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루촌 주민 이백형(73)씨는 장단지역 실향민은 '피란민'이 아니라 '소개민'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 주민들은 1951년 11월, 당시 이곳에 주둔해 있던 군부대의 주민 소개조치에 따라 뜻하지 않게 마을을 떠나게 됐다고 한다. "작전상 잠깐 나가 있으라고만 했다. 주민들은 트럭에 실려 파주시청 인근의 금촌 수용소에 내려졌다. 누구나 잠깐인 줄 알았기 때문에 가재도구 숟가락 하나 챙겨 나오지 못했다."
민간인통제선 즉 민통선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대략 10~15㎞인 지점에 설정된 것으로 군사시설 보호와 보안유지를 위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곳이다. 파주시 민통선 구역은 옛 장단군의 남쪽지역으로 임진강이 경계역할을 하고 있다. 파주시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넓은 지역이지만 전략적 이유로 조성된 마을을 제외하고 주민의 입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곳 실향민들의 처지는 소위 미수복지구로 남아있는 이북의 실향민들과는 달랐다. 이곳 실향민들의 고향찾기는 '통일이 되면' 하는 식의 북쪽 실향민들의 꿈같은 바람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해마루촌은 아직 군사지대다.
억새바람이 분다. 가볍게 일어나는 것들. 떠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산천을 물들이는 단풍도 이별의 빛이 아닌가. 한데 떠나는 자의 손끝은 왜 바람인가. 그 너머는 왜 항상 노을인가.
멀리 돌아왔다. 억새처럼 떠돌던 사람들이 노을 너머에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곳에서 이들이 마주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날인가 민통선은 훈련하는 군인들로 가득했다. 어둠이 내리고, 훈련 중이던 총탄이 주민을 향했다. 직접 겨눈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주민은 대한민국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동수상자일 뿐이었다. 주민들이 꿈꾸던 인정 넘치는 고향마을은 아직 지난 역사의 때를 다 벗지 못하고 화기 앞에 납작 엎드렸다. 아름다운 전원마을 뒤로 숨어있던 냉전의 그림자가 스스로 존재를 각인시키듯 문득 드러나 이곳이 민통선 지역임을 경고했다. 그러나 그 뿐 해마루촌은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상처로 살아온 사람들은 혹 그 상처가 덧나기라도 할까 두려워하며 애써 그날을 가슴깊이 묻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들었다. 이것은 실향의 역사가 남긴 더 큰 상처였다.
평화로운 전원마을 해마루촌. 마을이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만들어져 관심을 끌기도 했다.
상처는 숨어있고, 눈에 보이는 해마루촌은 평화롭기만 하다. 마을에는 담장이 없고 집집은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임진나루를 지난 임진강은 마을로 깊숙이 흘러들고 그 건너로 초평도가 놓여있다. 임진강에서는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을 크기의 섬이다. 실제로 전쟁 전에는 사람이 들어와 살기도 했다.
강변에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한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강물을 바라본다. 잎이 피고 비가 오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도록. 어느덧 바라보는 행위도 사라지고 나무와 강물과 사람은 늘 그렇듯이 그 자리에 놓여있다.
'미루나무 강변에 서 있었지 그냥 있었어'
눈이 내려 하얀 강 너머로 미루나무가 서 있다. 바람 부는 저녁 초평도 미루나무는 쓸쓸했다. 축 처진 어깨로 노을을 이고 돌아오는 사람처럼. 적당히 관계없을 거리만큼 떨어져 그림자를 늘어뜨린 나무는 소외된 군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뭄사리 물이 민다. 강이 휘어진 곳에서 물은 돌아내리고 다시 이끌려 올라온다. 초평도 턱밑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무는 물이 오는 것을 알았다. 나무는 발이 젖지 않는 곳으로 미리 물러나 있었다. 가마우지가 섬을 지나 산성으로 날아오른다. 도요새 수면을 스치고, 숭어가 자맥질한다. 어부가 나왔다. 가만히 바라보는 풍경 안에서 강은 거꾸로 흘렀고 어부는 몸을 놀렸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나뭇잎은 흔들렸다. 섬에는 새와 곤충과 고라니가 살고 있다. 그러나 섬은 아무 소리가 없었다.
초평도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인적이 끊긴 초평도는 식생이 잘 발달되어 있고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온갖 기러기, 오리류와 도요, 흰꼬리수리, 원앙, 파랑새, 청호반새 등이 계절에 따라 들락거리고 사시나무와 갯버들 군락이 발달되어 있다. 수변부를 포함한 면적은 4백만제곱미터이고 문산읍 장산리 216번지로 등재되어 있다.
풀들섬, 초평도는 개발에 대한 압력이 높아서 최근에는 소유자에게 골재채취권 부여를 조건으로 기부채납이 타진되는가 하면 낙하리에서 동파리, 초평도까지 17킬로미터 구간의 준설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골재 수요충족과 홍수피해 방지 여기에 더해 긴장완화에 대한 기대효과까지 거론된다. 섬을 활용하는 사업은 경기도가 DMZ 생태공원 후보지역 가운데 임진강 내 자연섬인 초평도를 최우수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초평도에 평화공원이 조성되면 군 철조망이 제거되고 민간인 통제선의 일부도 개방될 예정이다. 그러나 공원조성을 위한 정지작업을 명목으로 범람지역이나 수변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사와 골재채취가 함께 진행될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생태공원의 방향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경기도는 초평도를 생태공원으로 선정한 이유로 사람이 접근하지 않아 자연그대로의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꼽았다. 그 섬에 사람을 들여 놓겠다는 것이니 이제 자연섬은 인공섬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잿빛하늘 잿빛 강
임진강이 비에 잠겼다
쏟아진다 강물처럼
흐르던 사연들이 쏟아져 내린다
고여있는 세월은 견딜 수 없어
강으로 쏟아져 내린다
꼼짝을 할 수가 없다
내 눈물이 강을 이루고 있었다니
북녘에서 남녘에서 골골이 쏟아진 물들이 임진강으로 흘러 넘쳤다. 초평도가 반이 잠겼다.
첫댓글 해마루촌 사진에 보니 꿈속에서나 나올것 같은 아름다운 곳이네요..
꽃들이 만발하여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때에요..한번 놀러 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