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 주병선의 ‘칠갑산’ 이란 노래를 들으면 새삼스레 군대생활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칠갑산은 충남 청양군의 대치면과 장평면, 그리고 정산면에 걸쳐 있는데, 높이는 561m로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하여 충남의 알프스라고 불리 운다. 원시림을 보전하고 있으며, 명승지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어 도립고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맑은 계곡이 주위의 기암들과 어울려 지천9곡의 경승지를 이루고 있고, 특히 봄철에는 벚꽃과 진달래가 아름다우며,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천장호 일대의 경치가 아름답다.
내가 칠갑산을 다시 가본 것은 지난 해 휴가 때였다. 나는 여름휴가를 서해안으로 가기로 계획하고 가는 중간에 예전 군대생활 과정에서 거쳐 갔던 곳 중 경기도 등 먼 지역을 제외한 가까운 데를 다녀 보기로 하였는데 그 한 곳이 칠갑산이었다.
군대시절 어느 날 우리대대는 밤 9시경 비상이 걸렸다. 빠른동작으로 완전군장을 꾸려 연병장에 집합하니 대대장은 청양군에 있는 칠갑산에서 뱀을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땅꾼)이 무장간첩에게 살해 되었다는 것 이었다. 우리는 실탄을 지급받고 트럭을 타고 칠갑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사실 청양이라는 곳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하였고, 칠갑산 또한 그 당시에는 처음 듣는 산 이름이었다.
아무튼 깜깜한 어둠속에 차는 어디론가 우리를 한참동안이나 싣고 가더니 어느 산마루에다 내려놓았다. 당장은 어두워서 수색을 하지 못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자 우리는 분대별로 대형을 갖추어 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산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경사가 심하고 숲이 우거져 대형을 갖추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전 경험이 없고, 상대는 숨어 있는 상태에서 수색을 한다는 것은 대상이 누가 될런지 알 수 없어도 우리측의 희생이 먼저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모두가 겁을 내는 눈치였다.
그렇게 이틀 동안 힘들게 험산을 수색하고 나서 해질 무렵 강가로 내려와 진지를 구축했다. 진지구축이 완료되자 대대장과 중대장이 나를 불렀다. 영문도 모르고 갔더니 우리 분대더러 오늘 밤 매복을 서라는 것이었고, 정보에 의하면 간첩이 먹을 것이 떨어져 반드시 매복 장소를 내려올 것이란다. 그리고 장소는 관측장교에게 안내를 받으라고 하였다. 순간 나는 기분이 찜찜했다.
무슨 좋은 일도 아니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에 내가 걸리다니. 속으론 왜 하필 많은 대대병력 중에서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가 하고 불만이 있었지만, 그러나 군대는 명령에 죽고사는 사회라 거부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내무반장과 3분대장을 겸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대대장이 나를 신뢰하여 명령을 내리는 것이라 좋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론 분대원들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간첩을 잡아 공도 세워보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없는 것도 아니었었다.
분대원들과 같이 산 자락아래 있는 대여섯 집정도 되어 보이는 마을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우리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고 소주도 내어 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술을 먹어야 할까? 아니면? 결론은 술을 조금씩 먹기로 했다. 왜냐 하면 담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죽이지 못하면 죽는 것이니까.
나는 매복 장소에 도착해서 분대원 한명과 같이 첫 번째 매복을 서기로 했다. 건너편 산 아래엔 절(그때의 절은 장곡사인 것으로 추정됨)이 있는데, 그 절에 먹을 것을 구하려 내려 올 것이라는 정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산을 헤맨 데다 소주를 한잔 했으니 웬 놈의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데, 어느 새 달이 떠오르고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달을 보니 정말 고향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그러나 우린 목숨을 담보하고 비까지 맞아가며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니 너무나 서글펐다. 상황을 살펴보니 달이 떠서 우리가 있는 장소가 노출되고 있어 상대방을 발견 시 우리가 먼저 희생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상부의 허락 없이 매복위치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고, 이미 스님들은 절에서 피신 시켰으므로 산 쪽에서 누구든지 나타나면 구호 없이 무조건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다행히 그 날 밤은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그날 이후 며칠간에 걸쳐 수색은 계속되었고, 지친 우리들은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뱀을 잡아 먹는 일이었다. 칠갑산에는 유달리 독사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수색도중 독사를 만나면 잡아 보관하였다가 진지에 가서 몰래 구워먹었다.
그러다 나는 또 다른 명령을 받았다. 아무래도 간첩은 포위망을 뚫고 사라진 것 같아 2〜3일간 더 수색을 하고 종료되니 먼저 병사들 일부를 인솔 부대로 가서 사단 훈련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20여명의 병사들과 같이 부대로 돌아 왔다. 오면서 병사 한명이 약이 통통하게 오른 독사 2마리를 마대에다 넣어가지고 와서 침상 밑 청소함에다 두었다.
병력이 적어 내무반장인 내가 초번 불침번을 서기로 하였다. 규정엔 위반이지만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내무반 중간에 앉아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하여 침상 아래를 보니 독사 한마리가 내 발 앞 가까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는 재빨리 피해서서 불을 켜고 병사들을 깨웠다. 그리고 침착하게 침상 끝으로 나서라고 한 뒤 독사가 빠져나온 사실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이웃 부대에 사정을 이야기 하여 병사들을 그 곳에다 재웠다. 다음 날 오후 독사 두 마리가 처음에 두었던 곳으로 돌아와 있었고, 즉시 잡아서 구웠더니 이웃의 부대 간부들이 맛있게 먹었던 일이 있었다.
당시 간첩작전 도중 칠갑산 자락의 밭농사를 주로하는 조그만 마을을 거쳐갔었는데, 그 곳에서 팔십대의 할머니와 육십 대의 눈먼 아들이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들은 돈도 없고 해서 가지고 있던 건빵이며. 담배를 모아 드렸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칠갑산 노래 중 '콩밭 매는 아낙네...' 라는 가사가 나오면 그 예전 찢어지게 가난하던 칠갑산 자락의 마을과 눈물겹도록 불쌍해 보이던 그 모자의 모습, 그리고 뱀잡아 먹던 간첩작전의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지금은 그 주변이 경치가 좋아 유원지로 변하여 많은 시설들이 들어섰다. 칠갑산 주변은 경치도 좋고, 정겨운 시골 풍경도 남아 있어 시내 산악회에서도 등반장소로 종종 선택하기도 한다. 주변엔 휴양시설과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가족여행지로서도 적합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