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69] ‘대불회'(대체불가 인간을 사랑하는 모임)?
어제는 모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모임이 있었다. 내친 김에 아예 다른 이의 동의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모임의 이름도, 멤버도 정해 버렸다. 이름하여 ‘대불회代不會’. 대불회가 무엇인가? '대체불가代替不可 인간을 사랑하는 모임'의 약칭이다. 누가 대체불가unsubstituable한 인간들이란 말인가? 일단, 자신들이 하는 예술에 대하여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라고 말하자.
16살에 출가하여 50년을 오직 칼 하나만 붙잡고 무정한 돌에 무수하게 마음의 꽃을 피운 전각예술인은 "내생이 있다면 그곳에서도 ‘석도필묵石刀筆墨의 삶’을 주저없이 택하겠노라"고 말한다. 남원 대산면 출신. 26살에 운명처럼 소리에 빠졌고, 32살에 지리산에 입산하여 폭포 아래 움막에서 7년 동안 홀로 소리공부에 몰빵했다. 전남 순천산. 둘다 독학자습獨學自習, 득도得刀와 득음得音를 하여 ‘일가一家’를 이뤘다.
또 한 친구는 한국 펜화의 거장 김영택을 만남으로써 뒤늦게 그림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재능이 있었기에 애초부터 그 길로 갔어야 했는지 모르겠으나, 잊고 있었던 소질을 찾은 것이다. 그 역시 대체불가 펜화작가가 됐다. 충북 충주산.
또 한 분(1954년생)은 우리 현대정치사에 유독 우뚝 남을 정치인의 삶을 두 권의 자서전으로 엮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던 성철스님의 족적과 동화작가 권정생의 삶을 평전으로 남긴 최고의 글쟁이이다. 전북 신태인 산.
또 한 분의 대체불가 인생은 멀리 전남 장성의 축령산에 거하고 계신다. 인문학적 어록을 줄줄줄 쏟아내는 변신령(70)은 대체불가를 넘어 기인이자 방외지사인 것을. 11월초 모임에는 꼬옥 모시리라. 오늘 새벽 단상의 끝구절은 이렇다. "비설거지는/대자연의 공짜 공연티켓이다"
위 네 명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싶었으나, 두 분은 빠질 수 밖에 없는 일이 있어 다음을 기약했다. 인사동8길 좁은 골목의 맛집 ‘오수별채’에 태풍 카눈의 협박을 뚫고 모인 ‘대체불가 인간들을 사랑하는 사람’ 6명이 모였다. 사실은, 이들도 모두 대체불가일 터이나, 우리는 대체불가 인간의 대표주자로, 위 네 분을 극구 떠받들기로 했다. 30여년 동안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관운官運까지 있었는지 말년에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문화계의 마당발, 오지랖, 여장부(여걸, 이런 단어도 성차별일까?)가 지각 참석했다. 진짜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보면 된다.
또 한 분은 인문학서적 출판의 ‘탁월한 명수名手’이다. 돌베개출판사에서 펴낸 양서가 무릇 기하일 것인가.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장준하선생의 ‘돌베개’와 신영복 교수의 모든 저서를 펴내고, 최근 백기완 선생의 추모문집을 두 권을 발간한 점에서 흡족하다. 스테디셀러가 수백 권에 이름을 알리라.
이 모임에서 졸지에 나이(1952년생) 탓에 좌장이 된 수필가는 호가 효림曉林인데, 목포상고 출신, 은행원으로 정년퇴직 후 틈틈이 써온 수필들을 <나는 학생이다>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섬진강길과 서해길을 홀로 뚜벅이여행도 했다.
또 한 분(1955년생)은 호가 신천新川으로 타고난 독서가이다. 대기업 부장으로 퇴직한 후 전국의 제제다사濟濟多士한 대체불가 인간들 사귀는 장기長技가 있다. 그 장기는 내공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됨을 알리라. 충남 아산에서 KTX를 타고 일부러 올라왔다.
또 한 친구를 말하자. 한미한 시골의 중학교와 전라도의 명문고를 거쳐 곧바로 ‘대문자 S’상대를 입학한, 개천면 용출리 출신이다.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얘기를 나누면, 이런 친구가 ‘깨시민’(바보대통령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진보정치의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이자 오피니언 리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체불가 생활졸문의 작가이다. 어제의 모임을 메이드했다. 어쩐지 모처럼 상경한 길에 대체불가 인간들끼리 안면顔面을 트게 하고 싶었다. 서로 조금씩 각자의 존성대명尊姓大名은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하여 그날의 모임은 시종일관 즐거웠다. 식사 후 전각작가의 갤러리에서 차를 마시며 작품 품평회도 나눴다. 소리꾼이 한 작품(천부경)에 필이 꽂혀 끝내 안고 가기도 했다. 대작 <조국강산>을 펼치며 브리핑을 하는 작가는 모처럼 진지했다.
‘대불회’라고 정한 소이연이다. 회원은 10명으로 1년에 두 번은 회동을 하자. 예술과 예술인을 사랑하는 후원회원 6명이 점심이든 저녁이든 술값이든 번갈아 내기로 하자. 좋다, 좋다. 대체불가 네 명은 영구회원이나, 후원회원은 언제든 가입과 탈퇴가 가능하다.
맛집 ‘오수별채’를 모르시는가? 홍보할 필요는 전혀 없겠으나, 새꼬막 무침과 민어구이의 맛을 보시라. 민어구이는 단연 으뜸이다. 흑두부도 좋고, 삭힌 홍어를 갈아만든 홍어계란말이와 홍어전도 별미이다. 오수별채의 ‘오수’는 오수개의 실화가 실재하는 전북 임실군의 리里소재지 이름이다. ‘큰 개 오獒’자에 ‘나무 수樹’. 임실군에서 생산되는 ‘사선막걸리’가 이 집에만 있다. 오수의견문화제는 38회째, 임실 사선제가 35회째 거행됐다. 지난 주말, 소리꾼 배일동 명창이 무슨 인연이었는지, 오수 의견비(1천년 이상 된 돌비) 앞에서 ‘오수 개판소리’와 ‘쑥대머리’ ‘사철가’를 특유의 폭포 목청으로 열창하여, 그날의 의미가 더했다.
한 삶을 살면서 멋을 모르거나 맛을 모른다면 얼마나 삭막한 일인가? 멋과 맛 그리고 흥興이 있어야 살 맛 나는 세상이 아닐까? 그렇다. 우리는 풍류다. 우리는 한량이다. 무엇보다 한번도 심심하지 않고 재밌게 사는 것이 우리 삶의 관건인 것을. 에너저틱한 인생을 위하여 건배! 11월초 ‘대불회’의 2차회동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