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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자┃료┃방┃ 스크랩 판시판산(베트남) 등산
김정옥 추천 0 조회 216 05.10.13 18:43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참가인원 : 이준우(대장), 김정옥,이옥섬,이성식,김사규,이상용,조인순,서정우,조운묵,하덕수,

               배경도,안병오(12명)

여행경비 : 여행사 입금 1050000 + 추가경비200000 = 1250000
`              추가경비:하롱베이 관광, 선상 회


          2002년 7월13일

    10:00  인천국제공항 출발(VN939편 12명)

    13:00  하노이 노이바이공항 도착(한국과 2시간 시차)

    현지기온 36도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함.

    원 계획은 빅토리아 기차를 타고 이동하려 하였으나 계획을 바꿔 바로 대기하고 있던 25인승 버스에 올라  사파까지의 긴 여정을 시작함. 현지가이드 윤갑수씨에 의하면 사파까지 600KM 정도로 1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과장되게 말하나 했더니 도로에 나가니 곧 이해가 되었다. 도로는 포장이 되었으나 전체가 파손되어 비포장 수준이고 차선도 없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사람이 서로 섞여서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속도계를 보니 차는 시속 40KM 수준을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지도도 없어서 어느 도로를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차는 줄곳 달렸다. 도중 월남 쌀국수로 점심을 하였다. 향내가 조금 있었으나 먹을 만 하였다. 주인이 우리가 갖고간 깃발을 달라고 하여 식당 벽에 걸어놓았다. 교대하기 위하여 운전수가 둘이 있었으나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되돌아 나오기도 하였다. 한밤중의 도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데이트하는 쌍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라오까이에서 사파로 가는 길은 공사중이라 도로가 더더욱 엉망이었다. 길고 긴 여정 끝에 사파에 도착 새벽 2시에 빅토리아호텔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산에대한 정보는 얻을 수가 없었다.  사파 관광지도를 호텔에 비치하였으나 복사상태가 나빠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2002년 7월14일

 

 

     아침에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다. 구멍가게들이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었으며 제법 활기가 넘쳤다. 3층인 호텔은 언덕 중턱에 있어서 사파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로는 판시판산이 펼쳐져 전망이 일품이었다. 시내는 한줌에 들어올 만큼 작았으며 옆에는 호수가 있었다. 호텔에서 아침을 한 후 7시40분 버스를 타고 마을 왼쪽으로 해서 언덕을 올라 8시15분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짐을 정비하고 드디어 판시판산 정상을 향해 등산을 시작하였다. 날씨는 매우 맑고 고도가 있어서 그리 덥지도 않은 느낌이라 등산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도로공사가 한참이었다. 2~3분 정도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 아래로 난 등산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질러 능선을 따라갔다. 초원지대처럼 넓게퍼진 들판 끝에 이르니 그곳이 좌우로 능선이었으며 바로 내리막 경사의 저 아래로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 양옆으로 넓은 논 밭이 펼쳐져 있었으며 집들이 몇채 흩어져있는 마을이 있었다. 우리는 단숨에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 원주민집 담을 끼고 돌아 논밭을 지나 9시 유일한 다리인 출렁다리를 건넜다.

 

여기서부터 20~30도 되는 경사의 지능선을 따라 등산로는 이어져 있었다. 능선은 외길로 이어져 있었다. 덥고 습한 날씨에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고 또 올라 능선 끝에 이르러 뒤를 보니 우리가 건너온 내가 저아래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능선은 키작은 나무들과 억새로 이루어져 그늘이 없어 시야는 좋아서 전망을 즐기며 걸었다. 맑은 하늘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소나기가 되어 퍼붓고 있었다. 우비도 소용없을 정도로 세차게 퍼부었다. 신발속으로 물이 들어가 질척하였다. 오르내리는 작은 봉우리들을 따라 잡목사이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었으며 오른쪽너머 보이는 능선 왼쪽 끝에 고사목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산불지대다. 우리는 고사목을 보며 오른쪽 능선을 따라갔다. 능선 제일 높은 곳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비도 어느새 그쳐 햇볓이 따갑게 내려 쬐고 있었다. 오늘 바로 정상을 올라 갈까도 생각하였으나 예정대로 내일 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하고 장시간의 휴식을 취하였다.

 

  정상이 계곡건너 저 멀리에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뒤로는 우리 올라온 지능선이 연녹색을 띄며 저 아래 우리가 건너온 계곡까지 떨어져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 더 넘어에는 사파마을까지도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판시판산 등산로중 전망이 제일 좋은 곳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고사목을 바라보고 능선을 따라 가다가 안부에서 왼쪽 정글 속으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햇볓이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의 큰 나무들이 능선 허리와 계곡을 덮고 있었다. 완전한 오지 트랙킹 코스였다. 조그만 개울을 건너고  큰 나무가 한그루 서있는 곳을 지나 계속 앞으로 나아가니 계곡물 소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그위에 통나무가 하나 가로 걸려 있었으며 또 하나의 가느다란 통나무를 위에 걸쳐놓아 안전하게 계곡을 건너 갈 수가 있었다.

계곡을 건너니 바로 여기가 우리의 오늘의 목적지인 텐트터였다. 조금 위에 있는 캠프장에는 한사람이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비에 젖은 신발과 옷들을 말리며 휴식을 취하였다. 습기가 많아 바닥은 온통 질퍽대었다. 포터들은 대나무 잎들을 잘라 바닥에 깔고 텐트를 치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현지가이드인 윤부장도 이곳까지 거뜬히 올라왔다. 한쪽에는 화덕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방이 젖어있는데에서도 포터들은 불에 잘 타는 나무들을 해와서 불을 붙였다. 그들은 정글도 하나면 충분하였다. 통나무도 서너번을 치면 잘라져 나갔다. 브라질등산객 남녀둘이 가이드와 함께 올라왔다. 6시 정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장대비가 되어 쏟아진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해 더욱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구나 매트를 안 깔면 습기가 올라와 도저히 누울수가 없었다. 이렇게 비가오면 내일 등산은 포기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새벽 1시나 되서야 비가 그쳤다. 포터들은 교대로 밤새도록 불앞에서 지키고 있었다. 자는둥 마는둥 새벽이 되었다.

 

          2002년7월15일

 아침에 일어나니 전부 어제 밤을 설친 모습이 역역하다. 죽으로 아침을 대신하였다. 어둠이 거치자 5시25분 바로 정상을 향하여 등산을 시작하였다. 계곡 텐트터 바로 왼쪽으로 돌아서 얕은 능선을 넘어 등산러가 이어져 있었다. 작은 개울 둘을 건너니 바로 오르막 능선이 시작더 되었다. (5시38분) 보기에는 능선인데 깊은 골이 패여있고 나무 뿌리들이 드러나 있으며 돌들이 많이 부셔져내려 낙석의 위험이 많았다. 두손 두발을 다 사용하여 나무 뿌리를 잡기도 하고 기기도 하며 거의 70~80도 되는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어서 이 경사가 끝나기를 바라며 오르고 또 오르니 어느새 전망이 조금 트이는 바위에 도달하였다.(6시45분) 비가 오면 바로 계곡으로 변하는 곳이라 비올때의 등산은 절대 삼가야 할 집지점이다. 뒤 돌아보니 우리가 힘들게 올라온 길은 숲에 파뭍혀 보이지도 않았다. 앞쪽에는 부드러운 봉우리가 위로 이어져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또다시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전진하였다. 보기에는 완만한 산세인데 등산로는 계속 가파른 오르막 길이었다. 하늘이 안보이는 울창한 숲속이라 길을 가늠하기가 전혀 불가능하다. 앞에 멀리 하늘이 보여 능선인가 하면 다시 급경사가 이어지곤 하였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리 없다고 오르다 보니 경사가 완만한 능선길을 걷고 있었다. 텐트터가 있었다.(7시35분) 근래에 텐트를 친 흔적이 있었다. 텐트 3~4동은 칠수있는 공간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어진 능선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8시15분 정상 능선길에 들어섰다. 양옆은 대나무 밭이고 능선길은 그야말로 진흙탕 곤죽밭이었다. 등산로를 확보하느라 대나무를 칼로베어 그야말로 죽창이었다.  진흙탕에 발을 디디면 곤죽이 신발만큼 붙어 올라와 우리는 진흙탕을 피하랴 죽창을 피하랴 양말은 물에 젖어 발은 질질 끌렸다.  능선상에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났다. (8시40분) 능선 앞으로 제일 높은 곳이 정상이리라. 진흙이 곤죽이 되어 흘러내리는 곳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도 등산객이 많아지면 곧 골이 패여지리라 생각이 든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니 바로 정상이었다.(9시5분)

 

아침 텐트터에서 출발한 후 3시간 40분 만이었다. 5시간 걸린다고 하였는데 하여간 우리의 빨리 빨리는 알아줄만 하였다.  정상에는 10여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었으며 그 위에 베트남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정상임을 알리는 50센치 정도 되는 스텐 삼각뿔의 푯말이 있었다. 바위 옆에는 유리상자 속에 작은 호지명 초상이 들어 있었다. 날씨는 흐렸으나 비는 오지를 않았다. 구름 사이로 햋볓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우리는 정상에서 한시간 20분이나 있었으나 결국에는 원경은 보지를 못하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하였다.(10:23) 온길을 되돌아 가는 길이라 한결 수월하였다. 급경사 길에서는 한발 디디면 1미터씩 고도가 낮아진다고 농담도 하며 2시간 만인 12시 18분 텐트터에 돌아왔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1시에 하산을 시작하여 2시 능선 전망이 좋은 곳에 이르렀다. 햋볓은 내려쬐여 땀이 줄줄 흐른다. 정상은 구름에 가려 오늘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래쪽에는 계곡과 사파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하니 드디어 시냇가 다리에 도착(3:40)함으로서 우리의 판시판산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이 기분 이 느긋함 올해도 우리의 소망을 하나 이루어 냈다. 우리는 여기서 흙탕물에 범벅이된 옷과 몸을 씻고 오토바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도 오토바이가 오지를 않아 길을 따라 나갔더니 도로 공사중이라 오토바이가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 도로가 완성되면 원주민 마을까지 1시간의 등산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공사는 인력으로 하고 있으니 언제쯤 끝날지. 한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오토바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못 들어오면 연락이라도 해줄 일이지. 하여간 오토바이 뒤에타고 능선길을 넘으니 왼쪽으로 마을 운동장이 나온다. 호텔 입구에서 오토바이가 못 올라가 걸어 올라가니 다 올라와서 또 타라고 한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오늘 등산의 전 일정을 무사히 마치었다.

 

 우리는 하루를 벌었으니 상의하여 오후 6시 바로 하롱베이를 향하여 버스에 몸을 실었다. 18시간 생각만 해도 끔직하였다. 사파에서 라오카이로 나오는 길은 한참 공사중이었다. 더구나 발파작업도 있고 하여 내려서 돌을 치우고 나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리는 라오카이 국경 옆에 있는 중국집에서 늦은 저녁을 하였다.(11:00) 차는 밤새도록 달렸다.

 

          2002년7월16일

 버스 안에서 아침을 마지하였으나 차는 아직도 계속 달린다. 그래도 한밤중에 달려서 서너 시간은 단축된것 같다. 밤새도록 화물차들이 많이 달린다. 중간에 아침을 하고 하롱베이를 향하여 또 달렸다. 10시에 하롱베이에 도착하였다. 배는 11시에 뜬다고 하여 1시간 동안 해안 모래사장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바다에 보이는 섬들이 계림의 산수와 비교할 만 하였다. 왼쪽 바다에는 썬쿠르즈호가 기항하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2층으로된 관영 유람선 배를 통째로 빌려타고 하롱베이를 구경 할 수 있었다. 배에는 유네스코 자연유산 지정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의 깃발도 그 아래 달아 놓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섬들이 가지각색의 형상들을 하고 있었다. 와보면 우리가 모르는 이런 곳이 있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오며 우리나라 풍물의 단순함에 기가 죽기도 한다.

 

 

 배는 티톱섬에 기항해서 섬과 동굴ㄹ을 구경하였다. 동굴은 넓고 갖가지 모양의 종유석도 잘 발달되어 있었고 보존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였다. 점심때가 되어 북바리 다금바리로 회를 떠서 선상에서의 점심을 즐겼다. 비디오가 고장나서 더이상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비를 맞고 습기가 차서 그런걱 같다. 비디오는 정작 지금부터 찍을 곳이 많은데 정말로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롱베이 관광을 마쳤다.

 또다시 하노이를 향하여 5시간의 긴 버스여정에 들어갔다. 저녁은 대우호텔옆 호수가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하였다. 상호에 보신탕과 삼계탕이 적혀 있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특히 삼계탕을 좋아 한다고 한다. 느긋한 마음으로 호텔에 들어 여장을 풀었다.

 

          2002년7월17일

 벌써 베트남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호지명묘소를 관광하였다. 비는 아침부터 부슬 수블 내리고 있었다. 관람료는 없었고 입장객 줄은 끝이 안보일 정도로 이어져 있었다. 외국인을 위하여 따로 줄을 만들어 그나마 빨리 입장할 수가 있었다. 죽은 호지명은 살아있는 모습으로 유리상자 속에 미이라가 되어 누워 있었다. 베트남사람들에게는 국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옆에 있는 생가를 보고 버스를 타고 린빈(일명 따꼽)으로 향하였다.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 사람이 뒤엉켜 무질서하게 몰려오는 모습은 마치 폭풍우가 몰려오는 것처럼 전율을 느끼게할 정도이다. 린빈은 하노이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비는 도중에 그치었다. 린빈에 도착해 점심을 한 후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하는 따꼽관광에 들어갔다. 2명이 함석으로된 보트를 타고 늪지대로 된 강가를 유람하며 산수를 둘러보는 관광지였다. 사진사들의 보트와 과일 행상들의 보트도 같이 움직였다. 중국의 용경협과 비교할 수 있을 까. 물가에는 벼가 물속에서 자라고 있었고 오리들을 키우고 있었다. 옆의 산들은 기암 괴석으로 이루어 졌으며 물길은 산을 관통하는 굴을 통과하여 이어져 있었다. 우리의 관광 코스는 굴을 세개나 지났다. 보통 물길은 산을 휘돌아 흐르나 이곳은 바로 산을 관통하여 흐르는 것이 더욱 의아하였다. 왕복 2시간여의 관광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수 있었다. 베트남은 오랬동안 중국의 식민지로,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쟁으로 변변한 유적지가 없는데 반해 자연은 이런 축복을 이 나라에 준 것이다.

 

 

 

 관광을 마치고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서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옆 맥주집에서 맥주를 한 후 베트남이 자랑하는 수상인형극을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관람석은 관광객들로 꽉 찾으며 한번쯤은 구경할만 하였다. 1시간 여의 수상인형극이 끝난 후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처음으로 20불 옵션의 발맛사지를 받음으로서 판시판산 등산의 피로와, 장거리 버스 탑승으로 인한 누적 피로를 풀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바로 우리는 공항으로 향하였다. 현지가이드 윤부장의 적극적인 안내로 강행군한 여행이었다.

 

        2002년7월18일

 새벽 1시VN936편에 탑승함으로서 베트남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올때 벌은 2시간을 보태서 인천공항에 7시10분경에 무사히 도착하여 우리의 일정을 끝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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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10.13 22:06

    첫댓글 회장님 고생 하셨읍니다..................

  • 05.10.14 00:25

    치...나만 사진이몇개 없네요

  • 05.10.14 09:49

    카카카...내다리 생각이나네여...

  • 05.10.14 10:03

    하롱베이 생각이 간절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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