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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만 남
한영은 (서울 무학여자고등학교 3-10) 주인집 아저씨의 화단 한가운데, 무화과나무 새순이 돋았다. 물기 어린 묘목의 가지 끝에 핀 푸른 새순들을 어루만지며 나는 툇마루에 앉아 꺾어온 민들레 홀씨들을 후우하고 불었다. 창살이 구부러진 목재 문 사이로 보이는 감색의 이불보 위로는 일주일 전, 의식을 잃은 아버지의 몸이 뉘어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재 문의 문고리를 잡아든다. 아버지는 갑작스레 라면을 끓이다 쓰러졌다. 목공소에서 나무들을 다듬던 일을 하던 아버지는 그러나, 정작 당신의 몸은 단 한 번도 아름답게 깎아낼 수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오른손을 들어 차갑게 식어버린, 이제 막 아스라이 온기가 전해져 올 것만 같은 아버지의 손목을 잡아든다. 습기가 없는 생선살처럼 푸석한 그의 손등이 금방이라도 나의 머리 위를 쓰다듬어 줄 것만 같다. 창밖으로는 이미 봄이 왔는데…. 왜 아직도 나의 마음은 앙상한 고목나무의 잔가지 위로 머물러 있는 걸까. 내 마음의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아버지는 나를 입양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원내 복도를 가득 채운 채, 물씬 코끝으로 싱그러운 꽃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희망보육원 철제로 된 팻말 아래 목재로 된 성긴 계단을 오르며 나는 똑똑, 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시계의 째깍임이 귓속에서 멈추었다. 말할 수 없는 고요가 조용히 내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던 순간, 나는 나와 닮은 한 사람을 발견했다. 130cm 정도로 돼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에 눈가에는 옅은 주름이 있었고 여물지 못한 호두알처럼 얼굴에 수많은 흉터가 있는. "이 아이도 왜소증을 앓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이 아이를 피터팬이라 부르죠. 많이 아프지만 씩씩하고 착한 아이에요." 원장 어머니의 손끝이 내 머리깃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굽은 등마저도 들썩이며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저 같은 환자도 입양이 가능한가요? 사실은......" 그의 말 뒤로 이어진 사실의의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처음부터 부여받은 운명만을 만남이라 말하죠. 그러나 세상에 자신과 닮은 또다른 누군가 있다는 것, 만나진 것이 아닌, 만나기 위해 있었던거. 아버님과 이 아이도 서로가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이 시간의 어느 모퉁이를 헤매어 오고 계셨던 건지도 몰라요." 아버지가 내 손을 부여잡았다. "아빠라고 불러보렴"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아버지와 나는 함께 가족이 되었다. 시내를 나가면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괴물을 바라보듯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곤 했으나 우리는 행복했다. 오롯한 거인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피터팬이 되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여전히 의식이 없는 아버지의 머리 위로 형형색색의 빛깔로 하트 무늬가 박히고 고깔 모자를 씌운다. 방충망이 늘어진 잿빛 유리문 사이로 투과된 봄볕이 볼 끝을 간지럽게 스쳤다. 생애, 마지막 그 경계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내 손을 처음 마주 잡았던 그 순간을 생각한다. 생애 마지막 봄볕을 맞으며 의식이 없는 아버지는, 당신의 생일축하 노래를 듣는다. 툭, 순간 아버지의 머리 위로 개나리 봉분이 피었는지 모른다. 처음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던 그날처럼, 오늘 밤 나는 내 마음의 아버지를 만난다.
차상
오소영(마산 제일 여자 고등학교 2-4)
사람은 누구에게나 만남이 있다. 그 만남에는 기쁨과 악이 존재하지만, 언젠가 그 만남이 깨져버리는 것이 순리이다. 열여덟, 인생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바닷가의 모래 알 수 만큼 셀 수 없는 소중한 만남들이 있었다. 나 역시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내게 소중하고 행복한 만남은 영원히 지속되길 바랬고, 내키지 않는 만남은 빨리 깨지길 바랬다. 만남은 흔한 일이지만, 그 만남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기에 정말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기분 좋지 않은 만남도 역시 그런 존재인데, 그것을 깨버리려고 하는 인간의 숨겨진 내면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나 역시 그런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나쁜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지만 오늘 나의 옳지 못했던 과거를 고백하고 반성해 보려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만남을 잘못된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그것이 빨리 깨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말해왔다. 그 분이 바로 나를 위해 희생하시는 나의 '어머니'이다. 딸과 어머니의 다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와 나는 좀 더 심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나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발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가지게 되었고, 그 후로도 몇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해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동생의 그런 모습에 늘 마음 아파하시고, 눈물을 흘리셨으며, 동생에게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나는 항상 어머니의 그 모습이 불만이었다. 한 살이라도 많은 누나가 마음을 넓게 가지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기적인 나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어머니께 '엄마 없이 살고 싶다'.'엄마는 동생 밖에 모르니까 나는 주워온 자식이 틀림 없다' 등으로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곤 했다. 그때 어머니가 가슴으로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마음이 아파온다. 얼마 전 나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수학여행 전날 밤, 그때도 어김없이 어머니와 크게 싸웠다. 어머니와 제대로 화해도 하지 않고 제주도로 갔는데 여행 내내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4일을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지금 아니 평생동안 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행 전날, 어머니께 "제대로 해주는 것도 없느면서 나를 왜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해" 라는 말을 해버렸다. 그때 어머니의 눈에 고였던 눈물을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가 된다. 분명 내 마음은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외쳤지만,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어머니를 울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는 항상 나를 위해 희생만 하셨다. 새벽부터 나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셨고, 늦은 밤이면 버스 정류장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셨고, 늦게까지 공부하면 내가 혹시나 공부하다 책상에서 잠이 들까봐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켜주셨고, 나에게는 늘 새것들만 주셨지만 어머니께서는 내가 사용하던 헌 것들을 사용하였다. 왜 나는 그때 물질적인 것만 생각하며 사소하지만, 이런 가치 있는 존재들을 알지 못했을까? 지금 어머니의 모습에는 나를 위한 희생의 흔적이 가득하다. 항상 파스가 붙여져 있는 어머니의 팔, 만지면 딱딱한 것이 잡히는 어머니의 어깨, 웃을 때마다 보기 싫은 어머니의 눈가의 주름, 늘어진 어머니의 똥배, 내가 신지 않는 목이 늘어난 양말, 불편하다고 내가 신발장에 쳐박아 둔 운동화, 어머니는 나에게 관심을 안 가진 것이 아니다. 단지 동생이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기에 동생에게 좀 더 관심을 두신 것이었지 그것으로 인해 나에 대한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주신 일들은 정말 많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서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해주시지 못헀을 뿐이다. 항상 어머니의 마음을 다해서 사소한 것들을 챙겨주셨다. 어리석은 나는 그걸 몰랐고, 한때는 어머니와의 소중한 만남을 깨뜨리려고 하는 나쁜 생각까지 했었다,. 내 마음 속의 바다에서 그때의 후회스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비록 그동안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난 행동을 했지만, 지금은 그 행동을 반성하고 어머니으 딸로서 어머니께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지금은 그 어리석은 딸은 용서해 주세요. 너무나 죄송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당신과의 만남을 평생 지키겠습니다.
차하
이신형(창원 경일여자 고등학교1-3)
만남 그것은 참 소중하고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가슴 설레이는 것이다. 지구라는 크나 큰 세상 속에서 각자 다르게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60억 명의 사람들 중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 만남을 가실 수 있다는 것, 인연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매우 값지고 아름다은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것이다. 17년, 짧다고 느낄 수도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만남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는지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 다음에 또 만나겠지 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만남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었다. 그런 내가 만남이라는 것을 소중하고 값지게 여기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그 선생님을 뵌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그 선생님은 참 마음이 푸근하시고 정이 넘치는 분이셨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가볍고 소홀하게 여기시지 않으셨다. 언제나 사람을 존중했다. 그 사람이 비록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만남을 매주 소중하게 여기셨다. 만남이 없으면 사랑도, 세상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처음엔 선생님의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 선생님과 깊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평소 여행을 자주 가시고 즐기시는 선생님께 어떻게 그렇게 여행을 자구 가시냐고 너무 자주 가시면 힘들지 않으시냐구 여쭈었더니 선생님께선 입가에 잔잔하게 미소를 띄우시며 말씀하셨다. "처음엔 그냥 여행가는 것 자체가 좋았단다. 이런저런 계획 없이 그냥 내 발길 닿는 곳에 머무는 것이 좋았지.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여행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이 정말 즐겁고 행복했단다. 그래서 그날 이후에 느끼게 되었지.'만나자, 사람들을 많이 만나자.' 하고 어찌보면 인간은 참 외로운 동물이란다.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 갈 수 가 없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갈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란다. 우리는 짧거나 혹은 긴 인생이란 터널 속에서 세상이란 큼 원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며, 또 만나고 살아가고 있지. 그러나 그런 만남들을 소중하고 값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만남이란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거란다. 인연이란 것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참으로 소중한 거야. 선생님은 네가 누군가와 만남을 가질 때 그 사람과의 만남을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여겼으면 좋겠어." 그때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고 난 이후로 난 만남이란 것을 매우 소중하고 값지게 여기게 되었다. 만남 그것은 참 어렵고도 쉬운 것이다. 내가 누군가와 만남을 가질 때, 그 만남이 매우 소중하고 값지고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만남은 매우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고, 그 만남을 소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 만남은 쉽게 잊혀질 것이다. 만남. 어쩌면 그것이 존재하기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이 있기에 우리에게 추억이란 것이 있고 설렘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남 그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것이다.
배다례(마산 삼진 고등학교 3-1)
새벽 6시. 등가죽이 벗겨진 물고기의 퍼덕거림처럼 아침의 정적을 가르고 우리의 하루는 시작된다. 아침운동을 가는 활기찬 사람들. 새벽녘 늦게 독서실에서 돌아와 피곤함에 긴 하품을 하는 학생들, 집에 있는 처자식들을 생각하며 일터로 나가는 가장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내 표정은 다른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하고 생각을 한다.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그 사람과의 짧은 만남을 갖게 된다. 어느날 늦은 밤의 귀갓길이었다. 어두운 골목의 구석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술에 취한 아저씨를 만났다. 어두운 밤길에 그런 아저씨를 보니 살짝 겁이 났지만 그 자리에 서서 아저씨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아저씨가 고개를 들고 날 쳐다보셨다. 그리운 옅은 술냄새와 함께, "학생, 밤늦게 공부하고 다니기 힘들지? 열심히 해요...공부 .았알지 학생?" 하고 슬프게 웃으며 말하셨다. 그 순간 일터에서 돌아와 피곤한 표정으로 "내 딸, 아빠 왔다. 뽀뽀 한 번 하자"하고 웃으시던 아빠가 생각이 났다. 늘 귀찮다고 짜증만 냈엇는데, 아저씨의 눈물어린 웃음을 보는 순간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아빠를 가다렸다. 늦게 들어와서 가족들이 잠에서 깰까봐 살면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를 꼭 안아주었다. 아빠는 딸이 평상시 같지 않은 행동을 하자 의아해 하시는 듯 쳐다보시며 물으셨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 있었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늘 우리의 그림자처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존재를 인식할 수 없지만, 우리가 존재함을 알려주고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까지 덮어주는 아빠.. 내 곁에 원래부터 있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밤 늦은 골목의 술 취한 한 아저씨를 통해 아빠와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삶의 고난이 묻어 있는 아저씨의 표정에서 아빠의 고난을 만났고, 아저씨의 뜨거운 눈물에서 아빠의 사랑을 만났으며, 나에게 건넨 아저씨의 한마디 말속에서 아빠의 삶의 희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느끼게 되었다.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이야기 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한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사람과의 짧은 '지나침'에서 또 다른 사람고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또 나에게 만남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말이다. 옛 선조들이 사람의 만남과 사귐을 중요시하는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짧은 만남'에서 늘 곁에 있던 사람들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그들과 더 '오랜 만남'을 중요시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날 난 늦은 시간 혼자 집으로 들어 왔지만 마음만은 아빠와 손을 꼭 붙잡고 들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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