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김씨....
개인적으로도 한자마을 도강김씨와 인연이 많습니다.
도강은 지금의 강진을 이르는 말로 도강김씨 황산입향조는 김희조(? 그의후손 중 한사람)
입니다만 그가 어찌해서 한자마을로 입향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내력은 전하지 않습니다.
추측컨데 아마 손이 미약하거나 아니면 간척사업을 위해 이거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처음 황산면지의 선대인물편 도강인의 등재 당시 제 3대 해남군의회 의원을 지낸
김덕재 선생께 자문을 구하니, 김위서와 그의 손자 철현에 대해서만을 전해주시더군여...
"아니! 한자마을 도강김씨하면 김시림누나랑, 아버님, 김경채 형 등등등 황산에 내놓으라하는
천재급이 많은데 저분 한분 뿐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리고 영구음수의 명당에 자리를 잡았으면 아무리 못해도 장`차관급은 나왔을 것이 아닙니까"
"만들어서라도 주십시요"
그랬더니 그냥 웃으시더군여...
사실 머 인물이 기록해서 후세에 알려지는 것 보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말하지 않아도, 기록하지 안아도 그냥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져 그 이름이 백세 천세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인물이라 보기에....
또 해남의 아기 김시림 시인 한명만으로도 해남육현과 견주어 전혀 꿀리지 않다 사료되기에...
또 편집국의 게으림이 더해져 그럴 수 박에 없었지만....그리하여 면지의 선대인물에 등재 된
이는 김위서와 그의 손자 철현 뿐입니다(관직은 묘비명에 나타나 있는 것을 적어 오셨더군여).
그리고 인물평도 전하는 것이 없다고 하더군여..
아마 김용운 선배님을 먼저 알어 여쭈었으면 많은 말씀을 주셨을 텐데 그것이 아쉬움이며....
도강김씨와 관계한 것 중 특이한 것은 목마른 거북이 대해를 향한다는 도강김씨 선산의 묘입니다.
지금의 산소마을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11시 방향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섬이 바로 영구음수형 명당터라고 알려진 '별도'입니니다.
당연히 별도의 별은 별주부전의 자라별鼈을 뜻하고....
하여간 그곳은 한누에 보기에도 큰 거북이가 바다로 막 나아가려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명당이냐? 아니냐?를 알려면 묘를 쓰고 난 뒤 소위 잘나가는 위인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하는디... 선대의 인물 중 딱 두명이 뿐이더균여...
이상하구나! 아직 정혈에 못들어가셨나! 실은 묘자리까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전문적으로 풍수를 공부하는 넘도 아니고해서.....
하지만.. 천한 학문의 눈에서는 한줄기 맥이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어렴풋이...
그리하여 머지 않아 좋은 인물이 태어나겠구나!(이름을 떨치겠구나)
생각이 들더군여...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도강김씨 후손들께서는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아마 가문을 빛낼 좋은 인물을
만나실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김시림 누나는 삼산의 자랑 고정희 시인보다 한푼도 부끄럼이 없는 해남의 인물이시고..
'당신 가고 없는 지금 - 작 김시림'
그날 아침
비에 젖은 능소화
꽃숭어리 째 떨어져 있었다
당신에게 건네자
소중한 보물처럼
책갈피에 간직했다가
손수 고른 액자에 끼워 넣었다
당신가고 없는 지금
빈책상을 지키고 있는
계미년 칠월 스무 아흐렛날의 꽃
그를 불러
소실점 너머 사라진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다'
기막히지 않습니까?
스승을 사모하는 제자가 마음을 담은...
강렬하게 확 다가와 가슴을 치고 일순간 물러가는 성난 파도가 아니라.
그냥 가슴 저미게(칼로 얇게 썰다) 밀려오는 파랑 같은....
위의 시는 우보 황도훈(이 양반 대단한 양반입니다. 역사적으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공주대학교
이해준 교수가 이 양반의 사사를 받고 이 양반 앞에서는 대 여섯 수 접고 들어간다고 할만큼
해남보다 더 중앙무대에서 더 알아주는 분이시니깐.
이양반의 손에서 비로소 해남의 역사가
정립됐다고 해야 할까 물론 도덕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그건 늘 천재에게는 실력으로
안돼니깐 그런 류라도 문제를 제기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시림누나는 이 양반의 마지막 제자라고나 해야할까... 안타깝더군여 한 3년여만 더 계셨어도 많은 가르침을 받앗을 텐데 누나의 소개로 딱 세번 뵈었습니다. 햐 명인이시더군여 머 역사`학문적 소양은
워낙 대가니깐 그렇다 치더라도 대가에 걸맞는 인격을 보여주시더군여....
그녀는 그를 닮았더군여... 누나를 만나본 사람들이면 그녀가 너무나 친절해 혹 자기를 좋아하지는
않을까 착각에 빠지게 하는 느낌을 받는데.... 그 냥반도 그랬습니다...그래서 그가 그런 극찬으로..)의
타계를 아쉬워 하면서 남긴 추모시입니다.
말이 또 옆길로 새엇는데,
이분 보다 더...그러하니... 후손들께서는 그리 상념하지 않으시기를.....
한자리라는 말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건 냉중에 말하기로 하고
한자리를 또다르게 '물아래'로 부르는지 아시지여
물아래는 지금의 한아고개에서 바라보면 꼭 물의 아래쪽에 위치해 보인다고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인데... 정작 그곳 사람들은 물아래라고 하면 기분 나뻐하시더군여,...
근데 이제야 물아래사람들이 왜 기분 나뻐하는지 알앗습니다.
물아래를 쬐깐 빨리하면 '부랄에'라고 음운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잇는데
꼭 욕하는 것으로 들려 그래서 그러시더군여...
또 원호마을 국사봉의 뒷편에는 병풍바위라고 하는 기암이 있는데..
물아래 여자들이 그 쪽을 바라보면 바람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쪽 남자들이 병풍바위를 못 보게 그쪽 방향에 나무를 심어 가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찌 됐건 제가 알고 있는 도강김씨들을 보면 명석한 두되의 소유자가 많고 강직한 성품과
선진자적 리더쉽을 갖춘이들이 많더군여... 아마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휴.. 글을 막 쓴다는 것이 참 힘드네여..... 혹여나 틀린부분이 있거나 추기할 내용이 잇으면 추후
더 올려 놓겠습니다.
김위서((金位西 도강인 1628~?)
한자마을 입향. 도강(道康)은 현재 강진으로 도강김씨의 시조는 김희조(金希祖)이다. 김위서는 김희조의 후손으로 무과급제(武科及第) 후 용양위 부사과 나주 영장을 역임하였고, 그의 손자 철현은 행직(行職) 절충장군 용양위(龍驤衛)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첫댓글 형진에게! 지난 10일(황원장님의 추모제) 잠깐 얼굴만 보고 말도 없이 헤어지고 말아 무척 안타까웠단다. 상경하기 전에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가 꿀덕개 바다에 가서 유년 시절의 내 발자국들과 소꿉놀이 하고 왔단다. 아직도 그 여운이 내 가슴속에서 파도치고 있구나.
두눈이 맞주치는 순간, 가슴은 이미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갔으니.... 더 이상의 필설은 그저 부끄럽습니다. 쪼끔 서운한 것은 해남의 정신적 지주셨던 그분의 자리가 너무나 왜소해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후 몇몇 군의원들 한티도 서운함을 토로하면서..... 지금 하는 일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누나가 많이 도와 주셔야 할 것 같니다. 그리고 이곳에 몸담고 있는 선`후배님들도 아주 많이.. 그리고 이곳만 들어오면 자꾸 오류가 나서 글을 등재하지 못하는데... 개선해 그것도 노력가할랍니다.
감사합니다-도강김씨 바로우리김을말씀해주셨네요-
한지리내고향 정말좋구요-우리선산이-산소리안산길-큰인물?-기다려봅시다 감사합니다
꿀떡개?정말오랜만에들어본이름 꿀떡개 한자 산소 신흥사람아니면 어려운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