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두고 논란하고 고민하지 않는 때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모 단체에서는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고 하지만 그때 가서도 마찬가지 일 듯 합니다.
미덕이 폐습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미덕도 보기에 따라서는 부정이 되고 폐습이 되며
폐습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미덕으로 둔갑할 수 있는 가치 혼돈의 시대에
인터넷과 여론의 힘은 대단하며
그러한 파퓰리즘에 의해 교단의 5월은 지속적으로 폐습의 노예로 전락되어 온 듯합니다.
그래서 교단은 몸무림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학원 강사에게는 선물을 자진해서 보내며
스승의 날 학교 선생님에게 보내는 것은 야단 법석인 나라.
물론 잘못된 경우도 가끔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교사들은 양심적이며 교육적입니다.
올해의 스승의 날
모든 교사들이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날이기를 바랍니다.
당당하고 굿굿한 5월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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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을 싣습니다.
올해 스승의 날은 40만 교육자를 깡그리 흔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승의 날’ 스승을 흔들려 하지 말라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크래쉬’를 관람했다. 영화의 메시지는 ‘충돌(crash)은 접촉(touch)’이라는 것, 즉 충돌의 계기를 통해서만 서로에 대한 편견과 불신을 넘어 상호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귀가하는 차 안에서 서울 교장선생님들이 올해 스승의 날을 ‘재량휴업일’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저게 다 뉴스거리가 되나?’ 했다. 왜냐하면 지난 몇 해 동안 대다수 학교가 이날을 휴업일로 지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이야말로 교장선생님들의 ‘전략적 충돌’ 행위가 아닌가.
가만있어도 5월15일은 다가올 것이며 때맞춰 각종 언론매체들은 붕괴된 공교육, 돈봉투나 바라고 성추행이나 일삼는 교사들에 대한 질타를 빼놓지 않을 터이다. 문제는 그러는 한편으로 ‘오죽했으면 학교 문을 닫겠느냐’는 서글픔 등 교육현실에 대한 비감한 조감도가 더불어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이러니 국민 모두가 매년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일종의 착종(錯綜) 현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까놓고 얘기해 보자. 기원을 따져보면 스승의 날은 스승들이 만든 게 아니다. 몇몇 제자들이 불우한 처지의 은퇴교사들을 찾아보는 수준의 소박한 행위였을 따름이다. 어떤 경박한 독재자 같은 스승이 있어 “나를 기념하라!” 했겠는가 말이다. 이를테면 현재의 ‘스승의 날’이란 원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알록달록한 옷을 억지로 입혀놓고는 ‘참 꼴 좋다’ 비웃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번 공개적인 ‘재량휴업일’ 결정은 5월15일 한 달 전에 감행된 선생님들의 선제적 ‘크래쉬’인 셈이며, 차제에 스승과 교직사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불신’을 넘어 상호이해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고심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갤럽은 교사들을 상대로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70%의 선생님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감연히 “스승은 없다”고 말할 만한 수치이긴 한데, 과연 스승이란 무엇인가. 우리사회는 ‘스승’이란 말 자체에 독특한 아우라(영기·靈氣)를 부여한다. 아마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유교적 습속이 누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스승’이란 그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이란 뜻일 뿐이고 북한 일부 지역에선 ‘무당’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미국으로 건너가면 이 ‘스승’이란 ‘대학입학 성적과 학업성적이 더 낮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주로 갖는 직업’(하버드대 미공교육개혁보고서)쯤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교사는 총 40만명 내외로 단일직종으론 최다그룹에 속할 만큼 흔하고, 사회·경제적 지위도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 IMF 사태 이후 고용불안이 가중되자 상대적 반사이익을 얻어 배우자감 1~2위에 랭크되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교직은 직업선호도 16~20위권을 맴돌았을 따름이다. 또한 통계가 불가능하지만 사교육의 번창으로 교사 40만명에 버금갈 학원강사, 학습지선생님들이 존재하며 그들도 범칭 ‘스승’이다. 이렇게 많은 장삼이사들이 어찌 모두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스승’들일 수 있겠는가. ‘없는 스승’(師父)으로 ‘있는 스승’(敎師)을 재단하려는 데서 번잡하고 소모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의 날’에 경찰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을 생각하듯이 ‘스승의 날’이란 바로 이들 교사들에 대해 일년에 한번쯤 호의적 관심을 가져보는 날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명칭을 바꾸는 것도, 날짜를 옮기는 것도,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다 부질없다. 생각을 바꾸면 간단하다. 스승은 교사, 바로 당신의 오랜 친구다.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지 마시라.
이석범 소설가·서울 신원중 교사
첫댓글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