 내가 동의해서 위임받은 것도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부족함을 기도로 품으며 나의 짐을 대신 져주었다. 조금 아쉬운 것은 너무 자연스럽게 위임되다 보니 축제를 벌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상 상황에서 잠시 관리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일에 쓰임 받았던 동남아선교부를 제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위임도 서두르려고 한다. 동남아선교부의 선교사 비자쿼터 관리하는 사역은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자가 많을 것이란 사실이 위로다. 공의롭게 그 권한을 사용하는 선교사가 동남아선교부를 이어받아 몽족공동체까지 책임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도한다.
치앙마이 제3한인교회, 한글학교, 음악학교의 사역을 위임해주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이 세 기관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기 위해서는 외부에는 강하고 내부를 향해서는 온유해야 한다는 바람이다. 치앙마이에서 돈을 벌어 먹고살고, 자녀를 가르치는 한인은 불과 3~4% 정도다. 이들에 대한 부담을 사명으로 가진 자가 필요하다.
기독교 교육과 기독교 문화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의 수익 기관이 아니다. 내가 번 돈을 투자해 사람들의 잠재능력을 개발시켜주는 것이 기독교 교육이고, 그들이 복음 안에서 기뻐하도록 섬기는 것이 기독교 문화 사역이다. 나는 이미 누군가 공동체 안에 한 지체로 출발해 있다는 믿음도 있다. 내가 주의 샬롬의 기쁨으로 이 자리에서 떠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내가 지쳐 포기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5. 앞으로도 나는 무교회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쉬지 않으려 한다. 지난주에도 전도팀과 함께 ‘후에이웍’ 이란 카렌족 마을에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사람을 양육하는 일도 한국 사람, 태국 사람, 미얀마 사람, 구별하지 않고, 힘이 닿는 데까지 놓지 않으려 한다. 위임받은 동역자들의 배경이 되어 그들이 빛나도록 하는 일에도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첫댓글 조병우 원로목사님
전임자가 후임자를 구할 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인가 하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내 마음에 든다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는 등식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후임자를 구하는 일에서 내 자신 생각보다는 전적으로 교회 스스로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구도 속에 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후임자가 전임자에게 어떤 부담감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이 곳에 보내셨다는 소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때문에 여기 온 것이다 라는 의식구도를 가지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임자나 후임자가 하나님의 뜻을 더 의식하게 되는 구도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제게는 교회를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목사님의 귀한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주의 일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며 더 아름다워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