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을 보니 탤런트 이유진이 울면서 자기 혼혈이라고 고백했다고 하는군요. 솔직히 저는 이유진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연예인 중 하나라고만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보니 정말 열받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혼혈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야 했을까요? 왜 혼혈이 아니라고 굳이 말하고 살아야 했을까요? 어머니를 언니라 불러야 했던 이유는 뭐란 말입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 그녀가 혼혈이라는 루머가 퍼지고 그것이 불리하게 작용해야 할 이유가 뭐죠? 자기 자신이 혼혈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왜 용기가 필요하고 울기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단일민족? 그런 헛소리를 아직도 믿고 있는 겁니까? 예전 어느 대학교수가 한국인을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눈 적 있을 겁니다. 보신 분 많으시겠죠. 북방계와 남방계 차이가 많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처음부터 같은 민족이라면 외형적으로 많이 유사해야 하지 않나요?
고인돌에서 발굴된 유골 복원모습 보셨습니까? 어떤 모습이었던가요? 지금 사는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전혀 다른 인종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만든 고인돌을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경주 김씨는 스키타이계라고 합니다. 그냥 설 정도가 아닙니다. 신라 유물 살펴보시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북방민족의 특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낙랑을 지배했던 중국의 한족들을 생각해보면 낙랑의 지배지였던 평양 일대는 혼혈인의 후손들일 겁니다. 혹시 낙랑을 부정하시는 분들은 북한 학계에서 발굴한 낙랑의 유물이나 묘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시중에 화보와 함께 책으로 나와 있으니 구하기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최소한 중국인 다수가 낙랑=평양 일대에 살고 있었다는 근거는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 족보 보면 중국에서 왔다는 성씨 정말 많습니다. 한 번 주위에 물어보기 바랍니다. 아마 열 개 성씨 가운데 하나 정도는 중국에서 왔을 겁니다. 사신으로 왔다가 눌러앉았거나 유배왔다거나 아니면 중국에서 망명했다거나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고려 초기 쌍기는 그렇게 고려에서 관직까지 얻은 중국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고려 왕실은 몽골 왕족과 혼인관계를 맺어 사위국가가 되었습니다. 공민왕도 몽골과의 혼혈아였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혼혈이 문제가 되는 건가요?
조선 건국공신 중 하나인 이지란은 퉁두란이라는 여진인이었습니다. 심지어 이성계가 여진인이었다는 설까지 있습니다. 확인불가능이지만 5대조부터 여진인들과 함께 살았으니 혼혈의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입니다. 배타적인 민족의식이 없던 시절이니 말입니다.
고려와 조선을 거쳐 많은 여진인들이 우리나라에 귀순해왔습니다. 그들은 정책적으로 귀화가 받아들여졌고 고려와 조선의 백성으로 정착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성씨는 그런 과정에서 여진에서 들어온 성씨라고 연구자들이 말하더군요. 서북지방이나 동북지방 사람들 중에는 이같은 여진과의 혼혈이나 여진의 후손들이 많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순했던 항왜(降倭)들은 조선 조정의 배려에 의해 조선의 여인들과 혼인해 가정을 이루었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일본 혼혈인들의 후손입니다. 네덜란드 사람 벨테브레는 박연이라는 이름을 얻고 박씨 중 하나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다른 모든 민족이 그랬듯이 우리 민족도 수많은 외부의 유전자 유입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문화, 언어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유전자까지 동아시아를 오간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나로 형성한 것이 우리 민족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단일민족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은 뭔가 우습지 않습니까? 그리고 단일민족을 이유로 혼혈을 비하하고 멸시한다는 것도 정말 같잖은 일입니다.
얼마 전 하은주 선수가 일본에 귀화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 많더군요. 민족주의 입장에서 보면 하은주 선수의 국적이 어디든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박나리양이 올림픽에 출전할 경우 미국 대표로 출전하듯 일본 대표로 출전할 뿐이지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민족주의 입장에 따르면 비난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국가주의 입장에서 비난하는 것이라면 국적 바꾼 사람 비난하기 전에 우리 국적을 취득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보다 관대해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국적 포기한 사람에게 집착하고 증오를 보내느니 우리의 국적을 가지고 한국인으로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관대함과 애정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국적 포기하면 이미 다른 나라 사람입니다. 따라서 국가주의 입장에서 봐도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바보 같을 정도로 꽉 막힌 민족주의 때문에, 그리고 그 엉터리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