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追慕辭)
남천 송병완의 영정(影幀)(上)
오늘(1월 16일) 세상 떠난 아우님, 편히 가시게
이 세상을 착하게 살던 친구 한명이 땅으로 들어간날 남도(南道)의 시인 남천(南泉) 송병완을 추모하면서... 울고 싶은 날이다
동적(動的)인 문학 정적(靜的)인 문학 김광한 문학과 인생이란 판이하게 다른 분야같지만 사실은 문학과 인생이란 한 범주 안에 공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문학이란 글을 통해서 인생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삶의 희비애락 등을 표현하며 진정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그런 의미에서 문학이란 인생의 동의어이면서 공존의 가치를 사람마다의 가슴에 각인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생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남 출신의 시인 남천 송병완은 좀더 특별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그는 여느 시인처럼 현란한 수식어나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다소 인문학에 무지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그런 시인은 아니다.그것은 우선 그의 지난날들이 그것들을 증명해준다.
전라남도 담양이란 소유보다 마음들이 따뜻한 마을에서 공무원 생활을 평생을 해서 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진 그에게 인생의 황혼기에 천사처럼그에게 손을 내민 문학이란 손님과 친구가 되고부터 그는 문학이란 친구를 더 가슴에 보듬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그런 수신(修身)의 길을 걷고 있기에 그는 생각하는 시인이라기 보다 움직이는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지금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글 한줄을 쓰기 위해서 여행이란 독특한 방법을 동원한다. 여행을 통해서 그 현장 직접 본 사물과 사람을 모두 그의 광범위하 고도 꼼꼼한 필치에 담는것이다. 때로는 오래동안 활약한 전문 문학인과는 격에 맞지 않는 문장 구성이 있기도 하지만 그의 글은 그래서 구수하고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정직한 문장, 그리고 그 정직함을 무기로 삼아서 대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까히 다가오는 것이다.
그는 문학지에서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보다 사람이 더 좋은 인물, 그리고 사람 가운데 마음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란 것을 느겼던 것이다. 얼마후 광주문학회의 늘푸레 문학(회장 김영관교수)에서 시화전을 했을때 다시 조우를 했는데 그때 나는 필자가 몇년전에 쓴 김구 선생의 일대기인 백두대간을 보낸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호형호제하는 시이가 되었고 서울과 광주에서 몇차례 조우하면서 그는 내 생애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커다란비중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길 정도가 되었다.
정직하고 능동적인 삶의 자세 그는 환갑이 내일 모레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장소를 바꾸어 그의 문학 수업을 계속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정렬적으로 쏟아내는 많은 언어가 우리를 숨가쁘게 한다.아래의 시들은 그가 지난 8월에 몽골에가서 보고 느낀 기행시인데 여기서 우리는그이 정확한 관찰과 역사지식에 대해 놀라움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몽골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향 아닌 고향에 송병완 살고있는 타향에서 옥수수 잠자리 달랑달랑 춤추고 장독대 맨드라미 붉게 물들어 울타리에 기대서 있는 봉숭아 터질 듯 황소타고 피리부는 농촌 그리운 내 고향 절라도 바람 바람 하늘 나른다 푸른 하늘 뭉개 뭉개 구름타고 날아간다 옛날 옛적에 우리 민족 고향 찾아 아름다운(대한민국)항해 바다 건너서 천진,대련 지나 말굽소리 요란했던 쪽빛 하늘아래 펼 처진 대 초원 몽골에 갔네 형상도 같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울란바트르 타향도 아닌 고향에 2003,7.17(제헌절) 항공 기내에서 한국산학협동연구회 산업시찰 박성수 원장외 41명 청운의 꿈 송병완 하늘 아래 피어 오른 하얀 구름 두둥실 떠 다닌다 하늘 구름아! 내 마음도 푸른 꿈이 되어 두리 둥실 떠 있구나 아 ! 그리워라 하늘도 내 마음도 가슴 벅찬 청운의 꿈 푸른 하늘에 몽실 몽실 피어 올라라 아름답게 피어 올라 가고픈 하늘로 가거라 하얀 꿈 이루고서 2003,7,17 중국 몽골 울란바트르 상공에서 자연의 미로에 서서 송병완 자연의 미로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태고의 신비가 이루진 날 진화와 진화를 거듭하면서 먹고 먹히며 자연으로 살아왔구나 우주 공간에서 자연스런 혜성들 폭발하고 암흑으로 빙하시대를 거쳐 조상마다 새 길 찾아 변화와 변화를 하면서 살아 갔구나 수억만 생명력이 갈래 갈래 자연의 미로에 자연스럽게 번영하여 삼라만상이 공존하면서 지고 이기고 삶도 절로 절로 형상도 절로 절로 2003..7.17 몽골 울란바트르 자연박물관에서... 남천은 지난 7월에 몽골에 가서 우리민족의 뿌리를 직접 보고 느끼고 적어왔다.그냥 적어 온 것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과 만나서 호흡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근원과 그들의 자연관에 대해 깊은 애정을 확인하고 온 것이다.그래서 그는 몽골에 관한 수십편의 시를 썼는데 한결같이 그들에 대한 애정, 더 크게 말하면 인간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깊은 사랑을 그의 투박하고 토속적인 언어를 빌어 표현한 것이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몽골인들의 생활관습과 사고방식 모두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듯이 정확히 묘사했다는 것이다. 주마간산격으로 그냥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는 자신의 시어를 사랑과 평화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그의 시들은 한결같이 현학적이고도 전문적인 기교와 표현에 조금 어긋나 잇지만 그의 문장을 다루는 성실성과 정직함은 기교와 공허한 현학적 수사를 즐겨 쓰는 전문 시인들을 자처하는 이 땅의 모든 시인들에게 침묵을 하게끔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시를 사랑하고 시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고 인간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사랑을 무기로 삼아 쓰는 그의 한줄 한줄의 시는 그대로 금과 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롱져 남는다. 혹자는 그의 다소 빈약한 시어와 어휘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구성에 시비를 걸지 모르나 그것은 그의 성실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 하리라 믿는다. 정확한 기록, 그리고 기억력
시피 정렬적이다.고향인 담양에 누가 살고 누구의 집에 밥숫가락이 몇개나 되는 것 까지 알정도로 그는 향리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타향에 대한 배타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속에서 자신을 낮춤으로서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 몇 안되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또한 고향에 살던 선인들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발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자신의 선조인 송씨 문중뿐만아니라 타성받이까지도 함게 우리 시대를 살고 잇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의 좋은 점들을 후세에 알려서 좋은 나라,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남은 생애동안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남들이 보면 다소 구시대적인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나 오늘의 잘못된 역사는 바로 남천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이를 바로 잡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그는 담양과 화순, 순천, 담양 등지에 흩어져 있는 민족의 유산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이런 얄팍한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물염정(勿染亭) 송병완 적벽도 아름답고 물염정도 아름답다 선대의 아름다운 모습 알만하구나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풍경 이라 천리 타향 의형 불러 자랑 하고 싶어 다친 발 질질 끌고서 찾아왔더니 자미 활짝 웃고 해오라기 춤 추네 백두 대간 백범 선생 일대기 그려놓고 친구 따라 여인 따라 왔다 하네 아름다운 물염 다시 보고 싶어서 물염정에 기대선 삿갓에게 물어봐 아름다운 무릉도원 또 따로 있나 신선으로 가는 길은 적벽 이라네 2003.9.16 화순 동복댐 물염적벽에서 송병완 송병훈 김광한 김명선 김길용 백숙자 화순의 적벽,티 한점없이 맑은 가을 하늘아래 붉은 바위가 마치 병풍처럼 사방으로 둘러쳐진 이곳이 세인들의 입에 방랑 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면서 회자되던 조선조 시대의 유명한 시인 김병연의 임종 장소이기도 한데 그날따라 몇 안되는 먼데서 온 나그네들의 발걸음이 멎었고,나그네들은 물염정이라 일컫는 정자에서 오늘도 무심히 흐르는 강물은을 내려다 본다. 강물위에는 움직일듯 움직이지 않는 해오라기 한마리만이 묵상을 하듯 비상을 하려 하고 있고 거기 남천의 옛 생각이 멎어있다. 김병연이 세상 살면서 모진 사람들에게 당했던 수모와 그리고 비록 가난하지만 인정있었던 사람들과 교류했던 흔적이 한줄의 시로 남아서 과거를 회상케 하는데 그 가운데 남천이 서있다.
그를 보러 내려온 사람들에게 그는 담양의 인심을 전하고 세상사의 허망함에서 찾아야 할 것들을 그 특유의 어눌하고 약간 촌스런 말투로 꼬리를 트고 있다.그는 현재의 삶보다도 과거의 의리와 협객들이 있었던 시대를 사랑하는 전형적인 구시대 사람이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있으므로서 물질의 곰팡이 냄새나는 공간에서 모처럼의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는데 안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학력과 재산과 배경이 우선되는 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이렇게 유유자적해도 충분히 한세상을 넉넉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교훈을 그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는데 큰 다행함을 가져야할 것 같다.남천은 혼자하는 여행은 결코 하지 않는다.그는 여럿이서 하는 곳이 라면 어디든지 간다. 그리고 자신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한사람과의 만남에도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는 여럿 가운데 나도 포함된다는 가장 겸손한 자세로 한세상을 살아온 착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게 문장이 어떻고 시가 잘됐느니 못됐다느니 어떻다드니 하는 말들은 그의 세상을 살아가는 성실과 정직성 앞에서 침묵을 지켜야만 한다. 어쩌면 그는 전 시대에 태어나야 잘 살고 멋도 부릴수 있는 사람같이도 보이지만 그는 오늘을 살면서도 결코 누구 한사람을 내세워서 탓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광주를 중심으로 화순과 담양, 그리고 순천 등 그 고장 사람들만이 아는 정서를 전하기 위해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이 그가 그 지방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동안 해야할 빚이라 생각하고 또 그것이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생각하기때문이다. 일찌기 이탈리아의 아시시란 마을에서 태어난 성인(聖人) 프린치스코를 존경하고 그의 삶을 닮는 것이 최선의 삶의 방법이라는 그에게서 물씬 풍기는 사람 냄새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다. 남자도 있고 여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여자라지만 그는 어떤 불충스런 목적을 대하고 대하지 않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여류 시인들이 그녀들이다.호남 일대에서 내노라 하는 여류시인들, 일테면 이명란(경당), 일죽 김명선 김재란 등 그를 오빠처럼 믿으면서 속내를 털어놓는 유일한 중년의 시인 남천, 그는 오늘도 여간 바쁜 하루가 아니다. 潭陽의 숨소리- 글/송병훈(島松) 시인 아세아 문학회장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터널은 눈길을 잠시 뺏어보지만 산자락에 앉은 원(園), 헌(軒), 당(堂),정(亭)에 당도하면 누정(樓亭)의 돌계단은 때묻은 신발 벗으라 소리를 친다 면앙정(俛仰亭),송강정(松江亭),명옥헌(鳴玉軒),식영정(息影亭), 환벽당(環碧堂)을 뒤로하고 소쇄원(瀟灑園)의 光風閣에 멎으니 세상의 추함 그대로 찾아온 것들아 죽림(竹林)이슬에 손을 씻으렴 가사문화(歌辭文化)의 보물로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 정철(鄭澈)의 星山別曲, 關東別曲, 思美人曲. 續美人曲등 18편에는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의 숨결이 절름발이 후손들 종아리를 때리네 , 죽향(竹鄕)의 선현(先賢)들이 대(竹)가 뜻하는 忠, 孝, 禮, 德, 藝와 義와信을 함께한 淸白, 節約, 배움(學), 道의 숭고한 얼의 유산을 靑竹골의 기백을 살찌울 후손에게 정성 다해 물려주라 외치고 있다 <2003. 9.15-16담양문화유적방문>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서울에서 한 선비가 남천을 만나러 가서 한 수 읊으니 그것이 담양을 잘 나타내는 한 정경이라,시도 좋고 만나는 사람도 괜찮으나 다만 그 선비가 예수의 제자라 술한잔 없는 것이 그것이 흠인지라,그래도 술한 잔 마음에 담아 두고 추억꺼리 마련해주고 길을 재촉하고 시간은 덧없이 또 흐르고 있다. 도송 송병훈은 얼마전에 서울에서 필자의 소개로 호형호제가 된 사람이라 연배가 조금 위라서 서슴없이 형님으로 호칭이되는 그런 사람, 10년을 알고 지내도 흉금을 털어 놓지 못하는 야박한 인심 속에 단 10분을 만나 속내를 털어놓을뿐만 아니라 인생의 자초지종을 마음 열고 풀이하는 그런 형님으로 모신 것을 남천은 늘 자랑으로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끝없이 펼쳐진 메타 세콰이어의 곧은 줄기 숲 아래에서 자동차는 달리고 그 안에서 바깥을 내다 보면서 새삼 세상인심의 흐뭇함을 느끼게 해준 남천의 넉넉한 마음이 시간이 지날 수록 후덕해지는 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소쇄원을 비롯한 송강정, 식영정,면앙정,명옥헌, 환벽당 등 우리보다 일찍 살다간 분들의 체취가 아려서일까.남천은 바로 그 냄새를 맡고 그 생명력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남도의 선비임에 틀림이 없다고 도송 송병훈이 형님으로 한마디 한 것이 그냥 굳어져 그의 가슴 속에 각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천이 아마도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히 송강정이나 환벽당, 식영정, 명옥헌 어느 곳이든지 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 것같아 남천의 얼굴을 다시 보니 그는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응시한 채 말이 없고 하늘에는 빈구름만이 얼씬거리고 있을뿐이었다. 도송 송병훈은 남천에게 "앞으로는 남천(南泉)이라고 하지 말고 담천(潭泉)이라고 호를 바꾸게"하면서 작명호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담양의 샘물이란 뜻인데 샘물이란 어디를 가도 샘물 그대로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아마도 남천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샘물은 치솟는 물이라서 독이 들어갈 수가 없고 샘물에 어떤 말을 붙여 놓아도 샘은 샘이니 담천이라도 좋고 남천이면 또 어떠한가,호 많은 사람 제값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듯이 생각나는대로 부르고 그대로 받아드리는 순수한 마음이 있기에 그는 때로는 담천이 되기도 하고 남천이 되기도 한다.송병훈의 말은 계속된다.세상에 이런 순수한 사람 만나기 여간 힘들지 않다고, 신문사 생활 30년 했지만 이렇게 질그릇처럼 투박하면서 인간미 물씬 풍기는 사람 만나 이야기 하고 여행 다니는 것도 늘그막에 여간한 행복이 아니라고,그렇다. 이해관계가 대추나무에 연걸리듯 매달려있는 수첩 안의 그 많은 이름 가운데 아무런 직책없이 만나도 계산하지 않는 사람 하나 가져 보는 것도 여간 좋은 것은 아닐테니까...
시인은 시로서 말을 한다. 정치인이 웅변으로 대중을 설득한다면 시인은 그의 마음이 시가 되어서 세상에 나온다. 그 시속에 담긴 어휘들이 곧 시인의 마음이라면 남천의 마음은 남의 빛이 되어 타들어가는 하나의 정성이다.그는 가톨릭 신자 이전에 이미 사랑과 평화를 몸으로 터득한 사람 가운데의 하나이다.그가 쓰는 시에는 분렬과 증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누구를 헐뜯고 비방하고 비판하지 않는다.아늑한 평화가 깃들어 있는 그의 시는 그의 인생관과 맥을 같이 한다. 빛이 되어 송병완 빛은 어둠 속 바라는 소망 영원한 말씀에 생명의 빛이 정쟁과 뇌물이 판치는 세상 테러와 보복 전쟁 밀레니엄 사생결단이라 세상의 빛보다는 이웃에 빛이 자기 몸 태우는 촛불의 삶 정성껏 찾고 기쁘게 붙잡고 사랑으로 껴안아 추악한 정복일까 유혹일까 하늘에 별빛보다 작은 빛 촛불이라면 항상 당신 곁에 서 있을 거야 2001.12.24 광주 두암동 성당에서 남천은 소위 일류 시인이라는 글쟁이들이 거의 상투적으로 달고 다니는 그럴듯한 가방끈이 그리 화려하지 않다.그리고 가방끈이 보잘것 없다고 거기에 누구처럼 무슨 최고경영자 코스 수료라든지 돈주고 얻은 것이 거의 확실한 이름 모를 외국의 어떤 대학의 박사라든가 하는 허위가 엿보이지 않는 그저 우리들의 어려운 시절에 고을에서 한두명 있을까 말까한 고등교육 출신이고 그걸 평생의 학업으로 인정 하고 있다.그러나 일찍이 서당(書堂) 생활을 하여서인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경우를 터득한 역시 우리 시대에 몇 안되는 경험을 갖고 있다.그 서당의 짧고 엄격하고 구시대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그는 인간의 선과 악, 그리고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예의를 알았고 이것이 평생의 좌우명이 되는 몇자의 글귀를 선사받았다." 克我省愛가 그것이다. <자신을 이기고 항상 성찰을 게을리 하지말며 이웃을 사랑하라>" 그는 자신의 꾸밈이 전혀없고 소박한 이력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나는 1947년 2월 5일 전남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 184번지에서 출생했습니다. 6.25 당시 아버님은 한국청년단원이고 중부(仲父)님은 국군 사병 그리고 숙부님은 장교로 집안이 뿔뿔이 피난생활하였으나 인명 피해 한명없었습니다.학교는 초등학교 6학년 중등교육 그리고 고등교육은 3학년 편입졸업 하였으며 2002년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 수료와 중등교육후 서당(書堂)에서 3개월에 천자문 배우고 명심보감 15페이지 읽은 경험으로 독학으로 1966년 공개경쟁시험에서 합격하여 19세에 동년 10월1일 담양군 남면사무소에 지방행정서기보 시보로 발령되어 대덕면사무소의 각 계장 그리고 1988년 담양읍사무소 산업계장 3년 1990년 담양군청으로 청소계장으로 승진하여 주민 반대를 설득하여 전국 유일한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하였으며 분뇨처리장을 확대시설하였습니다.
그후 관행적인 썩은 운수행정에 주민편익의 운수행정에 과감히 개혁하였습니다. 1999년 4월 양정업무 수행중 국가의 구조조정 시책에 호응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명예퇴직을 하였으며 동년 6월 헌법이 정한 녹조 근정포장을 수여 받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아픈 추억은 과거 관행적인 부정으로 설치된 추월산 케이블카에 의해 관리소홀로 구속위기에 처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로 입증 받았습니다.
명예를 재산으로 삼아 살아가는 깨끗한 공직을 지켰다는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일 수도 있습니다.18세 청소년 시기에 소매치기를 취직시켜 주어 바른길로 가도록 하였으며 존경하는 여수출신 삼은 형이 죽어 조문간바 여천 나병환자촌으로 그들과 고통을 같이 한바 있으며 소록도 나환자 방문 위로 한 사실이 있습니다, 공직당시 KBS 사랑의 삼각끈에 어머니(어머니가 계셨지만) 한분과 소년가장 형제와 결연하여 돕다가 어머님은 새로운 남편을 만나 가셨고 소년가장은 큰아버지에게 돌아갔습니다
최근 2002년 9월 다방에 있는 고아를 몸값 500여만을 주고 빼와 데리고 살았는데 지난 7월 16일 죽을 죄를 지고 떠난다는 편지 한통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나는 항상 "나의 생각이 삶이다" 생활 자세와 가훈은 " 克我省愛"로 자신을 이기고 항상 성찰을 게을리 하지말며 이웃을 사랑하라"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했습니다.
저의 자녀는 아들 셋이고 큰아들은 지금 학원에 다니며 둘째는 공인 회계사에 합격하여 국민은행에 취직하였고 막내아이는 육군 장교로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선배의 중매로 집사람의 사촌 오빠가 전남대 총장을 역임한 최한선 교수였습니다 저는 본관이 홍주 송씨이며 시조는 고려 별시위 송계이며 2대 송문중은(고려사 공양왕편) 나주목사와 공양왕때 이색의 수제자로 이성계와 함께 조정에 벼슬하였으며 대사성에 올랐고.12 군수 현감 등을 지낸 송구와 그 아들 물염 송정순 손자이고 선조 임금에게 올린 " 만언소"로 유명한 송제민(외종 동생 김덕령장군 사위 권필 문인)이 손자이고 송제민의 아들 송타 (임진왜란에 함평 사포나루에서 왜적과 싸우다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다 바다에서자진(自盡))의 손자입니다.
조선조 유미암 선생의 부인 송덕봉 할머니는 여류 시인이며 송타 할아버지 시 "강호 한정은 " 대학에서 출제 시로 유명합니다 저의 아버님은 지방자치 실현으로 60년대 초대 2대 지방 면의원을 하셨으며 숙부님은 장교로 제대하여 면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집안은 대체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청백전가(淸白傳家)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 마로니에 샘가" 인터넷에 들어가 "시 세상 동인회" 클릭하면 송병완 창작 노트에 자료가 있습니다. 저는 2000년 8월 대한겨레문학 시부문으로 등단하여 2002년 5월 3일 "천지에서 백록담까지" 시집의 출판시 강원도 강릉 관동대학 엄창섭 문학박사 님이 시평(詩評)을하였고 책에는 최산추 선생이 시평하였습니다.이것이 저의 간단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의 이력입니다.>
그렇다. 그의 이력은 남들보다 화려하거나 뻑적지근한 요란함이 없는 한국의 시골 출신아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었다.그러나 그의 이력에는 인간다운 성실과 정직이 있다.그리고 눈믈이 있다.글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의형제를 맺었다든가, 다방에 고용당해 돈이없으면 평생 남의 노예 노릇이나 할 레지 아가씨를 5백만원을 선뜻 내어주고 빼와 데리고 있었다는것은 말로만 사랑과 자비를 뇌까리는 자칭 휴머니스트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가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천지(天池)에서 백록담(白鹿潭)까지 송강정이나 물염정 등 정(亭)자가 붙은 언덕위의 옛 선비들의 모임터를 찾아가노라면 어김없이 길 양편으로 외지에서는 웬만해서 볼 수 없는 식물이 도열이나 하듯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봄에서 부터 가을까지 이 나무에서는 붉은 꽃이 쉴새없이 피고 한번 핀 꽃은 적어도 백일 이상 견딘다 해서 백일홍, 또는 자미(紫微)란 이름이 붙여졌다. 자미꽃이 만발한 이 아름다운 시골길, 그것은 일찌기 남천이 면에서 공무원 생활을 할때 손수 심어놓은 유적과 같은 나무요, 그 꽃이다.그의 첫 시집인 "천지에서 백록담까지'에는 많은 산 이름이 나오고 그 산 이름에 모두 의미를 붙여 놓았다. 산을 그냥 흙과 나무로 덮힌 산이 아니라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산,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의 숨결이 박혀있는 그런 산으로 그렸고 그것이 바로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으로서의 남천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뿌려 놓은 자미나무에서 백일홍이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듯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모자라는 영혼과 시어(詩語)를 찾고 수많은 나름대로의 어휘(語彙)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미에서 백일홍이 백일동안 아름다운 꽃을 피우 듯이 그의 시를 꽃 피우려고 하는 것이다. 내연산 송병완 견훤과 놀다가 발병이 난 삿갓 무거운 몸 질질 끌고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천리길 마다하고 돌아다니다가 쌍생폭포에 선녀들과 옴 마니 반메훔 염불하네 내연산 12 폭포에서 이리 저리 뛰며 海阿縣 내연산아래 팔면보경 찾아 들고 당나라 孟浩然 시인과 어울리네 동해 바닷길 따라 돌고 돌아 푸른 파도에 끌려 갈메기와 춤춘다 지평선 넘어 쌍끌이로 오징어 몰아 만선에 불 밝히며 돌아오네 파도야 파도야 이 아름다운 추억을 내연산 보경사에 새겨놓고서 언제 다시 한번 향로봉에 올라볼까 하노라 2003년 9월 25일 내연사 보경사에서 그는 산과 들에서 시를 줍고 사람들이 모인곳에서 사랑과 평화를 줍는 시인이다.그래서 그가 눈으로 보는 모든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바닷가에서 어부를 만나면 어부와 친구가 되고 그들의 설움과 아픔을 함께 하고 산에서 이름모를 꽃을 보면 그 꽃에다가 아름다운 의미를 선사하는 사람,그가 남천이다. 발걸음에 시를 수놓는 사람 뒤늦게 문학이란 동네에 발을 들여 놓은 남천은 그 발걸음이 가장 바쁜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삶을 기뻐한다.그의 시는 그래서 삶의 기록이자 여행이면서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랑의 교류라고 할 수 있다. 가깝고 먼곳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지 문학회의 행사가 있으면 찾아다니는 그 열성에 사람들은 놀란다.그는 문학회에서 시낭송을 하는 것도 즐겁지만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술한잔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그의 시를 읽어보면 우선 그 장소가 매번 바뀌고 장소뿐만이 아니라 만난 사람들의 이름도 매번 바뀌고 그들과의 만남속에서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의 흔적을 언제나 흘려 놓는다. 담양의 메타 세콰이어의 곧은 길을 걷다가 불쑥 서울의 한복판에 나타나는 그의 순박하고 어수룩한 얼굴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계산된 세련된 센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사람의 오래된 친구의 모습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며칠 전에 그는 한달에 한번꼴로 예정된 서울의 금천구에서 시행하는 문학회에 참석해서 또 다른 회포를 풀기도 하고 목청껏 시를 낭송하기 도 했다. 국화향기에 슬픈 추억 따라서 하나의 그림자 뿐 송병완 머물지 못하는 내 그리움이 안개아침 찬 이슬 받고 속세의 분분함이 묻어나오고 홀로 남은 허수아비 보이는 것은 허상일 뿐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는 공산만이 남는 법 아직도 늘 아픈 상처가 말로 표현치 않이 했을 쁜 어찌 홀로 서 있을 거나 댓잎에 바람타고 떨어진 이슬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멈추어야 했던 기억들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늙은 가지 끝을 지난 세상 밖으로 밀려나 있는 곳 하나의 그림자 쁜 2003.10.11 금천 시낭송회에서 남천의 시의 특징은 자신의 시에 많은 지기(知己)를 등장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한 시대를 사는 모습을 함께 해보고 허망하기조차한 삶의 한 순간을 나눠보자는 마음이 기저에 숨어있는 것이리라.따라서 그의 시 한편은 오늘의 기록이고 자신의 삶의 연속이고 또 그가 이웃에게 내민 손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그것은 아래의 시를 읽어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재 신임과 오늘 내각 총사퇴 충격적인 발언에 대하여 일파 만파… 발목잡기의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대통령 주변의 비리와 기업체에서 한나라당 100억 민주당 그리고 대통령 보좌관에 뇌물을 주었다 한다. 주말사극 "무인시대" 에서 정중부 일당이 고려 명종에게 뇌물로 황실과 혼인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정치판이라.. 태풍 매미가 활키고간 들판을 바라보며 가슴 아픈 수해 민들! 산천에 붉게 물들려 진 단풍으로 감추고 다가오는 15일 원주 치악산 행 준비로 일죽과 초막에 주고 받은 통화 가을 바람은 차창에서 부대끼고 있다. 시흥역에서 만난 친구 동제는 " 친구야 반갑다! 이런 모임이 없다면 언제 볼까 나?" 금천 시흥3동 동사무소 복지센터 3층에 만난 시인들! 아름다운 미소로 반겨주어 감회가 새로웠다. 제21회 금천.호암 문인협회 ,금천 시 낭송회날 머나먼 광주서 왔다고 안춘자 정은기 시인의 따뜻한 영접! 배명식 목사의 미소와 오늘 낭송 시화 그려 실내장식하고 있어 보기 좋았다. 이봉래 시인 사회로 안춘자 회장의 인사로 시작한 시 낭송은 구구 절절 인생 역정의 모습 그려냈고 사랑의 시어가 감미로웠다 이경해 한겨래문학회장, 송향섭, 이창수,최종일, 이주철, 송병완, 박연복 고문, 정연칠,남순대, 김영심, 진정해,이봉래,최지은, 배명식, 김성룡, 최미경,정은기,안춘자 순서로 시 낭송하였다. 이주철 시인은 시 낭송에 앞서 아송 윤종혁 박사의 죽음의 사연을 들려 주었다 아송 윤종혁 선생은 금년 봄 4월 20일 아침 일찍 이주철 시인을 불러 "영국에 있는 긴 여로" "어느 안내양의 A학점" 두 권의 책을 주어 받았다 그리고 오후에 3.1 빌딩에서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사연은 알길 없으나 신문에 보도 되었다고 한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루였으며 충주 장지 가서 보니 석곽에 가묘로 써있는데 파보니 물이 콸콸 쏟아 저 왜 선생님 가는 길마저 험 란 한 인생인지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선생님은 원래 당뇨병 지병이 있어 고생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다 한다. 약력은 충북 중원군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학과, 동교 대학원을 졸업, 한국문인협회 번영분과회장을 역임하고, 고등고시 영어 시험 위원이며,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장 역임, 국민 포장 수상과 세계시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셨다. 필자 본인 등단 시에 대한 심사위원으로 호주에서 시인대회에 참석하자 하였으나 경비관계로 본인은 참여하지 못하였으나, 2002년 비안도 문학기행에 추억을 함께 하였다. 나는 " 기억에 사라질 밀짚모자" 시 낭송하면서 고인을 추모하였다 선생님의 시를 올려 놓으면 산 촌 아송 윤종혁 산딸기 머루 다래 마음껏 따먹고 뛰어 놀던 한 나절의 산마을 천둥산 박달재 아랫마을 지붕 위 빨간 고추 위로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이제야 생각하니 늙어 가는 이 마당에 세상 사 허무 느껴 되돌아가고픈 시골 마을 느긋한 말뚜 느긋한 걸음 느긋한 마음 지금도 그 곳 산촌 물가엔 자갈 모래 여전하리니 모래무지 틩바귀 피라미 불거지 송사리 쏘가리 메기 물고기 노니는 물속 탐방구질하며 놀던 그 때 어린시절 그립구나 눈앞에 아롱거리네 잊지 못할 그리운 당신 송병완 들국화가 몸부림 치는 날 하얀 갈대 헤치며 간다 손짓하는 단풍에 미쳐 상사화가 시들어 가는 날 하얀 갈대 춤추며 간다 보고싶은 사람에 미처 하얀 구름 두리둥실 뜬 날 하얀 갈대 보듬 고 간다 아름다운 당신에 미쳐 정든 사람 보고파 가는 날 하얀 마음 안겨 주고 간다 잊지 못할 그리운 당신 2003년 10월 11일 제21회 호암 금천문인협회 시 낭송회 참석 마무리의 장(章)에서...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대저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만남과 헤어짐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대략 1천 5백여명이라고 한다.물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겠지만 우리같은 범인(凡人)들로서는 이것도 다소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가운데서 여러 경조사에 참석할 수 잇는 사람들이 10분지 1을 잡으면 1백 50여명, 그리고 마지막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날때 영안실이나 묘소까지 찾아와서 그 친구 아깝고 아까운 사람이라면서 눈시울을 흘리는 친구가 두어명되면 아주 잘 산 인생이라고 한다는데 남천은 필자가 보기에는 그리 이 범주에서 벗어날 것 같지가 않다.
이미 인생의 후반기에서 아직도 많은 애정을 갖고 발걸음마다에 사랑과 정을 담아 나르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가 떠난 세상에서의 허전함을 못참는 사람들이 이보다는 더 많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동적(動的)인 문학 정적(靜的)인 문학,문학과 인생이란 판이하게 다른 분야같지만 사실은 문학과 인생이란 한 범주 안에 공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문학이란 글을 통해서 인생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삶의 희비애락 등을 표현하며 진정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그런 의미에서 문학이란 인생의 동의어이면서 공존의 가치를 사람마다의 가슴에 각인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생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남 출신의 시인 남천 송병완은 좀더 특별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그는 여느 시인처럼 현란한 수식어나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다소 인문학에 무지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그런 시인은 아니다.그것은 우선 그의 지난날들이 그것들을 증명해준다.
호형호제를 해왔으나 이해관계의 한계를 못벗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중 서산마루에 삿갓쓰고 휘적휘적 바쁜듯이 걷는 황혼의 나그네를 보았으니 그가 떨어뜨린 그많은 꽃잎들은 우정과 사랑과 평화의 불길로 이 세상에 다시 남겨지리니 그가 남천 송병완,
그의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평범하지만 평범치 않은 진정 사람냄새 풍기면서 한 세상을 살았노라... 끝 |
첫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