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다. 앞쪽에서는 어머니가 간헐적인 신음소리을 내뱉으며 들고 있었다. 뒤쪽에서는 만삭의 아내가 떠받치고 있었다. 큰놈이 울먹이는 표정으로 따라오며 간간이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큰놈의 손을 움켜 쥐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석아. 앞으로는 말이야......그림을 그릴 때 절대 사람을 그려 넣어선 안 된다. 산을 그리고, 냇물을 그리고, 나무들은 그려 넣어도 되지만......절대, 절대, 사람을 그려 넣어선 안 된다."
달빛이 들것에 실려가는 그를 향해 지천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납덩이 같은 무거운 물체가 짓누르고 있다 생각하며 그는 다시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큰놈의 목소리가 아슴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울고 있어." - 단편 <달밤> 끝 부분.
나는 다음 날도 퇴근 후에 김상남 선생님을 만나 대책을 숙의했다.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수사 과장의 책상 위에는 <부산아동문학가협회>의 합동 작품집이 한 권 놓여 있었는데, 나의 동화 <쫓겨난 여우>가 수록된 그 페이지 부분이 접혀 있었다. 저 책을 누가 입수한 것일까? 수사관들이 안 그래도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선 문학 작품을 읽으며 불온한 작가나 시인을 가려낼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데, 그들이 언제 저 책을 입수해 읽고, 그것도 내 작품을 지목하여 따지고 들 리가 없지 않은가? 누군가가 저 책을 건네주며 투서를 한 것이 분명했다.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모 시인에게 부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착수금이 필요할 것 같아서 두 사람이 몇 십만원씩 갹출했다. 당시로서는 한 달 월급에 버금가는 거액이었다. 무엇보다 김상남 선생에게 누를 끼쳐 미안했다. 당시 선생님의 생활 형편도 빠듯했다. 당시 영주동 산복도로 의 다 쓰려져 가는 열 몇 평의 낡은 아파트에 살고 계신 선생님으로서는 그런 돈을 준비한다는 게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해서 결국은 모 시인의 수사과장과의 친분을 이용한적극적인 설득과 무마로 그 사간은 일단락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후로도 나름대로의 정황 증거와 추론 등을 이용해 투서한 사람의 신원을 파악했지만 지금까지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심증은 가지만 정확한 물증이 없는 것을 어쩌랴, 짐작은 가는데 객관적인 증빙 자료가 없으니 이것을 어쩌랴. 그래서 나는 이 사간을 계기로 단편소설 <달밤>을 써서 주위에 알렸고, 또한 계몽아동문학회의 자료집에도 필화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밝혔다. 누군가는 모르겟지만 투서한 본인은 나의 그런 글을 읽고 일말의 양심 가책을 느끼리라는 목적의식에서 그런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 다음 해 1979년 늦은 가을 소풍을 갔다 온 그 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총에 의해 정치적 생애에 종지부를 찍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동화의 말미에서 언급한 황소 장군이 이끄는 혁명군에 의해 숲속의 독재자가 추방된 것처럼, 화무십일홍처럼 독재 정권의 권력은 허무하게 스러지고 80년 광주의 봄을 맞게 되었다.
1977년 9월에 출범한 <부산아동문학가협회>는 이런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더욱 더 박차를 가하여 아동문학의 프로화에 매진하다가, 6년만인 1985년 3월에 향파 이주홍 선생님을 새 회장으로 모시면서 통합 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지금의 <부산아동문학인협회>이다.
이 필화 사건을 계기로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인간에 대한 어떤 절망감과 허망함을 체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가끔 우리 집의 자식들에게 이런 훈계를 하곤 한다.
" 잔머리 잘 굴리는 놈들 하고는 상종을 하지 말거라. 배신을 밥 먹듯 하고 뒷통수를 칠 가능성이 있는 놈들하고는 악수도 하지 말거라. 친구 몇 명 안 되도 좋으니 네가 감옥에 가도 변함이 없이 너를 면회올 놈들만 골라 사귀어라. 다른 일로 다쳐서는 괜찮은데, 절대 사람의 일로 남을 다치게 하거나 네가 다쳐서는 안 된다." 라는 요지의 처세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친구를 많이 사귀지는 않는다. 그리고 함부로 아무에게나 나의 속마음을 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나를 이용해서 무슨 이득을 보겠다거나 도움을 바라고 접근하는 사람들과는 되도록 멀리 한다. 그리고 나에게 받은 은혜를 모르고 제놈이 잘나서 오늘 이렇게 잘나가게 되었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놈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다. 몇몇 믿음이 있는 친구들과는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사귄다. 양으로 사람을 사귀려 하지 않고 질로 사람을 사귄다.
이번에 그리 유쾌하지도 않은 과거의 필화 사건을 여기 공개하는 것은 나를 내세워 어깨에 힘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사건을 경종으로 하여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동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만큼은 믿음으로 사람을 사귀고, 문학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 조그만 뜻을 밝히기 위함이다.
사람을 잘 사귀어야 합니다. 무슨 물건에 상처를 입으면 치료해도 되지만,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으면 그 후유증이 오래 가고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김형! 이제 지나간 일이니 다 잊으시고 마음 풀으세요! 다음 세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김형도 후배들을 이끌고 가르치는데 힘을 보태어 주세요!
부산아협의 문학 과거사 정리에 좋은 자료입니다 제는 그때 보수초등학교에 재직당시입니다 경찰서, 서부교육처에서 알아볼일 있으니 좀 오라 .그 소리 지금도 생생합니다 몸이 떨립니다. 범초가 잊어라는 뜻을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