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사룡산서 부산(富山), 단석산, 백운산, 고헌산, 기와미기를 거쳐 895m봉과 문복산줄기까지 한참 멀리 돌았다. 독자들 중엔 현기증이 나려는 경우까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줄기만 그렇게 복잡했을 뿐, 많은 이들에게 더 익숙한 행정구역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는 다음의 딱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전부를 다 합쳐야 경주 산내면의 외곽 산줄기에 불과하다.”
그 외곽 중 아직 우리가 살피지 못한 것은 서편의 두 산줄기다. 사룡산서 운문호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서는 ‘장륙능선’과, 그걸 향해 895m봉서 마주 달리는 문복산줄기가 그것이다. 두 산줄기는 운문호의 북동편 끝부분에서 딱 맞물린다. 그렇게 해서 경주 산내면과 청도 운문면을 구획 짓는 것이다.
그 중 장륙능선은 오는 초여름쯤 비슬기맥을 다루기 시작할 때 공들여 살피기로 하고, 우선 문복산줄기를 답사해 보자.
문복산 이후 여럿으로 갈라져 가는 그 산줄기들 가운데 산내-운문 분계선은 895m봉~문복산(1,014m)~수리덤산(837m)~옹강산(832m)~606m봉~동경마을 사이를 무려 50여리나 이어달리는 지맥이다. ‘문복능선’이라 불러 놓는 게 좋겠다. 그 서편은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동편은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일부리(日富里)다.
그 출발점인 895m봉은 산줄기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정점에 ‘청도산악회’서 2007년 세운 ‘낙동정맥’이란 정맥길 표석이 그 징표다. 금방 오를 수 있으면서 고헌산·대현리·기와미기 등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이기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포인트면 당연히 이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칭되고 얘기되기 쉽다. 하지만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 전래 명칭이 묻혀 온 것이다. 앞서 본 ‘기와미기’ 같다. 895m봉 꼭짓점에 산림청이 세워 놓은 방향표지에서 또 한번 확인되는 게 무명의 설움이다. 운문령·문복산·산내 세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 중 ‘산내’는 분명 기와미기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 이름을 모르다 보니 어물쩍 ‘산내’라 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기와미기라는 옛 이름이 드러내졌듯, 895m봉의 전래 명칭도 이번 취재 과정서 밝혀졌다. 삼계마을 옛 어른들에 의해 ‘학대사산’이라 불리다가 ‘학대산’으로 줄여졌음이 확인된 것이다. ‘학 대사’라 불리던 스님이 이 봉우리에 와 세상을 떠났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고 했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천화’(遷化) 장소로 이 산을 택했던 셈이다. 지금도 거기 스님의 묘가 있고, 옆에서는 샘이 솟는다고 했다. 학대산은 북동쪽 기와미기(와항A지구)서 올라도 되고 남서쪽 운문령서도 30분이면 족히 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