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보고 인간을 바라보았고,
다시 인간을 한 번 보고 돼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1. 첫문장
우리가 해방되는 그날 영국의 들판은 더욱 밝아지고 강물은 더욱 맑아지리라
- 영국의 동물들 에서 -
"깊은 밤이 찾아왔다. 메이너 농장의 주인 존스는 늘 그랬듯이 닭장 문을 잠그고 돌아섰다. 그러나 술에 잔뜩 취해서 닭들이 오가는 닭장의 작은 문을 닫는 것은 깜빡 잊고 말았다. 존스는 손에 등불을 들고 이리저리 휘청대며 뜰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등불에서 흘러나온 동그란 불빛이 그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좌우로 흔들렸다."
2.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다. 인도 벵골에서 1903년 6월 25일에 태어났다. 8세 때 학교에 들어가지만, 상류층 아이들로부터 심한 차별을 당하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스쿨에서도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대학을 포기한 오웰은 1922년부터 미얀마에서 5년간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하지만, 점차 직업에 회의를 느꼈다. 그 후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을 걸었다.
유럽으로 돌아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초등학교 교사직을 잠시 지낸 후, 영국 노동자의 삶에 대해 조사했다. 이를 토대로 1933년 처 소설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을 출간했다. 전체주의를 혐오했던 그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한다. 이 체험을 기록한 1938년 《카탈로니아 찬가》는 뛰어난 기록 문학으로 평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 Animal Farm》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해 아내를 잃고 자신도 병이 심해져 병원신세를 졌으며, 그 와중에도 작품활동을 계속해 전체주의의 종말을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그를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으나 악화되는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1950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 줄거리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 인간사의 진리를 품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진리를 다룬 이야기 중에는 오늘날까지 풍자 소설의 최고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 동물농장은 농장들로 구성된 시골 한적한 마을에 있는 존스 씨의 농장에서 어느날 동물들이 반란 모의를 합니다. 늙은 돼지 메이저는 동물들의 낙원에 대한 꿈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물들 중 가장 영리하다고 평가받는 돼지들의 젊은 층들은 메이저가 남긴 희망을 체계화하면서 반란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적인 혁명의 날, 동물들은 인간 존스를 쫓아내고 동물들만의 농장 건설을 선언합니다.
모든 동물들의 평등을 주장하는 ‘7계명’을 새롭게 선포하면서 동물농장은 빠르게 번영하기 시작합니다. 혁명을 주도했던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의 지도 하에 농장은 동물들 스스로의 번영과 평화를 가꾸어 나가는 새로운 낙원으로서의 희망을 잉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리더였던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의 관계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생산력의 비약적인 향상을 위해서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는 풍차 건설의 논쟁으로부터 두 돼지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풍차의 시급한 건설로 빠른 생산력 증대를 이루자는 나폴레옹과, 그 풍차 건설로 인해 동물 개개인이 받을 인권 침해와 고통을 이야기하는 이상주의자 스노우볼의 갈등, 그리고 다시 농장을 되찾기 위해 쳐들어오는 전 농장 주인 존스 씨에 얽힌 과정 속에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축출당하게 됩니다. 스노우볼을 쫓아낸 나폴레옹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몰래 키워 온 사냥개 9마리와, 교활하고 말 잘하는 돼지 스퀼러를 활용해 동물 농장에 새로운 분위기를 이끌어 옵니다. 풍차를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동물들에게 중노동을 강요했고, 존스씨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스노우볼의 첩자라는 미명 하에 누명을 씌워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이상적인 동물사회를 꿈꾸었던 동물농장은 서서히 변화합니다. 다시 예전처럼 낮은 배급량이 동물들에게는 돌아갔고, 일요일마다 모든 동물이 모여서 농장의 중대 사항을 결정하던 일요 회의도 폐지되었습니다. 남은 자리에는 모든 의사결정에서 단독권을 행사하는 나폴레옹과 그의 수하들만이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폴레옹 주변의 동물들은 오히려 인간 지배 시절보다 안락한 삶을 만끽합니다.
아예 존스 씨가 살던 오두막에 들어가 두발로 걸어 다니면서 술을 마십니다. 단순히 인간의 흉내만 내던 나폴레옹은 이제 본격적으로 다른 인간 농장들과 거래를 트기 시작합니다. 동물 혁명과 풍차 건설, 전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온 늙은 말 복서가 과로로 쓰러지자, 그를 인간이 운영하는 도살장에 팔아버리는 일도 발생하고, 어느 날부터 나폴레옹은 동물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딴 마음을 품지는 않는지를 채찍을 들고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최초에 작성된 7계명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바뀝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그?나 어떤 동물들은 더 평등하다.”로 스리슬쩍 바뀌어 있습니다.
4. 작품해설
『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 』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연방의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한 소설이다. 그러나 출간 초기에는 주인공을 동물로 하고, 이야기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가벼운 유모도 섞여 있어서 아동소설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조지 오웰은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정권의 폭력을 낱낱이 고발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인간의 탐욕에 의해 어떻게 변질되는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동물농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20세기 초반 유럽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 인간의 권력욕으로 변질되는 이념
1900년대 초반, 러시아는 철저한 전제군주제 아래 통치되었다. 당시 니콜라이 2세는 방만하고 무능한 통치를 했고, 민중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졌다. 그러자 1917년에 이를 참지 못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민중시위가 일어낫다. 시위는 혁명으로 발전했고, 니콜라이 2세는 폐위됐고 군주제가 폐지됐다. 하지만 혁명의 물결은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거세져서 자본주의 타도,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레닌과 스탈린, 트로츠키 등의 사회주의자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건립했다. 하지만 혁명위에 세워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은 지도 세력이 서로 반목했고, 체제 유지를 위해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점차 독재정권으로 변모했다.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이념은 러시아를 넘어 유럽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그 대표적인 예가 조지 오웰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스페인 내전이다. 스페인 내전은 좌익 세력으로 이루어진 공화파와 프랑코 장군을 위시한 파시스트 군사정권이 대립한 전쟁이다.
그는 그곳에서 가난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공화파 의용군이 완전한 평등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다시 내분이 일어나며 빈부와 상하계급의 구분이 다시 생겨나고 결국, 분열된 공화파는 파시스트에게 패하고 스페인의 정권을 넘기게 된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을 경험하며, 사회주의 이념이 인간의 권력욕으로 점차 변질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독재정권으로 변모하는 상황을 그의 경험을 살려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2)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을 닮은 동물들의 혁명
돼지로 표현되는 메이저 영감은 동물들이 노예생활을 거부하고 인간들에게 투쟁할 것을 처음 주장하는 인물이다. 이는 사회주의 이념을 주창한 마르크스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동물들에게 쫓겨나는 농장주 존스는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연상케 한다. 또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에, 그의 경쟁자 스노블은 트로츠키에 비유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나폴레옹과 스노불이 서로 반목하듯이, 스탈린과 트로츠키도 사회주의 이념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중심이 되는 두 인물 외에도 현란한 말재주로 동물들을 선동하는 스퀼러는 스탈린의 여론조작 기관을, 나폴레옹을 호위하는 개들은 비밀경찰을 떠올리게 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우둔하기 짝이 없는 복서는 마치 스탈린 독재정권의 책략에 세뇌되어 제대로 비판을 제기하지도 못했던 우매한 시민들 혹은 노동자들 같다.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개과정 전체에서도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적 변화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혁명의 수뇌부 역할을 한 돼지들은 혁명이 성공한 후에 '일곱 계명'을 발표하며 동물주의 기본 원칙을 확립한다. 이 계명들은 계급 타파와 평등 원칙을 내세운 사회주의 이념과 연결지을 수 있다.
스탈린의 독재정치가 심화되면서 사회주의 초기 이념이 변질되었듯이, 나폴레옹의 동물주의의 일곱 계명도 나포레옹 정권의 조작으로 인해 왜곡되어 간다. 나폴레옹은 경쟁자 스노볼을 몰아낸 후부터 자신의 권력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이 계명들을 하나씩 어기고 조작한다.
우선 나포레옹은 자신읙 ㅓ처를 이전 농장주 존스의 집 안으로 옮기면서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는 네 번째 계명을 위반한다. 게다가 계명을 어긴 데 대한 항의를 잠재우기 위해 네 번재 계명을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깐'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된다."로 조작한다. 또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동물들을 무참히 처형하기 위해 살인을 금하는 여섯 번재 계명을 "어떤 동물도 '이유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로 바꿔 놓는다.
나폴레옹은 동물주의의 계명들을 조금씩 교묘하게 조작해 나가다가 마침내 동물들의 평등을 주장하는 기본적인 계명까지 뒤엎어 버린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계명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조작한다. 돼지들은 자신들을 다른 동물보다 특별한 계급에 올려놓음으로써 평등을 가장 중요시하는 동물주의의 이념을 완전히 저버린다.
이제 동물 농장의 모습은 단순한 노예로 일하는 존스 시절과 다를 바가 없다. 나폴레옹은 돼지 이외의 다른 동물을 '하층 동물'이라 부르며 존스보다 더욱 악랄한 방식으로 동물들을 착취한다. 농장을 방문한 인간 농장주들마저 동물 농장의 이 '새롭고 효율적인' 착취 방법들을 자신의 농장에 도입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급기야 돼지들은 인간처럼 걷고 인간처럼 옷을 입으며 인간처럼 신문을 읽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과 돼지들은 카드놀이를 하며 서로 어울리는데 이들 중에서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다.
3) 진정한 사회주의 재건에 대한 희망
동물농장은 반공산주의, 반사회주의를 부르짖는 소설로 오인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 해외정보국은 '반공 투쟁'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판권료까지 사들여서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 소설을 번역하고 출판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 노력으로 출간된지 3년 만인 1948년에 '동물 농장'은 우리말로도 번역되었고,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은 우리나라가 최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웰은 정작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의 모순과 불합리를 강하게 비판한, 사회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였다. 그는 위험한 좌파 인사로 낙인 찍혀서 영국 정부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그는 사회주의의 이상이란 정의와 자유를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평등의 이념을 쫓아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 하더라도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정권처럼 이념을 내세워 시민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동물농장'은 사회주의에 대한 실랄한 비판과 함께 진정한 사회주의에 대한 오웰의 깊은 애정과 '진정한 사회주의 재건'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4)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에 대한 풍자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신화의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고 풍자하는 소설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풍자는 근현대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든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상관없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독재정권이라면 모두 적용될 수 있다.
나폴레옹 정권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동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온갖 교모한 책략을 쓴다. '동물 농장이여, 영원하라!' '나폴레옹 동무는 언제나 옳다'와 같은 선동 문구를 퍼뜨리거나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나 '모든 동물의 아버지'와 같은 호칭을 써서 신격화한다.
이러한 책략은 북한의 공산정권에서 사용되는 '위대하신 수령님'과 같은 호칭과 선전선동 문구와 흡사하다. 또한 나폴레옹 독재 정권을 위협하는 사건이 터질 때면 선동가 스퀼러는 항상 '혹시 존스가 돌아오길 바라는 이가 여기 있는 건 아닐 테지요?'라는 말로 동물들의 항의를 잠재운다.
5) 현재에도 유의미한 '동물 농장' 읽기
이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든지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정책에 적용시켜도 무리가 없다. 본질적으로는 시민의 자유, 권리를 묵살하는 정부의 독재 정치, 위선적 정책을 비판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는 냉전체제가 종결된 지금이지만 오히려 오늘날 정부의 독재적, 억압적 정책에 대한 오웰의 날카로운 비판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정부의 정책에 거침없이 비판을 가할 언론의 자유와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행위가 정부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 농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계속 읽히며 억압과 독재가 난무하느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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