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추천하는 것 중에 제일 나은 걸로 신청을 했는데도 고작 이십 만 원짜리이니 심금을 울리는 좋은 소리나기는 애시당초 그른 물건이지만, 제대로 된 바이올린 가격을 알 리 없는 혜민이한테는 보물 같은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신기하고 좋아서 만지작거리며 활에 송진을 정성스럽게 먹이고 있다.
그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나 어렸을 때만 해도 피아노도 사치 품목이어서, 아이들이 줄줄이 다섯이나 되는 우리 집에서는 딸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키지 못했다. 스물 다섯이 되었을 때였다.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피아노를 배워서 월광, 열정, 비창 같은 곡들을 직접 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했었다. 그때 나는 언니 집에서 함께 살고, 서울교대 다니던 동생은 기숙사에 있으면서 주말이면 언니 집에 놀러오곤 했었다.
"언니는 이렇게 크면서 왜 나보다도 못 쳐요? 내가 가르쳐 줘요?" 이런 소리 들어가면서 동네 애들과 피아노를 몇 달 배우던 나는, 아무래도 피아노가 집에 있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피아노가 필요 없다는 언니한테 "언니도 교사니까 피아노 잘 치면 좋고 막내도 지금 교대 다니고 있어서 피아노 쳐야 하고, 애들 크면 어차피 사야하니까 미리 사두면 좋지 뭐." 하고 열심히 꼬드겼다. 그래서 피아노 값 절반을 언니한테 얻어내서 집 안에 들여놓는 데 성공을 했는데, 그때 그 피아노를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서 얼마나 열심히 반들반들 닦았던지.
자매들 나란히 앉아서 연탄곡 두드리며 흐뭇해하던 시절은 일 년을 넘지 못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치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피아노를 잘 치기에 내 손가락은 얼마나 짧은지 깨달은 나는 포기를 했고, 그 피아노는 지금도 조카들이 잘 쓰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피아노를 배워봤기에 직접 쳐야겠다는 열망을 열심히 듣는 걸로 바꾸는 데 성공을 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가슴에 소망으로 남아서 이 나이에 다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드디어 바이올린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에 불 켜진 연등처럼 환해져서 보면대 위에 악보 펼쳐놓고 폼잡는 혜민이를 보니, 작가넷의 슈가가 생각이 난다. 골목에 맞닿은 작은 방에서 예쁘게 생긴 선생님에게 바이올린을 배운다던 그녀.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환경이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고 좋아하던 그녀가 어딘가에서 지금도 바이올린을 켜고 있으면 좋겠다....
첫댓글 어릴 때 엄마는 없는 형편에 산수를 못하는 나에겐 시내로 주산학원을 보냈고 모든 게 더딘 막둥이 여동생에겐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다섯 자식들 중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느라...,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생각이 절 부끄럽게 합니다. 한땐 피아노를 가르쳐주지 않는 엄말 원망했거든요.
무언가 식작한다는 설레임은 애나 어른이다 다 같을 것 같아요...내 방에 피아노 들이던 날이 생각이 납니다.
저도 피아노를 쳤던 기억나요. 농땡이는 그때부터 있어서 제가 그만치겠다고 했는데 그 다음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더랬죠. ㅡ,,ㅡ 스트레스를 피아노치는걸로 승화(?)하고 싶을때마다 다시 배우고 싶음.ㅋㅋ
난 음치다. 그것을 초등학교 6학년때 계명을 외우다 알았다. 음악시간은 나를 놀리는 시간이다. 그래서 음악때문에 중학교를 3차까지 시험을 봤다.음악은 그렇게 나하고 절연된 상태로 살게 되었다. 노래방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