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인이고, 불법체류자다.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왔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달팽이관처럼 생긴 고시원에서 사는 나는 말 못하는 사람인양 전철에서 구걸을 하고, 낮에는 국밥집에서 배달 일을 한다. 물론 말 못하는 배달원이다. 위장결혼을 해준 한국인 남자에 쫓겨, 그나마 돈 버는 일도 요즘엔 힘들어졌다. 고향 중국엔 보고 싶은 가족들이 있다. 전화를 하지만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불법체류자로 쫓기지 않던 작년엔, 보험사에 찾아가 보험을 들었다. 내가 죽으면 내 가족에게 보상금이 돌아간다고 한다.
난 보험회사 직원이다. 같이 입사했던 동기는 벌써 부장이 되었다. 사무실에서 너구리 게임에 열중인 내가 그에겐 너무나 한심해 보일 것이다. 얼마 전엔 회사로 직접 찾아온 중국인 여자에게 보험을 들어 준 걸 빌미로 한바탕 훈계를 해댄다. 사무실엔 한 무리의 인턴들이 돌아다닌다. 인턴들에게 조차도 난 피해야한 삶의 패배자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 모두도, 그리고 먼저 부장이 된 동기도,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엔 스테이지 23에서 만난다는 것을. 발버둥 쳐 봐야 어쩔 수 없다. 우린 정해져 있다. 날 때부터.
나는 록그룹 <Sam's Son>의 날리는 싱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 보험회사의 인턴사원이다. 벌써 사개월째다. 내가 생각해도 존경스럽다. 잘도 이따위 일을 사개월째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턴은 모두 여덟 명. 즉 일곱 명의 경쟁자가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사실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곳의 부장은 항상 느끼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곤 한다. 지난 번 회의 때는 테이블 밑에서 내 허벅지를 한참을 더듬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내색을 할 수도 없다. 사무실엔 경쟁상대인 인턴들과 한심하게도 너구리게임에만 열중인 선배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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