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역술인
어느덧 저녁 8시쯤 되었나? 하루종일 손님을 감정하느라 지쳐서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문 앞에 와 서 있었다. 정신 없이 이 손님. 저 손님과 씨름하다보면 저녁 무렵에는 몸이 파김치가 되어 있어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냥 돌려보낼까 하는 생각으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연신 고개를 굽실굽실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나 보다 싶어 서둘러 안으로 안내했다. 대개 사람들이 철학관을 찾을 때는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호기심에서 온다. 그러니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해서 특별히 긴장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년여인의 경우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듯 해서 다음으로 미루기가 어려웠다.
자리가 잡고 앉은 후에 펜과 종이를 꺼내며 잠시 곁눈으로 관상을 살펴보았다. 얼굴이 이마부분보다는 턱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얄팍하게 흐르는 것이 소심한 성격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마에 난문(亂紋)이 어지러이 교차된 사람은 일생 재앙이 따르고 피곤한 명이나, 그려는 여기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여자의 이마에 삼횡문(三橫紋)이 있으면 남편을 사별하고 자식마저 기르기 어려우나 이 모양새도 아니다. 그러니 남편이나 아니 문제는 벗어나 있지 않은가?
그녀의 허둥거리는 모습이나 불안에 떨고 있는 듯한 모양새에서 무엇인가 상당히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은 확실한데, 관상으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감정해서 정신이 혼미하여 관상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싶어 관상감정은 포기하고 말을 건넸다.
"무엇을 말씀드릴까요?"
그녀는 말없이 생년월일이 씌여 있는 종이를 건네며 보아달라고 부탁했다.
"누구 것인가요?"
"남편이에요."
사주를 찾아 적고 대운을 뽑으면서 짧은 순간이라도 무료함을 주지 않기 위해 성명에서 나타난 남편의 성격을 차례차례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바짝 마르고 갸름한 편에 얌전하면서 소심한 듯한 이 중년여인은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처럼 맞추는가하는 표정이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책상 위 종이에 그녀 남편의 운명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8월에 태어난 토에 금이 강해서 귀한 사주는 아니었다. 그러니 정치적인 문제는 아닌 듯 했다. 그러면 가정사인가 하고 살펴보았다. 신경이 예민하고 의존성이 강해서 자신이 혼자 일 처리를 잘 하지도 못하는 마마보이 기질이 나타났다. 약간의 의처증 증세는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남편의 성격이 포악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남편이 바람을 피는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관계가 나쁘지 않을 테니 이렇게 허겁지겁 겁에 질린 모습으로 철학관을 찾았을 리는 만무였다.
26대운과 36대운으로 금운(金運)이 흘러가니 사주원국의 무토, 술토의 생을 받아서 금이 더욱 왕성해졌다. 금(金)이 뼈를 상징하는 목(木)을 치고 들어가 허리에 이상이 있을 것이라 보였다. 건강이 안좋을 것으로 보이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였다. 그러나 사주로 보아 이상이 드러난 것은 건강문제라 먼저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께서는 뼈마디에 관한 통증, 특히 허리 통증을 자주 호소하겠으니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다만 커다란 위험은 아니니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왈칵 눈물을 쏟는 것이 아닌가? 커다란 위험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잘못 듣고 충격을 받았는가 싶어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사주를 들여다보았다.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있는가 아니면 교통사고인가 등등, 잘못 보았나 싶어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상징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허! 정말로 오늘 너무 많은 사람을 감정하다보니 제대로 사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었는가 다시 한번 나를 추스르고 정신을 가다듬었건만, 사주엔 여전히 커다란 이상은 없었다. 그녀는 한참동안 훌쩍이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남편의 내년 운세를 보아 달라고 했다. 다음해의 운세와 사주원국과 대운과 세운을 이리 저리 돌려보고 맞추어 보아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글쎄요. 별다른 큰 일은 없을 듯 하군요."
여자들이 남편의 사주를 내놓을 때는 첫째가 여자문제, 둘째가 사업실패, 셋째가 건강문제인데, 그녀의 남편은 이 세 가지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그녀는 별일이 없다고 해도 자꾸 두 번 세 번 더 봐달라고 했다.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이 사주를 가지고 현재 말씀드린 것 이상의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습니다. 저의 실력이 부족한지는 몰라도 제가 지금까지 20여년간 갈고 닦은 역학의 지식은 이것뿐입니다."
그제야 그녀는 잠시 진정하면서 사정을 이야기 해나가기 시작했다.
"여기 오기 전에 평소에 가끔 다니던 철학관에 들렀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이곳으로 오고 싶었지만, 두 세번 다녀보았던 철학관인지라 그곳으로 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남편의 운명을 보면서 내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앉은뱅이가 된다고 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사고가 없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고 물으니 비책이 있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르쳐 주십시오 간곡히 부탁하니, 부적을 써서 다시 태워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남편의 나이에 맞추어 최소한 450만원은 들어간다는 거예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의 사주로 보아 사주원국에 수(水)가 태부족하니 수가 필요로 하는 직업(말로 하는 직업, 장사, 무역, 학원, 선생), 물장사, 커피숍, 분식, 한식정도인데 무역은 사주의 구성상 불가능하고, 월령(月令)이 상관(傷官)을 만나니 직장을 다닐 리도 없었다. 물과 관련이 있는 장사 중에 중개업을 할 것으로 보이니 아마 수산물 중개업을 하는 듯 했다. 소자본의 수산물 판매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450만원이라는 큰돈을 어찌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반신불수가 된다는데 부적을 안 쓸 수는 없죠. 부적을 쓰자니 형편은 안되죠. 어떻게 하나 남편한테는 말도 못하고 밤새도록 고민했지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기를 찾아와서 선생님도 남편의 사주가 나쁘다고 하신다면 빚을 내서라도 부적을 쓰려고 했는데...."
그런데 건강이 좋지는 않지만 큰 위험은 없다고 하니 그 동안 겁이 나서 조바심하던 마음이 풀려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그 동안 마음 졸였을 그녀가 안쓰럽기도 해서 여러 가지 상담을 한 수 안심을 시켜 돌려보냈다. 그러나 문을 닫고 철학관을 나오며 답답해지는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자질 없는 사람들이 고귀하고 신성한 역학에 손을 대어 순진한 백성을 협박해서 돈을 벌고 있는 까닭에, 주변에서 역학을 미신이라 업신여기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상담자의 약점을 잡고 겁을 주어서 돈을 번다면 어떤 사람들이 역술인을 믿고 자신의 운명을 상담하려고 하겠는가?
이 중년부인도 그저 장사가 잘 되나보자 하는 마음에 철학관에 들렀다가 남편이 앉은뱅이가 된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겁이 나서 450만원의 빚을 질 뻔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에는 제대로 교육받지도 않은 채, 또 일정한 연구와 공부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채 사람들의 운명을 감정해주는 사이비 역술인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어줍잖은 지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해서 돈을 번다. 그러므로 이런 사정을 모르는 서민들만 큰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자신과 집안에 재앙이 있다는데 돈을 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사이비 역술인을 없애려면 역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해서, 그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양심 있는 상담자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며 자격 없는 사이비 역술가들이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일제시대에 우리의 역학을 미신이라고 몰아붙이며 억압하던 일본은 오히려 역학대학을 세워서 역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왔으며, 나름대로 성과도 쌓아왔다. 또한 프랑스의 풍수가, 혹은 미국의 점성술가처럼 양성화해서 발전시키고 있는 나라도 많이 있다.
겉으로는 미신시하면서 속으로는 철학관을 찾는, 이런 식의 이중성은 역학의 체계적 연구와 발전을 가로막고 사이비 역술인만 음성적으로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첫댓글 도사님 글을 보고 왠지모를 눈물이 났었습니다.좋은글 좋은 느낌으로 보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도사님 감사합니다.다함께 그날을 위해 .......
이공부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인성교육이 필요할것 같군요~
그래서 저도 관심으 갖게 되었습니다.