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운영자 윤성미 라고 합니다.
이번엔 군사 고증면에서의 비평입니다.
밀리터리 매니아 (편집장)이 고증을 맡으면서 객관적이거나 학술적이기 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고증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재미있음.
<출처 : http://user.chol.com/%7Eskidrow6/nondan/taegukgi.htm>
* "태극기 휘날리며"의 군사 고증면 비평 *
한국영화 관객 1000만시대를 두 개의 밀리타리물이 이끌고 있다. 실미도는 전쟁영화라고 규정하기 힘들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드물게 정통 전쟁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밀리타리 매니아 출신 잡지사 편집장이 군사 고증 자문을 맡아서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을 듣고 있기도 하다. 홈지기는 스케쥴상의 문제로 관람을 미루고 있다가 결국 관객이 줄기 시작한 시점에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루고 있던 감상문을 이제야 쓰게 되었다.
이 영화의 작품으로서의 비평은 다른 전문성 있는 평론가들에게 그 특권을 남겨두기로 하고, 군사 고증 부분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영화 비평가들의 몫이겠지만, 그들이 대체로 일관되게 호평하고 있는 영화의 군사적 고증이라는 부분은 그들이 평가할 수 있는 영역 너머의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홈지기는 주로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영화의 군사분야 고증을 맡은 분의 현 직업은 밀리타리 잡지사 편집장이지만 군사 고증의 전문성의 바탕은 밀리타리 매니아로서의 그것이 전부이므로, 이 영화는 "밀리타리 매니아"가 고증한 영화라고 하는 것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적지 않은 밀리타리 매니아들은 밀리타리 매니아가 주류 사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실을 두고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홈지기는 도대체 연출진이 무슨 생각으로 밀리타리 매니아에게 고증을 맡길 생각을 했는지 의아하다. 매니아의 전문성이란 본질적으로 개인의 취향에만 최적화되어있다. 즉,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만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해서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에보다도 매니아 개개인으로서의 취향과 일치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깊이있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밀리타리 매니아 개인이 고증을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고증 내용의 객관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며, 밀리타리 매니아의 군사적 고증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해가는 것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단지 그 사람 개인이 "생각하는" 바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라고 하는게 맞다. 비록 그 개인의 학술적 객관성이나 깊이 등은 다양한 차이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한 이른 바 전문성 있는, 그러나 실제로는 주관적인 시각에 불과한 군사 고증이 태극기...를 어떤 결과물로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1. 소품 고증
태극기...를 고증한 밀리타리 매니아분은 군장 수집이 주 장르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에도 주로 그러한 취미 전공을 주로 살린 듯 하다. 그분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도 났었는데, 그 기사에서도 주로 군장을 비롯한 소품 고증의 측면에서의 기여에 대해서 이야기되고 있었다. 6.25당시 군복을 재현하기 위해 중국에서 원단을 구해서 일일이 복장을 제작하고...하는 얘기들을 보면 참 많은 노고를 했구나 하는 것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과연 그 소품 고증들의 객관성은 누가 보장하겠는가 하는 질문을 꺼내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예전에 취미가가 창간된지 몇해 지났을 즈음에, 취미가 초대 편집장인 이대영씨와 군장 매니아인 그의 친구분이 영국군 요대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은 영국군의 실물 요대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사람은 그것이 의식용 요대이기 때문에 실전에서 쓰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류의 내용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이 군장 매니아의 시각을 대표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라고 홈지기는 생각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런식의 "전문성 있는" 고증 논의는 적지 않은 경우 현실세계를 무시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현용에서 쓰이는 요대나 수통피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잡다한 물품의 종류나 제식 명칭따위는 아무도 신경 안쓴다. 그저 요대는 군장을 결속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고, 수통피는 수통을 담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홈지기가 근무하던 부대의 교보재 창고에는 우리 부대 표준 장비인 X-밴드(홈지기는 향토사단 방위였다) 말고 미군의 구형 H-밴드도 있었다. 구형 군장 결속할 때에는 H-밴드에 결속이 안되므로 쓸 수 없었지만, 단독군장을 할 때는 H-밴드가 어떤 경로로 그곳에 흘러들어왔는지 따위는 아무도 신경 안썼고 잘만 차고 다녔다. (그것을 차면 편하고 보기에도 예쁘기에 고참들이 선호했다.)
90년대 중반에 지급되던 구형 전투화는 조금만 작업 많이 하는 병사가 두세달만 신으면 바닥이 떨어져나가는 불량품이었다. 때문에 사병들은 달랑 두켤레 주는 지급품으로는 18개월을 지낼 수 없어서 폐전투화 더미에서 신을 만한 폐품을 찾아서 재생해서 신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폐전투화 더미에는 CS화라고 부르던 구형 전투화나 지퍼 달리고 날렵하게 생긴 사제 장교용 전투화도 있었다. 하지만 사병들이 그런 비표준 군수품을 재생해서 신어도 굳이 뭐라하지 않았다. 그거 못신게 하고 새 전투화 지급해줄 것도 아니었으니까. 또 어떤 사병은 지급받은 전투복 바지가 다 못쓰게 되자 시장에서 사제 군복을 사입고 들어왔는데, 당시 녹색 군복의 표준 디자인이 아닌 건빵바지 달린 전투복 하의를 구해서 입었었다. 역시 뭐라 하는 사람 없었다. 현실이 그런 마당에 요대의 종류가 의식용이니까 실전에서 쓰인 적이 없다는 매니아의 주장은 헛소리 이외에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태극기...로 돌아가보자. 6.25 개전 초기 일선 국군의 개인화기는 일본군이 버리고 간 구식 소총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자원병을 모집하는 후방부대의 헌병들이 전방에도 다 지급되지 않았던 M1 소총을 들고 다닌다. 또, 태극기...의 국군 병사들은 전원이 낙동강 전선에서부터 가죽 전투화를 착용한다. 그렇지만,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회고록에서 6.25당시에는 헝겊 전투화(BB화)를 신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BB화 스타일의 전투화는 70년대까지도 예비군 제식 군장이었다) 가죽 전투화를 착용하고 뛰어다니는 국군병사는 객관적 사실 고증의 결과라기보다는 한 매니아의 머리속에 형상화된 6.25 참전 병사의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군사 고증 조언 담당자분은 어떤 인터뷰에서 주인공들의 복장이 바뀌는 것으로 한국전의 시기별 변화도 알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야전 병력이 장비하고 있던 구형 장비를 서류 목록에 맞춰서 전면적으로 새로 지급하는 경우는 특히나 전쟁중에는 더더욱 없다. 신품이 나오더라도 재고는 당연히 소모될 때까지 쓰는 것이다. 이를테면, 51년도에 새 군복 디자인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전선의 모든 병사가 50년형 군복을 모두 버리고 51년형 군복을 전원이 새로 지급받아서 갈아 입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새 전투복을 지급받기는 커녕 최악의 경우 처음 지급받은 옷을 1년여 동안 갈아입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 이와같이, 많은 부분의 군장비 소품 고증이 역사적 사실과 합치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다른 많은 부분은 객관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매니아 개인의 나름대로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뿐이며, 전반적으로 볼 때 태극기...가 결코 고증이 뛰어난 작품 축에 속한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고증 담당자로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을법 하다. 고증 담당 밀리타리 매니아분의 소개 기사에서도 당시에 사용되지 않던 쇠식판이 영화에 등장하는 등 "사소한" 오류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전쟁 리얼리티의 고증"은 역대 한국 전쟁영화 중 최고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죽어가던 독일군이 차고 있던 잡낭이 나찌 독일군용 제품이 아니라 동독군용(디자인이 사실상 거의 같은)이라는 것을 지적하던 것도 밀리타리 매니아들이요, 2차대전중 하이드리히 총독 암살사건을 다룬 "새벽의 7인"에 등장하는 하노마그 장갑차가 나찌 독일군 정품이 아니라 체코제 카피판이라는 것을 버그라고 지적하면서 지식을 뽐내던 것도 다름아닌 태극기...고증 담당 매니아분이 현재 편집장을 맡고 있는 잡지의 초대 편집장 (밀리타리 매니아 대부격쯤 되는)이었다. 나찌 독일군 정품 하노마그는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인데 말이다. 심지어, 태극기에서 "사소한 고증 오류"까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그 고증 담당 매니아분은 모 방속국 프로그램에서 전체적인 줄거리상 아무 영향이 없는 쉬리의 고증 오류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등장하는 T계열 전차를 개조한 타이거 탱크의 구동 휠의 생김새가 실물과 다르다는 것(절대로 개조 못하므로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고증 오류라고 단정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른 기사를 보니, 태극기...에 나오는 옥의 티에 대해서 고증 담당자가 해명을 하는 얘기가 있었는데,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거나(낙동강 전투 직후 F-86이 등장하는 장면), 미처 확인을 하지 못했다(식판 장면)는 식으로 발뺌을 하고 있었다. 소품 섭외상 어쩔 수 없는 외화의 오류들은 버그라고 지적하면서 자기가 참여한 영화의 미처 확인 못한 오류들은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라는건지?
좋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가자. 남의 작은 허물은 커보이지만 자신의 허물은 애써 합리화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그런 사소한 고증 따위로 왈가왈부하고 있는 이 자체가 단편적인 관점에만 얽매이는 매니아의 폐습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소한 오류"들을 너그럽게 포용간다고 할 때, "전쟁 리얼리티에 관한" 고증은 어떤 부분일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식판 고증은 사소한 것이고 전투복 고증은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전투화 고증은 사소한 것이고 모신나강 소총 고증은 중요하다는 것도 역시 아닐 것이다. 즉, 식판 따위의 문제가 아닌 전쟁 리얼리티의 고증이란 소품 고증을 지칭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홈지기는 태극기...에서 군장비 소품 고증이 본질적으로 객관성을 결여한 일개 매니아 개인의 상상력의 산물이고 매니아가 아니라 누가 책임졌더라도 검증을 해야했을 필수적인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전반적인 군사 고증 면에서 잘 된 측면이라고 본다.
2. 전투 장면 - (1) 백병전
태극기...는 군사 고증 담당자의 전문적이고 리얼한 의견 제시로 인하여 사실감 넘치는 백병전 신이 전개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 평론가들의 시각이다. 단순히 그냥 백병전 씬이 멋있었다라고 하면 상관 없겠지만, 전문적인 군사 고증의 덕택으로...라고 한다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마치 영화 평론가들이 백병전 해보기라도 한 것 같이 말하고 있다. 영화 평론가들이 군사 고증 담당자의 전문성에 의탁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군사 고증 담당자는 또 그부분에서 어떤 객관성이 있다는 것일까?
6.25당시보다도 화력이 상대적으로 열등했던 1차대전 당시 자상, 즉 총검에 의한 상처는 ?豁? 사상자의 1%에 불과했다. 1차대전 하면 수백명이 희뿌연 연기를 뚫고 총검 돌격을 하는 것을 연상하기 십상이지만, 실제로 백병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매우 드문 일이었다는 것이다. 6.25 당시에는 전반적으로 1차대전보다 화력이 훨씬 강해졌고, 허접한 중국군조차도 1차대전 당시의 참호선만큼이나 치밀하고 잘 짜여진 방어화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6.25에서 백병전은 1차대전 당시보다 더 일어나기 힘들어졌다면 모를까 더 빈번해질 이유는 전혀 없다. 실제로 6.25에서의 미군이나 국군의 소부대 전투 기록이라든가 개인의 회고록을 보더라도 태극기...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백병전이 전투의 주된 수단으로 쓰인 것은 고사하고 백병전을 했다는 기록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홈지기가 가진 자료에 한해서는, 행군하던 두 부대가 우연히 근거리에서 조우하여 총검을 꽂을 새도 없이 집단 난투극을 벌인 단 한번의 사례를 제외하면 6.25에서 총검 돌격이나 부대단위 백병전의 사례는 전무하다.
물론 심지어 각개병사가 개인화기로 자동소총을 들고 있는 지금에도 총검술 훈련과 총검 돌격 훈련은 신병 훈련의 매우 중요한 한 요소이다. 아마도 이러한 신병 훈련이 과거 전쟁의 고지 전투에서 백병전이 주요한 전투형태였다고 추측하게 하는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훈련이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전장에서 백병 돌격이 전투의 주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신병 훈련 총검술 훈련이나 총검 돌격 훈련 따위는 단지 체력과 자신감을 배양해주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전쟁터에서 총검으로 무협 영화처럼 싸우라고 연무형 17개 동작 따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밴드 오브 브러더스에서는 신병이 공격을 앞두고 M1소총에 총검을 장착하려 하자 고참이 총검을 꽂은 채로는 사격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못하게 막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 알다시피 밴드 오브 브러더스는 실제 101 공수 Easy 중대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 사실적인 작품이다.)
한국 지형에서 고지 공격은 흔히 생각하듯 고지의 넓은 사면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타고 이루어지는 형태가 많았기 때문에 생각외로 이동 경로가 제한적이어서 기관총을 설치한 벙커 단 한두 개 때문에 소대나 중대의 공격이 저지되는 일쯤은 흔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일일이 나열해서 입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단 한 개의 맥심 기관총이 방어하고 있더라도 소대나 중대 전체가 함성을 지르며 총검을 꽂고 돌격하는 식으로 싸우면 막심한 사상자만 내고 적 방어선 근처에도 가기 힘들 것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비공식적인 무용담이지만 기관총 한 개로 대대나 연대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일화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공격자가 방어진 근처까지는 어떻게 갈 수 있다 하더라도, 30-40미터 이내에서의 최후 저지사격만으로도 공격병력은 엄청난 피해를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의 백병전은 공격자와 방어자간에 서로 별 피해없이 접근해서 쌍방 모두 전투력이 충실한 상태에서 부대 단위로 서로 맞붙어서 치고박고 싸우면서 전투력이 소모된다. 쌍방 전력이 건재한 상황에서 두 부대가 의도적인 목적에서 부대단위로 백병전을 벌이는 일은 결단코 있을 수 없다. 물론 고립된 개인호의 적병을 총검으로 살해하는 등의 부수적인 충돌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은 영화에서의 대규모 백병전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영화에서는 쌍방 중화기가 다수 건재한데도 야전 전투에서는 백병전이 매번 일어나다시피 한다. 한쪽이 총알이 다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대개의 경우 탄약이 떨어지면 개인차원이든 부대 차원이든 도망치거나 후퇴를 하지, 총검을 꽂고 방어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봐야 인명피해만 늘고 정상적인 전투력 발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후퇴해서 보급을 받고 반격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적의 전투력을 격멸하면 지형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죽음으로서 진지를 지켜라 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매우 특수한 상황에 불과하다.
정리해본다. 대규모 백병전은 6.25에서 사실상 벌어지지 않았고 그때 당시의 무기체계로는 온전한 전투력을 가진 쌍방의 대규모 백병전이 벌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태극기...의 묘사에 따르면 야전 전투에서는 공격자와 방어자의 화력이 서로에게 별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대부분의 병력손실이 백병전에서 발생하며 개인화기는 총검 꽂을대의 역할정도밖에 못한다. 그렇다면 길쭉한 창들고 싸우지 뭐하러 총들고 싸우겠는가. 영화에서 백병전이 어떻게 묘사되었건간에, 실제로 벌어지지도 않은 형태의 전투 상황을 사실성의 기준에서 평가해보려는 시각은 코메디에 불과하다. 6.25의 전투를 묘사하는데 브레이브 하트에나 나올법한 백병전을 연출하는 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6.25에서 자상에 의한 사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간에 총검으로 교전할 정도의 근거리 충돌이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며, 영화에서 묘사된 백병전은 영화적 과장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백병전 신이 사실적인 액션이라는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병사가 야전에서 총을 버리는 상황은 총알이 다 떨어져서 도망가기 직전 뿐이다. 그렇지 않는 한에는 화장실을 갈 때에도 휴대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개중에 총을 집어내던지고 철모를 집어내던지고 하는 묘사가 있긴 하다. 태극기...고증에 참여한 분도 그런 식의 묘사를 염두에 둔 것 같으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던 장면에서는 총검을 장착하지 않은 소총의 총알이 떨어져서 재장전할 시간이 없는 채로 근거리 조우를 하는 등의 경우였고, 백병전이 의도된 상황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와 형태로든 백병전을 벌일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백병전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뭐니뭐니해도 소총 화력 그자체 다음으로는 총검이다. 백병전에서 총을 놓치면 그 즉시 죽음인 것이다. 그런데, 태극기...에 등장하는 백병전에서는 부대단위로 총검을 꽂고 맞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병사들이 금새 총은 어디로 팔아먹고 주먹으로 치고박고 싸운다. 패싸움할 때 쇠파이프 잔뜩 갖고나가서 쇠파이프 땅에 던져놓고 주먹으로 달려들 바보는 없을 것이다. 백병전 하는데 총검 꽂힌(뿐만 아니라 탄약도 장전된) 총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 버리고 주먹질하면서 왔다갔다 하는 것도 역시 말이 안된다. 설령 갖고 있는 총을 떨어뜨렸더라도 주위에 나뒹구는게 소총인데(대다수의 병사들이 총을 땅에 떨구고 주먹질을 하고 있으므로), 영화에서는 땅에 떨어진 총이라도 주워서 쓰는 것에조차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총검 두세 번 휘두르고 나서 버리고 주먹질 한참 하다가 또 총 주워서 두세 번 휘두르고 또 버리고 주먹질 하고 하는 식이니...액션 연출의 의도 치고는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3. 전투장면 (2) - 지뢰 매설 임무
형인 진태(장동건)가 낙동강 전선에서 적의 접근 통로에 지뢰 매설 임무에 자원하였다가 적과 만나 총격전을 벌이는 것이 영화에서 최초의 교전이다.
교전 당시의 상황을 보자. 진태가 포함된 1개 분대 가량의 인원은 도로에서 아무런 엄폐물 없이 지뢰 매설작업을 하고 있던 중 도로 옆의 언덕으로부터 다수의 북한군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 때 투입된 북한군은 화면에 나온 것만 해도 20여명 이상이었으므로 진태의 지뢰 매설조보다 훨씬 수적으로 우세했었다. 그리고, 분명히 진태의 지뢰 매설조는 분명히 북한군을 먼저 발견하지 못했고 북한군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북한군의 선제 사격으로 최초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을 때였다. 이에 다른 대원들은 모두 무사히 반대편 도로 둑으로 피했다.
국군과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았던 북한군 입장에서는 도로에 노출되어있고 수적으로도 열세한 지뢰 매설조들이 아주 쉬운 공격목표였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식대로라면 북한군의 최초 일제사격으로 국군이 대부분 사살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국군은 한명만 다치고 나머지는 모두 다 무사히 피한다. 더구나 북한군 사격으로 부상당해 쓰러져있던 국군 병사는 적의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불과 수십 미터밖에 있는 소대급의 적 화력으로부터 몇 분동안이나 한발도 안맞고 있다가 결국 아군에 의해 구조된다. 그리고, 국군은 선제공격을 받고도 엄폐물에 숨어서 조준사격을 가하는 반면 북한군은 선제 공격을 하고도 엉거주춤하거나 심지어 일어선 자세로 엄폐할 생각은 전혀 안하고 있다가 도리어 더 큰 피해 - 적어도 10여명 이상 - 를 입는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이런 따위의 전투 묘사가 주인공은 적의 총알이 알아서 피해주고 적군은 뻣뻣이 서서 죽어주러 나오는 유치한 선전용 전쟁 영화나 영웅본색 따위의 액션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홈지기로서는 알 수 없다.
또한, 설령 최초 사격에 살아남은 국군들이 도로 뒤로 엄폐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그 뒤쪽은 논밭이었기 때문에 지형으로 볼 때 퇴각할 경로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자의 퇴각하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화면은 본대로 무사히 돌아온 대원들을 비추고 있다. 사상자는 여전히 중상자 한명인 채로...
4. 전투장면 (3) - 야습
낙동강 전선에서 사기가 바닥을 기던 대대원들은 중상자의 자살 사건 이후 장동건 이병(아무리 봐도 이진태라는 생각은 안들고 그냥 장동건으로만 보인다.)이 적을 깨부수러 가자는 독려를 하자 전 대원이 호응하여 야습이 이루어진다.
전선의 사기는 눈 한번 부라린다고 없었던게 생기지 않는다. 장동건이 독려하니까 겁에 질려 덜덜 떨던 병사들이 떨쳐 일어났다는 식의 표현은 작가의 매우 유치한 프로파간다적 발상이 아?? 수 없다. 더군다나, 무슨 대대급 작전을 갓 전입한 이병이 좌우하나? 더구나 장동건 이병이 앞장선 야습의 목표는 포로 획득이나 정보수집 등과 같은 일반적인 야간 기습조의 임무가 아니라 단순히 적을 깨부수자 였다. 일반적인 경우 우세한 측이 열세한 측을 전멸시키려는 의도에서의 소모전이라면 전술적인 타당성이 있지만, 전황이 불리한 측이 단지 적을 죽이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작전에 나서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똑같은 손실이 있었더라도 그 결과는 적군에게 더 유리하고 손실을 보충할 능력도 아군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당시 상황은 전방에 있던 1대대와 2대대의 진지가 모두 박살나고 3대대(정황상 연대 예비였을 것으로 사료됨)의 진지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연대 방어선을 유지할 수 없고 이미 그 전선은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대대가 포위된 상황이다. 그런데 무슨 병력으로 역습을 하나? 역습은 커녕 사주방어 태세로 전환하는데만도 소요 벙력이 부족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본진도 팽개치고 역습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공격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정황상 일부 병력으로 소규모 야간 기습을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고 그렇지 않고 대대 주력의 공격이었다면 얘기 자체가 성립이 안되나, 정식 야간 공격이 아니라 소규모 기습이었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소부대의 야습은 통상 제한된 목표를 가지고 실시하며, 적의 본격적인 저항이 생기기 전에 임무를 종료하고 귀환하는 것이 정석이다. 적의 주저항선에 대해서 소부대의 기습이 노출되면 훨씬 강력한 방어군의 반격이 실시되어 기습부대가 전멸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군의 기습부대는 적의 반격이 시작된 상황에서 교전을 게속함은 물론 막대한 희생이 불가피한 백병전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아군도 큰 피해를 입고 적진을 점령하거나 포로를 획득하는 등의 다른 전과를 올린 것도 아무 것도 없는데도 다음날 국군은 전투를 자축한다. 도대체 뭘 축하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가뜩이나 절박한 상황에서 아군의 희생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아무 목표가 없는 공격 작전을 실행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작전 실행 과정의 디테일한 고증도 역시문제다.
야습하러 가는데 지휘자는 웃기게도 찝차를타고 간다. 반경 수백 미터의 적군들을 다 깨울 일 있나. 찝차로부터 시작된 어이없는 야습 준비는 그것 뿐이 아니다. 야간에 철모와 기타 번쩍거리는 군장들을 그대로 다 가지고 움직이고 전투복과 철모에 잔풀로 위장까지 한다. 잔풀 위장을 하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지 야전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야간에 그런 소리 내면서 적진에 접근했다가는 적진 근처에 가보기도 전에 다 죽는다. 하기사 영화속의 병사들은 야간에 적진에 침투하는데 철모를 비롯한 반짝거리고 떨그럭거리는 군장들을 전부 휴대하고서 온갖 소리를 다 내면서 야간 공격의 기본인 기도비닉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으니 위장풀이 내는 소리쯤은 신경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가장 압권인 것은 야습을 하겠다면 어둠의 장막을 최대한 이용해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수십 개의 화염병으로 환히 불을 밝힌 다음 공격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그 화염병들 덕분에 전투는 마치 주간 전투처럼 피아를 육안으로 명확히 확인하면서 벌어진다. 죽으려고 작정한 미친 군인들이 아닐 수 없다. 부수적으로 웃기는 것은 화염병이 터지는데 무슨 박격포탄 정도의 폭발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영화 촬영 스탭중에는 화염병 데모하는 것을 TV에서라도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듯 하다. 아니면 화염병에 휘발유가 아니라 니트로 글리세린이라도 넣었던가. 혹시 촬영상의 문제 때문에 전장에 조명이 필요했다는 항변을 하겠다면, 웃기지 마시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 작위적인 조명 없이도 야간전투 재현 잘한 영화 얼마든지 많이 있다.
묘사의 문제는 국군쪽에만 있지 않다. 북한군 초병은 오밤중에 어깨 총을 하고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다가 기습조의 칼에 당하고 마는데, 적과 마주하는 야전에서 더군다나 야간에 그런 식으로 보초를 서는 경우는 없다. 야간의 주저항선의 경계는 청음초 기능을 하는 고정된 전방 경계 초소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어깨총을 한 보초가 왔다갔다 하는 것은 후방지역의 시설물 출입통제하는 위병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이다. 아마도 기습 신이라고 하니까 레지스탕스 영화 등의 보초 살해하는 장면 따위를 관습적으로 흉내낸 것으로 생각된다.
5. 전투장면 - (5) 평양 전투
평양 전투중 건물 옥상에 위치한 북한군 기관총이 등장한다. 그리고 장동건은 기관총을 제압하러 혼자 달려가고, 북한군을 제압한 후 그 기관총으로 인민군에게 사격을 해서 막대한 사상자를 입힌다.
위치 선정상 그 기관총은 아군에게 막대한 사상자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따라서 최우선 제거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작 북한군 기관총은 국군을 한명도 못맞히고 있었으며 그 기관총이 국군에게 준 피해라고 해봤자 병사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었다. 그러나 반면 장동건이 그 기관총을 탈취하고 났을 때에는 같은 기관총에 북한군이 추풍 낙엽처럼 쓰러진다. 장동건은 그 기관총의 위치를 1미터도 옮기지 않았는데 말이다. 북한 기관총 사수는 국군을 한명도 못죽일 정도로 사격술이 형편 없고 장동건은 슈퍼 영웅이라서 북한군들이 막 죽어넘어질 정도로 총을 잘 쏜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옥상에 설치된 기관총은 국군을 향한 최적의 사격 위치를 잡고 있을텐데 그 위치에서 국군은 못죽이고 북한군에 대한 사격 각도는 나온다는 것은 3차원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북한군의 후미에 사격을 한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는 엄연히 북한군의 앞쪽에서 사격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기관총이 있는 건물로 올라갈 때 북한군이 장동건을 저격하려는 장면이 나오고, 전차가 그 저격병을 전차포로 쏘아 죽인다. 장동건은 그 틈에 기관총을 홀로 제압한다. 보-전 협동 전투에서라면 적 공용화기를 최우선 제압하는게 전차의 할 일이다. 그런데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는 소총병을 공격하면서 기관총은 그냥 놔둔다는 것은 장동건을 영웅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심각한 작위적 설정이 아닐 수 없다.
6. 전투장면 - (4) 포격 장면
영화에는 적과의 교전이 아니라 단순히 포격을 받는 상황도 많이 나온다(서로 무슨 얘기만 좀 하려고 하면 때맞춰 날아온다. 음성 유도 포탄도 아니고...). 낙동강 방어선에서 처음 나오는 액션 신이 포격 신이고, 혜산진에서 후퇴할 때나 서울 후퇴 등등 많은 횟수의 포격 장면으로 전투 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무슨 북한군과 중공군이 그렇게 엄청난 포병화력을 지녔나? 낙동강에서는 혹시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이후 혜산진과 서울 후퇴 등은 중공군의 화력일 수밖에 없는데 중공군은 야포 화력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고 가끔 몇 개의 박격포 정도만 운용할 수 있었다. 박격포는 보병 전투와 병행하는 화기이고 통상 육안 관측으로 표적을 확인하여 사격하기 때문에, 보병 전투를 지원하는 용도가 아닌 일반적인 적 후방 포격에는 쓰이지 않는다. 중공군 주력중 하나인 12개의 사단이 미 해병 사단을 공격했던 장진호 전투에서조차도 중공군이 실제로 투입할 수 있는 화력은 기껏해야 불과 박격포 몇 문정도가 전부였다.
서울 후퇴 장면은 단순한 포병화력 문제 말고도 문제가 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1.4후퇴 당시 초기에는 중공군에게 포위를 당해서 대대급 병력도 종종 전멸하곤 했으나, 중부지방으로 내려왔을 즈음에는 전투를 하면서 후퇴를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중공군과의 접촉을 완전히 단절하고 중공군보다 빠른 속도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래서 릿지웨이가 지휘권을 인수하고 후퇴 중지 명령을 내렸을 때 미군은 중공군의 위치를 찾으러 도리어 북쪽으로 전진을 해야만 했다. 따라서 서울지역에서 후퇴하면서 중공군의 포격을 받고 대대 본부급이 포획된다는 것은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생각된다.
7. 전투장면 - (5) 두밀령 전투
공격이 되었든 방어가 되었든, 조직화된 군대는 각 제대단위마다 일반적으로 가지는 폭과 종심이 있다. 즉 병력의 밀도가 일정하다는 것이다. 6.25 당시에도 그당시의 전술 기준에 따라 통용되던 부대의 폭과 종심이 있었다. 당시의 정확한 병력 밀도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으나, 최소한 1개 소대 병력이 수류탄 한 발에 전멸할 수 있는 정도로 어깨를 맞대고 뛰어다닌 것은 결코 아니다. 참고로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는 달라지지 않았을 근래의 자료들을 보면, 대체로 소대의 방어정면은 약 500미터이고 중대 정면은 1-1.5 km에 이른다. 웬만한 카메라 앵글로는 1개 소대 지역도 한 화면에 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카메라 주변 20-30미터 이내에만도 소대병력 이상이 우글거린다.
미군의 소부대 전투 기록들을 보면, 어떤 규모의 고지 전투라고 하더라도 실제 최일선에서 적과 총격을 교환하는 것은 소대급 부대들이고, 중대급 부대조차도 전체가 직접 사격전을 교환할 정도로 전투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고 중대장이 예비 소대와 중대 본부 등을 데리고 한발 뒤에서 상황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실제로는 상당히 낮은 병력 밀도를 가진 소부대 단위의 지휘체계에 입각한 일선의 소규모 전투들이 모여서 전체 전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 전투에서는 한 분대, 한 소대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고, 기관총 한정의 배치도 극히 중요하다. 대규모 공격이라고 해서 영화에 나오듯이, 그리고 휴대폰 CF에 나오듯이 수십 수백 명이 아무 부대 편제도 없이 모여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결코 아니??. 1차대전때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류의 돌격이 시도된 적은 있다. 하지만 그런 공격에 참여했던 부대들은 공격 개시 후 불과 몇분만에 대대급 부대가 전멸상태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손실을 입었고, 1차대전 이후로는 그런 식의 돌격은 안한다. 영화의 두밀령 전투에서처럼 공격을 실시한다면 기관총 벙커 두세 개에 의해 연대 전체가 몇 분 안에 전멸할 수도 있다. 영화의 두밀령 전투가 실제 두밀령 지구에서 있었던 피의 능선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것인지는 영화상의 정확한 작전 일자 등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잘 모르겠으나, 피의 능선 전투에서도 영화에서 묘사된 것만큼 밀집된 대형은 아니지만 중대 단위로나마 돌격 전술을 시도하기는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돌격으로는 적 진지 근처에도 가보지 못고 막대한 사상자만 발생시켰으며, 북한군의 화력 사각을 이용하여 북한군 진지를 벙커 단위로 탈취하는 형태로만 북한군 진지를 탈취할 수 있었다.
국군의 돌격뿐 아니라 북한군의 반격도 역시 문제다. 반격하는 북한군의 돌격 대형도 역시 창들고 싸우는 군대에게나 적합한 모습임은 물론, 반격 타이밍도 전술적으로 굉장히 불합리하다. 아군이 방어진지를 아직 유지하고 있다면 다른 더 위급한 순간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 예비대를 그 지점에 투입해서 반격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북한군이 방어진지를 탈취당하지는 않은 시점에서 반격이 이루어졌다. 더군다나, 장동건이 지휘하는(사실 소좌 계급의 지휘관이 병사들과 함께 돌격 일선에 선다는 것도 상당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도끼 들고 싸우던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도 아니고...) 깃발부대가 반격을 시도한 다음 전황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잠시 후 다른 부대가 또 증원되어오는데, 투입할 예비대가 있었으면 일시에 집중 투입했었어야지 그런 식으로 예비대를 시차적으로 분할 운용하는 것은 매우 기초적인 전술 원칙을 무시하는 해괴한 발상이다. 결국 두 번때로 증원되어 온 부대는 장동건의 깃발 부대가 투입된 후 땅에서 새로 솟아났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영화의 진행으로 보자면 장동건이 지휘관인 깃발 부대가 투입되어 두 형제를 만나게 한 다음 원빈이 장동건을 전장에 남겨두고 전장을 떠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되지만, 합리적인 상황 설정을 해놓고 그속에서 스토리를 전개해야 비로소 스토리 전개도 납득이 갈 수 있는 것이지, 정해진 스토리에다 배경 상황을 꿰어맞춘다는 것은 미숙한 시나리오가 만들어낸 생억지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한 반론을 시도하고픈 분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처음 전투에서도 수백 명이 떼지어 공격을 하고, 6.25 다큐멘터리를 봐도 역시 수백 명이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돌격을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제한된 상륙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가능한 신속히 투입하는 것이 관건인 대규모 상륙작전이기 때문에 공격부대들에게서 일반적인 병력 밀도를 기대하기 힘들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노르망디 상륙 작전 촬영 사진들을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상륙 부대의 병력 밀도가 전반적으로 더 낮다.), 6.25 자료화면들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다큐 필름들은 거의 다가 실제의 전투 장면이 아니라 훈련 장면이거나 선전용으로 제작된 필름들이다. 즉, 흑백 필름의 선전용 전쟁영화 제작자나 현대의 대한민국의 상업 영화감독이나 모두 단순히 연출자로서의 화면 구도의 의도가 비슷하고 그 의도가 군사적인 고증과는 별로 상관 없는 것이기에 비슷한 형태의 집단 돌격 신을 연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다 그런 식의 연출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령 그런 식의 화면 연출이 감독이 의도했던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투 장면의 군사적인 고증에 실패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변명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전쟁 영화에서 화면 연출의 필요성이라는 조건은 군사 고증을 쉽게 무시할 만한 달콤한 유혹인 것은 틀림 없지만, 그렇기에 화면 연출과 군사 고증 두 가지를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충족시키는 명 전투신들이 그만큼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밀령 전투는 영화상 명 전투신 목록의 맨 아랫줄에도 끼지 못한다.
이러한 화면 연출과 군사 고증의 충돌 문제는 단순히 보병의 행동에만 국한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밀령 전투에서는 연대급 보병 공격을 전차로 지원을 한다. 화면상에 동시에 적어도 5대 정도가 나왔으므로, 적어도 전차소대가 연대의 공격을 지원하였다. 보병과 전차가 섞여서 전진을 감행하는 이런 장면은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되풀이되어온 연출방식이기는 하지만, 군사 고증과는 역시 동떨어져 있는 관행적인 연출의 답습에 불과하다.
평지에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한다면 전차가 앞장을 설 수도 있고 전차와 보병이 섞여서 보-전 협동 공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지 공격이라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전차는 고지를 돌파할 수 없으므로, 방어 진지의 대전차 화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충분한 거리의 미리 준비된 사격 지점을 확보하고 그 지점을 위주로 화력 지원을 하며 필요한 경우 다른 사격 지점으로 약진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더욱 현실성 있는 전술이 될 것이다. 소총 소대 교범의 보-전 협동 부분에도 그렇게 나온다. 실제 6.25 소부대 전투 기록에 나오는 전차의 화력 지원 사례들도 대부분 그런 식이다. 설령 전차와 보병이 합동해서 기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보병들이 전차의 측면이나 후면에 위치해서 전차를 엄폐물로 삼으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영화에서와 같이 전차와 보병들이 무작위로 섞여서 무작정 전진 앞으로 하는 것은 아군 보병이 전차의 기동의 자유를 방해할 뿐으로서 전혀 현실성이 없다. (영화에서는 편집되어 등장하지 않고 휴대폰 CF에 쓰인 다른 촬영장면에서는 우리가 매일 TV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차가 아니라 2 1/2 트럭이 달려가는 보병과 함께 적진을 향해 야지를 덜컹거리며 전진하는 황당한 장면도 있다. 기관총 한정도 싣지 않고 있는 트럭을 적진에 들이밀어서 뭐하겠다고...)
영화의 두밀령 전투에는 최소한 전차 1개 소대와 F4U4 1개 편대가 지원을 하였다. F4U4 1개 편대가 탑재했던 네이팜들만 떨어뜨렸어도 고지 하나쯤 쑥대밭 만드는건 식은 죽 먹기다. 소대급 전차 화력으로도 적 방어선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전차와 항공 지원을 동반한 화력 우세의 잇점은 전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로 인한 적군 사상자는 딱 구색 갖추기만큼만 등장한다. 심지어 항공기는 기총 소사로 몇 명만 죽이다가 도리어 한 대를 잃는다. 이건 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전투신이라기보다 꿈같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고정 시설 방공망도 아니고 그다지 사거리가 길지도 않은 야전 부대의 대공사격에 근접 지원 항공기가 피격되어 추락하는 일은 소 뒷걸음에 개구리 잡는 것만큼이나 발생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격되어 추락한 기체는 엔진에 피탄이 되었는데 롤을 하면서 지상에 곤두박질 친다. F4U4는 성형 엔진이기 때문에 엔진에 다소의 피탄이 되더라도 엔진 출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설령 엔진이 완전히 정지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프로펠러기들은 엔진 힘 없이 활공을 할 수 있다. 활공을 하지 못하고 추락한다면 조종면 연결 라인이 끊어지거나 조종면이 아예 파괴되는 경우 뿐인데, 조종면 연결 라인이 끊어지면 조종면이 neutral 상태인 채로 추락을 하지, 롤을 하면서 추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날개 일부가 떨어져나간 것도 아니다. CG를 예쁘게 그리면 뭐하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묘사를 하는데.
8. 진지 축성
낙동강 방어선, 야습, 두밀령 전투 등에서 국군과 북한군의 진지 축성이 등장한다. 이 장면들에서 진지 축성은 허리 내지 키높이의 일자로 파놓은 참호의 형태로 모두 비슷하다. 그런데, 6.25 당시의 축성술은 이렇지 않았다.
6.25때의 진지 축성은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어서 2인 내지 3인용 개인호 위주로 구성이 되고, 이러한 전투용 개인호나 공용화기호에 지붕이 덮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벙커"나 "토치카"가 되는 것이다. 혹시 야전에서 군생황을 해보지 않았다면, 플래툰이나 밴드 오브 브러더스에 나오는 개인호의 형태를 생각하면 된다. 진지 축성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러한 개인호들을 연결하는 교통호를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낙동강 방어선의 야습 신에서 기관총 벙커가 딱 한번 나오고, 그 이외에는 모두 선형으로 된 무개 참호들만 나온다. 6.25 당시의 시점에서 영화에 나온 것과 같은 모양의 얕은 깊이의 무개 참호는 실제로는 전투용 참호가 아니라 개인호들을 연결하는 교통호에 불과하다. 1차대전때의 참호선은 그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6.25에서라면 교통호에 수십명이 일렬로 늘어서서 총질을 하는 따위의 방어 편성은 없다. 전투장면을 잘 보면 심지어 백병전이 아직 벌어지지 않고 사격전을 교환하고 있는 중이라 엄폐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교통호에조차도 엄폐할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고 병사들이 마치 태엽 인형을 던져놓은 것처럼 아무 이유 없이 교통호 안과 밖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가 아니라 단지 피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화면을 만들기 위한 소품으로서만 병사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의 개인호 단위로 방어편성이 되므로 모든 신에서 그렇듯이 교통호에 어깨를 맞대고 일렬로 늘어선 것보다 병력 밀도가 훨씬 낮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두밀령 고지 전투가 벌어질 때는 전쟁이 고지 쟁탈전으로 비화해있던 시기이므로 방어군은 통상 유개 참호를 포함한 강력하게 축성된 진지를 가?測? 것이 타당하지만 영화의 두밀령 전투에서는 유개 참호도 단 한 개도 안나온다.
9. 정리
태극기...는 국산 전쟁영화로서는 소품 고증이라던가 특수효과 등의 면에서 어느정도의 발전을 가져온 작품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글들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소품 고증은 그저 서사물의 가장 기본적인 밑바탕일 뿐이며, 태극기...에서는 그나마도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봐줘도 태극기...의 군사 고증 자문을 한 분 스스로를 포함한 밀리타리 매니아들이 소품 고증 오류를 지적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의 작품보다 소품 고증 면에서도 못하면 못하지, 그보다 더 낫지는 않다. 그리고 특수효과는 그저 보조적인 테크닉일 뿐 전투신 연출의 본질은 아니다. 태극기...의 특수효과나 촬영 기법 등은 전체 영화에 자연스럽게 조화되어있다기보다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거칠게 드러나 있는데, 특수효과가 영화에서 튀어 드러나면 그건 더 이상 효과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왔던 촬영과 특수효과 테크닉을 노골적으로 흉내냈다고 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급의 영화가 탄생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특수효과나 촬영 기법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도 잘된 전투신을 만들어내는 영화나 드라마는 많이 있다.
태극기...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전투 장면 연출력은 그런 기법들 보다도 유혈이 낭자한 묘사라고 생각된다. 태극기...는 모든 전투신이나 포격 신에서 피가 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불에 타죽는 장면을 차라리 지루할 정도로 끼워넣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의 참혹한 전상자 묘사는 당시 상황의 끔찍함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완벽하게 기능한다. 반면, 태극기...의 그것은 낭자한 유혈의 양에서는 오히려 두 영화를 압도하면서도 그 상황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단지 불쾌할 뿐이고, 감정 이입의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그다지 하고 있지 못함은 물론 상당한 장면들이 줄거리상 필연성이 없이 무분별하게 삽입되어있다. 엽기 장면이 많을수록 더 뛰어난 전투 씬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감독은 애당초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류의 사실적인 전투신은 없겠지만 그 대신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두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홈지기에게는 전쟁 영화에서 사실성과는 직접 상관 없는 볼거리를 기대하라는 말이 몬도가네 쇼를 감상하라는 말로밖에 이해가 안되었었는데, 보고 나니 역시 딱 그수준이었다.
이전의 다른 글들에서 총들고 싸우는 전쟁을 창들고 싸우는 전술대로 묘사를 하면 안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잘 된 전투신이라는 것이 피와 살점이 낭자한 잔혹 엽기 몬도가네 화면 연출력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라고도 했었다. 전쟁 영화로서의 태극기...는 이 두가지 나쁜 사례가 한꺼번에 합쳐진 거대 졸작이라고 본다. 두밀령 전투 장면은 6.25의 보병 공격이라기 보다는 임진왜란당시 왜군의 행주산성 공격 장면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며, 방어군들의 참호 전투 형태도 6.25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나 적합하다. 깃발부대와 그들을 앞장서서 지휘하는 장동건의 모습은 브레이브 하트에 나오는 스코틀랜드 저항군과 그들을 앞장서서 이끄는 윌리엄 월레스를 연상케 한다. 머리에서 두부 조각 튀어나오는 장면은 열심히 흉내내냈지만, 그런 장면들이 의도했던 정서는 재현하지 못하고 잔혹 엽기 동영상 이상의 가치를 넘지 못했다. 이들 모두 단지 헐리우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비용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는 해명이 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영화는 일정한 장면을 카메라 앵글에 효과적으로 담아야 하기 때문에 전술 재현과 카메라 앵글의 관점은 상충하는 부분이 있긴 하다. 제한된 카메라 앵글과 실제 전술 대형을 고려하면, 항공 촬영이라도 하지 않는 한은 보편적인 카메라 앵글로 잡을 수 있는 범위는 기껏해야 소대급 이하의 소부대 전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의욕 넘치는 감독이라면 그정도의 앵글에 만족하지 못할 법 하다는 것이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잘된 전쟁 영화들은 그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장렬한 전투를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해도 전투 장면에서는 비교적 소부대 단위의 전투에 카메라의 초점이 맞추어진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신에서도 톰 행크스 주변의 몇몇 인원에 주된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블랙 호크 다운은 애당초 투입 병력 규모가 200명도 안되었고 실제 전투가 시가지라는 한정된 시야를 가진 지형에서 주로 분대급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시 전투를 카메라 앵글에 담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밴드 오브 브러더스도 전투신의 카메라 앵글은 소부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한 장면에 수백 수천 명이 등장하는 전투신 같은 것은 헐리우드 대자본을 투자한 스펙터클 영화에서나 가능하고, 그런 장면들도 대개 그저 거의 장지한 상태의 전투대형을 화면에 잡아서 관객에게 장렬함과 위압감을 선사하는 정도이지, 수백 명이 교전을 하는 장면을 한꺼번에 한 앵글에 담겠다는 욕심의 결과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정지 상태의 대군을 보여주는 이른 바 스펙타클한 연출도 70mm 화면 시대를 지난 요즘에는 사실상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헐리우드에서도 한계를 명확히 하는 그런 부분을 소자본 전쟁영화에서 무리하게 욕심 내고 70mm 영화에서나 쓰일 법한 화면 구도를 흉내내려다 보니, 항공 촬영도 하지 못하는 형편에 한 화면에 사람이 많이 보이면 스펙타클한 화면이 된다는 식의 유치한 발상으로 제한된 카메라 앵글 안에 엑스트러들을 옹기종기 모아놓아서 대규모 전투를 억지로 묘사하려다 결국 모든 전투신에서 리얼리티가 완전히 무시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배달의 기수나 돌아오지 않는 해병, 전우 등 기존의 국산 전쟁물들의 단점을 굳이 비판해본다면 단선적인 선악 구분의 권선징악적 내용, 신파조의 연출, 적군은 죽어주러 등장해서 은폐 엄페도 제대로 안하고 있다가 낙엽처럼 죽어나가고 주인공은 적의 총알도 빗겨가는 유치한 묘사 등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들에 입각해서 태극기...가 얼마나 큰 발전을 이루었는가 생각해보면 막상 뭐가 달라졌나 하는 의문이 든다. 권선징악의 프로파간다적인 주제의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큰 걸음을 했다고 평가될 수 있긴 하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논쟁의 소지를 상당히 많이 안고 있기 때문에, 정치성을 성공적으로 배제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배우들의 신파조의 연기와 군인이라고 해서 억지로 경직된 말투(그러나 실제 군대 말투와는 사뭇 다른)를 쓰는 유치한 연출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나 배달의 기수에서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화면에 등장해서 엉거주춤하고 이유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마구 죽어나가는 북한군의 모습도 MBC 드라마였던 3840 유격대에서 주인공인 유격대원들에게 절반쯤은 희극적으로 개죽음 당하는 괴뢰군의 모습에서 반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한 것 같다. 한국 전쟁 영화의 상투성을 깼다는데, 홈지기가 보기에는 약간의 눈요기로 현혹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내용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대체로 거기서 거기로 보인다. 전투 장면의 시각 효과가 뛰어나졌다고 해서 더 뛰어난 전쟁영화가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그래픽이 뛰어나진다고 해서 더 좋은 플심 게임이 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영화의 군사 고증 부분을 전반적으로 요약해보면, 군사 고증 전반에 밀리타리 매니아가 참가했고, 매니아 아니라 다른 누가 맡았더라도 리서치를 통한 고증 연구를 했어야만 할 소품 고증 등의 몇몇 부분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하긴 했다. 하지만 소품을 제외한 다른 거의 모든 군사 부분들은 본질적으로 학술적 사실 고증에 입각한 전쟁 리얼리티 재현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그리고 여전히 전술이나 전투 장면의 사실성을 객관성 있게 고증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인적 구성 하에서 매니아와 연출진의 상상력으로 군사 고증 부분을 지어냈을 뿐이다. 전투 장면들은 그저 기존의 전쟁 영화들이나 다큐 필름 등 어디선가 본 듯한 전형적인 장면들을 시대 상황의 고려도 없이 무분별하게 관습적으로 흉내낸 후 인공조미료 격의 특수효과를 조잡하게 입힌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이른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성공적인 군사 고증이라고 일컬어지는 태극기...의 군사 고증의 전부이다.
그래도 그나마 그정도 진척이라도 이룬 것이 큰 업적이므로 비판의 날을 잠시 접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한다면, 홈지기는 그러한 자비로운 정신을 갖기를 단호하게 거부하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소품이나 라스트 전투신 조차도 밀리타리 매니아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의 칼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당에 라이언...을 유치하게 흉내내기에 급급한 영화 따위를 단지 군사 부분 조언자가 밀리타리 매니아라는 이유로 내부자 거래를 하듯이 눈감고 넘어가 줄 이유는 없다. 전쟁 영화로서의 태극기...는 기존의 전쟁물이 50점이라면 기껏해야 55점 정도의 부분적인 가능성을 보인 영화이지, 앞으로의 전쟁영화의 귀감이 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 라이언...때도 앞으로의 전쟁영화들이 잔혹 엽기 쇼로 비화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고, 그러한 우려가 태극기...에서 현실이 되었다. 태극기...가 앞으로의 전쟁영화의 귀감이 될 법 하기는 커녕, 몰상식한 제작자나 감독이 무분별하게 모방할 성공한 졸작의 나쁜 선례로 남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 된다.
전쟁 영화의 군사 고증은 밀리타리 매니아가 아니라 6.25 참전 퇴역 군인이라든가 군 출신, 관련된 군 공식 자료 등 객관성 있는 소스를 토대로 하는 것이 옳다. 태극기...의 군사 고증 조언을 맡은 분은 밴드 오브 브러더스, 플래툰 등의 군사 자문을 맡은 예비역 해병 대위 "Dale Dye"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인터뷰 기사에서 말했다. 영화 플래툰은 고증 자문을 필요로 하기 이전에 감독인 올리버 스톤 스스로가 베트남 참전용사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블랙 호크 다운, 밴드 오브 브러더스 등은 모두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병사들을 꼼꼼하고 방대하게 인터뷰한 원작을 토대로 영화화된 작품들이다. 그러한 탄탄한 원작의 토대 위에서 군사 자문 담당(이것도 실제로는 개인이 아니라 군출신이나 군사학 전문가, 리서쳐 등등의 전문 인력들로 구성된 팀일 것이다)의 현장에서의 조언이 덧붙여저 그 영화들의 완성도가 생긴 것이다. 밀리타리 매니아 개인이 그 많은 참전 용사들의 인터뷰들과 소부대 전술을 정식으로 교육받은 참전 용사인 예비역 해병 대위 등이 뒷받침하는 군사 고증 자문을 합친 것과 같은 역할을 하고싶다니, 욕심이 지나친 것을 넘어서 과대망상이라 본다. 굳이 공부를 한다면 먼 훗날 비슷한 역할을 못할 것도 없겠지만, 전형적인 밀리타리 매니아로서의 시각으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어떤 밀리타리 매니아라도 제도권에서 그런 식의 역할을 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오다쿠적인 시각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매니아로서의 전문 지식의 깊이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애당초 영화 군사 고증 같은 것은 매니아가 담당할 역할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어떤 부분들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매니아는 그 특성상 단편적인 사실들을 나열하고 어떤 사실을 중요성과 상관 없이 깊이 파헤치는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넓은 시각에서 골격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나가는 능력은 굉장히 미흡하기 때문에, 어떤 구체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자문역 같은 것은 제도권에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지 결코 매니아가 나설 영역이 아니다. 매니아는 비주류로서의 역할로 충분하다. 옥의 티를 없애는 역할을 떠맡는 것 보다도 옥의 티를 찾아내는 역할만을 잘 할 수 있고 그런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 예비역 해병 대위 Dale Dye는 사병으로 입대해서 부사관으로 복무하고 장교 임관 코스를 거쳐 대위로 예편하였고, 월남전에 3회 복무하여 30여 회의 주요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대위 시절에는 베이루트에 평화 유지군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예편 후 잠시 군사 잡지 (일본풍 오다쿠 잡지가 아닌 정통 전문 잡지) 에서 활동하다가 헐리우드에 입성하였다. 많은 영화의 군사 자문을 맡았을 뿐 아니라, 플래툰의 중대장 역에서 밴드 오브 브러더스의 연대장 역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밀리타리물 및 기타 여러 작품에 출연한 고참 배우이기도 하다.
결언
물론 태극기...는 이런 밀리타리적 관점의 비판들에 대해서 충분한 반론의 여지를 가진 영화이다. 크게 보아서 태극기...는 형제애와 가족애를 주제로 한 영화이고 6.25의 전투장면을 재현하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은 단지 스토리를 진행해가는 배경일 뿐이다. 솔직히 홈지기의 생각으로는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억지성 다분한 설정이나 스토리의 비약, 짜임새 없이 지루함을 안겨주는 편집, 신파조의 결말 등 영화적 완성도도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전쟁이 아닌 형제애라는 점을 주제로 영화를 이끌어갔다는 점이 나름대로의 성공의 가치가 인정될만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한다고 할 때 군사 고증 면에서 한발 진척한 작품이라는 식의 평가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태극기...는 형제애라는 스토리 라인이 전투신의 허무맹랑한 고증 실패를 상쇄하여 영화의 작품 가치를 그나마 지킨 구조이지, 군사적 고증 부분이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한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태극기...가 볼 만한 흥행 영화인 것에는 어느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태극기...는 블랙호크 다운 감상문에서 언급했던 컬트로서의 전쟁영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장르의 작품인 것 같다.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잘 만들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는데,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앞으로는 전쟁영화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사실 우리 기준에서 아무리 발버둥친 블록 버스터라고 해도, 헐리우드의 기준으로는 저예산 2류 비디오급 액션물 정도(쉬리가 딱 그렇다)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의 갈길은 굳이 돈 많이 드는 소재를 택해서 뱁새가 황새 쫒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꼴불견을 연출하기 보다는 스토리 텔링에 강한 한국 영화의 장점을 계속 살려나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태극기... 역시 굳이 비용을 많이 들여가면서 헐리우드를 흉내내어 연출한 부분들 보다도 스토리 그자체 때문에 평론계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부연]
이 글을 쓰던 시점에서는 보도자료 등을 토대로 몇몇 기사에 나온 밀리타리 매니아 분이 영화의 군사고증 전반을 맡았던 것으로 전제하고 글을 썼기에 결과적으로 이 글에 언급된 밀리타리 매니아분에게 영화의 군사 고증 전반의 완성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여러 분들께서 밀리타리 매니아분이 군사 고증 전반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라 소품 고증 위주의 제한된 영역이었다는 점을 지적해주셨다. 홈지기가 그 부분에서 다소 오해를 했었다는 점을 늦게나마 밝히고자 한다. 지적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영화의 군사고증의 완성도를 군사학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이며, 특정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가 아니라는 것도 밝혀둔다.
첫댓글 저도 밀리터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터라 재미있게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